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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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성별에 따라 한국사회의 성평등에 대한 인식이 다르게 나타난다는 여성가족부의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여가부는 지난해 청년층을 대상으로 조사·연구한 ‘청년의 생애과정에 대한 성인지적 분석과 미래 전망 연구’ 결과를 지난 11일 발표했습니다.

이번 조사는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에 의뢰해 지난 2020년 10월 17일부터 11월 23일까지 만 19~34세 청년 6570명을 대상으로 성장과정, 성차별 경험 등에 대해 온라인 조사 방식으로 이뤄졌습니다. 아울러 비교군 집단인 만 15~18세 청소년 1184명, 35~39세 후기 청년 2347명을 대상으로도 설문을 실시해 총 1만101명을 대상으로 조사가 진행됐습니다.

조사결과 우리 사회가 여성의 74.6%는 한국 사회가 여성에게 불평등하다고 생각하는 반면 남성은 18.6%만이 여성에게 불평등하다고 여기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 남성 중 51.7%는 한국 사회가 남성에게 불평등하다고 여겼으며, 여성은 7.7%만이 남성에게 불평등하고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특히 19~24세 여성 77.0%, 25~29세 여성 74.9%, 30~34세 여성 71.5%가 한국 사회가 여성에게 더 불평등하다고 인식하고 있으며, 19~24세 남성 54.1%, 25~29세 남성 52.5%, 30~34세 남성 47.8%가 남성에게 더 불평등하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돼 이 같은 인식 차이는 20대 초반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청년층은 대체로 동등한 교육, 미래 기대 속에서 성장했습니다. 일류대학 진학에 대한 부모의 기대는 △19~24세 여성 50.4%, 남성 51.5% △25~29세 여성 49.9%, 남성 55.2% △30~34세 여성 44.0%, 남성 56.8%로 나타났습니다. 미래 진로에 대한 부모의 기대는 △19~24세 여성 68.5%, 남성 71.4% △25~29세 여성 66.0%, 남성 71.9% △30~34세 여성 59.6%, 남성 73.4%로 조사됐습니다.

연령에 따른 차이는 있으나 청년들이 겪은 부모로부터의 대학 진학과 미래 진로에 대한 기대, 중·고등학교 시절 학업과 학교활동 면에서는 성별 차이가 점차 낮아지는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그러나 성차별 관행 경험과 성희롱 피해 경험에서는 성별에 따른 차이가 드러났습니다.

여성 청년 55.4%는 가정에서 아들보다 딸의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을 당연시했다는 경험이 있었습니다.

학교나 직장에서는 여성과 남성 모두 성차별 관행을 경험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학교에서는 남성에게 신체활동을 더 장려하거나 무거운 물건을 드는 등 힘이 필요한 일을 더 많이 맡겼으며, 직장에서는 주로 여성에게 다과와 음료를 준비하게 하는 등 업무 배치에서 성별을 이유로 한 차별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여성 청년 45.3%, 남성 63.8%는 여자라는 이유로 육체적으로 힘든 일을 못하게 하거나, 남자라는 이유로 육체적으로 힘든 일을 더 많이 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습니다. 여성의 52.2%는 화장이나 ‘여성스러운’ 옷차림·언행을, 남성 36.8%는 남자다운 언행을 요구받기도 했다고 답했습니다. 또 청년의 약 40%는 특정성별에 대한 선호로 채용에서 차별을 경험했습니다.

중·고등학교에서 성희롱 피해를 경험한 여성은 27.0%, 남성은 11.5%로 나타났습니다. 또 대학을 졸업한 여성의 15.4%, 재학 중인 여성의 8.2%가 성희롱 피해를 겪었습니다. 남성의 경우 졸업자 6.4%, 재학생 4.3%가 성희롱 피해를 겪었다고 응답했습니다. 직장 경험이 있는 여성의 17.8%, 남성의 5.7%가 직장 내 성희롱 피해를 경험했습니다.

조사에 따르면 성별 간 다소 차이는 있지만, 여성과 남성은 가정이나 학교에서 동등한 기대를 받으며 성장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성평등에 대한 인식에 대해서는 큰 차이를 보였습니다.

