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더데빌 공연사진 백형훈, 배나라, 이지연 ⓒ알앤디웍스

분명 친절한 작품은 아니다. 대사가 거의 없는 데다 언뜻 보면 뚜렷한 서사조차 드러나지 않는다. 그런데 묘하게 다시 생각이 난다. 문득 각인된 이미지를 떠올리게 되고 기억을 하나둘 모아 곱씹게 된다. 그래서 더 도전하고 싶어지는 작품이 아닐까. 아마도 뮤지컬 ‘더 데빌’을 접해본 적이 있는 관객이라면 분명 비슷한 경험을 해봤으리라 생각한다.

뮤지컬 ‘더 데빌’이 네 번째 시즌으로 돌아왔다. 괴테의 희곡 ‘파우스트’에 기반해 탄생한 창작 뮤지컬로, 인간의 본성과 욕망을 파격적이면서도 독특하게 조명해 주목받았던 작품이다. 2014년 초연 당시 참신한 무대 활용과 상징적인 가사, 상대적으로 단순한 캐릭터 구성을 선보이며 화제를 모았으나 작품의 기초가 된 원작부터 이해하기 쉽지 않은 작품이다 보니 반응이 극과 극으로 갈렸다. 이후 재연부터 절대적인 존재 X를 각각 X-White와 X-Black으로 분리해 가시적인 이해를 돕고, 시즌을 거듭하는 동안 넘버와 무대에도 계속 변화를 주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특히 이번에는 작품 초연부터 삼연까지 존 파우스트 역을 맡았던 배우 송용진이 연출로 이름을 올려 또 한 번 새로워질 ‘더 데빌’을 기대케 했다. ‘더 데빌’ 사연은 지난 2021년 12월 10일(금) 드림아트센터 1관에서 개막해 오는 2월 27일까지 이어진다.

뮤지컬 더데빌 공연사진 조환지, 김찬호 ⓒ알앤디웍스

작품은 인간을 신에게 구원받기 위해 끊임없이 향상하는 존재로 보았다. ‘파우스트’에 등장한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는 인간인 파우스트 박사와 계약을 맺으며 그가 내면에 품은 욕망을 거울처럼 비춰 보인다. 그리고 과연 진심으로 회개하고 구원받을 수 있을지 시험에 들도록 하면서 연속된 선택에 놓인 인간이 향할 행방을 주목한다. 신은 악마가 어떻게 행동하든 그저 지켜볼 뿐이다.

뮤지컬 ‘더 데빌’ 역시 비슷한 흐름을 가져간다. 이야기는 세계 경제의 심장과도 같은 뉴욕 월 스트리트 주식 브로커 존 파우스트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여기에 빛과 선을 의미하는 X-White와 어둠과 악의 상징 X-Black이 인간의 본성을 두고 서로 팽팽하게 대립하는 가운데, X-Black의 유혹에 사로잡힌 존 파우스트와 그의 사랑이자 선한 양심과도 같은 그레첸이 등장해 복잡미묘한 관계를 형성한다.

X-Black과 내기를 한 X-White는 늘 어디엔가 쫓기듯 살아가던 존 파우스트를 보며 인간은 어둠이 유혹할지라도 끝내 선한 본성을 져버리지 않을 거라 믿었다. 그러나 인간이란 생각보다 훨씬 더 나약한 존재였다.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X-Black과 계약을 맺은 존 파우스트는 시간이 흐를수록 어둠에 눈이 가려진 채 점점 더 방향을 잃고 오직 위만 바라보는데, 그러던 사이 방치됐던 그레첸이 희생되고 만다. 가장 순수하면서도 강력했던 존재가 타락에 이르는 장면은 섬뜩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그런 가운데 끝없는 어둠의 충동질 속에서도 마지막까지 빛을 찾아가려던 인간의 모습이 애처로우면서도 희망적이다.

▲ 최윤영 평론가·아나운서·공연 칼럼니스트
-네이버 오디오클립 ‘최윤영의 Musical Pre:view 공연을 말하다’
-클래식, 콘서트 등 문화예술공연 전문 MC
-미디어 트레이닝 및 인터뷰, 스피치 커뮤니케이션 전문 강사
-인천국제공항 아나운서, 경인방송 FM 리포터

이렇게 인간 본성을 주제로 다룬 심층 탐구는 그 자체로 원형적 상징과 다름없지만, 관객들이 인간으로서 중요하게 여겨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다시금 깨닫게 하는 역할을 한다. 작품 전반에 종교적인 색채가 묻어나나 감상에 크게 영향을 미칠 만큼은 아니다. 오히려 공연 내내 시선을 끄는 가디언의 등장과 강렬한 록 사운드, 때때로 불협화음을 이루는 넘버가 처음에는 조금 낯설게 다가올 수도 있다. 특히 ‘더 데빌’은 음악이 서사를 만든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가능한 한 집중해서 들어야 한다. 이 역시 뮤지컬 ‘더 데빌’이 가진 독창성이다. 그중에서도 비교적 대중에게 잘 알려진 ‘피와 살’, 강렬한 도입이 매력인 ‘Possession’, 지친 날의 위로가 되어줄 ‘The song of songs’는 공연을 보기 전에 미리 듣고 가면 더 좋을 넘버다.

눈부시게 화려한 조명과 무대 또한 깊은 인상을 남긴다. X자로 교차한 계단형 구조물은 각 캐릭터 사이의 대립을 상징하기에 더 효과적이다. 이때 인물의 극화된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다채롭게 변화하는 조명이 무대 전체를 아우르는 모습도 새롭다.

어쩌면 실제로도 빛과 어둠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끊임없는 내기를 하고 있었을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사실상 둘은 완벽히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다. 마치 X가 처음엔 하나의 개체로 표현됐듯 말이다. 스피노자의 말처럼 우리는 욕망함으로써 존재를 확인하는 동물이지만, 동시에 합리적인 판단을 할 줄 아는 이성적 존재이기도 하다. 어떤 선택이든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무수한 갈등 끝에 사랑과 포용을 토대로 맞춰낸 균형이 결국 우리 삶을 유지하게 된다는 사실, 뮤지컬 ‘더 데빌’이 전한 메시지가 바로 여기에 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