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군들이 지난 2018년 9월 6일 서울 용산구 국방컨벤션에서 열린 제68주년 여군창설일 기념 ‘국방여성 리더십 발전 워크숍’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뉴시스
여군들이 지난 2018년 9월 6일 서울 용산구 국방컨벤션에서 열린 제68주년 여군창설일 기념 ‘국방여성 리더십 발전 워크숍’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뉴시스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과 정치권 등에서 불거진 여성징병제 도입 주장에 대한 비판이 일고 있습니다.

지난 19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여성도 징병대상에 포함해 달라’는 내용의 청원이 게시돼 22일 현재 18만명이 넘는 동의를 얻었습니다.

이 청원인은 “나날이 줄어드는 출산율과 함께 우리 군은 병력 보충에 큰 차질을 겪고 있고, 이에 따라 남성의 징집률 또한 9할에 육박하고 있다”면서 “과거에 비해 높아진 징집률 만큼 군복무에 적절치 못한 인원들마저 징병대상이 돼 국군의 질적 악화가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여성을 징집 대상에 포함해 더욱 효율적인 병구성을 해야 한다”면서 “정부는 여성에 대한 징병제 도입을 검토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지난 2017년에도 이와 같은 내용의 청원에 12만명 이상이 동의해 답변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다만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이에 대해 ‘재미있는 이슈’라며 간략히 언급했을 뿐 별도의 답변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이보다 앞선 지난 18일 성별에 관계없이 모두 최대 100일간 군사훈련을 받게 하자는 ‘남녀평등 복무제’ 도입을 제안했습니다.

박 의원은 자신의 SNS에서 자신의 저서 <박용진의 정치혁명>을 통해 제안한 ‘남녀평등 복무제’의 내용을 밝혔습니다.

박 의원에 따르면 남녀평등 복무제는 성별을 불문하고 40~100일 정도의 기초군사훈련을 의무적으로 받도록 하고, 징병제를 모병제로 전환할 것과 병역 대상에 여성을 포함하되 의무 복무기간을 단축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박 의원은 제안 이유에 대해 “병역 가산점 제도를 둘러싼 불필요한 남녀차별 논란을 종식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여성 징병을 실시하고 있는 이스라엘, 스웨덴, 스위스 등 외국의 사례를 검토해 병역제도를 변경해야 한다고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여성징병제, 남녀평등 복무제 등 많은 주장과 제안들이 있지만, 일각에서는 군대 내 성폭력, 여성건강권 등의 문제가 먼저 해결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지난 2013년 한 여군 대위는 직속 상관인 소령의 성관계 요구와 성추행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또 2017년에는 미성년 부사관으로 입대한 만 18세 여군이 부대 내에서 수차례 성추행과 성희롱을 당해 목숨을 끊으려 한 일도 있었습니다. 2019년에는 여성 해군 대위가 직속 상관에게 수차례 성폭행을 당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며, 성소수자인 한 여성 해군 중위는 남성 소령에게 성폭행을 당해 임신중단 수술을 한 뒤 자신의 고충을 상담해주던 다른 남성 중령에게 성폭행을 당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가부장적 문화, 강간문화가 깊이 자리 잡은 군대에서 여성이 과연 안전하게 복무를 마칠 수 있겠느냐는 지적입니다.

시민단체 ‘전쟁없는세상’의 이용석 활동가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여군의 안전 문제는 여성징병제 논의와 별개로 국방부가 진작에 해결했어야 하는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여성징병을 위해 해결돼야 할 문제가 아니라 성평등을 위해 여성안전 문제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부사관, 장교로 복무하는 여성들이 있고, 여군이 성폭력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것은 많이 알려져 있어요. 여성징병제와 상관없이 여군이 안전하게 복무할 수 있도록 국방부가 군대 내 성폭력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지금까지 제대로 안 한 거예요. 여성징병제나 군복무를 둘러싼 젠더갈등이 불거질 때만 군대 내 성폭력 문제가 이슈가 될 게 아니라, 일상적으로 국방부가 고민하고 개선해왔어야 하는 지점이라고 생각해요.”

