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우 칼럼니스트▸철학박사▸​​상지대학교 조교수
▲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조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승려 혜민이 한동안 검색어 시장을 장악했을 때가 있었다. 그런데 “혜민”이라는 검색어에 묻혀서 대한불교조계종(이하 조계종이라고 약칭하겠음)의 엄청난 결정 하나가 묻혔다. 조계종에서 멸빈(滅擯: 승적 영구 박탈) 당했던 전 조계종 총무원장 서의현을 복권시키고, 뿐만 아니라 조계종 비구승 최고의 법계이자 ‘존경받는 선지식’인 대종사 후보에 올린 것이 그것이었다.

이러한 조계종의 결정이 있자 조계종 내부에서 거센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대한불교청년회를 비롯한 각종 승려, 재가신도 단체가 서의현의 복권과 대종사 후보로 추천한 것에 대해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불교 신자가 아닌 사람은 이 사건을 잘 모르는 것 같다.

서의현이라는 인물과 그의 조계종 총무원장직 사퇴는 굴곡진 현대사와 연결되면서 여러가지 의미를 남겼다. 첫째, 서의현은 종교와 정치가 유착된 모습을 보여준 대표적인 인물이다. 지금까지 개신교의 경우 국가조찬기도회를 비롯해 이름있는 목사들의 각종 발언과 행위로 인해서 정치와 유착하고 있는 모습들이 많이 드러났다. 그러나, 불교의 경우 정치권과의 관계가 잘 드러나지 않았다. “속세를 떠난다”는 이미지와 상대적으로 언론에 조명이 덜 된 탓으로 보인다. 특히, 개신교 장로였던 이명박 대통령 때 당시 정권의 개신교 편향 논란도 불교와 정치권과의 유착을 희석시키는 효과를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서의현이 조계종 총무원장으로 재직했을 때 서의현은 전두환 군부독재 정권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지지를 표하거나, 신도들에게 지지를 구하는 발언을 수시로 했었다. 또한 1987년 대선 때는 노태우, 1992년 대선 때는 김영삼 당시 후보를 지지하는 듯한 발언을 했고, 그 측근 인사들은 더 적극적으로 지지를 표명해서, 종교가 정치에 유착되는 모습을 보여줬다. 결국, 서의현은 불교에서 정치와 종교가 유착된 대표적인 사례로 남아있다.

둘째, 서의현은 종교 내부에서 자신이 점하고 있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대표적인 인물이다. 당시 신문 기사에 따르면, 서의현이 1994년에 멸빈당한 이유는 그가 정치권과의 유착을 바탕으로 조계종 총무원장이라는 자리를 유지했고, 조계종 총무원장 3선을 위해서 경찰과 조직폭력배에게 진입을 요청했기 때문이었다. 서의현은 이미 조계종 총무원장을 재선까지 한 상황에서 임기 5개월을 앞두고 다시 총무원장에 취임하기 위해 갖가지 노력을 경주했다. 그러나 세속은 민주화 운동의 결과 군부독재에 의해 시작된 제5공화국 체제가 종식됐고, 문민정부가 들어선 상황이었으며, 민주화에 대한 요구가 결실을 맺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종단 역시도 민주화 요구가 이어졌다. 특히, 서의현의 경우 군부독재와 유착됐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었고, 이로 인해서 서의현이 더 이상 조계종 총무원장직을 맡아선 안 된다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서의현이 공권력과 조직폭력배에게 조계사에 진입할 것을 요청한 것이다. 특히 훗날 서의현이 조직폭력배를 동원하기 위해 돈과 숙소, 음식, 향응을 제공했다는 것까지 드러났다. 경찰과 조직폭력배가 조계사에 진입한 결과 조계사는 아수라장이 되었고, 기왓장과 유리창이 날아다니고, 각목과 쇠파이프까지 등장하는 대규모 폭력사태가 일어났다. 그리고 폭력사태가 일어난 당일, 서의현은 그 아수라장을 통과하여 회의장에 진입했고, 조계종 총무원장에 세 번째로 취임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계속된 사퇴 요구로 인해 서의현은 총무원장 직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셋째, 서의현 개인의 파계 의혹으로 조계종 내부의 도덕성에 의문이 제기되었다. 검찰 조서와 당시 기사들을 검토하면 서의현이 조계종 총무원장 시절 유지했던 기득권에는 금전적 이득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소위 “돈욕심”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 사건이 바로 상무대 비리 사건이다. 1994년 3월 군사 시설인 상무대를 이전하는 과정에서 거액의 돈이 대구 동화사에 시주됐다는 것이 폭로됐다. 종교를 통해 돈세탁을 했고, 이것이 정치자금으로 쓰였다는 의미였다. 당시 조계종 총무원장이 서의현이었고, 서의현이 전 정권과 가까운 관계였기 때문에 조계종에 대한 국민의 분노는 상당한 수준이었다. 또한, 훗날 서의현이 서울 역삼동 단독주택과 각 지역에 횟집을 비롯한 상가와 토지 등 상당한 양의 부동산을 가지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금전적 이익 외에도 도덕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폭로 가운데 하나가 서의현이 숨겨놓은 처와 자식이 있다는 의혹이었다. 승려는 불교 계율상 개인의 재산을 가질 수 없고, 출가하면 가정을 꾸릴 수 없다. 앞에서 언급한 재산 소유와 숨겨놓은 처와 자식 등에 대한 의혹은 사실이라면 불교의 주요 계율을 어긴 행위였다.

서의현이 조계종에 복적되고 대종사 후보로 오른 것에 대해 조계종 내부에서 1994년 종단개혁정신이 붕괴된 것이라는 개탄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1994년 조계사에서의 폭력 사태는 시민들에게 조계종의 민낯을 드러낸, 한국 불교의 장자 교단인 조계종의 입장에서는 치욕스러운 사건이었다. 그리고 그 치욕을 감내하고 과거를 반성하면서 조계종은 불교의 장자 교단으로서 그 지위를 유지해왔다. 그런데 조계종에게 치욕을 준 서의현의 승려로서의 지위를 다시 인정해 주는 것은 이전의 치욕스러운 과거로 회귀하겠다는 조계종 주요 승려들의 욕망이 드러난 것일 수도 있다.

종교 연구자로서 조계종에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이야기 하는 것은 월권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필자는 조계종에게 서의현의 복적과 대종사 후보 추천을 어떻게 처리해야 한다고 언급하고 싶지 않다. 단, 종교 인구가 점점 줄어들고, 특히 불교 신자의 수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조계종의 현재의 모습이 조계종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지, 종교가 없는 사람들이 조계종을 어떻게 생각할지 “스님”이라고 불리는 불교의 전문종교인과 신도들 스스로가 숙고할 필요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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