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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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인구가 천만을 넘어선 시대. 반려동물은 일상생활을 공유하며 서로를 돌보는 가족이라고 할 만큼 중요한 존재가 됐다. 하지만 정작 태풍, 홍수, 산불, 지진 등 재난 위기상황이 닥쳤을 때 반려동물은 사람과 같이 구조되거나, 대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현행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재난안전법)은 사람만을 보호의 대상으로 하고 있어 반려동물의 구조, 보호는 정부나 지자체의 책임 및 의무가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 재해재난이 발생해 대피시설로 피난할 경우 대피시설 내에는 반려동물을 동반할 수 없다.

지난해 강원도 고성에서 산불이 발생했을 당시 반려묘와 함께 대피한 한 시민이 대피소 반려동물 출입 금지로 대피소 인근 야산에 고양이를 묶어 놓고 돌본 사례가 있다.

이 밖에도 해마다 산불, 태풍 등 재난상황에서 함께 대피하지 못해 숨지거나 부상을 입는 등 피해를 입은 반려동물이 발생하고 있다.

또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가 장기화됨에 따라 자가격리 또는 격리입원 대상자가 꾸준히 증가하면서 반려동물 돌봄에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반려동물과의 접촉이 코로나19를 옮길 가능성도 있으며, 격리로 인해 반려동물을 돌봐 줄 사람이 없을 수도 있다. 또 자가격리로 사료를 제때 구입하지 못해 곤란한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심지어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치료비나 사료비를 감당하지 못해 반려동물을 유기하는 사례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재난 상황에서 반려동물의 안전이 위협을 받고 있지만, 반려동물을 위한 안전대책은 미비한 상황이다.

사진출처 = 국민재난안전포털 홈페이지 캡처
<사진출처 = 국민재난안전포털 홈페이지 캡처>

법령상 재난 시 반려동물 보호·구조 명시 없어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재해구호법, 동물보호법 등 현행법에는 재해재난 시 반려동물에 대한 보호·구조를 명시한 조항은 없다.

행정안전부 국민재난안전포털에는 ‘애완동물 재난대처법’이 소개돼 있다. 하지만 ‘안내견 등 봉사용 동물 외 반려동물은 대피소에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을 유념하라’는 것과 함께 스스로 재난대비 계획을 세우도록 안내하고 있다.

현행법이 보호하는 대상을 사람으로 한정하고 있어 반려동물에 대한 정책적인 대안 마련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결국 시민들은 반려동물과 함께 대피하기 위한 자구책을 마련해야 한다.

우리동물병원생명사회적협동조합에서는 ‘반려동물 재난위기 대비 매뉴얼’을 만들어 시민들에게 알리고 있다.

매뉴얼에는 갑자기 닥치게 될 재난상황에 대비해 평소 준비해야 할 것들과 함께 대피상황 발생 시 반드시 챙겨야하는 ‘생존 배낭’을 꾸리는 방법 등을 안내하고 있다. 하지만 시민들에게 전달되는데 한계가 있고,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곳이 많지 않아 재난대비에 한계가 있다.

때문에 동물자유연대는 지난 5월 ‘재해재난 대비 반려동물 안전망 구축을 위한 세미나(이하 세미나)’를 열고 정부의 반려동물 재난 대피에 대한 대응계획 마련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법령에 국가의 동물보호 책임과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역할을 명시하고, 행동지침 마련과 함께 반려동물 대피시설·피해 지원체계 마련 계획 수립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사진출처 = 우리동물병원생명사회적협동조합 반려동물 재난위기 대비 매뉴얼
<사진출처 = 우리동물병원생명사회적협동조합 반려동물 재난위기 대비 매뉴얼>

재난상황 대비한 美·英·日…한국은 걸음마 수준

해외 여러 국가에서는 재난상황에 대비해 사람과 반려동물이 함께 대피할 수 있도록 안전망이 마련돼 있다.

미국의 경우 △반려동물 동반 가능 대피소 마련 △반려동물 동반을 고려한 재난대비 모의훈련 △인수공통감염병 안내 등의 정책이 마련돼 있으며 각 주 마다 반려동물 재난 대응 관련법이 마련돼 있다.

영국 역시 반려동물과 함께 대피할 수 있는 대피소가 마련과 함께 모의 훈련이 정책적으로 마련돼 있다. 이에 더해 개·고양이와 같은 반려동물은 물론 소나 말과 같은 큰 동물, 동물원 동물, 동물원 동물, 농장 동물 등 축종별 대피요령도 마련돼 있다.

일본도 지난 2016년 ‘방재업무계획’에 동물에 관한 사항을 마련하고 ‘사람과 반려동물의 재해대책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일본의 각 지자체들은 이를 참조해 자체적인 매뉴얼과 대책을 수립했다. 또 ‘동물의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는 지자체에 ‘동물보호관리추진계획’을 마련하도록 하고 이에 재해대책을 포함하도록 규정했다.

한국 정부도 지난 1월 반려동물 대피요령 가이드라인 제작과 동물 대피소 마련 등 재난 대응 역량 강화를 포함한 ‘2020~2024 동물복지 종합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농식품부는 가이드라인에 사료, 동물용 의약품, 배설물 처리 도구, 이동용 케이지 마련 등의 내용을 안내하고 반려동물과 반려인이 함께 대피할 수 있는 시설이 지정될 수 있도록 관계부처와 협의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행정안전부 진영 장관도 지난 10월 7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재난 대피요령 가이드라인 개발과 재난 시 반려동물과 함께 대피할 수 있는 시설 지정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에 공감하며 “재난 발생 시 반려동물과 같이 대피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할 것 같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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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령 개정·제도 마련 등 과제

이제야 대책마련을 시작하는 상황에서 실태 조사와 동물대피소 설치·지정, 동물구호 지침 및 체계 마련 등 당국의 과제가 산적한 상황이다.

이에 더해 현행 법령과의 충돌 지점도 해결해야 할 과제로 지적된다.

국민재난안전포털의 애완동물 재난대처법은 강제성이 없어 그 실효성이 높지 않다. 또 위기 상황에 놓인 동물을 구조하기 위해 타인의 사유지에 들어가야 하는 경우 주거침입에 해당될 여지가 있으며, 동물을 임의로 구조할 경우 절도죄가 적용될 수도 있다.

동물자유연대 법률지원센터 송시헌 변호사는 세미나에서 동물 구호물품 제공과 임시 대피시설 관련 법적 근거가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송 변호사는 재해구호법에 반려동물 관련 긴급물품 제공을 명시하고 반려동물을 동반한 이재민 또는 임시대피자의 경우 별도의 임시시설에 함께 대피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을 마련하는 방법을 예시로 들며 법적 근거 마련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동물자유연대 채일택 정책팀장도 반려동물에 대한 정책적 고려가 부재한 상황을 문제점으로 꼽았다. 아울러 재해재난 시 행동지침 등 정보 제공이 부족한 것도 재난 발생 시 반려동물의 안전을 보장하기 어려운 점으로 지적됐다.

채 팀장은 반려동물의 안전 문제는 동물만이 아닌 사람의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라는 인식을 공유해야 하며, 민관 협력체계를 구축해 재난 시 반려동물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도록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민사회와 정부 모두가 반려동물 재난 대피·구조에 대해 공감하고 있는 만큼 조속한 해결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제는 가족으로 함께 살아가는 반려동물의 생명을 아전하게 구할 수 있도록 관련 법령과 제도의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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