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르담드파리] 공연사진, 미치광이들의 축제 리샤르 샤레스트(그랭구와르) ⓒ마스트엔터테인먼트
미치광이들의 축제 리샤르 샤레스트(그랭구와르) ⓒ마스트엔터테인먼트

시간을 뛰어넘어 오래도록 사랑받는 작품이 가진 비결은 무엇일까. 아마도 내포된 인류의 역사를 거울삼아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도약할 디딤돌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고전의 가치가 바래지 않는 이유 역시 같은 맥락에서 조망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지금에 와서는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좋은 작품을 통해서라면 날 세운 비판 대신 변화를 위한 지향점으로 삼게 된다. 빅토르 위고가 쓴 프랑스 대표 고전 문학으로부터 출발한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도 마찬가지다. 격변과 혼동으로 가득한 시대를 그린 작품에는 언제나 변치 않을 낭만과 인간미가 담겼다. 우리는 이를 통해 삶의 의미를 되짚어 볼 기회와 마주한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프렌치 오리지널 공연이 다시 한국을 찾았다. 지난 11월 17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개막한 이번 공연은 오는 12월 5일까지 이어지는 일정을 소화한 뒤 대구와 부산 공연까지 순차 진행된다고 해서 더욱더 반갑다.

무려 5년 만에 성사됐던 2020년 한국 초연 15주년 기념 공연은 코로나 팬데믹 초기에 이루어진 탓에 예정된 공연일을 모두 채우지 못한 채로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야만 했다. 당시 프랑스 초연 캐스트 다니엘 라부아(프롤로 役)의 첫 내한 성사로도 기대감을 모았으나, 안타깝게도 그 역시 관객들과 만날 기회를 충분히 얻지 못하고 말았다. 이 때문에 예상보다 더 빠르게 들려온 2021년 ‘노트르담 드 파리’ 프렌치 오리지널 팀의 한국행 소식은 공연을 기다렸던 모두를 설레게 하기 충분했다. 다만 공연 기간이 길지 않아 관람을 예정하고 있었다면 발걸음을 서둘러야 한다.

작품은 극적인 요소가 풍부한 스토리를 토대로 인간이 품고 있는 본능을 낱낱이 파헤치면서 과거의 빛과 어둠으로부터 나아가 오늘을 잇는다. 몽환적인 푸른 빛의 무대가 잠시 어둠 속으로 사라지면 본격적인 막이 오른다는 신호다. 곧 익숙한 음악의 전주가 흐르면서 무대는 1482년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앞 광장으로 바뀐다. 자유를 노래하는 음유시인 그랭구와르가 등장해 ‘대성당의 시대(Le Temps des Cathedrals)’를 부르는 순간, 감미로우면서도 짜릿한 전율이 온몸으로 퍼져가는 느낌에 저절로 황홀해진다. 그는 주요 등장인물이자 스토리텔러로 활약하며 철학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시의 언어로 우아한 감상에 젖게 만든다.

극본가 겸 작사가 뤽 플라몽동은 원작 소설이 담은 방대한 내용 가운데 에스메랄다를 둘러싼 세 남자의 사랑 이야기 위주로 뮤지컬을 전개했다. 노트르담 대성당 앞 광장을 보금자리 삼아 집시 무리와 모여 살던 여인 에스메랄다는 흉측한 외모를 지닌 탓에 성당 종지기로 숨어 살아온 꼽추 콰지모도와 그런 콰지모도를 거둬 기른 주교 프롤로, 매력적인 근위대장 페뷔스의 마음을 모두 사로잡는다. 각자 자신만의 방식대로 에스메랄다를 사랑하길 꿈꾸지만, 욕망으로 점철된 사랑은 곧 파멸을 향해 치닫는다. 순수한 마음을 품었으나 가질 수 없는 사랑을 꿈꾸는 자와 절대 가져서는 안 될 사랑을 탐하는 자 사이에 혼란을 겪던 에스메랄다는 결국 운명의 희생양이 되고 말아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분출하는 욕망을 이겨내지 못해 끝내 이성과 감성이 겨룬 줄다리기의 끈을 놓치고 만 인물들의 행보를 보며 관객들은 낯설게도 증오와 연민을 동시에 느끼는 경험을 하게 된다. 또, 언제까지나 드높을 것만 같았던 권위에 조금씩 균열이 생긴 뒤로 점차 쇠락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숙명’이란 단어에 담긴 포괄적 의미를 되새길 수 있다.

