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광호(돈키호테, 세르반테스)와 정원영(산초) ⓒ오디컴퍼니

꿈꾸는 자는 언제나 아름답다고 했던가. 어디선가 우연히 마주한 문장은 책상 위 한구석을 꽤 오랫동안 차지했다. 언제 떼어버렸는지조차 까마득하지만, 꿈으로 가득했던 그 시간이 조금도 헛되지 않았음을 안다.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Man of La Mancha)’가 전한 메시지 역시 다르지 않았다.

요즘을 살아가는 모두에게 빛이 되는 이야기,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가 서울 샤롯데씨어터에서 힘찬 막을 올렸다. 안타깝게도 개막일이 수차례 미뤄져 지난 2월 2일에야 비로소 시즌 첫 공연을 올렸고 오는 3월 1일까지 공연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바로 오늘, 반가운 연장 소식이 들려왔다.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는 우선 예정된 샤롯데씨어터 공연을 마무리 지은 뒤 3월 10일부터 5일간은 대전 예술의전당에서, 그리고 잠시 재정비를 거쳐 3월 24일부터 5월 16일까지 서울 충무아트센터로 자리를 옮겨 당찬 행진을 이어간다.

작품은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고전 명작 소설 ‘돈키호테’를 각색해 무대로 옮겼다. 서양 문학사에서 상당한 위상을 지닌 ‘돈키호테’는 1605년에 전편을, 그리고 세르반테스가 사망하기 1년 전인 1615년이 되어서야 후편을 발표하며 완결됐다. 그 뒤로 400여 년 동안 오페라, 연극, 발레, 뮤지컬 등 다양한 문화 콘텐츠로 재생산되면서 전 세계인으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그중에서도 특히 뮤지컬의 뜨거운 인기는 식을 줄 몰랐다. 각색을 담당한 극작가 데일 와써맨은 원작자 세르반테스와 소설 속 돈키호테를 동일 선상에 놓고 보게 됐고, ‘맨 오브 라만차’로 탄생한 뮤지컬 제작 과정에서 닮은 점이 많은 두 사람을 각각의 캐릭터로 분리해 등장시켰다.

위풍당당한 기사의 행진을 연상시키는 서곡이 연주되면 본격적인 막이 오른다. 작품은 원작자 세르반테스와 그의 조수 산초가 종교재판을 앞두고 감옥에 갇히면서 죄수들 앞에 변론을 위한 즉흥극을 펼치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17세기 스페인을 배경으로 한 극에는 자신을 기사 ‘돈키호테’라 착각하는 괴짜 노인 알론조 키하나와 그의 시종 산초의 모험 이야기가 담겼다.

라만차에 살던 알론조는 기사 이야기를 너무 많이 읽은 나머지 자신을 기사라 여기며 ‘돈키호테’라는 이름까지 짓는다. 거대한 풍차를 거인으로 오인해 공격하고 평범한 여인숙을 영주의 성이라 믿는가 하면, 거리의 여인 알돈자를 고귀한 아가씨 둘시네아라 부르면서 존경을 표한다. 그 모습을 보고 모두 미쳤다며 혀를 내두르지만, 그래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돈키호테는 늘 원대한 꿈을 향해 돌진하길 서슴지 않았고, 진정한 기사라면 어떤 모습을 갖춰야 할지를 몸소 보여준다. 또 비록 가는 길이 험할지라도 끝까지 정의를 위해 싸우고 사랑을 따르는 모습은 누구보다 순수하고 정의롭다. 이처럼 환상과 현실이 뒤섞인 세상은 적어도 돈키호테에게만큼은 분명 행복한 세상이었을 테다.

어느덧 9번째 시즌을 맞이한 이번 ‘맨 오브 라만차’는 한국 라이선스 초연 15주년 기념 공연이기도 하다. 시즌이 거듭되는 동안 작품은 더 진화했고, 수많은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독보적인 존재감을 굳혔다. ‘맨 오브 라만차’가 이렇게 오래도록 사랑을 받는 명작으로 자리매김을 하기까진 무엇보다도 눈부신 배우들의 열연이 큰 몫을 차지했다고 본다. 2021년에도 역시 독보적인 티켓파워를 자랑하는 배우들이 총출동하며 반드시 봐야만 할 이유를 단번에 설명한다. 먼저 소설 ‘돈키호테’의 저자이자 배우 역할을 맡은 세르반테스와 용맹한 기사 돈키호테 역에 류정한과 조승우, 홍광호가 함께했다. 그리고 돈키호테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동시에 받는 여인 알돈자 역으로 윤공주·김지현·최수진이, 돈키호테의 충성한 하인 산초 역에 이훈진과 정원영이 캐스팅돼 완벽한 무대를 꾸민다.

