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 비상대책회의 강은미 공동대표가 지난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정의당 비상대책회의 강은미 공동대표가 지난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정의당 김종철 전 대표가 같은 당 장혜영 의원을 성추행한 사실이 드러나 최고 수위의 징계인 제명 처분을 받았습니다. 가해자에 대한 징계가 내려졌지만 2차 가해와 피해자의 의사에 반한 고발이 이뤄지면서 피해자의 일상 회복이 방해받고 있어 비판이 일고 있습니다.

김 전 대표의 성추행은 지난 25일 정의당의 기자회견을 통해 알려졌습니다. 정의당 젠더인권본부장인 배복주 부대표는 25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15일 김 전 대표의 성추행 사건이 발생했다”며 “피해자는 당 소속 장 의원”이라고 밝혔습니다.

배 부대표는 “김 대표는 지난 15일 저녁 여의도에서 장 의원과 당무상 면담을 위해 갖게 된 식사자리를 마친 후 장 의원을 성추행했다”며 “피해자인 장 의원은 지난 18일 젠더인권본부장인 제게 해당 사건을 알렸다”고 부연했습니다.

이어 “이 사건은 다툼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성추행”이라며 “가해자인 김 전 대표 또한 모든 사실을 인정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원칙적이고 단호하게 이 사안을 해결해 나갈 것이다. 피해자의 의사를 최대한 존중하고 일상의 회복을 최우선 과제로 하겠다”라며 “향후 피해자 책임론, 가해자 동정론과 같은 2차 피해 발생 시 그 누구라도 엄격히 책임을 묻고 징계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김 전 대표는 같은 날 입장문을 내고 “피해자가 원치 않고 전혀 동의도 없는 부적절한 신체접촉을 행해 명백한 성추행의 가해를 저질렀다”고 자신의 성추행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장 의원 역시 입장문을 통해 자신이 피해자임을 밝혔습니다. 장 의원은 “피해사실을 공개함으로써 닥쳐올 부당한 2차 가해가 참으로 두렵다”면서도 “제가 격은 고통에 대해 이야기하고 이 문제로부터 진정 자유로워지고자 한다. 그렇게 정치라는 저의 일상으로 돌아가고자 한다”고 밝혔습니다.

성폭력 피해자에게 요구되는 ‘피해자다움’에 대해서도 장 의원은 “피해자다움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여성이라도 성폭력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성폭력을 저지르는 가해자들이 어디에나 존재하는 한, 누구라도 성폭력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일상을 회복하는 방법에도 피해자다움은 없다. 수많은 피해자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일상을 회복한다”며 “누군가는 자신을 드러냄으로써, 다른 누군가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일상을 회복한다. 이 모든 과정에서 그 어떤 피해자다움도 강요돼선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이후 정의당은 김 전 대표에 대해 가장 높은 수준의 징계인 제명을 결정했습니다. 정의당 정호진 수석대변인은 29일 기자회견을 통해 “당 중앙당기위원회는 어제(28일) 김 전 대표에 대해 제명을 결정했다”며 “김 전 대표의 성추행 사건과 관련해 당 대표단이 제소한 사건으로 당이 내릴 수 있는 최고 수위의 징계인 제명을 결정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앞서 정의당은 지난 25일 대표단 회의를 통해 김 전 대표를 직위해제하고 당 징계절차인 중앙당기위원회에 제소한 바 있습니다.

정 수석대변인에 따르면 중앙당기위는 ▲김 전 대표의 행위에 고의성이 있는 점 ▲성적자기결정권을 침해한 점 ▲행위양태 등에 비춰 처벌 필요성이 크다고 판단하고, ▲당대표라는 지위로 볼 때 특히 엄격한 윤리성이 요구되는 점 ▲당헌·당규를 준수해야 할 의무가 상당한 점 ▲일반 당원에 비해 사적·공적언행의 사회적 영향력이 지대함에도 의무와 책임을 현저히 해태한 점 등을 가중요소로 보고 제명을 결정했습니다.

