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프랑켄슈타인> 2차포스터 전동석 ⓒ제공 NCC

과학 기술은 문명의 꽃을 피우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해왔다. 덕분에 우리는 상상을 실현할 수 있게 됐을 뿐 아니라 감히 꿈꾸지도 못했던 일에 도전할 수 있게 됐다. 일례로 20세기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사건 중 하나라 기록된 복제 양 돌리의 등장은 인간 복제 가능성을 열었고, 나아가 우리 삶을 더욱 넓은 범주로 확장할 수 있으리란 희망을 품게 했다.

하지만 자연의 섭리를 거스른 대가는 반드시 뒤따르는 법이다. 요약하자면 불완전한 성공이었다. 윤리적 난제와 부딪힌 과학은 앞으로 인간이 풀어야 할 과제로 남았다. 어쩌면 우리가 미처 알 수 없는 희생이 숨겨져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한 과정에서 수반된 고통 역시 온전히 감수해야 할 몫이었다. 뮤지컬 ‘프랑켄슈타인’ 속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겪게 된 일련의 사건 또한 마찬가지다. 작품은 스스로 신이 되고자 했던 한 남자와 그의 친구 이야기를 통해 과학이 넘보지 못할 생명윤리의 최전선은 과연 어디까지이며, 또 인간 존재의 의미란 무엇인지 탐구하도록 과제를 제시한다.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이 돌아왔다. 한국 대표 창작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은 뮤지컬 ‘벤허’, ‘영웅본색’ 등을 만든 왕용범 연출과 이성준 음악감독의 또 다른 합작품으로, 강렬하면서도 힘이 넘치는 무대와 수려한 음악들 덕분에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또 2014년 더 뮤지컬 어워즈 9개 부문 수상을 포함해 각종 시상식에서 저력을 보였고, 일본과 중국에도 수출되며 작품성과 흥행성을 모두 입증했다.

2014년 초연 이후 네 번째 시즌을 맞이한 작품은 지난 11월 24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블루스퀘어 신한카드 홀에서 개막해 내년 2월 20일까지 공연을 이어갈 예정이다. 이번 시즌 출연진도 변함없이 화려하다. 우선 앞선 시즌 숨 막히는 연기와 뛰어난 노래로 깊은 감동을 선사한 뮤지컬 배우 민우혁, 전동석, 박은태, 카이가 다시 무대에 올라 ‘프랑켄슈타인’만의 감성을 잇는다. 여기에 규현과 정택운(레오)이 각각 새로운 빅터 프랑켄슈타인과 앙리 뒤프레 역으로 합류해 기대를 모았고, 이 밖에도 해나·이봄소리(줄리아 役), 서지영·김지우(엘렌 役), 이희정·서현철(슈테판 役), 김대종·이정수(룽게 役)가 함께하며 한층 완성도 높은 무대를 꾸미고 있다.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은 영국 소설가 메리 셸리의 동명 원작소설(1818년 작)을 바탕으로 창작됐다. 열아홉 살 여성 작가가 쓴 데뷔작이라 믿기 어려울 만큼 놀라운 소재와 통찰력을 지닌 소설답게 출간 이후 파격적인 반향을 일으키며 최초의 SF소설이자 대표적인 괴기 소설로 자리 잡았다. 뮤지컬도 이런 원작에 기반을 둔 작품답게 어둡고 묵직한 분위기를 이어간다. 단, 주요 등장인물과 공통된 소재만 가져왔을 뿐 내용은 완전히 다르다.

<뮤지컬 프랑켄슈타인> 공연 사진 ⓒNCC 제공<br>
<뮤지컬 프랑켄슈타인> 공연 사진 ⓒNCC 제공

흔히 ‘프랑켄슈타인’이라 하면 군데군데 꿰맨 얼굴에 괴상하리만큼 툭 튀어나온 나사가 몸에 박힌 괴물을 떠올리기 쉽겠지만, 이는 그를 지칭하는 명사가 아니다. ‘프랑켄슈타인’ 속 괴물 이미지는 제임스 웨일 감독의 1931년 작 공포영화에서 괴물 역을 맡은 배우 보리스 칼로프가 연출한 모습으로 깊숙이 각인됐다. 본래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이라 불린 피조물을 탄생시킨 창조주로, 그가 만든 생명체는 끝내 어떤 이름도 부여받지 못했다.

뮤지컬 속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스위스 제네바 출신 과학자로 등장한다. 부유한 가문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나 갑작스럽게 유행한 흑사병 때문에 부모를 잃고 저주받은 삶이라 자조하며 신이 되길 욕망하는 인물이다. 나폴레옹 전쟁 당시 ‘죽지 않는 인간’을 창조하기 위해 전쟁터에서 희생된 군인들의 신체로 연구를 진행해 오다, 신체 접합술에 뛰어난 능력을 지닌 의사 앙리 뒤프레를 만나게 된다. 처음에는 빅터가 품은 야망을 경계했던 앙리였지만 결국 그의 굳은 신념과 의지에 감명을 받아 실험에 합류하고, 전쟁이 끝난 뒤에도 절친한 친구이자 동료로서 뜻을 모은다. 그러나 신은 그런 인간의 도전을 그저 두고 보지 않았다. 인류 역사상 전례가 없던 발견을 하게 된 대가는 참혹했다. 예기치 못한 사건이 발생한 뒤로 결국빅터의 손에서 피조물이 창조되지만, 그는 상상했던 존재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탄생해 큰 충격을 안긴다. 이후 괴물이 된 피조물과 창조주 빅터 프랑켄슈타인 사이에 애증으로 점철된 피의 복수가 시작되면서 극은 절정을 향해 달린다.

