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조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매년 3월이면 각급 학교는 새로운 학기를 시작한다. 지난 3월 2일, 필자가 잠시 집 밖에 나갔다 오니, 동네의 학교의 교문에 “입학을 환영합니다”라는 플래카드가 걸려있었다. 그리고 SNS 곳곳에 자식이 상급 학교에 진학했다는 소식으로 넘쳐났다. 바야흐로 새로운 학기가 시작된 것이다.

이제 역사가 된 2020년, 각급 학교는 역사상 없었던 팬데믹 상황을 겪었다. 그리고 맞이한 2021년 1학기, 초중등학교는 1년간의 경험치가 쌓여서 팬데믹 상황에 어느 정도 적응을 한 것 같지만, 전국의 대학은 큰 문제에 봉착했다. 바로 학생 수의 부족이었다.

올해 대학 신입생은 어느 대학이건 원서를 냈다면 한 곳은 합격했을 것이다. 그런데,

매일 아침 일곱시 삼십분까지 우릴 조그만 교실로 몰아넣고
전국 구백만의 아이들의 머릿속에 모두 똑같은 것만 집어넣고 있어

-서태지와 아이들, “교실 이데아” 중에서

위의 노래 가사에서 알 수 있듯이, 한 때 전국의 학생수가 900만이던 시절이 있었다. 대학 신입생 정원에 비하여 대학 입학을 희망하는 사람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았던 시절이다(참고로 “교실 이데아”는 1994년에 발표된 곡이다. 이후, 학령인구는 감소하고, 대학의 수는 늘어나다보니 결국 전체 경쟁률이 1:1 이하로 떨어지는 시대에 이르렀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것이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유행이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유행으로 제대로 입시 준비를 하지 못했거나, 시험을 치르는 과정에서 밀착접촉으로 인한 감염을 우려한 수험생이 응시를 거부하면서 응시자 수는 더욱 줄어든 것이다. 결국 작년 12월 3일에 있었던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응시자 수는 총 49만3433명으로 1년 전인 2020학년도(54만 8734명)보다 10.1%(5만 5301명) 감소했다. 수능 지원자는 2019학년도(59만4924명)이후 2년 연속 감소세다. 수능 제도가 도입된 1994학년도 이후 수능 지원자가 역대 최소로, 50만명 밑으로 내려온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1)

그리고 수능 지원자 수의 감소는 각 대학 신입생 수의 감소로 이어졌다. 그리고 신입생 수의 감소는 학생을 충원하지 못한 대학에는 치명타가 됐다. 등록금으로 학교가 운영되기 때문이다. 특히, 수도권 대학 진학을 희망하는 수험생의 수가 압도적인 상황에서 비수도권 대학들은 추가 모집에 추가 모집을 거듭했으나,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사태가 속출했다.

그런데, 경쟁률이 1:1 수준이 되었다고, “입시지옥”이라는 말은 옛말이 되었을까? 그렇지 않다. 팬데믹 상황 이전 당시에도 경쟁률은 높지 않았지만, 각 지역의 학원가는 학원이 끝나는 시간에 뜬금없는 교통정체를 나타냈다. 그리고 입시 결과에 좌절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 수험생도 있었다. 그렇다면, 입시지옥은 아직 존재한다는 얘기다. 대학 경쟁률은 낮아졌는데, 입시지옥이 여전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목표하는 대학, 목표하는 학과의 수가 한정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수도권 대학의 돈 많이 벌고 취업 잘되는 학과가 많은 수험생들의 목표일 것이다.

이것은 기존의 입시지옥의 성격 변화와 대학에 대한 시각의 변화를 뜻한다. 과거에는 대학 진학자 수가 적었기 때문에 대학 진학 자체가 취업과 성공의 가장 빠른 길이었다. 학령인구도 많은데, 대학의 문도 좁으니, 의대나 법대 같은 소위 사회 상류층에 진입하는 길에 발을 들일 수 있는 학과에 들어가고자 하는 경쟁은 남의 일이고, 대학에 가는 것 자체가 경쟁이었다. 그런데 누구나 대학에 갈 수 있는 사회가 되면서, 단순히 대학에 가는 것이 아닌, 수도권 대학, 좋은 학과에 가는 것으로 경쟁이 옮겨진 것이다.

학령인구 부족으로 인해 대학의 구성원들, 특히 비수도권 대학의 교수들은 갖가지 비판과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비판과 대안이 범람하는 상황에서 그들이 놓치는 것이 있다. 바로 대학교육은 “고등교육”이며 의무교육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경쟁률이 꼭 1:1을 넘을 필요가 없음을 의미한다. 대학원 입시나 편입학 때 모집인원보다 지원자가 미달되어도 전부 뽑지 않는 경우가 많다. 대학도 고등교육이며 의무교육이 아닌데 본분을 잊고 왜 경쟁률 미달에 대학이 멸망할 것처럼 호들갑을 떨까? 결국 등록금에 대학 재정을 의존하는 상황이 문제다.

입시지옥의 개념 변화는 대학을 둘러싼 환경의 변화를 의미한다. 그리고 대학에서 나오는 호들갑은 대학이 예고된 환경의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대학이 할 수 있는 대응에는 한계가 있다. 교육부의 교육정책에 대학이 좌지우지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교육부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결국 대학을 둘러싼 환경의 변화에 대학은 이런저런 몸부림을 치지만, 가장 중요한 책임을 지고 있는 교육부는 강 건너 불구경을 하고 있다고밖에 볼 수 없다. 교육을 백년지대계라고 하지만, 교육 개혁은 당장 정치인의 득표에 도움이 안 되서 그렇다는 이야기가 많다. 세상은 당장의 표 계산과 복지부동을 하지 않고, 교육을 교육으로 바라보는 정치인과 행정관료를 원하고 있다.


1)「2020년 12월 3일 수능 응시자 ‘역대 최저’」, 『충청투데이』, 2020년 09월 2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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