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큼 다가온 가습기살균제특별법 시행령 시행
“피해 당사자 의견 전혀 반영 안 돼” 반발 여전

지난 2017년 환경보건시민센터에서 열린 가습기메이트 '인체무해' 부당표시광고 조사 중단한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의 회의록 공개 및 쟁점 설명 기자회견 ⓒ뉴시스
지난 2017년 환경보건시민센터에서 열린 가습기메이트 '인체무해' 부당표시광고 조사 중단한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의 회의록 공개 및 쟁점 설명 기자회견 ⓒ뉴시스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지원을 강화하기 위한‘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 시행령(이하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법 시행령)’이 시행을 앞두고 연일 시끄럽다.

당국은 이번 개정 시행령이 조사·판정 체계 개편, 장해급여 지급기준 신설 등 보다 강화된 피해자 지원방안이 제공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으나, 당사자들은 참사 해결을 위해서는 턱 없이 부족하다며 시행령 시정을 촉구하고 있다.

입법예고 후 피해자들의 반발에 부딪혀 재입법예고 과정까지 거쳤으나 당국과 피해자들 간의 이견은 끝내 좁혀지지 못했다.

그리고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법 시행령은 논란을 매듭짓지 못한 채 시행을 코앞에 두고 있다.

지난 3월 3일 더불어민주당 전현희 의원과 가습기피해자들이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법 조속 통과 촉구 기자회견을 가졌다 ⓒ뉴시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지원 강화

2011년 가습기살균제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른 이후, 6년 만인 2017년에서야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법이 어렵사리 제정됐다.

이에 따라 기존 가습기살균제 피해 지원대상에서 포함되지 않았던 수준의 피해자들도 구제 대상으로 확대됐다.

그리고 지난 7월 3일 환경부는 피해자 지원을 더욱 강화하기 위한 취지로 하위법령인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법 시행령’을 입법 예고했다.

그러나 피해 당사자들은 특별유족조위금, 요양생활수당 상향, 피해지원 유효기간 폐지 등에 관한 내용이 피해 인정 범위를 확대하는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법의 취지에 어긋난다며 거세게 항의했다.

이후 재입법예고를 결정한 환경부는 시행령 개정안의 취지를 설명하고 피해자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공청회를 마련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사자들의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데 분노한 가습기살균제 피해 단체의 반발에 부딪혀 취소됐다.

결국 이견을 좁히지 못한 채 환경부는 지난 8월 27일부터 일주일간 재입법예고한다고 밝혔다.

환경부가 공개한 시행령 개정안에 따르면 기존에 있던 질환별 건강피해 인정기준을 없애고, 장관이 고시하는 기준을 근거로 개인별 의무기록을 검토하는 개별심사 방식을 중점으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다만 건강보험청구자료를 통해 피해 여부를 직접 확인할 수 있을 때는 빠르게 심사해 구제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따라 가습기살균제에 노출돼 질환이 발생 혹은 악화됐거나, 건상 상태가 전반적으로 나빠졌지만 현행법상 피해자로 구제받지 못한 경우도 정부 지원 가능성이 열리게 됐다.

지난달 31일 열린 가습기살균제 참사 9주기일 기자회견 ⓒ뉴시스
지난달 31일 열린 가습기살균제 참사 9주기일 기자회견 ⓒ뉴시스

구제급여 지급도 확대된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유족에게 지급된 특별유족조위금을 불법행위 위자료 수준, 피해구제법 보충적 성격, 타입법례와의 형평성 등을 고려해 4000여만원에서 1억여원으로 높인다. 개정법 시행 전에 특별유족조위금을 수령한 경우에는 증액된 차액에 대해 추가 지급을 받을 수 있다.

또 요양생활수당 지급액의 기준이 되는 피해등급을 3단계에서 5단계로 더 세분화하고, 지급액도 대략 1.2배 높인다. 이에 따라 초고도 피해등급일 경우에는 매월 약 170만5000원을 지급받을 수 있다.

더불어 장해급여에 관한 지급 기준을 새롭게 마련해, 가습기살균제 건강피해에 따른 질환을 치유한 이후 남은 장해 정도에 따라 일시금으로 최고 1억7200만원까지 지급할 방침이다.

피해자들이 오랜 기간 동안 안정적으로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질환 유형에 무관하게 피해지원 유효기간을 기존 5년에서 10년으로 늘리는 방안도 있다.

