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석 국회의장이 지난 3월 24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을 가결하고 있다. ⓒ뉴시스
박병석 국회의장이 지난 3월 24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을 가결하고 있다. ⓒ뉴시스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지난 24일,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스토킹처벌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스토킹처벌법은 정부가 후속작업을 마친 뒤 공포하면 6개월이 지난 뒤 시행됩니다.

스토킹처벌법에 따르면 스토킹은 상대방의 의사에 반해 상대방 또는 그 동거인, 가족에게 접근하거나, 따라다니거나, 진로를 막아서는 행위를 말합니다. 또 우편·전화·팩스·온라인 메신저·SNS 등을 통해 글·말·그림·영상·화상을 전달하거나 제3자를 통해 이를 전달하는 행위와 주거·직장·학교 등 상대방이 일상적으로 생활하는 장소에 있는 물건 등을 훼손하는 행위도 스토킹에 포함됩니다.

스토킹범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해서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흉기 등 위험한 물건을 이용해 스토킹범죄를 저지를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습니다.

스토킹은 그동안 ‘경범죄’로 다뤄져 고작 1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뿐이었습니다. 스토킹에 대해 ‘순애보’, ‘사랑’이라거나 ‘사생활의 영역’이라며 가벼운 처벌을 내릴 뿐이었죠. 때문에 범죄 억제, 예방 효과는 미미했으며, 가해자는 제대로 처벌받지 않고 오히려 피해자를 향한 보복범죄가 이뤄질 우려만 높아질 뿐이었습니다.

피해자는 가해자의 스토킹 행위로 불안 속에서 일상을 살아갑니다. 심지어는 가해자에 의해 목숨을 잃는 피해자들도 많았습니다.

지난 3월 23일 서울 노원구에서 발생한 세 모녀 피살사건은 스토킹 가해자가 저지른 범행일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피해자를 스토킹하던 20대 남성이 피해자의 집에 침입해 동생과 어머니, 피해자를 차례로 살해했다는 것입니다. 이 사건 피의자는 온라인 게임을 통해 알게 된 피해자에게 일방적으로 교제를 요구하다 거절당하자 앙심을 품고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보다 앞서 지난 2월에는 정의당 전남도당 간부에게 스토킹 피해를 당한 청년 당원이 불안감에 시달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다는 폭로가 제기됐습니다.

지난해 12월에는 70대 남성이 30대 여성을 수개월 간 스토킹하다 염산을 뿌리는 사건도 있었고, 같은 해 11월에는 스토킹 피해자가 교제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피해자의 거주지를 찾아가 미리 준비한 폭발물을 터뜨린 사건도 있었습니다.

지난 2019년 5월에는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귀가 중이던 여성을 뒤쫓아 집에 침입하려던 남성이 붙잡힌 바 있습니다. 또 같은 해 충남 서천에서는 60대 남성이 스토킹하던 피해자를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이 있었으며, 서울 서초구에서는 13년간 여성을 스토킹하다 주거침입으로 벌금형을 선고받자 이에 앙심을 품고 살해를 계획한 40대 남성이 검거되기도 했습니다.

스토킹범죄 사례는 조금만 검색해도 무수한 사례가 쏟아질 만큼 많습니다. 때문에 그간 여성계는 스토킹처벌법의 필요성을 꾸준히 제기해 왔습니다.

국회에서도 이 같은 요구에 발맞춰 수차례 스토킹처벌법을 발의해왔습니다.

스토킹처벌법은 지난 1999년 제15대 국회에서 처음 발의됐습니다. 당시 스토킹처벌법을 대표발의한 새정치국민회의 김병태 의원은 “최근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스토킹은 그 행위의 지속성과 집요함으로 인해 피해자의 정신적·신체적 피해가 지대함에도 사회적 인식의 부족과 현행 법 규정의 미비로 방치돼 왔다”며 “스토킹을 범죄로 규정하고 형사처벌해 개인의 사생활의 자유를 보장하고, 안정된 사회질서를 유지하도록 한다”고 제안이유를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이 법안은 결국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임기만료로 폐기됐습니다. 이후 제16대부터 제20대 국회에 이르기까지 총 11건의 법안 발의가 있었으나 모두 법 제정에는 실패했습니다. 결국 첫 법안 발의부터 22년이 흐른 뒤에야 스토킹처벌법이 제정된 것입니다.

