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하데스타운> 공연사진 ⓒ에스앤코

노래가 가진 힘은 위대하다. 오로지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몇 가지 행복 가운데 하나인 노래는 아름다운 선율에 위로를 담아 지친 마음을 달래주고, 때때로 삶을 지탱할 에너지가 되어 용기를 북돋운다. 또 잊고 있던 추억을 되살려 얼어붙었던 마음을 녹이기도 한다.

뮤지컬 ‘하데스타운(Hadestown)’에도 이런 노래의 위력이 잘 나타나 있다. 음악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뮤지컬에서 노래가 작품을 풀어가는 도구였다면, 이 작품에서만큼은 확실히 좀 더 특별한 의미를 내포한다. 신과 인간이 함께 부른 노래는 그 어느 때보다 황홀한 위안을 주며 지하세계로의 여정으로 관객들을 이끈다.

2021년 하반기 최고 기대작 ‘하데스타운’이 개막했다. 지난 9월 7일 서울 LG아트센터에서 막을 올린 이번 공연은 한국에서 처음 선보이는 무대일 뿐만 아니라 세계 최초 라이선스 공연이어서 더욱 의미가 깊다. 오는 2022년 2월 27일까지 계속돼 작품을 즐길 기회가 충분하다는 사실 또한 반가운 일이다.  

비록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잠시 멈춰가야 했지만, 뮤지컬의 본고장인 브로드웨이에서 최고라 손꼽힌 최신작답게 이력이 무척 화려하다. 2006년 초창기 버전 공연을 선보인 뒤로 십여 년간 반복된 수정과 넘버 추가를 통해 완성도를 높인 만큼 반응도 뜨거웠다. 2016년 오프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하데스타운’은 뜨거운 호평에 힘입어 예정보다 5주 더 연장된 워크숍을 이어갔다. 이후 캐나다와 런던 공연을 거쳐 2019년 브로드웨이 무대에 본격 진출하면서 연출상·음악상 등을 포함한 토니어워즈 8관왕, 그래미 어워드 최고 뮤지컬 앨범상 수상 등의 영예를 안았다.

작품은 익숙한 고대 그리스 신화 일부를 매우 흥미롭게 변주했다. 단, 설정이 달라졌다. 미국 싱어송라이터이자 극작가 아나이스 미첼의 아이디어가 ‘하데스타운’에 남다른 생명을 불어넣었다. 기타를 맨 채 자유로이 노래하던 그에게 오르페우스 이야기는 특별한 영감을 떠올리게 했다. 아나이스 미첼은 직접 뮤지컬 대본을 써서 실제 자기 모습과 무척 닮은 오르페우스를 탄생시켰고, 마찬가지로 음악에도 투영했다. 그래서인지 뮤지컬 ‘하데스타운’ 속 넘버를 들어보면 그의 독특한 창법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듯한 느낌이 든다. 여기에 독창적이면서도 획기적인 무대연출로 손꼽히는 레이첼 차브킨이 연출을 맡아 또 한 번 놀라운 무대를 선보였다. 그는 참신한 무대로 주목받은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을 지휘했던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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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뮤지컬 ‘하데스타운’은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이야기를 기반에 두고 현대적인 감각을 가미해 새로이 재해석됐다. 지하세계의 왕 하데스와 그의 아내 페르세포네 이야기도 함께다. 두 커플의 이야기는 나란히 평행선을 그리며 달리다 결정적인 순간 노래(‘EpicⅢ’)를 매개로 교차하면서 작품이 전하고자 했던 핵심을 관통한다. 성스루(Sung-through)로 진행되는 뮤지컬이지만 중간중간 이어지는 대사도 적지 않기 때문에 만약 관련 서사를 알지 못하더라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모든 이야기는 내레이터이자 ‘전령의 신’ 헤르메스를 통해 전개된다. 지상과 지하를 불문하고 어느 곳이든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신답게 그의 옷 소매에는 가벼운 날개가 달렸다. 무대 위로 등장하자마자 브라스밴드의 흥겨운 라이브 연주를 따라 리듬을 타며 등장인물들을 소개하는데, 그가 부를 ‘Road to HellⅠ(지옥으로 가는 길)’ 안에 개괄적인 내용이 담겨있으니 꼭 집중해서 들어보길 추천한다.

뮤즈의 아들 오르페우스는 기타를 둘러메고 곳곳을 다니면서 아름다운 음악을 짓는 음유시인이다. 오르페우스가 노래를 부르면 그의 손엔 빨간 꽃이 저절로 피어났다. 비록 가난했어도 베푸는 재능이 있었던 청년은 어느 날 우연히 만난 에우리디케에게 첫눈에 반해 청혼한다. 세상의 가혹함을 너무 일찍 깨달은 탓에 현실적인 고민을 하는 에우리디케와 달리 낙천적인 오르페우스는 쓰고 있던 곡이 완성되고 나면 봄을 되찾을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 곡은 아주 먼 옛날, 하데스와 페르세포네가 나눴던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하지만 사랑만으론 여전히 춥고 배고픈 현실을 이겨내기 어려웠다. 운명의 여신들은 유독 에우리디케에게만 가혹하게 굴었는데, 이제 그에게 운명의 동반자가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달라지지 않았다. 결국 에우리디케는 우연히 마주했던 하데스의 제안을 떠올리며 스스로 지옥행 기차에 올라 그를 찾아간다. 하지만 피난처가 되어주리라 믿고 찾아온 하데스타운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자유를 지키기 위해 벽을 쌓았다던 하데스의 말은 허상일 뿐, 계층 간의 벽을 더욱 공고히 할 따름이었고 에우리디케가 기대한 평안도 보장되지 않았다. 뒤늦게 아내의 죽음을 안 오르페우스가 헤르메스로부터 조언을 듣고 에우리디케를 구하러 하데스를 찾아가리라 결심하는데, 그땐 이미 에우리디케가 하데스가 내민 계약서에 서명을 마친 뒤였다. 지하세계에 도착한 그는 하데스로부터 무섭게 위협받는다. 하지만 오르페우스가 완성한 노래와 더불어 두 청년의 사랑을 지켜봤던 페르세포네의 제안이 완고했던 하데스를 움직인다. 이로 인해 에우리디케를 구할 단 한 번의 기회를 얻게 되나 결과는 신화 속에 남겨진 그대로다.

