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남인순 의원 ⓒ뉴시스
(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남인순 의원 ⓒ뉴시스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폭력 혐의 피소사실이 한 여성단체의 대표와 여당 소속 의원을 통해 유출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서울북부지검은 지난해 12월 30일 박 전 시장의 피소사실 유출 관련 고발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검찰에 따르면 박 전 시장의 성추행 피해자를 대리하는 김재련 변호사는 지난해 7월 7일 한 여성단체 관계자 A씨에게 박 전 시장을 ‘미투(#Metoo)’로 고소할 계획이라고 전하며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이에 A씨는 같은 날 저녁 다른 여성단체 대표 B씨에게 이 같은 내용을 전달했고, B씨는 이튿날 오전 같은 단체 공동대표 C씨에게 이를 알렸습니다.

이후 C씨는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에게 이 사실을 전했고, 남 의원은 임순영 당시 서울시 젠더특보에게 전화해 박 시장과 관련된 불미스러운 일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임 특보는 A씨에게 연락했으나 관련 내용에 대해 확인받지 못하고, C씨와의 통화에서 김 변호사가 여성단체와 접촉하고 있다는 내용을 알게 됐습니다.

임 특보는 같은 날 오후 3시경 박 전 시장에게 “시장님 관련 불미스러운 얘기가 나온다는데 아시는 것 있느냐”고 물었고, 박 전 시장은 “그런 것 없다”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박 전 시장은 그날 오후 11시경 공관에서 임 특보를 만나 “피해자와 4월 이전 문자를 주고받은 것이 있는데 문제를 삼으면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는 취지로 말했습니다.

그리고 박 전 시장은 2020년 7월 9일 공관을 나선 뒤 연락이 두절됐다가 이튿날 오전 0시 1분 서울 북악산 숙정문 부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검찰은 박 전 시장과 임 특보 모두 피해자 측이 실제로 서울경찰청에 7월 8일 고소장을 제출하고 피해자 조사를 받은 사실은 몰랐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검찰 발표 이후 한국여성단체연합은 “검찰 수사결과에 언급된 여성단체 대표 C씨는 한국여성단체연합의 상임대표”라면서 “책임을 통감하며 진실규명을 위해 분투하신 피해자와 공동행동단체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습니다.

여성단체연합은 이 사안을 확인한 뒤 C 대표를 직무 배제했다고 설명했습니다.

한편 박 전 시장 측에 피소사실을 유출한 남 의원은 검찰 발표 이후 침묵으로 일관하다 지난 5일 “피소사실을 사전에 알지 못했고, 유출한 바 없다”고 뒤늦게 입장을 밝혔습니다.

남 의원은 “7월 8일 임 특보에게 전화로 ‘박 전 시장 관련 불미스러운 얘기가 도는 것 같은데 무슨 일 있느냐’고 물어본 것”이라며 “구체적인 내용이나 사건의 실체에 대해 전혀 들은 바가 없기에 이렇게 질문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남 의원의 입장발표 이후에도 비판은 이어졌습니다.

김재련 변호사는 같은 날 자신의 SNS를 통해 “‘음주 후 운전은 했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다’, ‘담배는 피웠지만 담배연기는 마시지 않았다’ 이런 뜻인가”라며 남 의원의 해명을 지적했습니다.

정치권에서도 비판이 제기됐습니다. 정의당 조혜민 대변인은 5일 브리핑에서 “질문과 유출은 대체 무엇이 다른가”라며 “피해자가 있다는 걸 인지하고 피해사실 확인을 서울시 젠더특보에게 한 것 자체가 유출”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이어 “이 과정이 피해자로 하여금, 그리고 박 전 시장으로 하여금 무얼 암시하는지 정녕 모르는가”라며 “도움을 요청한 사람을 짓밟고 가해를 저지른 이에게 피할 구멍을 마련해주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남 의원은 박 전 시장의 성폭력 피해자를 ‘피해호소인’으로 칭하자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1일 TV조선의 보도에 따르면 작년 7월 박 전 시장 사망 이후 더불어민주당 여성의원 모임 대화방에서는 피해자에 대한 호칭을 두고 대화가 오갔습니다.

백혜련 의원은 여성의원 성명서 초안에서 피해자를 ‘피해호소여성’으로 칭했고, 정춘숙 의원이 이를 지적하자 “피해자로 바꾸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의견을 바꿨습니다. 호칭을 피해자로 하자는 데에는 권인숙·이소영·김영주 의원 등도 동의했습니다.

하지만 남 의원과 진선미·양향자·이수진 의원, 김상희 국회부의장은 ‘피해호소인’ 또는 ‘피해호소여성’으로 칭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고민정 의원은 피해자로 규정하기 이르다며 성명 발표 자체에 부정적인 시각을 나타냈습니다.

남 의원은 인천여성노동자회 사무국장·부회장, 한국여성단체연합 사무국장·처장·총장·상임대표를 지낸 여성운동계 출신 정치인입니다. 이 같은 이력으로 그는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위원장을 지냈으며 지난 2017년 대선에서는 당시 문재인 후보 선거캠프 여성본부장을 맡기도 했습니다. 또 더불어민주당 젠더폭력근절대책TF 단장을 맡아 당내 성폭력 근절 대책을 마련하는데 앞장서기도 했습니다.

남 의원뿐 아니라 진선미 의원도 어성운동계 출신의 정치인입니다. 여성운동 이력을 가진 의원들이 피해자를 ‘피해호소인’으로 칭해도 좋다고 주장한 것은 당과 지지자들에게 2차 가해를 할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준 것입니다.

민주당 내에서 발생한 성폭력 이슈에 대해 여성 의원들에게 입장 발표를 미루고 그 뒤에서 발언의 명분을 얻으려 하는 남성 의원들의 태도 역시 문제입니다.

당 소속 지자체장의 범죄에 대해 철저히 조사하고 사죄하는 것은 여성 의원들의 몫이 아닌 당 전체의 몫입니다. 박 전 시장 피소와 관련해 더불어민주당은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일삼으며 그 정당성을 얻으려 하는 참담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피소사실을 가해자 박 전 시장 측에 유출한 남 의원과 피해자에 대한 조치와 함께 당에 의해 이뤄진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철저히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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