22년 만에 스토킹처벌법이 제정돼 스토킹범죄를 처벌할 수 있게 됐지만, 한계점이 많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스토킹처벌법 제18조 제3항은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공소를 제기할 수 없도록 하는 ‘반의사불벌죄’임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 반의사불벌 조항으로 인해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합의를 요구하거나 ‘피해자 유발론’을 제기하는 등 2차 가해를 지속하기도 합니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처벌법) 상 반의사불벌 조항이 폐지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보호조치 역시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스토킹처벌법은 가해자에 대한 스토킹범죄 중단 경고, 접근금지 등 피해자 보호조치를 명시하고 있지만, 피해자의 가족, 동거인 등에 대한 조치가 미흡하다는 것입니다. 스토킹범죄의 경우 피해자뿐만이 아니라 그 가족이나 동거인, 지인들에게 연락을 해 피해자를 압박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때문에 피해자의 가족이나 동거인 등에 대해서도 필요하다면 보호조치가 이뤄져야 합니다.

또 보호조치를 취한 이후에도 스토킹범죄를 지속할 경우 피해자의 고소나 고발이 없어도 형사처벌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한국여성의전화는 “그간 미투(#metoo)운동으로 터져 나온 여성들의 목소리와 시민사회가 쌓아온 논의에도 불구하고 고작 이런 누더기 스토킹처벌법을 얻기 위해 22년의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는 사실이 개탄스럽다”며 “정부 및 입법부가 여전히 여성폭력 범죄로서 발생하는 스토킹의 본질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습니다.

스토킹처벌법 제1조는 법의 목적을 ‘피해자를 보호하고 건강한 사회질서의 확립에 이바지하기 위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건강한 사회질서가 아닌 피해자의 자유와 인권 보장이 최우선이어야 한다는 설명입니다.

현행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가정폭력처벌법)의 목적조항 역시 그 목적을 ‘가정의 평화와 안정을 회복하고 건강한 가정을 가꾸기 위함’을 명시하고 있어 가해자 처벌은 물론 피해자 보호도 제대로 되지 않고 있어 목적조항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스토킹처벌법은 스토킹 ‘행위’와 ‘범죄’를 구분해 피해자를 ‘스토킹행위의 상대방’과 ‘피해자’로 구분하고 법이 보호할 대상을 한정적으로 규정했다”며 “피해자의 동거인, 가족 역시 스토킹 범죄로 인한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점은 그간 수많은 통계와 사례를 통해 밝혀진 바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스토킹처벌법은 언뜻 동거인, 가족을 피해자의 범주에 포함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들을 스토킹 행위의 대상으로만 규정할 뿐 실질적인 보호조치는 어디에도 없다”면서 “직접적인 피해를 당한 사람만 범죄 피해자로 인정하겠다는 인식에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다”고 꼬집었습니다.

또 스토킹처벌법이 스토킹 행위를 지속적으로 반복할 때만 범죄로 인정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단 한 번의 행위로도 피해자는 공포나 불안을 느낄 수 있으며, 공포와 불안을 느껴야만 피해로 인정하는 것은 피해자다움에 강요라는 지적도 이어졌습니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여성폭력의 특성상 피해자의 입을 막는 반의사불벌 조항의 존속, 피해자가 법원에 직접 신청할 수 있는 피해자보호명령의 부재, 피해자의 회복을 위한 지원제도 미비 등 현재 법률안으로는 피해자 보호와 인권 보장의 실효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며 “엄중한 가해자 처벌과 피해자 인권보장을 중심으로 하는 제대로 된 스토킹처벌법을 원한다”고 밝혔습니다.

제21대 국회에서 스토킹처벌법을 발의한 정의당 장혜영 의원 역시 법안이 통과된 24일 SNS를 통해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 대안이 조금 전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다만 분명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며 “성폭력 처벌법상 처벌이 가능하다는 이유만으로 카메라 등 디지털 촬영을 이용한 스토킹 행위를 법 안에서 규정하지 못한 점, 피해자 보호명령 및 신변안전조치에 대한 규정이 명시되지 않은 점 등은 반드시 향후 보완돼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최소한 특정범죄신고자보호법을 준용해 피해자 신변보호조치를 규정하는 것부터 스토킹 피해자 보호를 위한 별도의 보호법을 제정하는 것까지 후속입법을 위한 노력에 국회와 정부가 힘을 모아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첫 발의 이후 22년 만에 스토킹을 범죄로 규정하고 이를 처벌할 수 있도록 한 스토킹처벌법의 제정은 분명 의미가 큽니다. 하지만 미흡한 보호조치로 인해 피해를 막을 수 없다면 이에 대한 철저한 보완이 이뤄져야 할 것입니다. ‘사랑’으로 가장한 범죄를 끊어낼 수 있도록 정치권이 빠르게 대응하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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