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가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가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선출직 공직자의 성폭력으로 궐위된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 더불어민주당이 당헌을 개정하면서까지 후보를 공천하기로 해 정치권은 물론 시민사회에서도 비판이 일고 있습니다.

민주당 최인호 수석대변인은 2일 브리핑을 통해 지난 10월 31일부터 전날까지 진행된 당헌 개정을 통한 내년 4월 보궐선거 후보공천에 대한 전당원 투표 결과 투표율 26.3%, 찬성 86.6%, 반대 13.3%로 집계됐다고 밝혔습니다.

최 수석대변인은 “86.6%라는 압도적인 찬성율은 보궐선거에서 공천해야 한다는 전당원의 의지의 표출”이라고 말했습니다.

민주당은 당원투표 결과를 토대로 당헌 개정에 착수해 오는 3일 중앙위원회에서 당헌개정을 마무리할 예정입니다. 당헌 개정 이후에는 공직후보자 검증위원회와 선거기획단을 꾸려 선거 준비에 착수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비서를 성추행한 혐의로 피소된 이후인 지난 7월 10일 극단적 선택으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이보다 앞서 오거돈 전 부산시장은 시청 직원을 성추행한 사실을 시인하며 지난 4월 23일 부산시장직을 사퇴했습니다.

민주당이 차지하고 있던 광역단체의 장이 잇따라 성폭력으로 궐위되자 정계는 물론 시민사회에서도 민주당이 보궐선거에 후보를 내지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이는 민주당 당헌에도 명시된 내용입니다. 민주당 당헌 제96조 제2항은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사건 등 중대한 잘못으로 그 직위를 상실하여 재·보궐선거를 실시하게 된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않는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조항은 문재인 대통령이 5년 전 현 민주당의 전신인 새정치민주연합의 대표로 재직하던 시절 만들어진 것입니다. 지난 2015년 7월 새정치민주연합 김상곤 혁신위원장은 지자체장들의 부정부패 뿐만 아니라 성추행과 같은 잘못에도 당이 책임을 지겠다며 ‘부정부패 사건’으로 한정돼 있던 무공천 사유를 ‘부정부패 사건 등 중대한 잘못’으로 확대 개정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새정연 대표 시절인 지난 2015년 10월 11일 당시 새누리당 소속의 경남 고성군수가 선거법 위반으로 궐위돼 치르게 된 보궐선거 후보 지원유세에서 “새누리당이 책임져야 한다”며 “후보를 내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당헌에 따르면 민주당은 이번 보궐선거에서 후보를 공천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민주당은 전당원 투표를 통해 당헌 개정과 후보 공천을 강행했습니다.

이번 투표결과에 따라 민주당은 당헌 제96조 제2항에 ‘단, 전당원투표로 달리 정할 수 있다’는 단서를 추가하게 됩니다. 전당원투표로 후보자 공천 여부를 판단하겠다는 것입니다.

최 수석대변인은 “보궐선거에서 후보를 공천해 시민의 선택을 받는 것이 책임정치에 더욱 부합한다는 이낙연 대표와 지도부의 결단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라고 말했습니다.

민주당 소속 단체장의 성폭력으로 궐위된 광역단체장 선거에 민주당이 당헌까지 개정하며 후보를 내기로 하자 정치권에서는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국민의힘 배준영 대변인은 2일 논평을 통해 “민주당은 후안무치의 극치를 공개 인증했다”며 “‘귀책사유가 있을 때는 공직 후보자를 내지 않는다’는 당헌을 전당원 투표라는 방법으로 뭉개버렸다”고 비판했습니다.

이어 “민주당 출신 서울·부산시장의 성폭력 의혹은 1차 가해, 피해자에 대한 지지자들의 공격은 2차 가해”라며 “민주당원 모두 나서서 당헌까지 뒤집으며 후보자를 내 피해자에게 3차 가해를 했다. 이제 유권자들이 민주당 후보에게 투표한다면 그것은 4차 가해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정의당 조혜민 대변인도 이날 브리핑에서 “말바꾸기 정치를 실현하기 위해 당원들에게 책임을 미룬 민주당 지도부의 비검한 행태를 규탄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질타했습니다.

조 대변인은 “여성들이 계속 성폭력 위험 속에 놓여도 정권만 재창출하면 그만이라는 것인가”라며 “민주당의 행태는 미투운동이 만든 성평등한 사회를 앞장서서 가로막는 꼴”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잇따른 성비위 앞에 반성하고 성찰하겠다고 말했던 것은 그 당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함이었음이 확인되는 순간”이라며 “사건의 공론화 이후 민주당은 해당 정치인의 소속 정당으로서 어떤 조치를 취했는가. 끝없는 2차 가해 속 피해자가 방치된 현실에 일말의 책임마저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여성계에서도 비판은 이어졌습니다.

서울시장위력성폭력사건공동행동, 오거돈성폭력사건공동대책위원회, 선출직 공직자 성폭력 사건과 민주당 당헌 개정 시도에 분노하는 시민 일동은 민주당 전당원 투표 전날인 지난 10월 30일 성명서를 통해 “반성 없는 당헌 개정 절차 즉각 중단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이들은 “민주당은 선출직 지방자치단체장에 의한 성폭력 사건에서 근본적 성찰도 없이, 재발방지와 책임 있는 대책도 없이 2차 피해에 대한 제지와 중단 노력도 없이, 피해자 일상 복귀를 위한 사회적 환경 개선 노력도 없이, 오로지 권력 재창출에 급급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이것이 민주당에서 말하는 ‘책임 있는 공당의 도리’인가”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성폭력 문제를 반복하고도 이를 사소화하려는 남성 기득권 정치에 절망한다”며 “민주당 지도부는 당헌 개정 절차를 즉각 중단하라. 그리고 사건 해결과 재발방지를 위해 책임을 다해 임하라. 이것만이 부산시장과 서울시장 재보선 선거 초래에 책임지는 방법이다”라고 촉구했습니다.

민주당은 안희정, 오거돈, 박원순 등 소속 광역단체장이 잇따라 성폭력 사건으로 임기를 채우지 못했음에도 선출직 공직자의 성폭력 사건에 대한 대책마련 등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후보를 내고 국민의 선택을 받는 것이 책임정치에 부합한다”며 자신들이 내세운 원칙을 스스로 무너뜨렸습니다.

범죄를 저질러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연예인이나 운동선수들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좋은 음악으로 속죄하겠다”, “성적으로 보답하겠다”는 말이죠.

민주당의 “국민의 선택을 받는 것이 책임정치에 부합한다”는 말도 이와 비슷합니다. 5년 전 ‘책임을 지기 위해 후보를 내지 않아야 한다’며 새누리당을 비판하던 민주당은 ‘책임을 지기 위해’ 후보를 내겠다며 말장난으로 피해자와 피해자에 연대하는 이들을 절망하게 만들었습니다.

민주당이 내년 4월 이뤄지는 보궐선거에서 후보를 내기로 한 만큼 선거전에서도 이 같은 비판은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전당원투표라는 방식으로 책임을 피한 민주당이 ‘책임정치’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재발방지 대책, 피해자 보호, 진상규명 등이 우선돼야 하지 않을까요. 책임 있는 공당의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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