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7년 4월 26일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문재인 후보 천군만마 국방안보 1000인 지지선언 기자회견’에서 성소수자 인권단체 회원들이 항의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 2017년 4월 26일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문재인 후보 천군만마 국방안보 1000인 지지선언 기자회견’에서 성소수자 인권단체 회원들이 항의하고 있다. ⓒ뉴시스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청와대와 여당이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해 후퇴하는듯한 태도를 보여 비판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8월 27일 개신교계 지도자들을 초청해 간담회를 가졌습니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차별금지법과 관련해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이 자리는 본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방역에 대한 개신교계의 협조를 요청하기 위해 마련됐으나 개신교계 인사들이 “동성애에 동의할 자유는 이야기하면서 반대할 자유를 제지해선 안 된다”며 차별금지법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자 문 대통령은 “교회가 우려하는 내용을 잘 알고 있다. 걱정하지 말라”고 답했습니다. 이는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해 꾸준히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는 개신교계의 의견을 수용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는 말입니다.

이 같은 문 대통령의 발언이 알려지자 21대 국회에서 차별금지법을 가장 먼저 발의한 정의당은 이를 비판하고 나섰습니다.

정의당 조혜민 대변인은 같은 달 28일 브리핑을 통해 “차별금지법에 대한 반대 민원을 흔쾌히 응대한 문 대통령의 처사에 유감을 표한다”며 “‘걱정하지 말라’는 답변이 차별금지법 반대에 동의하는 것으로 이어져선 안 될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이어 “민주주의의 인권적 토대를 강화하기 위한 기본법인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막는 입장에 같이 한다는 선언이 아니길 바란다”고 지적했습니다.

시민단체 ‘차별금지법제정연대(차제연)’도 문 대통령의 발언을 비판했습니다.

차제연은 지난 8월 28일 논평을 내고 “동성애 반대라는 해묵은 혐오의 논리를 내세운 보수 교계에 동조의 뜻을 보낸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이어 “코로나19라는 미증유의 재난 앞에서 인권에 대한 감수성은 더 높아졌고, 차별금지법 제정 필요성을 묻는 설문조사에 10명 중 9명이 ‘찬성한다’고 답했다. 바야흐로 한국사회는 평등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면서 “아직까지 문 대통령과 정부만이 이러한 흐름을 쫓아가지 못하는 듯하다”고 질타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한국기독교총연합회를 만나 차별금지법 입법과 동성혼 합법화에 대한 교계의 우려에 대해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문 대통령의 발언은 지난 2017년과 비교해 단 한 걸음도 전진하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 역시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해 개신교계의 눈치를 보며 소극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신임대표는 지난 1일 정의당 심상정 대표를 예방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심 대표는 이 대표에게 차별금지법 제정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촉구했습니다.

하지만 이 대표는 “개신교계 일부의 우려를 충분히 알고 있기 때문에 감안해 가면서 관련 상임위원회에서 논의가 되도록 하면 좋겠다”고 답했습니다.

지난 6월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발표한 ‘2020 차별에 대한 국민인식조사’ 결과 차별금지법(평등법) 제정에 동의한다고 답한 비율은 87.7%로 나타났습니다. 이를 근거로 인권위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국민 대다수가 동의하고 인권위에서도 입법을 권고한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해 ‘슈퍼여당’의 대표가 ‘교계의 우려’를 이유로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 8월 한 달간 서울 지하철 2호선 신촌역사 내에 게시된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 IDAHOBIT’ 광고는 혐오세력에 의해 수차례 훼손됐습니다. ‘성소수자는 당신의 일상 속에 있습니다’라는 문구로 성소수자의 존재를 알리며 동등한 시민임을 주장하는 광고임에도 굳이 찾아가 이를 훼손할 정도로 한국사회의 혐오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문 대통령과 이 대표의 눈에는 성소수자를 향한 혐오가 보이지 않는 걸까요.

교계의 주장은 차별을 용인해달라는 억지주장입니다. 청와대와 여당은 차별을 용인해달라는 다수의 주장에 귀를 기울일 게 아니라, 차별과 혐오로 고통 받고 있는 국민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문 대통령의 “염려하지 말라”는 발언은 ‘반대할 자유’를 운운하는 개신교계가 아니라 차별에 신음하고 있는 성소수자와 다양한 소수자들을 향했어야 합니다.

더불어민주당에서도 차별금지법 발의를 준비하고 있는 만큼 청와대와 정부, 여당이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해 적극적인 태도를 보일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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