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푸스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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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최근 여성가족부가 선정해 초등학교 등에 배포했다가 시민단체와 정치권 등의 비판을 받아 회수한 ‘나다움 어린이책’이 선정성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나쁜교육에분노한학부모연합(분학연)’, ‘반동성애기독시민연합’ 등 시민단체들은 지난 20일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여가부가 포르노 같은 동화책을 초등학교에 비치했다며 이정옥 장관의 사퇴를 주장했습니다.

여가부는 지난해부터 초록우산어린이재단, 롯데지주와 함께 초등학교 교사와 아동작가 등 전문가 그룹이 선정한 책 134종을 나다움 어린이책으로 선정해 선정해 일부 초등학교에 배포했습니다.

여가부는 자기긍정, 다양성과 공존을 지향하는 어린이책을 통해 영유아기부터 자연스럽게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성인지 감수성을 높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나다움 어린이책을 선정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시민단체와 정치권에서 나다움 어린이책이 선정적이며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주장을 중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는 여성(엄마)과 남성(아빠)의 신체와 성관계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성관계를 ‘아빠 고추가 커지면서 번쩍 솟아올라’, ‘두 사람은 고추를 질에 넣고 싶어져. 재미있거든’이라고 묘사했습니다.

또 ‘아빠는 엄마의 질에 고추를 넣어. 그러고는 몸을 위아래로 흔들지’, ‘이 과정을 성교라고 해. 신나고 멋진 일이야’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밖에 <엄마 인권 선언>, <아빠 인권 선언>이라는 책에서는 동성애와 동성혼에 대해 ‘원하는 대로 사랑할 수 있는 권리라고 설명하고 동성 부부와 그 가족을 나타낸 그림을 넣었습니다.

분학연 등은 “남성과 여성의 구분이 고정관념이라고 보는 것은 우리 전통사회의 가치관에 정면으로 충돌하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며 “동성애를 인권이라고 가르치고 조기성애화의 내용을 담고 있는 등 우리 사회가 지닌 있는 고유의 가치기준에 반하는 여러 요소들을 품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들은 “아직 인지능력과 지각능력이 미성숙한 어린 학생들에게 이런 사상이 동화의 형태로 제공된다면 우리 고유의 가치기준에 반하는 사고를 여과 없이 받아들이게 돼 오히려 반사회성을 길러주는 독소적인 역할을 자처하는 것”이라며 “이런 잘못된 사상들과 우리 전통을 결코 바꿔치기할 수 없으며 교육적인 측면에서 허용돼서도 안 된다”고 비판했습니다.

정치권에서도 비판이 제기됐습니다. 미래통합당 김병옥 의원은 지난 25일 국회 교육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해당 도서가 ‘동성애를 미화·조장한다’, ‘조기성애화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중의 주장을 하기도 했습니다.

논란이 된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는 1971년 덴마크에서 출간돼 유아를 비롯한 아동 성교육 자료로 널리 사용된 책입니다.

또 <엄마 인권 선언>, <아빠 인권 선언>은 국제앰네스티의 지원으로 출간됐으며 10개 언어로 번역 출판된 도서입니다.

분학연 등과 김 의원은 해외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며 아동을 위한 교육 자료로 사용되는 도서에 대해 ‘선정적’이라는 딱지를 붙여 비판한 것입니다.

교육계에서는 이 같은 주장을 반박하며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지난 26일 논평을 내고 “시대착오적 주장”이라고 김 의원과 분학연 등의 주장을 반박했습니다.

전교조는 김 의원의 발언에 대해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를 노골적 성애화 표현이라며 우려한 그의 발언은 성에 대해서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금욕적 성교육관으로부터 나왔다”며 “<자꾸 마음이 끌린다면>의 내용을 ‘동성애 미화’라고 문제 삼는 것에는 성에 대한 차별적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개념 설명 자체를 ‘미화한다’고 보는 것은 이미 동성애를 차별적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드러낸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성희롱과 성폭력을 근본적으로 근절하기 위해서는 뿌리 깊은 성별 고정관념과 성차별 문화를 바꾸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면서 “다양한 교수 매체, 도서, 교재들을 활용하여 지금까지 금기시해 온 성소수자 관련 내용, 성별, 가족 다양성에 대해 생각하고 소수자에 대해 차별하지 않는 마음을 갖도록 하는 것 또한 성평등 교육”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전교조는 “교육부는 시대착오적 주장에 부화뇌동하지 말라”면서 “주춤하지 말고 국제표준을 반영한 포괄적 성교육을 추진하라”고 촉구했습니다.

