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개 금융 유관기관…5명의 새로운 수장 모두 ‘관료 출신’
금소연 “정부 방패막이 아닌 금융산업에 기여할 인물로”

여의도 증권가 ⓒ뉴시스
여의도 증권가 ⓒ뉴시스

【투데이신문 이세미 기자】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 발생 당시, 참사의 주 요인 중 하나로 해양수산부 소속 공무원의 항만업계 재취업이 수면위로 떠오르며 지목됐다. 이에 국회는 퇴직한 관료 출신 인사들이 금융권 등 기관의 주요 보직에 앉지 못하도록 한 ‘관피아 방지법’(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을 통과 시켰다.

그러나 ‘관피아 방지법’의 의미가 무색할 정도로 최근 금융권 수장을 둘러싼 낙하산 인사 논란이 뜨겁다. 금융권 수장 자리에 관료·정치인 출신 인물들이 잇따라 내정되면서 업계 안팎으로 잡음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은행연합회, 손해보험협회, 생명보험협회, 한국거래소, SGI서울보증 등 금융협회와 금융 유관기관 등 5개 기관에서 관료 출신(4명)과 정치인 출신(1명)이 모두 ‘한 자리’를 차지했다.

일각에선 관료 출신 수장들이 금융정책 등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바탕으로 정부와의 의견 조율을 잘 할 수 있을것이라는 기대를 내비치고 있지만 금융권 내 전반적으로 금융기관의 수장 자리가 관료들의 ‘자리 나눠먹기’로 전략하는 등 시대를 역행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권, 낙하산 논란에도 관료출신 고집 

지난 1일 금융권의 최대 유관기관인 은행연합회가 새로운 수장인 김광수 회장(농협금융지주 전 회장)의 임기 시작을 알렸다. 앞서 김 회장은 제27회로 행정고시를 통해 공직에 입문하고 기획재정부(옛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과정, 금융위원회 금융서비스 국장 등을 지낸 관료 출신 으로 금융권 관피아의 대표적인 인물로 꼽힌 바 있다.

손해보험협회장은 지난 달 13일 금융위원회 출신인 한국거래소 정지원 전 이사장을 회장으로 내정했다. 정 내정자는 제27회 행정고시에 합격하고 재무부 사무관, 재정경제원, 금융위원회를 거쳐 한국증권금융 시장과 한국거래소 이사장을 역임했다. 정 내정자는 공직자윤리위원회 재취업 심사를 거친 후 오는 21일 손해보험협회 회장으로 취임 할 예정이다.

이 과정에서 손해보험협회는 지난 10년 간 2014년을 제외하고 모두 관료 출신들이 수장 자리를 차지하면서 다시 한 번 ‘관피아의 중심지’라고 비판 받았다.

생명보험협회 또한 보험연수원 정희수 전 원장이 내정되면서 ‘정피아’ 논란에 휩싸옇다. 정희수 원장은 국회의원 3선을 지낸 인물로, 19대 국회에서 기획재정위원회 위원장을 지내고 지난 2017년 대선에선 문대인 대통령 캠프에서 활동했다.

이에 대해 금융정의연대 측은 “금융권의 협회장을 관피아들이 차지하는 이유는 사모펀드 사태와 끊임없는 보험 분쟁 등 금융권의 끊임없는 일련의 사태에 대한 금융당국의 압력을 막아 줄 수 있는 관료 출신 협회장을 찾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이는 자신들의 징계 등 책임을 무마하고 회피려는 방법이며, 금융권의 공공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관치금융을 중단하고, 관피아 대신 민간 전문가를 회장으로 선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비판했다.

전문성과 소비자 중심 마인드 갖춘 수장 선임돼야   

그러나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금융권의 관피아·정피아 논란은 협회장을 넘어 금융기관장 자리까지 여지없이 확산되는 모양새다.

지난 1일 SGI서울보증의 신임 사장 자리에 금융감독원 유광열 전 수석부원장이 공식 취임했다. 유 사장은 제29회 행정고시 출신으로 지난 6월까지 금감원 수석부원장을 지낸 인물이다.

한국거래소 이사장 자리에는 금융위원회 손병두 전 부위원장이 내정됐다. 손 내정자는 제33회 행정고시로 공직에 입문해 기획재정부 국제기구과장·외화자금과장, 금융위원회 공적자금관리위원회 사무국장·금융정책국장 등 요직을 거쳤다. 그동안 거래소 이사장은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등 경제 관료 출신들이 맡아 온 만큼 이번에도 관피아 논란을 벗어나지 못했다.

현재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한국거래소 지부는 관료출신 이사장 선임을 반대하며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

주요 금융협회와 유관기관에 관피아·정피아가 이처럼 자리를 차지하자 일각에선 향후 농협금융지주 회장과 한국주택금융공사(이하 주금공) 사장에도 관피아가 올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달 중 차기 회장 단일후보 선정을 계획하고 있는 농협금융은 이번에도 관피아 논란이 불거졌다. 농협금융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는 중앙회는 공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데 농협금융은 회장 선임에 있어서 중앙회는 물론, 정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실제 역대 회장 중 신충식 초대 회장을 제외한 신동규·임종룡·김용환·김광수 전 회장 모두 행정고시를 패스한 관료 출신이라는 점이 이를 뒷받침 한다. 따라서 이번 후보 선정에도 관료출신 인사가 내정 될 것이라는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주금공의 경우 증권선물위원회 최준우 전 상임위원이 유력한 인사로 거론되고 있다. 최 전 상임위원은 금융관료 출신으로 30년간 금융위원회에 몸 담았던 정통 금융관료 출신이다. 현재 이정환 사장도 기획재정부 국고국 과장, 국무총리 국무조정실 심사평가 조정관, 한국거래소 이사장 등을 역임한 관료 출신이다.

주택금융공사 사장 임기는 3년이며 주택금융공사 임원추천위원회가 사장 지원자 가운데 복수로 후보를 추천하면 금융위원장이 제청해 대통령이 임명하게 된다.

이에 대해 금융소비자연맹 측은 “금융협회장에 관피아, 모피아, 정피아가 앉는 것은 공정한 금융시스템의 운영과 소비자권익 침해, 금융산업의 개혁을 저해하는 일”이라고 지적하며 “금융협회장이 대정부 로비활동이나 방패막이 역할이 아닌 금융 산업 발전에 기여할 만한 비전과 전문성을 갖추고 소비자 중심의 마인드로 무장한 사람이 회장에 선임돼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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