미신처럼 여겨지는 속박에서 벗어나 완전히 새로운 세계관을 만들길 꿈꿨던 빅터는 끝내 어둠 속에 갇힌 자신조차 구원하지 못한다. 생의 사명을 완수하고 누구보다 주체적으로 살고자 했으나 좌절을 거듭하며 파멸로 이끌리고 마는 모습은 안타까운 심상을 더한다.

이토록 무게감 있는 이야기는 풍부한 음악으로 완성됐다. 섬세하면서도 힘차게 시작된 서곡은 앞으로 펼쳐질 여정을 향한 기대감을 높인다. 곧이어빅터와 앙리 사이 의견 대립이 돋보이는 ‘단 하나의 미래’, 빅터를 사랑한 줄리아의 ‘혼잣말’, 잠시나마 행복했던 한때를 그린 ‘한 잔의 술에 인생을 담아’, 진심 어린 신뢰와 우정을 노래한 ‘너의 꿈속에서’, 굳은 결의가 담긴 ‘위대한 생명 창조의 역사가 시작된다’, 외로움과 분노가 오롯이 담긴 ‘난 괴물’, ‘상처’ 등이 극적인 장면들과 차례로 어우러지며 몰입을 유도한다.

전반적으로 잘 짜인 전개 가운데 오히려 서사에 완벽한 설명을 곁들이지 않음으로써 마음껏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열어둔 것도 작품이 가진 매력이다. 무엇보다도 가장 궁금해지는 부분은 바로 1막과 2막 사이에 흐른 3년이란 시간이다. 또 뮤지컬에서는 앙리가 거쳐온 삶의 발자취를 집중해 다루지 않는다. 여러 정황과 대사로 미루어 보았을 때 그동안 그가 혼자 외롭게 살아온 인물이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관객들이 등장인물들의 선택에 공감하게 되는 까닭은 이런 약간의 공백을 계기로 다양한 추론이 가능하도록 작품 곳곳에 여러 장치를 마련해두었기 때문이다. 다만 속도감이 확실한 1막에 비해 조금 늘어지듯 느껴지는 2막 초반 격투장 신은 여전히 아쉽다.

▲ 최윤영 평론가·아나운서·공연 칼럼니스트
-네이버 오디오클립 ‘최윤영의 Musical Pre:view 공연을 말하다’
-클래식, 콘서트 등 문화예술공연 전문 MC
-미디어 트레이닝 및 인터뷰, 스피치 커뮤니케이션 전문 강사
-인천국제공항 아나운서, 경인방송 FM 리포터

기본적인 캐릭터 분석을 바탕으로 배우마다 조금씩 연기 노선이 다르다는 점 또한 주목해볼 만하다. 이번 시즌 세 번째로 빅터 프랑켄슈타인 역을 맡은 전동석은 더욱 확고한 신념을 지닌 연구자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더불어 과거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차갑게 마음을 닫아버린 인물을 연기하며 독창적인 해석을 곁들여 자신만의 프랑켄슈타인 캐릭터를 뚜렷하게 완성했다. 앙리 뒤프레를 연기한 카이 역시 훨씬 깊어진 감성으로 공연장을 사로잡는다. 결연한 의지가 담긴 목소리에는 관객의 마음을 움직일 힘이 담겼다. 두 사람 다 성악을 전공했던 배우답게 엄청난 무대 장악력을 선보이는데, 특히 각 캐릭터가 서로 대립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모습은 팽팽한 긴장감을 자아내며 묘한 쾌감마저 느끼게 한다.

작품에 등장하는 배우들이 모두 1인 2역을 맡게 된다는 사실도 재미있다. 일부 배우가 맡은 배역은 기존에 연기했던 역할과 너무 달라서 단번에 알아채기 어려울 수도 있다. 짧은 시간에 같은 무대에서 다양한 이미지 변신을 시도하는 모습에 잠시나마 눈을 의심하게 되지만, 또 다른 배역을 맡은 배우가 누군지 맞춰보는 경험이 꽤 흥미롭다.

인간의 이성을 바탕에 둔 과학이 우리 삶을 윤택하게 만들 도구로 쓰일 수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하지만 현대판 프로메테우스는 자신이 창조한 괴물로 인해 끊임없이 고통받았다. 어쩌면 오늘날 우리가 처한 현실 역시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인공지능(AI)을 군사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될지 모른다는 이야기나, 인류를 대신할 무기 개발 가능성과 그 결과에 대한 예측은 때아닌 공포심을 자아낼 정도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려야만 하는 세상을 살아가는 요즘,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은 오직 과학만이 세상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자칫 인간이 오히려 괴물처럼 변모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한다. 그런 가운데 심오한 주제 속에 진실로 꽃핀 우정과 숭고한 희생은 문득 따스한 위안이자 희망으로 다가온다. 결국, 방향성을 결정할 주체는 인간이다. 우리가 비극을 보며 다시 평화를 꿈꾸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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