하지만 여가부는 같은 날 문제가 제기된 도서 7종에 대해 전량 회수를 결정했습니다.

이에 여성계는 여가부의 조치를 비판하고 나섰습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지난 27일 성명을 내고 “성평등 정책을 뚝심 있게 추진할 책무가 있는 여성가족부는 인권과 다양성, 성평등과 존중의 가치를 부정하는 발언을 한 국회의원과 일부 혐오세력의 주장에 대해 제대로 된 반박도 하지 않은 채, ‘문화적 수용성’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붙여 실질적인 정책 철회를 선언했다”며 “실망을 넘어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성평등과 다양한 가족 정책 추진이라는 본연의 역할을 망각하고 일부 혐오세력의 부당한 요구에 굴복한 여성가족부를 강력하게 규탄한다”며 “이번 결정에 대해 심각하게 평가하고 통렬히 반성하라. 또한 나다움 어린이책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라”고 여가부를 비판했습니다.

정치권에서도 김 의원·분학연 등의 주장과 여가부를 비판하고 나섰습니다.

정의당 김종민 부대표는 지난 27일 상무위 모두발언에서 “사업의 취지로나, 이러한 취지에 부합하는 해외의 우수도서들을 선정한 것이나 문제가 될 사안이 아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김 부대표는 “아이들에게 성관계와 임신·출산 과정을 사실적으로 알려주는 것을 성관계의 노골적 묘사라 하고, ‘민망’하다거나 ‘조기성애화’ 조장을 우려한다는 식의 발상은 구시대적”이라며 “성을 금기, 위험으로만 다루는 것은 오히려 비공식적인 통로를 통해 왜곡된 성에 대한 인식과 관점, 실천을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다양한 성 개념 설명 자체를 ‘동성애 미화’라고 문제 삼는 것은 이미 동성애를 차별적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고스란히 드러낼 뿐”이라며 “‘성소수자 취향과 결정이 차별받지 않아야’한다면서 다양한 성이 있다고 알려주는 것은 안 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꼬집기도 했습니다.

김 부대표는 “여성가족부는 ‘문화적 수용성 관련 논란’을 예측하고 대비하지 못하고, 논란이 제기되자 곧바로 회수 결정으로 선회한 것이 개탄스럽다”고 비판했습니다.

한국 사회는 성에 대한 이야기를 터부시 해왔습니다. 금욕을 강조하는 내용으로 성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한편 성교를 임신·출산을 위한 것으로만 설명하는 등 제대로 된 이해를 도울 수 있는 내용이 부족한 현실입니다.

성적 욕구를 갖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며, 이를 적절하게 다룰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교육의 효과입니다.

성에 대한 이야기를 문란한 것, 위험한 것으로 치부하는 사회에서는 아동·청소년이 성적 욕구와 충동을 제대로 다룰 수 없도록 만들게 됩니다. 오히려 자신의 성적지향 또는 성 정체성을 부정하지 않고, 성에 대한 이해를 높이며 상대를 존중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이 모두에게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길입니다.

실제로 어린 시절부터 성교육을 통해 성교 방법과 피임 방법 등을 가르치는 국가들은 낮은 10대 임신율과 임신중절률을 보이고 있습니다. 성적 충동이 생기는 사춘기 이전부터 제대로 된 지식과 정보를 가르친 효과입니다.

시민단체와 국회의원의 비판이 제기되자마자 도서 회수를 결정한 여가부의 결정은 큰 아쉬움이 남습니다. 여가부는 ‘성별 고정관념과 편견에서 벗어나 다양성을 존중하고 남자다움이나 여자다움이 아닌 ‘나다움’을 배우고 찾아가도록 돕는다‘는 사업목적에 맞게 나다움 어린이책 사업을 지속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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