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0년 4월 8일 당시 녹색당 김기홍 비례대표 후보가 제주도 제주시 대학로 인근에서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 2020년 4월 8일 당시 녹색당 김기홍 비례대표 후보가 제주도 제주시 대학로 인근에서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뉴시스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지난 2월 24일,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인 김기홍 제주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 공동위원장이 숨졌습니다.

제주의 한 중학교에서 비정규직 음악교사로 일하던 김 위원장은 지난 2017년 자신이 가르치던 학생들에게 트랜스젠더임을 알리는 등 공개적으로 커밍아웃했습니다.

그가 커밍아웃을 하던 해 4월 25일, 제19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이뤄진 후보자간 TV 토론에서 당시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는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에게 동성애에 대해 반대하는지를 물었습니다. 문 후보는 이에 “반대한다”, “좋아하지 않는다”고 답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이를 계기로 커밍아웃을 결심하게 됐습니다. 그는 지난해 3월 <허핑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공개적으로 커밍아웃을 한 건 2017년 대선 토론회를 본 후였다. 내 존재에 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하는지 이해가 안 되고 화가 났다”고 커밍아웃을 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커밍아웃 이후 그는 제주에서 처음 열리는 제주퀴어문화축제 공동조직위원장을 맡아 성공적인 축제를 개최했습니다. 또 그는 지난 2018년 지방선거 제주 녹색당 비례대표·2020년 총선 녹색당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하기도 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총선 출마 이후 과거 SNS에 올린 여성혐오적 글이 드러나면서 비판을 받게 되자 “성인지 감수성은커녕 아무 생각이 없는 수준의 글이었다. 부족했고, 옳지 않은 걸 접하고 배워왔다”면서 “하지만 페미니즘을 접하고부터 계속 공부하며 점점 더 나은 사람이 되려 노력하고 있다. 제가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면서 공부하겠다”고 사과의 뜻을 밝힌 뒤 후보에서 사퇴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2월 21일 당시 정의당 비례대표 후보인 트랜스젠더 임푸른 예비후보를 위한 찬조연설에 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소수자 사회에서 자살기도, 죽음 소식은 특별한 일이 못 됩니다. 굉장히 슬프게도 잊기도 전에 또 접할 정도로 잦습니다. 왜 그럴까요? 마주하는 장벽이 그만큼 거대하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알려지면 연대라도 할 수 있는데, 알려지지 않으면 연대할 수도 없습니다. 저는 그래서 드러냅니다. 임푸른 예비후보도 그래서 드러냅니다. 그리고 우리는 연대를 통해 함께 국회에 들어가고자 합니다.”

성소수자는 한국사회에서 ‘드러나지 않길’ 강요당합니다.

지난 2월 19일,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금태섭 당시 예비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예비후보 간의 후보 단일화 토론에서 금 후보는 성소수자의 자긍심을 담아 만든 최초의 전면 색상 전용 한글 서체 ‘길벗체’를 언급하며 안 후보에게 “서울시장으로서 퀴어퍼레이드에 나간다면 작지만 중요한 변화를 만들어내고 서울을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는 도시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퀴어퍼레이드에 나갈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이에 안 후보는 “차별에 반대하는 것은 당연하다. 개인의 인권은 존중돼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면서도 “퀴어축제를 보지 않길 원하는 분들도 있다. 그런 부분까지 존중해야 한다고 본다. 본인이 믿는 것을 표현할 권리도 있고, 그런 것(퀴어문화축제)들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도 마땅히 존중받아야 된다는 생각도 갖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안 후보의 발언은 지역을 불문하고 퀴어문화축제가 열릴 때마다 쏟아지는 혐오발언입니다. 지난 2019년 5월 7일, 당시 제20회 서울퀴어문화축제를 앞두고 서울시 소속 공무원 17명은 서울시가 퀴어문화축제 측의 서울광장 사용을 불수리하고, 성소수자 행사가 필요하다면 아동·청소년의 접근이 어려운 실내체육관에서 해야 한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배포한 바 있습니다.

‘축제를 하려면 대중이 볼 수 없는 곳에서 너희들끼리 해라’라는 것이죠. 안 후보의 발언은 서울시 소속 공무원 17명의 성명서와 같은 주장을 담고 있습니다. 이는 명백한 혐오발언입니다.

2017년 대선 이후, 선거 혹은 청문회 때마다 정치권은 성소수자의 존재를 공격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해왔습니다.

후보들은 ‘성소수자 차별에 대해서는 반대한다’면서도 끊임없이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발언을 일삼고 있습니다. 성소수자의 인권에 대해서 선을 긋고, 혐오세력의 지지를 결집시켜 상대 후보를 비난하려는 것이죠.

김 위원장은 안 후보의 발언 이후 자신의 SNS에 “우리는 시민이다. 시민. 보이지 않는 시민, 보고 싶지 않은 시민을 분리하는 것 그 자체가 주권자에 대한 모욕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정치권에서마저 이 같은 혐오발언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김 위원장은 자신의 성별정체성, 성적지향을 드러내고 차별에 맞서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했습니다.

성소수자의 존재를 가시화하는 김 위원장의 존재는 많은 성소수자와 그에 연대하는 시민들에게 큰 힘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는 그 자리에서 굳건히 싸울 것 같았던 그에게도 견디기 힘든 것이었습니다.

김 위원장은 유서에 “너무 지쳤어요. 삶도, 겪는 혐오도, 나를 향한 미움도…오랫동안 쌓인 피로가 있어요. 미안해요”라고 적었습니다.

김 위원장의 사망 이후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은 “‘성적지향’, ‘성별정체성’은 개인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로서, 개인의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존중받느냐, 부정당하느냐의 문제는 한 개인의 존엄성과 밀접하게 관련된 문제”라며 “이제는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차별을 멈춰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고인의 죽음은 성소수자가 겪는 혐오와 차별이 당사자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주는지 보여줄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더 이상 성소수자의 고통을 외면하지 말아야 할 사회적 책무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사회적 영향력이 있는 사람의 경우 그 책무는 더 크다”면서 “성소수자 차별 해소를 위해 힘써온 고 김기홍씨를 기억하며, 고인이 바라는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해 성소수자가 혐오와 차별을 받지 않고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평등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우리 사회의 차별을 해소하고 평등을 실현할 평등법이 조속히 제정되기를 촉구한다”고 추모의 뜻을 밝혔습니다.

김 위원장은 끝까지 성소수자 혐오와 차별을 걷어내기 위해 맞섰습니다. 그리고 그의 삶과 죽음은 성소수자를 향한 혐오·차별의 심각성을 다시금 드러냅니다. 그가 바라온 것처럼 모든 소수자들이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될 수 있길 바라봅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 자살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 전화하면 24시간 전문가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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