성당의 종들(Les cloches)아크로밧 ⓒ마스트엔터테인먼트
성당의 종들(Les cloches)아크로밧 ⓒ마스트엔터테인먼트

이처럼 흥미로운 스토리는 환상적인 노래와 강렬한 퍼포먼스, 감각적인 무대 디자인으로 완성됐다.

우선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는 대사 없이 노래 위주로 진행되는 성스루(Sung-through) 뮤지컬이기 때문에 작품을 충분히 이해하려면 가사에 집중해야 한다. 프랑스어 특유의 운율에 맞춰 은유와 상징으로 가득한 표현들이 연이어 등장하는 만큼, 무대에서 펼쳐진 장면과 노랫말이 품고 있는 의미를 섬세하게 연결하며 보아야 더욱 풍부하게 음미할 수 있다. 이번 ‘노트르담 드 파리’ 공연장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는 좌석마다 작은 스크린이 설치돼 있어 공연을 감상하면서 동시에 가사를 확인하기 편리하다. 덕분에 보통 좌우로 시선을 옮기며 봐야 했던 무대를 비교적 편안하게 볼 수 있어 장면을 놓칠 일도 드물다. 그래도 조금이나마 더 깊이감 있게 감상하길 원한다면 대략적인 줄거리를 알아두고 관람하길 추천한다.

현대적인 감각을 지닌 아티스트 리카르도 코치안테(Riccardo Cocciante)의 손에서 탄생한 선율 역시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를 더욱 빛나게 만드는 요소다. 가사를 싣고 우아하게 흐르는 음악들은 어느새 짙은 잔상으로 남아 작품을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게 한다. 그중에서도 무려 44주 동안 프랑스 팝 차트 인기 1위를 차지했을 만큼 뜨거운 사랑을 받았던 삼중창 ‘아름답다(Belle)’, 페뷔스의 고뇌와 욕망이 잘 드러난 ‘괴로워(Désirer)’, 집시인 에스메랄다가 운명에 대해 노래한 ‘보헤미안(Bohémienne)’, 콰지모도의 진심 어린 사랑이 가득 담긴 ‘춤을 춰요, 나의 에스메랄다(Danse Mon Esmeralda)’는 꼭 집중해서 들어볼 만한 넘버다.

▲ 최윤영 평론가·아나운서·공연 칼럼니스트
-네이버 오디오클립 ‘최윤영의 Musical Pre:view 공연을 말하다’
-클래식, 콘서트 등 문화예술공연 전문 MC
-미디어 트레이닝 및 인터뷰, 스피치 커뮤니케이션 전문 강사
-인천국제공항 아나운서, 경인방송 FM 리포터

무대 배경 자체는 단조롭지만 다채로운 색상으로 제작된 의상을 착용한 배우들 덕분에 시선을 분산할 틈을 주지 않을 만큼 화려하게 채워진다는 점 또한 인상적이다. 직선을 강조한 무대 디자인은 다소 경직된 느낌을 주기도 하는데 오히려 그래서 배우들의 역동적인 움직임이나 에너지 가득한 노래가 훨씬 돋보인다. 움직이는 가고일 석상과 성당의 종들, 돌기둥, 철제 구조물 등 각종 무대 소품도 매우 단순하게 제작됐으나 그 역시 상징적인 의미를 충분히 담았다.

이 밖에도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에는 수많은 관람 포인트들이 곳곳에 숨어있다. 작품은 앞선 시대를 거쳐 간 이들이 보여준 모순을 토대로 각기 다른 인간 군상을 면밀하게 포착해 숙명처럼 여겨졌던 삶의 굴레를 벗어날 방도를 찾게 한다. 또 권력자와 이방인 간 대비를 통해 미래가 추구할 이상적 지향점을 밝힌다.

이렇게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는 인간이 완성할 수 있는 현대 미학의 결정판으로서 늘 변함없는 모습으로 굳건히 자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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