이 활동가는 박 의원이 제안한 남녀평등 복무제에 대해서 “방향이 잘못 설정됐다”고도 지적했습니다. 단순히 전쟁의 위협뿐만 아니라 질병, 재난, 기후위기 등 안보의 개념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병력을 동원하는 방향의 제도가 실효성을 거두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실효성은 차치하고라도 방향이 잘못 설정됐다고 봐요. 과거에는 북한의 핵실험, 미사일 발사가 불안요소였다면 지금은 이에 더해 코로나19, 기후위기, 지진 등 자연재해도 새로운 안보위협으로 등장하고 있어요. 그렇다면 국가가 국민의 평화와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 해야 할 역할 또한 과거와 달라져야겠죠. 강한 군사력을 갖추는 방향으로 실제 국민의 안전과 평화를 보장할 수 있는지 고민하는 가운데서 모병제, 여성징병제 등이 함께 고민돼야 해요. 다양해진 안보위협에 어떻게 대처할지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하는데, 제가 보기에 박 의원의 제안에는 이것이 빠져있어요.”

또 이 활동가는 “여성징병제는 충분히 논의할 수 있는 제도”라면서도 해외사례에 대해서는 면밀한 연구와 검토, 분석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이스라엘의 경우 군대 내에서 여성과 남성의 역할이 강하게 구분돼 성평등을 추구하는 제도마련에 있어서는 적절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과 북유럽 국가들이 여성징병제를 어떤 식으로 운영하고 있는지에 대해 면밀한 검토와 분석과 연구가 필요해요. 이스라엘은 1948년부터 여성을 징병해왔는데, 군대 내에서 남성의 역할과 여성의 역할이 강하게 구분돼 있어요. 우리 사회에서 여성징병제가 논의되는 맥락을 살펴보면 군대를 포함한 사회 전반에서 성차별이 없어야한다는 것인데, 성평등과 여성의 사회적 권리 신장이라는 측면에서는 이스라엘 모델이 적절하지 않다고 봐요.”

남성만 징집대상에 포함되는 것은 차별이라기보다 남성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군복무가 큰 부담이 되는 한국에서 남성에게 강요되는 희생을 줄이고 합당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이 활동가는 ‘군대 갈 자격이 없는’ 이들이 겪게 되는 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논의가 함께 진행돼야 한다고도 지적했습니다.

“사회가 군복무를 통해 젊은이들에게 어떤 부담을 주고 어떻게 대우하는지를 함께 얘기해야 해요. 한국은 군복무가 어마어마한 부담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남성들만 징집되는 것은 억울하다’는 말이 나오는 거예요. 군복무에 대한 부담을 최소화하고, 군복무 중에도 충분히 사회와 단절되지 않고 소통할 수 있게끔 하고, 급여도 충분히 주는 방향이 함께 논의돼야 해요. 대우와 보상에 대한 건 건 쏙 빼놓고 징병만 논의하는 것은 안보에도 효과가 없을뿐더러 20대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좋은 방향은 아니라고 봐요.

병역이 큰 부담이 되기 때문에 남성만 징집하는 게 차별이라고 느낄 수 있다고 봐요. 하지만 이를 조금 더 명확히 본다면, 차별이라기보다는 남성들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에 가까워요. 또 여성이든 이주민이든 장애인이든 ‘군대 갈 자격이 없는’ 이들이 군대를 가지 않음으로써 받는 차별이 있어요. ‘남자들만 군대에 가는 것은 차별이다’라고만 한다면 남성에게 요구되는 희생이 줄어들지 않아요. 여성들이 군대에 간다고 해서 남성들의 복무가 줄어들거나 위험도가 낮아지지는 않는다는 거죠. 오히려 이를 건강하게 개선하기 위해서는 남성들이 강요받는 희생을 어떻게 줄일 것인지, 군복무를 하는 사람과 할 수 없는 사람이 나뉘면서 생기는 사회적 위계를 어떻게 줄일 것인지에 대해 논의하는 게 더 건강한 방향이 아닐까 생각해요.”

여성계에서도 ‘여성도 징병대상에 포함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합니다. 이는 병역의무를 이행하는 남성과 그렇지 못한 이들을 차별하고 의무를 다하지 못한 2등 시민으로 여기는 사회에서 차별을 없애기 위한 주장입니다.

물론 남성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생명과 시간을 들이는 것이 큰 부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국가가 남성에게 요구하는 희생입니다. 여성징병제 논의에서 국가의 역할은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에게도 희생을 요구하자’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남성의 희생을 줄이고 합당한 대우를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제도와 정책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여성징병제 이슈가 다시 불거진 만큼, 더욱 발전된 논의가 이뤄져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성징병제 논의에서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방향설정 점검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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