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노원구 세 모녀 살해사건 피의자 김태현(24)이 9일 서울 도봉구 도봉경찰서에서 검찰에 송치되고 있다. ⓒ뉴시스
서울 노원구 세 모녀 살해사건 피의자 김태현(24)이 9일 서울 도봉구 도봉경찰서에서 검찰에 송치되고 있다. ⓒ뉴시스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지난 5일, 경찰이 서울 노원구에서 발생한 ‘세 모녀 살해사건’ 피의자 김태현(24)의 신상을 공개했습니다. 경찰은 9일 김태현을 검찰에 구속 상태로 송치했습니다.

이 사건이 알려진 이후 김태현의 과거 성범죄 전력을 들어 제대로 된 처벌이 이뤄지지 않아 범행에 대한 충분한 경고가 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합니다.

지난해 12월 온라인게임을 통해 알게 된 피해자 A씨를 올해 1월부터 스토킹해온 김태현은 지난 3월 23일 오후 5시 30분경 택배기사로 위장해 서울 노원구 피해자의 집에 침입한 뒤 당시 집에 혼자 있던 A씨의 여동생을 미리 준비한 흉기로 살해했습니다. 이어 같은 날 오후 10시 30분경 귀가한 A씨의 어머니를 살해하고 약 1시간 뒤 귀가한 A씨를 살해했습니다.

김태현에게는 살인 외에 절도·주거침입·경범죄처벌법(지속적 괴롭힘)·정보통신망법(정보통신망 침해) 위반 혐의가 적용됐습니다.

A씨는 지인들에게 김태현의 스토킹으로 인한 괴로움을 호소했다고 합니다. A씨는 김태현의 지속적인 연락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를 바꾸는 등 김태현을 피하기 위한 방법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김태현은 A씨의 주거지를 찾아가는 등 스토킹을 지속했습니다. A씨는 김태현에게 자신의 집주소를 가르쳐 준 바가 없었으나 김태현은 온라인게임 단체 대화방에 A씨가 올린 사진에서 택배상자에 적힌 주소를 보고 찾아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경범죄처벌법이 적용돼 스토킹 혐의가 명시됐지만, 지난 3월 24일 국회를 통과해 오는 9월 시행 예정인 스토킹처벌법은 적용할 수 없어 제대로 처벌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번 사건은 스토킹 피해자는 물론 그 가족 및 지인에 대한 적극적인 보호조치가 필요함을 명확히 드러냅니다. 만일 피해자나 피해자의 상황을 전해들은 지인이 보호조치를 요청할 수 있었다면, 그래서 적극적인 보호가 이뤄졌다면 안타까운 죽음을 막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최원진 사무국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피해자가 스토킹 피해를 신고한다고 해도 경찰에서는 현행법상 처벌할 수 있는 주거침입, 협박 등의 피해가 발생하지 않는 한 아무런 조치를 하지 못한다”며 “경찰이 신고를 받고 출동했을 때 가해자가 현장에 있다면 즉시 분리 등의 조치를 취하고 피해자를 보호해야 한다고 본다. 가해자가 이미 피한 상황이라면 스토킹행위 중단 서면경고 등의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피해자의 주변인에 대한 보호조치도 이뤄져야 한다. 다만 ‘주변인’을 법령상 세세히 명시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가족이든 친구든 친척이든 피해자가 직접 보호범위를 지정하고, 보호가 필요하다고 판단된다면 적극적으로 조치할 필요가 있다. 피해자가 연락처를 바꿔도 스토킹 범죄자는 주변인들에게 연락해 전화번호를 알아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가해자가 제3자에게 피해자의 연락처를 피해자의 동의 없이 묻는다거나 하는 행위를 스토킹에 포함해 처벌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적극적인 피해자 보호와 함께 가해자에 대한 강력 처벌이 이뤄져야 할 필요성도 제기됩니다.

김태현은 이 사건 범행 이전 2건의 성범죄를 포함한 3건의 범행으로 처벌받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는 지난해에는 여자화장실에 침임해 화장실을 이용하던 여성을 훔쳐봤다가 성적 목적 다중이용장소 침입죄로 지난해 4월 벌금 200만원을 선고받았습니다.

또 지난해 6월과 8월 두 차례에 걸쳐 여성 청소년에게 스마트폰으로 녹음한 자신의 신음소리를 전송했습니다. 법원은 지난달 10일 통신매체 이용 음란 혐의로 김태현에게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으며, 김태현은 같은 달 19일 재판 결과를 통보받았습니다.

이보다 앞서 2015년에는 성적인 욕설을 해 모욕죄로 벌금 30만원의 약식명령을 받은 바 있습니다.

앞선 세 건의 범행으로 벌금형을 받았지만, 이것만으로는 그의 범행을 막기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성범죄를 수차례 저질렀음에도 처벌이 벌금형에 그쳐 경고의 효과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는 가해자들에게 ‘또 해도 된다’는 신호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가해자를 제대로 처벌하지 않아 재범에 이르거나 모방범죄가 발생한다는 것은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을 대상으로 성착취물을 제작하고 이를 공유한 ‘n번방’ 사건뿐 아니라 불법촬영, 성폭력 등 여러 사례를 통해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때문에 여성계는 그간 수없이 제대로 된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해왔습니다.

최원진 사무국장은 “최근 성범죄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사회적 인식이 달라졌기 때문에 과거보다 처벌이 강해진 것은 맞다”면서도 “그러나 경찰이나 검찰, 법원의 인식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그러다보니 무혐의 또는 불기소처분 되거나, 유죄판단이 내려진다고 해도 집행유예가 남발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이 정도 범죄에 대한 형량으로는 너무 과한 것 아닌가’라는 인식이 깔려있는 것”이라며 “가해자에 대한 엄벌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필벌(必罰)이 이뤄져야 한다”

처벌의 강화로 모든 범죄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범죄 예방과 사건 해결에 있어 가해자를 제대로 처벌하는 것은 필수적입니다. 더 많은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사법부와 수사기관이 성범죄와 스토킹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고 범죄자를 반드시 처벌하기를 촉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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