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김민식 PD ⓒ뉴시스
MBC 김민식 PD ⓒ뉴시스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최근 MBC 김민식 PD가 일간지에 기고한 칼럼이 ‘가정폭력을 정당화한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김 PD는 지난 10일 <한겨레>에 기고한 ‘지식인의 진짜 책무’라는 칼럼에서 “어머니는 책을 참 많이 읽는다”며 “책을 전혀 안 읽는 사람과 너무 많이 읽는 사람이 같이 살면 누가 불행할까? 안타깝게도 더 불행한 건 어머니였다”고 썼습니다.

그는 “다독가인 어머니는 논리정연하게 자신의 언어를 벼렸다. (중략) 계속되는 어머니의 잔소리 속에 아버지는 자신을 향한 어머니의 지적 우월감을 감지한다. (중략) 말싸움 끝에 아버지가 욕을 하거나 손찌검을 하면 어머니는 끝끝내 비참해진다”며 어머니의 가정폭력 피해사례를 언급했습니다.

그러면서 “어머니가 안타깝다”며 “공부란 자신을 향하는 것이다. 내가 책에서 배운 것을 타인에게 적용하면 그건 폭력이다”라며 마치 아버지의 가정폭력이 어머니의 탓인 것처럼 묘사했습니다.

김 PD는 해당 칼럼에서 “평생 책 한 권 읽지 않는 사람은 그렇게 살아도 사는데 불편함이 없기에 안 읽는 것”이라며 “(어머니는) 다독의 끝에서 지적 우월감만 얻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책을 읽지 않는다고 아버지가 바보는 아니다. 상대가 나를 존중하는지 아닌지는 대번 알아본다”라며 “아무리 좋은 얘기를 해도, 아버지는 그걸 정서적 폭력으로 받아들이셨다. 더 똑똑한 어머니가 한발 물러나서 부족한 아버지를 감싸주면 좋으련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옳고, 너는 잘못됐다.’ 상대를 계도의 대상으로 본 탓이다”라고 가정폭력 피해자인 어머니에게 책임을 지웠습니다.

김 PD는 어머니의 가정폭력 사례에서 “과도한 자의식을 장착한 엘리트의 독주는 독서 문화 함양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책을 읽어 자존감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타인의 자존감을 존중하는 훈련도 필요하다. 그것이 지식인의 진짜 책무다”라고 지식인에 대한 지적으로 글을 끝맺습니다.

이 같은 칼럼에 누리꾼들은 ‘가정폭력을 정당화하고 책임을 피해자에게 돌리는 글’이라며 비판하고 나섰습니다.

해당 칼럼의 댓글을 단 한 누리꾼은 “(김 PD의) 어머니가 책을 읽으신 이유는 현실에는 자기를 구타하는 남편과 그런 남편에 동조하는 아들이 있지만 책 속에서는 내가 잘못된 게 아니라 나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저들이 잘못된 거라고 알려주고 있으니까”라며 “어머니가 책을 읽으신 건 무식한 남편에 대한 지적인 폭력이 아니라 자신에게 가해지는 폭력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어라는 걸 이해도 못하면서 무슨 글을 쓰느냐”라고 지적했습니다.

또 다른 누리꾼은 “평생 무지한 채 살아도 사는 데 불편함이 없는 게 바로 권력”이라며 김 PD의 인식을 비판했습니다.

이 밖에 ‘지식인을 비판하기 위해 어머니의 삶을 도구화했다’, ‘가정폭력 피해자와 가해자를 뒤바꿨다’는 등 많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가정폭력 피해자인 어머니가 ‘맞을만했다’는, 가해자들의 논리를 그대로 반복했다는 것입니다.

비판이 이어지자 <한겨레>는 해당 칼럼을 삭제하고 독자들에게 사과했습니다. <한겨레>는 “폭력의 원인을 피해자에게 전가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는 부적절한 내용임에도 걸러내지 못했다”며 “독자들의 지적이 있기 전까지 내부에서 이를 충분히 인식하지 못한데 대해 심각성과 책임을 느낀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비슷한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시스템을 정비하고 독자들의 의견에 귀 기울이겠다”며 “다시 한번 깊이 사과드린다”고 사과했습니다.

김 PD 역시 사과문을 통해 “아버지의 폭력은 그 어떤 이유로도 절대 정당화될 수 없다”며 “글을 쓰는 사람은 글을 읽는 사람의 마음을 살피고 배려해야 한다는 주제로 글을 쓰다 정작 저 자신이 그 자세를 놓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무엇보다 철없는 아들의 글로 인해 혹 상처받으셨을지 모를 어머니께도 죄송하다”면서 “제 글로 인해 불편함을 느끼신 여러분께 사죄드리며 가르침을 주신 많은 분께 감사드린다”고 사과의 뜻을 밝혔습니다.

하지만 김 PD의 사과문은 가정폭력에 대한 자신의 인식 문제를 축소하고 있습니다.

이 사과문에는 ‘대중을 가르치려 드는 지식인에 대한 비판’이라는 자신의 논지를 펼치기 위해 어머니의 삶을 도구화한 점에 대한 반성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또 그는 ‘철없는 아들’이라는 표현으로 자신을 어머니의 이해와 사랑이 필요한 존재로 묘사했습니다. 미숙한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해 자신의 잘못된 인식을 해명하려는 것으로 보일 수 있는 것입니다.

게다가 이 같은 표현은 어머니를 가정폭력 가해자인 아버지를 옹호하고 자신에게 책임을 돌리는 아들을 한 없이 품어줘야 하는 존재로 이해하도록 만듭니다. 사회가 어머니에게 강요하는 역할모델에 기대 호소하는 잘못된 사과입니다.

무엇보다 김 PD의 칼럼은 자신의 어머니뿐 아니라 가정폭력 피해자들을 위축시키고 가해를 정당화하는 글입니다.

김 PD와 <한겨레>가 이번 칼럼을 삭제하고 사과했지만 가정폭력에 대한 부족한 인식에 대한 비판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가해자의 논리를 반복하는 글이 아닌, ‘지식인의 진짜 책무’를 다하는 글을 만날 수 있길 바라봅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