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에스앤코
사진제공=에스앤코

오페라 하우스를 빛내던 유령의 배턴이 이제 젤리클 고양이들에게 넘겨졌다.

뮤지컬 ‘캣츠’가 당초 예정대로 서울 샤롯데씨어터에 무사히 상륙했다. 지난 9월 9일에 시작해 오는 12월 6일까지 이어질 이번 내한공연은 뮤지컬 ‘캣츠’ 40주년을 기념한 공연이기도 해서 더욱 의미가 깊다. 위드 코로나 시대에 만난 ‘캣츠’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다시 한국을 찾았을까. 놀랍게도, ‘캣츠’가 달라졌다. 그것도 아주 창의적이면서도 또 한 번 새롭게 변화했다.

뮤지컬 ‘캣츠’는 히트작 메이커인 작곡가 앤드류 로이드 웨버와 제작자 캐머런 매킨토시가 처음으로 함께한 작품이다. 1981년 웨스트엔드 뉴 런던 시어터에서 초연됐으며, 이듬해 브로드웨이 무대에도 올랐다. 흔히 ‘4대 뮤지컬’이라 일컫는 메가 뮤지컬(Big4) 가운데 첫 번째 주자로 출발해 전 세계 30개국 300개 도시, 8,000만 관객이라는 기록적인 스코어를 달성할 만큼 명작 중의 명작이다.

작품은 고양이의 행동을 발레, 아크로바틱, 재즈댄스 등에 접목시킴으로써 인간의 신체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한계를 탁월하게 뛰어넘어 더욱 주목받았다. 여기에는 발레리나 출신 오리지널 안무가 질리언 린의 공이 컸다. 처음엔 인간이 고양이를 흉내 낸다는 데 커다란 우려와 반감도 있었다지만 막상 공연이 본격적으로 개막되자 관객들의 반응은 확실히 반전됐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2006년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에게 ‘브로드웨이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공연된 뮤지컬’ 타이틀을 물려주기 전까지는 캣츠가 줄곧 1위의 자리를 차지해 왔다. 또 작품이 공개된 당해 로런스 올리비에상 올해의 뮤지컬 상을 시작으로 토니상, 그래미상, 뉴욕 비평가협회상 등 권위 있는 시상식에서 받게 된 다양한 수상 기록도 줄을 이었다.

한국에서는 1994년 예술의전당에서 정식으로 공연됐고, 이후 라이선스 공연과 내한공연을 통해 꾸준히 관객들과 만나오다 올해 8번째 시즌을 맞이했다. 작년엔 뮤지컬 영화로도 제작된 바 있지만 안타깝게도 지나치게 사실적인 묘사와 달라진 설정 탓에 관객들의 공감을 얻지 못해 흥행에 참패하고 말았다. 아기자기하면서도 신비롭게 꾸며진 무대 위에서 온갖 고양이들과 직접 교감하며 느끼는 현장감이 중요한 작품이라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이번 40주년 기념 내한공연은 지난 2017년 프로덕션 버전과 동일하다. 역사와 전통을 지키면서도 이전 시즌의 장점만을 모아 최고의 기획으로 마련된 무대에는 주목할 만한 배우들도 눈에 띈다. 먼저 ‘오페라의 유령’에서 유령 역을 맡으며 한국 관객들에게도 익숙한 명배우 브래드 리틀이 이번에도 올드 듀터러노미 역으로 무대에 서 반가움을 안긴다. 또, 웨스트엔드를 중심으로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레미제라블’, ‘미스 사이공’ 등의 주역을 맡은 조아나 암필이 그리자벨라를 맡아 처음으로 한국 무대에 선다. 그가 표현한 그리자벨라는 기존에 만났던 배우들과는 확연히 다른 매력을 지녔다. 작은 체구에서 나오는 소리라곤 도무지 믿기지 않을 만큼 강인하면서도 확신에 가득 찬 목소리는 공연장 전체를 단번에 휘감으며 뜨거운 감동으로 이끈다.

‘캣츠’는 원작인 T.S 앨리엇의 고전 우화 시집 ‘주머니쥐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지혜로운 고양이 이야기(원제 Old Possum’s Book of Practial Cats)’를 각색해 탄생했다. 이전에는 앤드류 로이드 웨버가 작곡한 곡에 팀 라이스가 작사한 노랫말을 입히는 방식이었다면, 뮤지컬 ‘캣츠’의 경우엔 이 원작 시가 먼저였다. 하지만 이 모든 시를 엮어 뮤지컬로 제작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구심점이 필요했다. 앤드류 로이드 웨버가 원작 시집에 관심을 갖고 새로운 뮤지컬을 만들기 위해 조금씩 구체화해 가던 때, 마침 T.S 앨리엇의 부인 발레리 엘리엇이 이 같은 상황을 알게 됐다고 한다. 그는 남편이 사망 전에 남긴 미공개 시 몇 편을 앤드류 로이드 웨버에게 전달했고, 이후 기존 원작에 담겨있지 않던 그리자벨라 캐릭터가 포함됐다. 덕분에 ‘캣츠’에서 결코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캐릭터, 매혹적인 그리자벨라와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넘버 ‘Memory’를 만날 수 있게 된 셈이다.

