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에 최고’ 음이온 나오는 침대 인기
알고보니 1급 발암물질 ‘라돈’ 검출돼
“괜찮다”던 원안위, 돌연 수거명령 조치
드리우는 ‘제2 가습기 살균제’ 사태 공포

대진침대 본사 앞마당에 수거돼 쌓여있는 매트리스들 ⓒ뉴시스
대진침대 본사 앞마당에 수거돼 쌓여있는 매트리스들 ⓒ뉴시스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한때 대한민국에는 음이온 열풍이 불던 때가 있었다. 거리 가판대마다 몸에 지니고 있으면 건강에 으뜸이라는 음이온 팔찌와 목걸이 등이 즐비했고 향수, 공기청정기, 마사지 팩, 샤워기, 드라이기 등 일상에서 사용하는 다양한 제품들에도 ‘음이온’이 따라 붙곤했다.

명확한 효능이 알려진 건 아니었다. 혈액순환, 세균박멸, 두통, 수면장애 등 건강 어디에나 좋다고 입소문만 자자했다. 음이온은 세상에 못 고칠 병이 없는 만병통치약처럼 여겨졌고, 그야말로 ‘음이온 전성시대’였다.

이 무렵 유명 침대 제조업체인 ‘대진침대’에서는 음이온이 나온다는 친환경 제품 판매를 시작했다. 자면서도 온몸으로 음이온을 느낄 수 있다니, 혹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음이온 침대를 구매해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10여년, 2018년 5월 모 언론에서는 해당 브랜드의 음이온 침대에 숨겨져 있던 엄청난 사실을 세상에 터뜨렸다. 대진침대는 음이온 방출을 위해 ‘모나자이트’라는 희귀 광물을 곱게 갈은 분말을 제품에 코팅해 사용했다. 그런데 이 광물에서는 1급 발암물질로 분류되는 자연방사능 ‘라돈(Rn-222)’이 검출됐다. 그것이 ‘라돈사태’의 시작이었다.

이후 대진침대에서 생산되는 다수의 제품에서 라돈 성분이 검출됐다는 사실이 알려졌고, 소비자들의 불안과 분노는 극에 달했다. 결국 사측은 사과와 함께 문제의 제품들은 회수 및 리콜 조치하기로 결정했다. 여기까지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라돈침대 사태의 전말이다.

사과와 회수 및 리콜, 마치 문제가 해결된 듯 보이지만 라돈침대 피해자들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아니, 제대로 시작조차 하지 못했다. 라돈침대 사태 피해자들은 3년째, 모두의 무관심 속에 외로운 제자리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아파트 단지에서 수거 중인 대진침대 매트리스 ⓒ뉴시스
수거되고 있는 대진침대 매트리스 ⓒ뉴시스

우연히 드러난 침대의 두얼굴

라돈침대의 실체는 정말 우연한 계기로 드러났다.

2011년경 음이온이 건강에 좋다고 알고 있던 A씨는 음이온이 발생한다는 대진침대 제품을 구매해 아이 방에 설치했다. 평소 건강에 관심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진 A씨는 2018년 1월 우연한 계기로 사용하게 된 보급형 라돈 측정기를 이용해 침대를 테스트해봤다.

그런데 침대에서는 이상하리만큼 다량의 라돈이 측정됐다. 높은 수치에 혹시나 기계가 고장 났나 싶어 수차례 측정해봤지만 변함이 없었다. A씨는 이 같은 사실을 보급형 라돈 측정기 제작업체에 알렸고, 업체 측이 전문 장비를 이용해 침대를 테스트했다.

그 결과 문제의 침대에서는 2000㏃(베크렐)이 넘는 라돈이 검출됐다. 이는 우리나라 신축 공동주택의 권고 기준치인 200㏃의 10배가 넘는 수치다.

국립환경과학원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16년까지 2년 주기로 전국 주택의 실내 라돈을 조사한 결과 라돈 농도는 단독 주택은 131㏃, 연립·다세대 주택은 82㏃, 아파트는 66㏃로 모두 기준치 이하로 조사됐다.

그러나 해당 대진침대 매트리스 천을 가로와 세로 각각 30cm 크기로 정밀 검사한 결과에서만 실내 주택 라돈 기준치의 3배가 넘는 620㏃이 검출됐다.

이같은 대진침대의 실체는 측정기 제작업체가 <SBS>에 제보하면서 2018년 5월 3일 보도를 통해 비로소 세상에 알려지게 됐고, 이른바 대친침대의 ‘라돈침대 사태’가 본격화됐다.

논란이 커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라돈이 방사선을 내는 1급 발암물질이기 때문이다. 라돈이 체내로 흡수(내부 피폭) 될 경우 세포를 파괴, 유전자를 변형시켜 각종 암을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 경기연구원에 따르면 폐암 위험요인은 기여위험도 중 46.5%로 가장 높은 흡연의 뒤를 잇는 것이 바로 라돈, 석면, 미세먼지 순이다.

이처럼 위험한 물질인 라돈이 침대에서 다량의 라돈이 검출된 것일까. 바로 ‘음이온 파우더’라 불리는 ‘모나자이트’ 분말 때문이다.

모나자이트는 자연방사능을 방출하는 희토류 광물질로, 시중에 판매되는 음이온 제품 대부분에 사용된다고 알려졌다. 모나자이트에는 방사성물질인 우라늄과 토륨이 들어있는데, 이들이 붕괴하면서 방사성 기체인 라돈이 발생하게 된다. 대진침대도 음이온 효과를 높이고자 매트리스 겉 커버 안에 있는 속 커버 원단 안쪽을 모나자이트 분말로 코팅하는 방식을 이용했다.

