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우 칼럼니스트▸철학박사▸​​상지대학교 조교수
▲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조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한번은 우두커니 앉아 혀를 끌끌차며 이렇게 말했다. “십 여년 후에 나라에 큰 변이 있겠구나. 어떻게 하나, 어떻게 하나?” 그러고는 아내와 자식에게 흙짐을 지고 뒷동산을 오르락내리락하게 하여 몸을 단련시켰다. 임진왜란이 날 것을 미리 알았다.1)

위의 일화의 주인공은 이지함(李之菡, 1517~1578)이다. 그의 이름에 붙는 “토정(土亭)”은 이지함의 호다. 『선조수정실록』에 따르면, “이지함이 흙으로 언덕을 쌓아 아래로는 굴을 파고 위로는 정사(亭舍)를 지어 스스로 토정(土亭)이라 이름하였다”라고 전해진다. 지금의 서울 마포구 용강동이다.2) 참고로 이곳은 조선시대 당시 마포나루 근처로서, 조선 팔도의 모든 물산(物産)이 모이는 곳이었다.

“토정 이지함”이라는 이름을 들은 사람이라면, 자연스럽게 『토정비결(土亭秘訣)』이라는 책을 떠올릴 것이다. 새해가 시작되면 많은 사람들이 『토정비결』에서 자신의 한 해 운세가 어떤지 찾아본다. 필자 역시 어린 시절 새해가 되면 잡지사에서 무료로 나눠주는 『토정비결』을 열심히 찾아봤던 기억이 난다. 2021년이 시작되면서, 많은 분들이 변함없이 『토정비결』을 찾아보셨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 『토정비결』은 과연 토정 이지함의 저술일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토정비결』은 이지함의 저술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표정훈은 그 근거로 이지함이 활동했던 시기는 16세기지만, 『토정비결』이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이후라는 점, 19세기 이전에 『토정비결』이라는 제목이 언급되어 있는 문헌도 찾기 어렵다는 점 등을 들었다. 그리고 오늘날 전해지는 『토정비결』의 내용과 비슷한 단편적인 문서들과 다양한 전승(傳承)들이 19세기에 이르러 결집, 편찬되면서 ‘토정’을 가탁(假託 : 그 일과 무관한 다른 대상과 관련 지음)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그는 주장했다.3)

『토정비결』이라는 책의 제목이 이지함의 호인 토정(土亭)을 빌어서 지어졌을 가능성이 높지만, 『토정비결』은 이지함의 사상과 통하는 측면이 많았다. 『토정비결』의 곳곳에서 『주역(周易)』의 영향이 보이고, 이에 따라 상수학(象數學)에 입각한 사고가 많이 드러난다. 이지함 역시 서경덕에게 상수학을 배웠다. 서경덕이 『주역』에 능통했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이지함이 서경덕에게 『주역』에 관하여 배웠을 가능성도 높다. 특히 이지함은 점술이나 관상(觀象), 비기(祕記) 등에 능통했다. 무엇보다도 『토정비결』의 약 70% 정도가 행운의 괘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것은 『토정비결』이 민중들에게 희망을 준다는 점에서 이지함의 친민중적 성향과 통하는 측면이 있다.4) 아울러 이지함이 당대에, 그리고 후세에게 대대로 미래를 점칠 줄 아는 신비로운 사람으로 인식됐다는 것도 의미한다.

『토정비결』, 남사고(南師古, ?-?)의 『격암유록(格庵遺錄)』, 정렴(鄭磏, 1506~1549)의 『북창비결(北窓秘訣)』 등 비결류의 저술은 유교 경전인 『주역(周易)』, 그리고 도교, 상수학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책들은 현실 속에서 고통받는 민중들에게 미래에 대한 예언과 함께 꿈과 희망을 안겨 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지함과 『토정비결』은 코로나와 싸우고 있는 21세기의 한국 민중들에게도 작은 희망을 주고 있지는 않을까?

새해와 관련해 여담 하나를 추가한다. 수많은 사람에게 새해 인사를 받는 과정에서 흥미롭게 다가왔던 것은 필자에게 새해 인사를 건넨 몇 분들이 새로 시작된 2021년을 “신축년(辛丑年)”이라고 지칭했다는 것이다. 새해 인사가 감사하긴 하다. 그런데 서력기원의 표기 방식이자 양력을 기준으로 한 연도표기법인 2021년에 육십갑자 방식인 신축년이라는 명칭을 붙이면서 각종 새해인사를 건내는 것이 의아하면서도 흥미롭다. 올해가 2021년이건, 신축년이건 독자 여러분 모두 복 받으시길 기원한다.


1) 홍만종, 『우리 신선을 찾아서』, 돌베개, 2010, 162-163쪽.
2) 표정훈, 「이지함-민초들의 삶 한가운데 살았던 조선의 선각자」, 『인물한국사』, 네이버캐스트.
3) 표정훈, 「이지함-민초들의 삶 한가운데 살았던 조선의 선각자」, 『인물한국사』, 네이버캐스트.
4) 신병주, 『이지함 평전』, 글항아리, 2008, 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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