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희수 전 육군 하사 ⓒ뉴시스
변희수 전 육군 하사 ⓒ뉴시스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국가인권위원회가 성확정(성전환) 수술을 받은 변희수 전 육군 하사를 강제전역 조치한 육군의 처분이 인권침해라고 밝히면서 변 하사의 강제전역 처분 취소소송에 영향을 줄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인권위는 지난해 12월 14일 전원위원회를 통해 육군이 성확정 수술(고환결손, 음경상실)을 이유로 변 하사를 강제전역 처분한 것은 행복추구권과 직업 수행의 자유 등을 침해한 것이라며 이를 취소할 것을 육군 참모총장에게 권고했습니다.

또 인권위는 국장부장관에게 군 복무 중 성확정 수술을 한 장병을 복무에서 배제하는 피해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관련 제도를 정비하도록 권고했습니다.

육군이 변 하사를 강제전역 조치한 이유로 밝힌 고환결손, 음경상실 등으로 인한 심신장애 3급 판정에 대해 인권위는 “변 하사를 군인사법에 따른 ‘심신장애인’으로 정의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인권위는 세계 정신보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와 변 하사의 성확정 수술 방법 등을 토대로 변 하사에 대해 심신장애 또는 신체 훼손으로 판단할 수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인권위는 “전역 처분과 같이 군인의 신분을 박탈하는 침해적인 처분에서는 그 근거규정 해석에 대해 엄격한 기준이 적용돼야 한다”면서 “성별정체성의 불일치를 정신장애로 보지 않는 세계 정신보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을 감안할 때 성별정체성 일치를 위한 성전환 수술을 정신적 기능장애로 보기는 어렵다”고 부연했습니다.

또 “변 하사는 성별정체성의 일치를 위해 검증된 의학적 수술 방법을 스스로 선택해 ‘신체 훼손’과 동일시 할 수 없다”면서 “(성확정 수술이 기능장애 또는 기능상실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인권위는 지난해 7월 29일 유엔인권최고대표 사무소가 정부에 ▲육군이 변 하사의 남성 성기 제거를 장애로 고려한 점 ▲성 다양성을 병리로 구분하는 것이 국제질병분류 제11판에 배치되는 점 ▲변 하사를 전역조치한 것이 일할 권리를 침해하는 점 ▲성정체성에 기초한 차별을 금지하는 국제인권법에 위반되는 점 등에 우려를 표하는 의견서를 한국 정부에 보냄과 동시에 관련 정보를 요청한 점을 군 당국은 엄중히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성확정 수술을 한 변 하사의 건강상태가 현역 복무에 적합하지 않다고 볼 근거도 찾아볼 수 없다”며 “현역으로 복무하지 못할 정도로 전투력이 상실됐음을 전혀 증명하지 못하고 있다”고 육군의 결정을 비판했습니다.

인권위는 남군과 여군의 특성을 감안해도 복무 부적합의 합당한 이유가 확인되지 않고, 선발 과정에 성별 구분만 있을 뿐 실질 병력운용상 성별 구분의 실익은 크지 않아 여군 정원에 추가인원이 발생해 선의의 피해자가 나타나는 등 반사적 불이익이 발생하는 것도 아니라고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육군 측은 변 하사의 강제전역 처분이 “적법한 행정 처분”이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육군은 변 하사가 제기한 행정소송이 진행 중인 만큼 재판 결과에 따라 필요한 조치를 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변 하사에 대한 육군의 강제전역 처분은 트랜스젠더 군인의 복무를 허용하고 있는 세계적인 추세와도 어긋납니다.

전세계에서 성확정 수술을 받은 트랜스젠더의 군복무를 허용하는 나라는 20여개국입니다. 유럽에서는 영국, 독일, 오스트리아, 벨기에, 덴마크, 에스토니아, 핀란드, 아일랜드, 프랑스, 네덜란드, 노르웨이, 스페인, 스웨덴, 체코 등이 트랜스젠더의 군복무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호주, 뉴질랜드, 볼리비아, 캐나다 등도 역시 트랜스젠더의 군복무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징병제를 실시하고 있는 이스라엘 역시 트랜스젠더의 군복무를 허용하는 국가입니다.

쿠바와 태국의 경우 부분적으로 트랜스젠더의 군복무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정권에 따라 트랜스젠더 군복무에 대해 다른 입장을 보였는데, 트럼프 정부에서는 복무 중인 트랜스젠더 군인의 복무를 계속할 수 있도록 하고 입대는 금지했습니다. 그러나 바이든 정부에 들어서는 다시 트랜스젠더의 군복무를 허용했습니다.

인권위에 따르면 독일에서는 성확정 수술을 한 중령급 지휘관이 탄생하기도 했습니다. 또 영국에서는 복무 중인 군인이 성확정 수술을 할 경우 호르몬치료 비용을 지원하고, 캐나다의 경우 성확정 수술부터 호르몬치료 비용 전부를 군 의료보험으로 처리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복무 중 여성화 얼굴성형을 포함한 모든 비용을 의료보험으로 처리하고 있습니다.

인구너위는 “우리나라와 같이 징병제 국가이면서 언제든 전시 상황에 돌입할 수도 있어 전투력 유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스라엘이 복무 중 성확정 수술을 한 군인에 대해 성확정 수술, 호르몬 치료, 성형수술 비용까지도 지원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고 덧붙였습니다.

인권위의 이 같은 권고에 ‘트랜스젠더 군인 변희수의 복직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는 지난 1일 성명을 내고 환영의 뜻을 밝혔습니다.

공대위는 “대한민국 국가 기관이 트랜스젠더 군인 강제 전역을 인권침해로 인정한 첫 사례”라고 인권위 권고의 의의를 설명했습니다.

이어 “변 하사의 군 복무가 허용된다면 한국군의 작전, 임무 수행이 혼란을 겪게 될 것이라는 답변을 내놓은 바 있다”면서 “국가와 시민을 위해 일하고 싶다는 한 청년의 성정체성 때문에 한 나라의 국방 정책이 혼란에 빠질 수 있다는 논리의 비약이 황당할 따름”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공대위는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트랜스젠더 군 복무 및 입대를 허용하는 행정명령을 내리며 ‘트랜스젠더의 군 복무를 허용하는 것이 군대에 어떤 유의미한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아무런 등거도 없다’고 한 것을 인용하며 “국방부 스스로도 논리가 궁색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세계적 망신이 아닐 수 없다”고 비판했습니다.

공대위는 “국방부는 지금이라도 권고를 수용해 부끄러운 과오를 씻기 바란다”며 “6개월 간 첫 공판 기일도 지정하지 않고 있는 사법부 역시 인권위 결정을 적극 참작해 변 하사가 하루빨리 군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재판을 개시하고 강제 전역에 대한 취소 판결을 하기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변 하사는 지난해 8월 대전지법에 전역처분 취소를 청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해 현재 소송을 진행 중입니다.

국방부와 육군에 대한 인권위의 권고가 나온 만큼 군 당국은 사법부의 판단과 관계없이 변 하사가 계속 군인으로 복무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사법부도 육군에 의해 침해받은 변 하사의 행복추구권과 직업수행의 자유를 보장하는 판결을 내놓아야 할 것입니다.

변 하사가 군인으로서 자신의 행복을 위해 살아갈 수 있도록 개선이 이뤄지길 기대합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