여가부 김종미 여성정책국장은 “기성세대와 달리 청년들은 가정·학교에서 동등한 대우를 받으며 성장했으나, 동시에 가정·학교·직장 등에서 직·간접적인 성차별·성희롱 피해를 경험했다”며 “이런 생애과정의 결과로 성평등에 대한 성별 인식 차이가 발생하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이번 조사의 책임연구를 맡은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마경희 정책연구실장은 “가족이나 학교, 직장에서여전히 성별고정관념이 많이 남아있고, 성차별적인 관행도 여전히 있다”며 “이런 경험들이 쌓여 성별 간 불평등 인식에 차이를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여성이 경험하는 성차별에 대한 인식정도와 남성의 인식 정도가 통계적·수치적으로 많은 차이를 보인다”며 “성별에 따라 다르게 요구되는 한국 사회의 차별적인 현실이 실제 청년들의 성 불평등에 대한 인식 격차를 가져오는 것”이라고 부연했습니다.

연령대가 낮을수록 성별 간 불평등에 대한 인식이 다르게 나타난데 대해서는 “대학생 집단이 페미니즘과 젠더 이슈에 대한 관심도가 높고, 이해도에서도 차이를 보여 20대 초반에서 높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면서 “디지털 기기를 활발히 사용하는 연령대에서 성별에 따라 남초·여초 커뮤니티를 이용하며 정보를 얻는데서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또 남성 청년들이 우리 사회가 남성에게 더 불리하다고 인식하는데 대해 마 실장은 “남성들은 육체적인 힘을 요하는 일을 맡게 되는 등 남성다움에 대한 요구와 성차별 관행을 겪으면서 성장했다. 이러한 경험이 우리 사회가 남성에게 불합리하다는 인식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고 덧붙였습니다.

어느 성별이건 우리 사회가 자신의 성별에 더 불리하다고 느끼고 있다는 것은 큰 문제입니다. 이는 여성과 남성 모두가 젠더 고정관념에 기반한 역할을 강요하는 것이 불합리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유네스코 국제 성교육 가이드에 따르면 젠더 고정관념은 사회적으로 구성되며 학습됩니다. 또 이는 불평등과 유해한 관행으로 이어집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성평등 사회를 실현하기 위한 조직문화개선 등 다양한 정책을 마련하는 것과 동시에 ‘포괄적 성교육’이 필요합니다. 포괄적 성교육을 통해 젠더 고정관념이 어떻게 성별에 따른 정체성과 언행을 규정하고 강요하는지를 알고, 더 긍정적인 젠더 역할을 위한 인식의 변화와 실천을 이끌어내야 합니다.

아하 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 이명화 센터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포괄적 성교육은 성평등과 인권을 기초로 하는 교육”이라며 “현재 성교육은 성폭력, 가정폭력 등 폭력예방교육 중심으로 돼 있는데, 포괄적 성교육은 ‘나’를 중요하게 생각하도록 하고 젠더 고정관념, 소수자 혐오 예방, 관계, 섹스, 섹슈얼리티, 피임 등 실질적인 것까지 포함돼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센터장은 “성평등 교육은 여가부 소관이 아니라 교육부 소관이다. 여가부는 교육부에 성평등 교육을 하도록 촉구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며 “다만 여가부는 성평등 교육 콘텐츠를 만들어 교육부에 공유하는 정도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교육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문제”라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면서 “성인지적 관점으로 봤을 때 각 교과마다 어떤 문제가 있는지 살피고 성인지적 의식을 높일 수 있도록 전 교과에 대해 성주류화의 관점으로 모니터링 하고 개선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며 “범교과적으로 성평등한 교과 커리큘럼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교육부 양성평등교육담당관실에서 중장기 계획을 적극적으로 내놓을 필요가 있다”고 부연했습니다.

사회가 자신의 성별에 더 불리하다고 여기는 이들이 많다는 것은 큰 갈등 요소가 됩니다. 자칫하면 ‘어느 성별이 더 불리한 사회인가’ 하는 소모적인 논쟁으로 흘러갈 위험도 높습니다.

여가부가 성별 인식 격차 해소를 위한 정책 대안으로 성평등 교육 제도화를 제시한 만큼 성별에 따른 차별을 없애고 사회의 불안과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젠더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제대로 된’ 교육이 이뤄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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