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김남국 국회의원 ⓒ뉴시스
더불어민주당 김남국 국회의원 ⓒ뉴시스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헌법재판소가 정한 낙태죄 개정입법 시한이 20여일 남은 가운데 정의당 조혜민 대변인이 더불어민주당 김남국 의원의 낙태죄 개정 국회 공청회 발언을 비판한 것과 관련해 논란이 일었습니다.

조 대변인에 따르면 김 의원은 지난 8일 열린 낙태죄 개정 관련 국회 공청회에서 진술인으로 참석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김정혜 연구위원에게 “낙태죄 폐지한 여성들의 의견은 잘 알겠다”며 “그런데 20~30대 남성이 낙태죄를 바라보는 시선, 인식은 어떤가”라고 질의했습니다.

이에 김 연구위원이 “20~30대 남성들도 낙태죄가 유지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하자 김 의원은 “그게 주류의 시각이나 평가일까”라고 반문했습니다.

이에 대해 조 대변인은 “대체 얼마나 많은 여성이 자기 몸에 대한 결정을 두고 죄책감과 자책감을 가져야 하나”라며 “낙태가 죄라면 가해자는 여성이 아닌 국가다. 정치의 책임을 다하고 싶다면 이제라도 낙태죄 전면 폐지에 앞장서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자기결정권 보장을 위해 낙태죄 전면 폐지를 요구하는 여성들의 의견을 뒤로 한 채 당사자가 아닌 남성들의 의견을 반영하려 하는 김 의원의 태도를 지적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이 같은 브리핑 이후 같은 날 저녁 김 의원은 조 대변인에게 항의전화를 걸었습니다.

정의당 정호진 수석대변인은 이튿날인 9일 브리핑을 통해 “8일 저녁 김 의원이 조 대변인에게 브리핑 내용에 대해 항의 전화를 했다”며 “김 의원의 항의내용은 정의당으로서 납득할 수 없는 내용”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브리핑에 따르면 김 의원은 조 대변인에게 전화를 걸어 다짜고짜 왜곡된 브리핑이라 몰아붙였습니다. 더 나아가 김 의원은 조치를 하지 않으면 낙태죄 폐지는 물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등 정의당이 하는 건 도와주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정 수석대변인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과 낙태죄 폐지는 국민의 삶과 직결된 법안”이라며 “자신의 입장을 관철하기 위해 법안을 인질 삼아 압력을 행사한 것은 집권여당 국회의원이라고 믿기 어려운 명백한 갑질이자 협박으로,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폭력”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조 대변인은 30대 여성의 원외 대변인이다. 나이 어린 여성이라고 함부로 대해도 된다고 여기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김 의원에게 사과를 촉구했습니다.

이에 김 의원은 조 대변인의 논평에 유감을 표하며 “질문의 의도를 완전히 왜곡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김 의원이 공개한 공청회 속기록 내용을 보면, 김 의원은 김정혜 연구위원에게 “우리사회가 과거에는 낙태를 여성만의 문제로 생각해왔는데, 사실 이 문제는 남성이 함께 결정해야 될 문제이고 남성도 여기에 대해 심각한 책임을 느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며 “이에 대해 남성들의 의견이 있는지 설명해달라”고 물었습니다.

김 의원은 “낙태는 남성도 같이 책임질 문제라는 것을 전제로 남성의 정부 법안에 대한 평가를 물었다”며 “다음 이어지는 질문에서는 과거 낙태죄를 다룰 때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 출동 문제로 바라봤는데, 여성의 생존권이 달린 문제가 아니냐는 질문을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정의당이 ‘30대 어린 여성 대변인’을 강조하는 것이 불편하다”며 “정의당의 정치가 왜 이렇게 됐는가 묻고 싶다. 문제의 본질과 전혀 상관없는데도 모든 문제를 남녀 갈등의 시각에서 남자와 여자를 분열시키고, ‘남성혐오’를 정치에 이용하게 됐는가”라고 했습니다.

이에 조 대변인은 “문제의 핵심은 거대 여당의 의원이 타 당 대변인에게 협박성 전화를 했다는 것과,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제가 나이 어린 여성이자 소수정당의 원외 대변인이라는 것”이라며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그런 전화를 할 수 있는지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제가 다선의 중년 남성 정치인이라고 그렇게 전화를 했겠느냐”고 비판했습니다.

김 의원의 해명을 볼 때 공청회에서의 질문은 ‘낙태죄 폐지에 동의하는 남성들도 많다’는 것을 짚으려는 의도로 보입니다.

하지만 김 의원이 논평에 대해 항의하는 방식은 적절하지 않았습니다. 또 낙태죄 개정안을 볼모로 잡아 협박하는 듯한 모습은 여성인권 향상을 위해서가 아닌, 협상에 활용하는 패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김 의원의 항의전화 그 자체도 문제지만, 문제제기 이후에도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더욱 큰 문제입니다.

남성중심 사회에서 남성들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젠더권력을 얻게 됩니다.

김 의원이 전화로 항의하며 법안 통과 협조를 빌미로 협박을 할 수 있었던 건 조 대변인이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여성이고, 자신보다 권력이 적은 소수정당의 원외 대변인이라는 사실이 작용했다고 봐야 합니다.

상대가 심상정 의원 같은 다선의 국회의원이거나, 연령대가 높은 남성이었다면 이 같은 방식의 항의를 하기는 어려웠을 테죠.

물론 김 의원 스스로는 정당한 항의전화였다고 말하겠지만, 은연중에 상대의 성별과 연령, 지위를 따져 협박성 전화를 ‘해도 되는’ 상대라고 인식했으리라 생각됩니다.

또 김 의원은 정의당이 ‘남성혐오’를 정치에 이용한다며 비난했지만, 남성혐오는 여성혐오(misoginy)와 같은 선상에서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성혐오는 사회구조적인 문제입니다. 우리 사회구조는 남성중심 사회이며, 남성혐오는 실재한다고 보기 어려운 개념입니다.

오히려 김 의원이 조 대변인에게 항의전화를 한 것이 우리 사회가 가진 여성혐오를 보여주는 단면이 아닐까 싶습니다.

남성중심 사회에서는 누구나 여성혐오를 자연스럽게 체득하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잘못에 대한 지적을 받았을 때 자신의 말과 행동을 돌이켜 보고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김 의원과 정의당의 공방이 펼쳐지는 사이 헌법재판소가 정한 낙태죄 개정시한인 12월 31일은 20여일만을 남겨둔 상황입니다.

하지만 개정시한 내에 낙태죄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입법 공백이 발생하게 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여성들이 떠안게 됩니다.

김 의원은 낙태죄 개정에 가장 핵심적인 법제사법위원회 위원 중 한 명입니다. 그가 낙태죄 개정을 협상카드 정도로 여기고 있지 않다면 빠른 시일 내에 낙태죄가 폐지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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