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한 장면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한 장면 ⓒ(주)이십세기폭스코리아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SBS가 설 특선영화로 <보헤미안 랩소디>를 방영하면서 동성 간 키스신 장면을 삭제해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SBS는 지난 13일 설 명절연휴를 맞아 특선영화로 <보헤미안 랩소디>를 방영했습니다. 이 영화는 영국의 록밴드 퀸의 보컬이자 바이섹슈얼(양성애자)인 고(故) 프레디 머큐리(라미 말렉 扮)의 생애를 담은 영화입니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지난 2018년 국내 개봉 당시 1000만명에 이르는 관객 수를 동원할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영화에는 프레디 머큐리와 그의 동성 연인이었던 짐 허튼(아론 맥쿠스커 扮)의 키스신 장면이 포함돼 있습니다.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프레디 머큐리의 성적지향을 다룬 것은 그의 삶을 조명하는 영화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었습니다.

그런데 SBS는 프레디 머큐리와 짐 허튼의 키스신 두 장면을 삭제한 채 방영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남성 보조출연자들의 키스신은 모자이크 처리되기도 했습니다.

동성 간 키스신이 삭제된 채 영화가 방영되자 이 영화를 방영한 SBS를 향해 “성소수자로서의 프레디 머큐리를 조명한 영화의 의도를 왜곡하고 성소수자의 존재를 지우는 모욕을 가했다”는 비판이 제기됐습니다.

경향신문의 지난 14일 보도에 따르면 이 같은 비판에 대해 SBS 측은 “지상파에서 15세 이상 시청가로 방송하는 설 특선영화인 점을 고려한 편집”이라며 “다른 의도는 없었다”고 해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지상파 채널에서 영화를 방영할 때 지나치게 폭력적인 장면이나 흡연 장면을 임의로 편집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온 가족이 함께 보는 연휴 기간·저녁 시간에 편성된 점을 고려해 직접적인 스킨십 장면은 편집했다”고 부연했습니다.

하지만 SBS 측의 해명은 오히려 성소수자를 폭력적·선정적 존재로 여긴다는 비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이하 무지개행동)은 지난 15일 논평을 내고 “<보헤미안 랩소디>는 프레디 머큐리의 음악뿐만 아니라 성소수자로서의 그의 삶을 담은 전기영화”라며 “동성 간 키스신을 삭제 또는 모자이크 처리한 SBS는 고인뿐만 아니라 성소수자 모두를 모욕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비판했습니다.

무지개행동은 “성소수자의 존재 자체를 폭력적이고 선정적으로 취급해 검열하는 태도를 그대로 드러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프레디 머큐리의 삶을 성소수자인 부분과 아닌 부분으로 나누는 게 불가능하듯 성소수자 관련 장면을 편집하는 것은 프레디 머큐리의 삶과 존재 자체를 전면 부인하는 것”이라며 “성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나 장면 모두를 폭력적이거나 선정적인 것으로 치부하는 태도는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그대로 보여주는 검열에 지나지 않는다”고 꼬집었습니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지난 2018년 ‘12세 관람가’로 개봉됐습니다. SBS는 이를 방영하면서 시청연령을 ‘15세 관람가’로 등급을 올려 고지하면서도 동성 간 키스신을 삭제한 것입니다.

이성 간의 키스 장면이라고 해도 과연 편집이 됐을까요.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영화의 흐름상 꼭 필요한 장면임에도 불구하고 편집한 채 방영했습니다.

한국다양성연구소 김지학 소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SBS의 동성 간 키스신 편집에 대해 동성애에 대한 왜곡된 시선이 드러난 사례라고 지적했습니다.

“너무나 차별적인 조치이고, 이성애와 동성애에 다른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나는 사례죠. 키스든 성관계든 그것을 동의에 기반한 사랑의 표현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이성애는 좋고 당연한 것이고 동성애는 이상하고 틀린 것, 변태적이고 음란한 것이라는 식으로 여기고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기준으로 삼는 것이 드러난 사례라고 할 수 있어요. 또 SBS의 해명에 따르면 성소수자의 사랑을 흡연이나 폭력과 동일선상에 뒀다는 것인데, 이 해명 역시도 굉장히 문제적이네요.”

또 김 소장은 이번 SBS의 동성 간 키스신 삭제가 방송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방송사를 제재하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와 사회 전반에 깔린 인식 등이 맞물린 사안이라고 진단했습니다.

“SBS라는 하나의 방송사만이 아니라, 방심위라는 기구, 사회 전반에 깔린 인식 등이 맞물려 있어요. 사실 <보헤미안 랩소디>가 극장에서 개봉했을 당시 이를 두고 ‘동성애 영화’라고 비판한 사람들이 많은 것도 아니었고, 관객 수가 900만을 넘어 천만에 달할 정도로 인기 많은 영화였거든요. (SBS는) ‘명절날 가족들이 모여서 보는 시간대에 이런 영화를 방영하느냐’는 혐오세력의 공격을 염려했을 수도 있고, 다양한 문화적, 종교적, 방심위 제재 등을 고려했을 거예요. SBS라는 방송사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적인 문화와 제도의 현 상황을 드러내는 사건이죠.”

아울러 김 소장은 차별금지법과 포괄적 성교육을 통해 사회인식과 문화적 기반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도 강조했습니다.

“차별금지법, 포괄적 성교육 등을 통해 제대로 된 인식과 문화적인 기반을 만드는 것이 중요해요. 물론 이런 것이 마련돼야만 방송사가 성소수자 콘텐츠를 방영할 수 있는 것은 아니죠. 방송사도 (차별을 없애기 위해) 제대로 된 역할을 해야만 문화적 기반을 닦는 데 일조를 하는 거예요. (이번 동성 간 키스신 삭제와 관련해) SBS는 어느 쪽에 설 것인가를 선택한 것이기 때문에 그 책임이 따르는 것이죠.”

<보헤미안 랩소디>는 이번 설 연휴 기간 방영된 특선영화 가운데 가장 높은 6.3%의 시청률(3부, 닐슨코리아, 전국 기준)을 기록했습니다.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영화에서 동성 간 키스신을 삭제·모자이크 처리한 SBS는 시청자들에게 성소수자를 향한 혐오를 방영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지난 9일 열린 제41회 청룡영화제에서 <윤희에게>로 감독상을 수상한 임대형 감독은 수상소감에서 “<윤희에게>는 퀴어영화입니다. 이 당연한 사실을 말씀드리는 이유는 방송을 보시는 분들 중에 아직 이 영화가 어떤 영화인지 모르는 분들도 혹 있을 것 같아서다. 보시다시피 지금은 LGBTQ 콘텐츠가 자연스러운 2021년이다. 그게 정말 기쁘다. 앞으로 더 고민해서 좋은 영화 찍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퀴어영화가 영화제에서 수상을 하는 이 시대에, 지상파 방송사인 SBS가 <보헤미안 랩소디>의 동성 간 키스신을 삭제한 채 방영한데 대해 큰 아쉬움이 남습니다. SBS뿐만 아니라 지상파, 종합편성채널 등 방송사들이 성소수자를 비롯한 다양한 소수자들을 배제하지 않고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문화기반을 만드는데 더욱 힘쓸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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