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이란 말엔 참 다양한 의미가 담겼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어떤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싶을 때, 우리는 이 표현을 꺼내 든다. 무수히 많은 가능성에는 불가능성 역시 포함돼 있다. 하지만 그 불확실한 뜻을 품은 표현 속에 일말의 희망을 품으며 미래를 그린다. ‘그들은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마치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 읽어봤을 법한 동화처럼 말이다.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도 마찬가지다. 불안과 희망이 공존하는 그 어디쯤에서, 우리는 과연 어떤 마지막을 꿈꾸고 있을까.

웰메이드 창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이 돌아왔다. 2012년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로 데뷔한 작가 박천휴와 작곡가 윌 애런슨 콤비가 탄생시킨 뮤지컬로, 2016년 말 초연 당시 관객 평점 9.8점을 기록하기도 할 만큼 많은 사랑을 받았다. 2020년에는 새 프로덕션과 함께 돌아오면서 다시금 재정비를 완료했고, 같은 해 미국 애틀랜타 트라이아웃 공연도 무사히 성료한 바 있다. 또 일본과 중국에 라이선스 공연을 수출하면서 인기작다운 면모를 증명했다. 그 후 예상보다 조금 더 빠른 개막과 더불어 뮤지컬 배우 신성민·임준혁·정욱진(올리버 役), 홍지희·이해나·한재아(클레어 役), 성종완·이선근(제임스 役)이 캐스팅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지난 6월 22일 서울 대학로 예스24스테이지 1관 무대에 오른 4연은 오는 9월 5일까지 이어질 예정으로 이번 시즌 역시 ‘어쩌면 해피엔딩’만의 고유한 감성을 담아 관객들의 마음을 다독이고 있다.

이야기는 21세기 후반, 그다지 머지않은 미래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어둠 속에서 오래된 레코드플레이어가 지직대며 돌아가기 시작하자 얼굴 가득 미소를 띤 헬퍼봇 올리버가 등장한다.

좀 더 편리한 인간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만들어진 헬퍼봇들은 이제 쓸모를 다해 서울 메트로폴리탄 외곽에 위치한 구형 로봇 전용 아파트에 방치돼있다.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속 서울 메트로폴리탄은 고도의 미래 기술 덕분에 발전을 거듭한 모습이지만 그보다 먼저 관객들의 눈에 들어온 건 우리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을 만큼 익숙한 풍경이다. 세월의 흐름이 느껴지는 재즈 음악에 아날로그 감성이 한껏 묻어난 방은 꽤 단조로우면서도 따스하다. 단짝 친구인 화분과 대화를 나누며 하루를 보내고 방문객이라고는 그저 우편배달부 한 사람뿐이지만, 그렇게 반복된 생활도 올리버에겐 충분한 행복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작스레 충전기를 빌려달라며 나타난 또 다른 헬퍼봇 클레어가 그랬던 일상을 완전히 뒤바꿔 놓는다. 매사 조심스럽고 겁이 많았던 올리버와 달리 밝고 적극적인 클레어는 어느새 낯설어도 자꾸 궁금한 존재가 된다.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레 더 가까워진 두 헬퍼봇은 예기치 않게 각자 꿈꿔왔던 일들을 실현하기 위한 여정에 동행하는데, 그 과정에서 로봇이 경험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감정들을 모두 느끼게 된다. 그 중엔 당연히 사랑도 포함됐다. 올리버와 클레어는 우리도 인간처럼 사랑을 할 수 있었다며 기뻐하지만, 안타깝게도 곧 그 행복의 이면에는 고통이 따른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작품 속 가사처럼 끝내 흩어지고 말 줄 알면서 왜 사랑했느냐 묻는다면 어떤 답을 해야 할까. 결말을 예상하면서도 끝내 서로를 향한 마음을 접을 수 없었던 두 헬퍼봇 이야기는 지켜보던 관객들의 마음을 먹먹하게 만든다. 생의 마지막이 얼마만큼 남았는지를 직접 수치로 확인하는 기분이란 감히 짐작하기조차 어렵다. 세상으로부터 버려진 고물 헬퍼봇에게 하루하루는 그저 언젠가 마주할 마지막을 향한 카운트다운과 같았을지 모른다. 그런 가운데 아예 모른 채 살았거나 그저 스쳐 가도 됐을 그들이 운명처럼 엮이고, 너무나 달랐던 올리버와 클레어가 점차 서로를 닮아가는 모습은 마치 우리가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던 순간을 떠올리게 한다. 눈부시게 반짝이던 기억들이 파편처럼 부서질 때,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차올랐던 묵직한 감정들 또한 언젠가 한 번쯤 경험해봤을 법한 추억과 어우러져 안타까운 탄식을 자아낸다.

무엇이든 빠르게 변화하는 요즘, 속도전과 다름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은 벅찬 삶의 템포를 한 박자 쉬어가게 한다. 느릿느릿 돌아가던 레코드플레이어 위 음반처럼 처음에는 어색한 듯 삐걱대던 로봇들이 어느 순간부터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모습으로 변해가는 과정도 좋다.

▲ 최윤영 평론가·아나운서·공연 칼럼니스트-네이버 오디오클립 ‘최윤영의 Musical Pre:view 공연을 말하다’ 크리에이터-클래식, 콘서트 등 문화예술공연 전문 MC- 미디어 트레이닝 및 인터뷰, 스피치 커뮤니케이션 전문 강사- 인천국제공항 아나운서, 경인방송 FM 리포터
▲ 최윤영 평론가·아나운서·공연 칼럼니스트
-네이버 오디오클립 ‘최윤영의 Musical Pre:view 공연을 말하다’
-클래식, 콘서트 등 문화예술공연 전문 MC
-미디어 트레이닝 및 인터뷰, 스피치 커뮤니케이션 전문 강사
-인천국제공항 아나운서, 경인방송 FM 리포터

6인조 라이브 밴드가 선보인 즉석 라이브 연주 역시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 재즈와 클래식이 어우러진 선율과 복고감성을 자극하는 어쿠스틱 사운드가 잔잔하게 퍼져나갈 때면 음악이 가진 생명력을 새삼 체감하게 된다.

매회 결말을 다양하게 유추해 볼 수 있다는 점 또한 재미있다. 각 배우가 펼친 연기와 공연 당일 흐름에 따라 작품은 해피엔딩이 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대본은 분명히 존재한다. 어떤 결말이든 좋지만, 두 헬퍼봇이 서로 만나 사랑했단 사실만으로도 이미 올리버와 클레어는 충분히 행복했을 것이다.

익숙했던 일상에 잠시 안녕을 고했던 이후, 어느덧 1년 하고도 절반이 더 지났다. 어쩌면 요즘 우리가 겪어온 나날들도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속 헬퍼봇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낯선 일상이 유한한 삶의 시계를 파고들며 고립감과 외로움을 증폭시킨 현실 속에서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은 한동안 잊고 살았던 행복을 깨닫고 다시 희망을 꿈꿀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이 되어준다. 머지않아 맞이할 현실 동화 속 결말은 분명 해피엔딩이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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