이 밖에도 가습기살균제 피해종합지원센터 콜센터 운영, 피해자 대상 온라인 간담회 주기적 개최 등 소통 강화 방안도 포함됐다.

환경부는 이번 개정 시행령을 통해 피해자를 신속히, 최대한 구제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25일 세종시청 로비에서 열린 습기살균제 사건의 원인과 진상을 바로 알리기 위한 '가습기살균제 참사: 끝나지 않은 이야기' 전국순회 전시회 ⓒ뉴시스

사참위 “참사 해결 안 돼”

그러나 당사자인 피해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그들은 이번 개정 시행령이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이하 사참위)는 이번 시행령이 피해지원 확대, 특별유족조위금, 장해급여 등 핵심 사항이 당초 입법예고 내용과 별반 다를 게 없어 참사 해결책이 아닌 또 다른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사참위에 따르면 개정 시행령에 포함된 피해지원 확대 조항은 종전 법률에서 구제급여 및 구제계정 대상 질환에 대해서만 신속심사를 하겠다는 것뿐, 나머지는 개별심사를 진행한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지난 8월 14일 기준 전체 피해인정 신청자 수는 6837명이다. 이 가운데 구제급여 대상은 930명이며, 구제계정 대상자는 2239명으로 총 3169명이다.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3668명에 대해서는 개별심사를 진행하겠다는 것인데, 심사 기준과 향후 일정이 제대로 제시되지 않은 상황이다.

게다가 그동안 사참위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폐질환의 경우 피해인정 신청에서 판정까지 대략 283일에서 526일까지 소요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처럼 장시간 소요되는 점을 미뤄 신속한 구제라는 입법 취지에는 어긋난다는 게 사참위의 분석이다.

또 특별유족조위금을 상향한다고 밝혔으나, 이는 2018년 환경부가 무자력 사망 피해자게게 지급한 3억원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며, 특별법 개정 당시 ‘사망위로금을 포괄하고 판례에서 제시된 배상액 수준으로 상향하라’고 한 입법부의 취지에도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또 요양생활수당과 장해급여는 병행지급 할 수 없다고 정해진 탓에 둘 중 하나는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다. 평생 치료해야 하는 가습기살균제 피해 특성을 고려했을 때, 요양생활 수당을 포기하고 장해급여를 신청할 수 있는 사람은 아주 소수라고 사참위는 보고 있다. 

사참위는 곧 도입을 앞둔 개정 시행령 일부 항목에 대한 시정을 촉구하고 있다.

가습기살균제에 노출되고, 이후 질환이 발생·악화된 피해자에 대해 다른 원인으로 입증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에게 신속 심사를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특별유족조위금은 2016년 대법원에서 결정된 불법행위 유형별 위자료 산정 기준을 근거한 ‘영리적 불법행위’ 기준을 기반으로 높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요양생활수당과 장해급여는 별개로 지급돼야 하며, 이 밖에도 개정법에 따른 자동 심사, 다양한 건강피해등급 기준 설정 및 지급금액 현실화, 피해자 의견진술권 보장 등도 포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뉴시스
지난 2017년 12월 19일 환경보건시민센터에서 가습기살균제 공정위 결과발표에 따른 입장 발표를 하고 있는 피해자 ⓒ뉴시스

지난 15일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돼 오는 25일 공포 후 즉시 시행이 예고돼 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관련 단체들은 당사자들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시행령 시행에 피해구제의 심각한 저해를 우려하고 있다.

사참위는 “입법예고 당시부터 지속적으로 문제가 제기되었던 사항에 대해 보완책이 없어 제대로 된 피해구제가 이루어질 수 있을지 걱정된다”고 밝혔다.

이어 “2017년 상당한 개연성으로 인과관계를 추정할 수 있도록 규정한 특별법의 내용을 시행령에서 상당한 인과관계로 변질·축소하는 전철을 되풀이할 우려가 있다”며 “환경부는 책임을 엄중하게 통감하고, 시행령의 재개정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미 한차례 재입법예고를 거쳤고, 시행령 공포와 시행까지 하루도 채 남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당장 재개정은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관계 당국이 시행령 시행 이후에도 면밀히 검토하고 당사자들과 꾸준히 소통해 피해자들의 우려 지점에 대한 보완책을 마련해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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