[현장취재]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기자회견
【투데이신문 이종화 인턴기자】 SK케미칼·애경산업 등 가습기살균제 제조 및 판매회사 관계자들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가운데, 피해자 가족들은 “이 자리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언제든 피해자가 될 수 있다”며 판결에 대한 관심을 촉구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유족 등은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환경보건시민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같은 입장을 밝혔다.
앞서 지난 12일 서울중앙지법은 SK케미칼과 애경산업 전직 임원 등에 대해 1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 CMIT·MIT 성분의 가습기살균제 사용과 폐질환·천식 유발 사이의 사실관계 입증이 불분명하다는 것이 결정적 이유였다.
지난 2011년 4월부터 알려지기 시작한 가습기살균제 사건은 1994년 첫 출시된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폐손상증후군 등으로 주로 영유아와 임신부, 노인 등 취약 계층이 사망하고 수천명이 피해를 입은 사건이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지난해 가습기살균제로 사망한 박영숙씨의 남편 김태종씨를 비롯해 CMIT·MIT 및 복합제품 사용 피해자들이 나와 가습기살균제에 대한 피해를 증언했다.
박씨의 남편 김씨는 “지난 2007년 10월 이마트에서 구매한 가습기살균제 PB 상품을 쓴 뒤부터 아내의 폐가 급속도로 손상되기 시작했다”며 “지난해 숨을 거둘 때까지 13년 동안 아내와 우리 가족 모두 크나큰 고통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피해에 대해 가해자가 없다는 사실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참담한 심경을 전했다.
이어 쌍둥이 피해자의 엄마인 김미향씨는 “2012년 애경의 가습기살균제를 쓰고 나서 생후 3개월 된 쌍둥이 아이들이 기흉과 폐섬유화 등 기저질환을 앓기 시작했다”며 “쌍둥이 언니는 현재 목에 호스를 뚫고 호흡을 하는 상태”라고 말했다. 김씨는 이번 무죄 판결에 대해 “자식들 몸이 만신창이가 된 피해자의 심정이 어떠한지 아냐”며 울분을 토했다.
이밖에도 가습기메이트를 사용해 피해를 입은 김선미씨와 손수연씨는 “화학제품을 사용하는 누구든 언젠가는 우리와 같은 피해자가 될 수 있다”며 “제품을 사용한지 얼마 되지 않아 아이들에게 폐섬유화가 발생했는데 이게 왜 해당업체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인지 납득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이날 환경보건시민센터 최예용 소장은 “재판부는 동물실험을 근거로 CMIT·MIT 성분이 폐질환을 유발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며 “그러나 동물에서만 반응이 나타나는 물질도 있고 인체에서만 나타나는 물질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피해자들이 피해를 입은 사실이 명확하지만 정부가 이 부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무죄가 선고됐다”며 “앞으로 전문가 및 추가 피해자 기자회견을 통해 무죄 판결의 부당함을 사회에 널리 알리겠다"고 전했다.
한편 또 다른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유족들도 같은 날 오전 11시 광화문 광장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법원 판결의 부당함을 규탄했다.
이들은 “특조위는 지난 2년 간의 진상규명 조사자료를 항고심 공판 전 발표해 억울하게 사망한 1609명을 비롯한 수천명의 피해자들에게 가해기업의 사과와 국가배상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며 "가해기업은 반드시 사과하고 사법부는 1심 판결이 잘못이었음을 항고심에서 만회해 정의와 진실이 살아있음을 보여주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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