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조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1970년 봄 한국노사문제연구소 박청산 소장에게 버스 차장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 상담을 의뢰했다. “안젤라”라는 세례명을 가진 천주교 신자였던 그 사람이 상담했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회장님, 저는 버스 차장 일을 하면서 어머니의 병 치료비와 동생의 학비 때문에 하루에 300원씩 삥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가톨릭신자입니다. 양심의 가책을 받아 저는 교회에 나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저지른 삥땅이 죄가 되는지 여쭤보고 싶어서 찾아뵈었습니다.1)

위의 인용문을 살펴보면, 그 버스 차장은 모친의 치료비와 동생의 학비를 조달하기 위해서 승객이 지불하는 버스 요금의 일부를 횡령하고 있었다. 소위 “삥땅을 친다”라고 표현하는 요금의 횡령이 없으면, 모친의 생존과 동생의 꿈을 이루도록 도울 수 있는 학비 조달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나 횡령은 천주교에서 죄로 규정되어 있었다. 천주교 신자였던 그 버스 차장은 현실적 가난과 천주교 신자로서의 양심의 가책 사이에서 갈등했고, 이 갈등에 대한 상담을 박청산 소장에게 요청했던 것이다.

당시 박청산 소장은 이 문제를 제일교회의 박형규 목사와 가톨릭노동청년회를 거쳐 지학순 주교에게 죄의 유무에 대해 문의했다. 당시 지학순 주교는 당연한 자기 권리의 주장이라는 입장에서 여차장에게 죄가 없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 문제를 사회적으로 환기시키기 위해 1970년 4월 28일 서울 YMCA 대강당에서 “삥땅심포지엄”이 개최되었다. 이 심포지엄에서 전국에 2만명에 달하는 시내버스 차장의 근무여건과 사회적 현실, 이들이 최저임금도 받을 수 없게 만드는 운수업계의 착취와 구조적 현실을 고발했다. 또한 제반 해결책들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면서 혹사당하는 차장들의 현실을 사회적으로 환기시켰다.2)

또한, “삥땅사건”과 “삥땅심포지엄” 소식을 들은 MBC의 임택근 아나운서는 심포지엄이 열리기 전날 아침 7시 뉴스쇼에서 “삥땅은 죄가 아니다”라는 제목의 대담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 대담에 지학순 주교가 초청되었고, 지학순 주교는 관련 내용을 강연했다. 이후 심포지엄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버스 차장들은 하루 18시간씩 근무하는데, 한 달에 20일 동안 일하면 모두 360시간 근무하는 셈이고, 이것은 여느 직장인들보다 19일을 초과근무 하는 것이었다. 당시 버스 차장의 봉급은 6천원 정도였는데, 식대 등 잡비를 제하고 나면 4800원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이러한 열악한 노동 환경에 놓은 버스 차장들은 전국에 약 2만 명 정도였고, 서울 시내에만 9천여명, 그리고 대부분 17-19세의 소녀였다. 이들은 새벽 4시부터 밤 12시까지 사람과 버스에 시달린 뒤 10명이 자도 좁은 방에 20명이 합숙하고, 심지어 삥땅 문제 때문에 감독들에게 몸수색까지 당하는 상황이었다.3)

심포지엄에서 지학순 주교는 ‘하루에 3, 4백원의 삥땅을 하는 것은 자기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며, 기업주들의 운영 불합리에서 나오는 책임을 여차장들이 질 수는 없다. 주는 만큼 받아야 하고, 받는 만큼 주어야 하는 교환 정의에서 볼 때도, 모든 사람의 공공복리를 공정하게 다뤄야 하는 법적 정의에서도, 누구나 살 권리가 있는 사회 정의에서도 삥땅은 죄악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즉, “삥땅”은 혹사당하는 차장들이 사회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권리를 그들 나름대로 찾으려는 당연한 권리 주장이라는 것이다.4)

“삥땅사건”과 이것에 대하여 논의한 “삥땅심포지엄”은 당시 원주지역의 사회운동을 기존에 민중의 기본적 자유권에 입각한 반박정희운동에서 기본적 생존권에 대한 인식으로의 전환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아직도 최소한의 생계유지도 어려운 사람들이 많은 상황에서,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그리고 이를 위해서 인간과 인간 사이에 연대, 종교 본연의 역할이 필요함을 깨닫게 해준다.


1) 지학순정의평화기금, 그이는 나무를 심었다., 공동선, 2000, 99쪽.

2) 김소남, 1960-80년대 원주지역의 민간주도 협동조합 연구-부락개발, 신협, 생명운동, 연세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박사학위논문, 2013, 78.

3) 지학순정의평화기금, 그이는 나무를 심었다., 공동선, 2000, 101.

4) 지학순정의평화기금, 그이는 나무를 심었다., 공동선, 2000, 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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