깊은 밤, 버려진 생활용품이 가득 쌓인 공간. 그 틈에서 수십 마리의 고양이 눈이 반짝인다. 이 거대한 쓰레기더미를 연상시키는 무대 위로 고양이들이 하나둘씩 나타난다. 1년에 한 번 열리는 ‘젤리클 볼’에선 단 한 마리의 고양이만이 선발돼 새 삶을 얻게 될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서른 마리의 고양이들이 ‘젤리클 고양이들의 젤리클 노래(Prologue:Jellicle Songs For Jellicle Cats)’를 부르며 잘 짜여진 군무와 함께 환상의 세계로 관객들을 이끌면 비로소 본격적인 축제가 시작된다. 곧이어 개성 넘치는 고양이들의 사연이 하나둘씩 펼쳐지는데, 실로 놀라운 상상의 실제적 구현에 감탄을 금할 길이 없다. 고양이들의 존경을 받는 지도자 올드 듀터러노미, 인기 많은 반항아이자 스타 고양이 럼 텀 터거, 한때는 연기를 하기도 했던 극장 고양이 거스, 새하얀 털이 인상적인 빅토리아, 화려한 연속회전 공중돌기가 눈길을 끄는 마법사 고양이 미스터 미스토펠리스, 악당 고양이 맥캐버티, 볼품없어진 모습으로 과거의 영광을 잃고 외면받는 고양이 그리자벨라 등 저마다 살아온 인생도 모두 다르다. 자세히 보면 우리 삶의 단편과도 상당히 닮은 모습을 지닌 이야기라 더욱 가깝게 느껴진다.

이렇게 경이롭고 신비한 젤리클 고양이 이야기는 언제봐도 흥미진진하다. 고양이의 습성을 알고 친해지는 법, 그들이 간직한 비밀, 고양이들의 모험 이야기 역시 재미있게 다뤄졌다. 하지만 극적인 스토리라인을 강조하기보다 각 캐릭터가 겪어온 인생사에 집중하면서 단순하게 전개되기 때문에 서사를 중시하는 관객이라면 조금 낯설게 느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특하면서도 아름다운 음악과 생동감 넘치는 안무, 화려한 무대와 다채로운 빛의 향연으로 완성된 ‘캣츠’는 공연예술이 가진 경이로움의 총집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 최윤영 평론가·공연 칼럼니스트<br>-네이버 오디오클립 ‘최윤영의 Musical Pre:view-공연을 말하다’ 크리에이터<br>- 클래식, 콘서트 등 문화예술공연 MC<br>- 미디어 트레이닝 및 인터뷰, 커뮤니케이션 전문 강사<br>- 인천국제공항 아나운서, 경인방송 FM 리포터 <br>
▲ 최윤영 평론가·아나운서·공연 칼럼니스트
-네이버 오디오클립 ‘최윤영의 Musical Pre:view 공연을 말하다’ 크리에이터
-클래식, 콘서트 등 문화예술공연 전문 MC
- 미디어 트레이닝 및 인터뷰, 스피치 커뮤니케이션 전문 강사
- 인천국제공항 아나운서, 경인방송 FM 리포터

코로나19로 인해 달라진 상황에 따른 예방책과 능동적인 대처도 인상 깊다. 객석 이동이 불가피한 장면에서는 배우들이 각 고양이 캐릭터에 맞춰 제작된 ‘메이크업 마스크’를 활용한다. 마스크를 쓴 ‘캣츠’라니 이전이라면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일이다. 사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전혀 눈치채지 못할 만큼 조금도 어색함이 없다. 하지만 고양이들의 얼굴을 가린 마스크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뜨겁게 올라오는 감정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다. 모두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마련된 따스한 배려가 그대로 느껴진 까닭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2막 오프닝에서 한국어 가사로 번역된 넘버를 듣다 보면 왠지 모르게 가슴이 뭉클해진다. ‘새로운 날 올 거야’라는 희망의 메시지가 전해지는 순간, 여러모로 어려운 시기에 이렇게 한자리에 모여 귀한 경험을 함께하고 있음이 무척이나 소중하게 여겨진다. 아마도 그때만큼은 배우와 관객을 포함해 공연장에 있는 모두가 자연스레 같은 생각을 떠올리게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이처럼 뮤지컬 ‘캣츠’는 작품이 가진 매력을 충분히 살리면서도 혹시나 발생할 수 있을 문제 상황에 적절히 대비한 연출과 시대를 반영한 메시지를 더해 한층 완성도 높은 무대를 완성했다. 같지만 다름의 미학이 확실히 통한 작품, 오랜 시간 동안 사랑받아 온 ‘캣츠’의 저력이 다시금 빛나는 순간이란 바로 지금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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