▲ 최윤영 평론가·공연 칼럼니스트-네이버 오디오클립 ‘최윤영의 Musical Pre:view-공연을 말하다’ 크리에이터- 클래식, 콘서트 등 문화예술공연 MC- 미디어 트레이닝 및 인터뷰, 커뮤니케이션 전문 강사- 인천국제공항 아나운서, 경인방송 FM 리포터
▲ 최윤영 평론가·아나운서·공연 칼럼니스트
-네이버 오디오클립 ‘최윤영의 Musical Pre:view 공연을 말하다’ 크리에이터
-클래식, 콘서트 등 문화예술공연 전문 MC
- 미디어 트레이닝 및 인터뷰, 스피치 커뮤니케이션 전문 강사
- 인천국제공항 아나운서, 경인방송 FM 리포터

특히 지난 2월 14일 낮 공연 무대에 선 홍광호는 놀랍도록 섬세한 연기와 안정적이면서도 시원한 가창력으로 1인 2역을 여유롭게 소화하며 커다란 감동을 주었다. 각 인물에 따른 이미지 전환 역시 어색함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을 만큼 자연스러워 새삼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 시즌 처음으로 ‘맨 오브 라만차’에 합류한 김지현은 그동안 차곡차곡 쌓아온 내공으로 새로운 이미지의 알돈자 캐릭터를 확립했다. 또, 산초로 분한 정원영도 돈키호테를 향해 조건 없는 사랑을 보내며 작품 속 감초 같은 역할을 톡톡히 한다. 그는 자연스럽고 능청스러운 애드리브와 성대모사, 유쾌한 연기로 산초 캐릭터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극의 분위기를 잘 살리는 넘버들도 좋다. 먼저 ‘The Impossible Dream’은 불가능을 이야기한 제목과 달리 이룰 수 있는 꿈과 가능성을 노래하며 진한 울림을 남긴다. 감미로운 음성으로 만나볼 수 있는 ‘Dulcinea’와 호쾌한 기사의 기상을 담은 ‘Man of La Mancha’도 강렬하게 다가온다.

과거나 지금이나 어떤 이유로든 살아가는 일이 좀처럼 쉽지 않게 느껴지는 세상에서, 잘못된 현실을 향해 거침없이 돌격하던 돈키호테의 굽은 칼은 씁쓸하면서도 꽤 후련하다. 외로운 순례길 위에 서서 올바른 삶의 방향을 찾던 그는, 자신을 비웃던 이들을 향해 묵직한 해학과 풍자로 통쾌한 한 방을 날렸다. 무모해 보였던 모험은 순간순간이 소중했기에 더 의미가 깊다.

또한 비록 희망조차 볼 수 없다 해도 오직 주어진 길을 따르겠다던 돈키호테의 굳은 의지는 코로나19에 대항해 끝없는 싸움을 벌이고 있는 현실과 겹친다. 하지만 우리 역시 꿈을 꾼다. 이 길고 긴 싸움이 언제 끝이 날진 몰라도, 언젠가 반드시 다시 찾게 될 일상을 희망하면서 말이다. 순간, 돈키호테에게 자연스레 모두의 모습이 투영된다.

이처럼 불가능해 보이던 꿈도 가능하게 만드는 마법, 자신의 신념을 따라 시원하게 돌진하는 돈키호테의 모습은 어려운 현실을 돌파할 힘이 되어준다. 꿈은 곧 가능성을 현실로 전환할 희망이고 삶의 의지다. 꿈의 지도를 따르는 과정은 언제나 빛을 잃지 않으리라. 이것이 바로 우리가 끊임없이 꿈을 꾸어야 하는 이유이며,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에 열광하는 이유다.

“우리는 모두 라만차의 기사이며, 세상에 이룰 수 없는 꿈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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