뮤지컬 ‘하데스타운’은 짙은 엠버톤 조명이 비춘 재즈바에서 커다란 무대 변화 없이 진행된다. 캐릭터 설정뿐만 아니라 노랫말 하나에도 은유와 상징이 가득 담겼다. 얼룩진 옷을 입은 오르페우스는 가난한 웨이터로 분해 열심히 탁자를 닦는다. 반면 세련된 정장 차림을 한 하데스의 지배 아래 놓인 지옥은 단단한 벽으로 둘러싸인 탄광으로 꾸며졌다.

수많은 부와 막강한 권력을 쥔 하데스와 달리, 에우리디케를 포함한 노동자들은 어둠 속에서 24시간 내내 노예처럼 쉼 없이 일을 한다. 마치 미국 대공황을 연상시키는 듯한 분위기를 배경으로 묵직한 작업복을 입고 초점 없는 눈을 한 이들은 과거의 기억뿐만 아니라 점차 존재 가치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노동에 따른 대가를 받는 대신, 모두 영혼을 잃은 채 감정 없이 땅을 팔 뿐이다. 그랬던 그들이 기존 체계를 지키려는 하데스를 앞에 두고 과연 어떻게 변화하는지 주목해 보기 바란다.

각 캐릭터가 가진 성격도 매력 있다. 그중 특히 여성 캐릭터의 변신을 눈여겨봐야 한다. 먼저 에우리디케의 경우,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직접 행동하는 여성으로 그려졌다. 선택에 따른 책임도 회피하지 않는다. 죽음조차 스스로 선택한 그의 행보는 그저 오르페우스의 뒤를 따르던 신화 속 수동적 인물과 전혀 다른 모습이다.

▲ 최윤영 평론가·아나운서·공연 칼럼니스트
-네이버 오디오클립 ‘최윤영의 Musical Pre:view 공연을 말하다’ 크리에이터
-클래식, 콘서트 등 문화예술공연 전문 MC
- 미디어 트레이닝 및 인터뷰, 스피치 커뮤니케이션 전문 강사
- 인천국제공항 아나운서, 경인방송 FM 리포터

하데스의 아내 페르세포네도 마찬가지다. 본디 하데스에게 납치돼 지상의 빛을 뒤로 한 채 지하세계로 끌려갔다고 알려진 그는 작품 속에서 하데스와 진심으로 사랑을 나눈 대상이 됐다. 비록 이제는 너무 오래된 기억으로 남은 나머지 술에 의존해 권태로운 생활을 이어가고 있지만, 그들 역시 여느 연인처럼 반짝였던 추억을 품고 있었다. 뮤지컬 ‘하데스타운’은 이런 하데스와 페르세포네의 관계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면서 잊고 있던 소중함을 문득 깨닫는 계기가 된다.

중독성 강한 넘버들 또한 놓칠 수 없다. 생동감 넘치는 라이브 연주는 뉴올리언스 재즈와 팝, 포크 음악과 어우러져 오랜 잔상을 남긴다. 모든 넘버가 뚜렷한 성격을 갖는데, 그런 가운데 작품을 대표하는 중심 멜로디를 품은 ‘Epic’ 시리즈와 ‘Wait for Me’, ‘Road to Hell’은 계속 머릿속에 맴돌 만큼 깊이 각인된다.

대부분의 그리스 신화가 그렇듯 ‘하데스타운’ 역시 비극을 향해 달리는 기차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작품 안에는 온갖 감정들이 녹아있다. 금기를 깬 인간과 신에게 도전하는 인간을 보면서 우리는 좌절이 아닌 희망을 본다. 사랑하고 사유할 수 있는 인간이기에 내심 품을 수밖에 없었던 의심이 안타까운 결과를 낳았음에도 오히려 그런 경험이 새로운 믿음의 씨앗이 된다는 점도 놀랍다.

‘신은 무수한 슬픔 속에 한가지 기쁨을 숨겨 두어, 때때로 우리를 미소 짓게 한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결말을 알고 있음에도 우리가 슬프지만 아름다운 노래를 여전히 불러야 하는 까닭은 언젠가 그 결말이 해피엔딩으로 바뀔지 모른단 희망 때문이다. 뮤지컬 ‘하데스타운’이 전한 이야기는 사랑을 기반으로 한 연대를 이뤄 무수한 두려움 속에 남겨진 빛으로 자리할 것이다. 언젠가 다음 세대를 살아갈 사람들이 지금 이 노래를 계속해서 부를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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