정 수석대변인은 “이번 사건으로 국민 여러분과 당원 여러분께 가늠조차 할 수 없는 큰 충격과 실망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사과드린다”며 “더 깊이 성찰하고 혁신하겠다. 성평등한 조직문화 개선과 국민적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겠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당 지도부 노력에도 당내에서 2차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정의당 ‘성평등 조직문화 개선방안 1차 대책’ 발표에 따르면 지난 26일부터 27일 오전까지 200건이 넘는 2차 피해가 접수됐습니다.

정의당은 “이번 사건으로 발생되는 2차 피해는 성폭력 관련 변호사를 포함해 전담팀 등을 구성하는 것을 고려해 적극 대응하겠다”면서 “2차 피해 가이드라인을 배포해 2차 피해 방지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정의당이 배포한 가이드라인에는 2차 피해 방지와 관련한 10개 조항이 담겨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2차 피해에는 ▲피해자가 결정한 공론화 방식 또는 사건처리방안에 대한 비난 ▲피해자가 밝힌 사실관계에 대한 불신 ▲성폭력의 구체적인 내용 및 정황 등에 대한 부적절한 호기심 ▲피해자의 피해호소 의도에 대한 의심 ▲피해자에게 사건에 대한 책임 전가 ▲피해자가 공동체에 악영향을 미쳤다고 여기는 것 ▲피해자의 사생활에 대한 가십과 추측 ▲피해자다움에 대한 통념을 기반으로 피해자를 대하는 태도 ▲피해자 또는 피해사실에 대한 선정적 묘사 ▲피해자에 대한 악의적 소문을 퍼뜨리는 행위 등이 포함됩니다.

2차 피해뿐 아니라 피해자의 의사에 반한 고발이 이뤄지기도 했습니다.

시민단체 활빈단은 지난 26일 김 전 대표를 성추행 혐의로 고발했습니다. 피해자인 장 의원이 고소를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음에도 고소가 이뤄진 것입니다.

활빈단은 “정당사상 유례없는 공당대표의 추악한 망동에 당원뿐만 아니라 온 국민이 경악과 충격을 받았다”며 “사퇴와 직위해제로 끝날 일이 아닌 만큼 엄정한 법의 심판을 받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과거 성폭력은 친고죄에 해당해 피해자가 직접 신고하지 않으면 수사나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난 2013년 성범죄에 대한 친고죄 규정이 삭제·폐지되면서 제3자의 신고가 가능해졌습니다.

활빈단은 성폭력 친고죄가 폐지됐으니 자신들이 김 전 대표를 신고해 형사처벌을 받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피해자의 일상 회복을 방해하는 처사입니다.

청년정의당 강민진 창당준비위원장은 활빈단의 고발 이튿날인 27일 논평을 내고 활빈단의 고발에 대해 “피해자가 원하는 사건 해결 방식을 정면으로 무시한 행위”라며 “성폭력 친고죄 폐지 취지는 타인에 의한 합의 종용 등 사건 처리과정에서 피해자의 의사가 억압되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강 위원장은 “피해자는 본 사건과 관련해 형사 고발을 원치 않으며, 정당 내의 공동체적 해결 방식을 취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다”며 “이는 피해자가 당을 신뢰하기에 내린 결정이며, 추가적인 피해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선택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장 의원 역시 자신의 SNS를 통해 “피해자의 일상 회복을 우선한다는 성폭력 대응의 대원칙에 비춰, 저와의 의사소통 없이 일방적으로 가해자에 대한 형사고발을 진행한 것에 아주 큰 유감을 표한다”면서 “스스로, 원하는 방식으로 일상을 회복하고자 발버둥치고 있는 저의 의사와 무관하게 저를 끝없이 피해 사건으로 옭아 넣는 것은 매우 부당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성범죄 사건을 해결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피해자의 회복입니다. 피해자의 권리 존중이 해결방법의 기준이 돼야 합니다.

피해자가 원하지 않는 해결방법을 강요하면서 수사과정 등에 대한 부담을 안기는 것은 정의도 아닐뿐더러 오히려 피해자를 사건에 갇히도록 하고 일상 회복을 방해하는 일입니다.

피해자의 일상 회복에 도움을 주지는 못할망정 ‘범의 심판’ 운운하며 오히려 피해자를 사건에 가두는 행위가 중단되고, 피해자가 자신이 선택한 안전한 방법으로 일상을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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