이같은 방식으로 2005년부터 2018년까지 만들어져 판매된 라돈침대는 9만여개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십년의 역사를 자랑하며 침대의 올바른 기준을 만들어 간다던 대진침대의 명성과 함께 그동안 대진침대를 믿고 사용했던 소비자들의 신뢰가 와르르 무너졌다. 

지난 2018년 5월 17일 원자력안전위원회, 환경부, 산업통상자원부, 한국소비자원 등 관련 부처 정책 담당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 ‘라돈 방사성 침대 관련 부처 긴급 현안점검회의’
지난 2018년 5월 17일 원자력안전위원회, 환경부, 산업통상자원부, 한국소비자원 등 관련 부처 정책 담당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 ‘라돈 방사성 침대 관련 부처 긴급 현안점검회의’ ⓒ뉴시스

‘이랬다저랬다’ 입장 번복 원안위

원자력안전위원회는 대진침대 라돈 검출 논란이 불거지자 즉각 조사에 나섰다.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이하 안전기술원), 한국원자력안전재단(이하 안전재단) 등과 함께 침대 판매사 2회, 매트리스 제조사 4회, 모나자이트 공급사 1회 등 총 7차례의 현장조사와 그리고 완제품 매트리스 등을 포함한 9개 시료에 대한 측정·분석·평가를 시행했고, 그 결과를 2018년 5월 10일 공개했다.

본격적인 평가 결과에 앞서 원인 물질인 모나자이트에 대해 살펴보면, 원안위가 모나자이트 취급업체로부터 구매해 방사능농도를 분석한 결과 천연방사성핵종인 ‘우라늄’과 ‘토륨’의 비율이 1:10으로 확인됐다.

우라늄과 토륨이 붕괴하면 각각 ‘라돈’과 ‘토론(Rn-220)’이 생성된다. 즉, ‘우라늄=라돈’, ‘토론=토륨’인 셈이다.

토론은 라돈에 비해 피폭양이 적고, 페인트 작업 등을 통한 방호가 쉬운 탓에 규제하는 국가가 없는 것으로 알려진 물질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라돈은 각종 암을 유발할 수 있는 1급 발암물질로 위험성이 입증됐다. 모나자이트에서 라돈보다 토론의 비중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라돈이 주목받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구체적인 평가 내용을 분석해보면, 우선 안전재단은 매트리스 속커버를 신체에 밀착시킨 상태로 생활할 경우 연간 외부피폭방사선량을 측정했다. 매트리스 생활시간은 일일 평균 수면시간인 7시간 59분에 2시간을 더한 10시간과 최대 24시간을 기준으로 했다. 그 결과 10시간 기준 연간 외부피폭방사선량은 0.06mSv(밀리시버트), 24시간 기준 0.15mSv로 확인됐다.

안전기술원에서는 매트리스와의 간격에 따른 내부피폭선량을 측정했다. △매트리스 표면 위 2cm 지점에서 엎드려 호흡할 경우 △매트리스 표면 위 10cm 지점에서 바로 누워 호흡할 경우 △매트리스 표면 위 50cm 지점에서 앉아 호흡할 경우를 가정해 연간 내부피폭선량을 평가했다.

그 결과 매트리스 표면 위 2cm 지점에 라돈·토론의 농도 값이 가장 높았는데, 각각의 내부피폭선량은 0.16mSv, 0.34mSv로 측정됐다. 이에 따른 연간 내부피폭선량은 총 0.5mSv이다.

또 매트리스 표면으로부터 거리가 멀어질수록 라돈·토론의 농도 값과 내부피폭선량은 급격하게 감소됐으며, 매트리스 표면 위 50cm 지점에서는 라돈·토론의 영향이 미미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라돈은 국내외 모두에서 실내 공기질 차원에서 관리돼왔을 뿐, 제품에 따른 관리 기준은 별도로 마련된 바가 없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ICRP)에서도 실내 공기 중 라돈에 대한 방호 최적화 기준(10mSv)만을 정하고 있다.

때문에 국내에서는 ‘생활주변방사선 안전관리’(이하 생활방사선법)에 근거해 가공제품 피폭선량에 대해 관리해 왔다. 동법 제4조 제1항에서는 가공제품에 의한 일반인의 피폭방사선량 기준은 연간 1mSv를 초과해선 안 된다고 규정한다.

원안위는 대진 매트리스의 외부피폭방사선 연간 최대 수치(0.15mSv)조차 생활방사선법 기준을 넘어서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또 내부피폭선량의 경우 라돈·토론이 상온에서는 기체로 존재해, 설령 매트리스에서 라돈·토론이 발생하더라도 공기 중에 흩어져 버리기 때문에 호흡을 통해 몸으로 유입되는 양이 적어 신체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결론냈다. ‘매트리스 표면 위 50cm 지점에서는 라돈과 토론의 영향이 미미하다’는 결론도 이 같은 맥락이다.

게다가 방사능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기간을 뜻하는 ‘반감기’가 라돈은 3.8일, 토론은 55.6초로 길지 않은 편이라고 평가된다. 즉, 인체 내부로 유입되더라도 반감기가 짧기 때문에 흡수되지 않고 빠른 시간 안에 호흡을 통해 빠져나간다고 해석된다. 

수거명령이 내려진 대진침대 매트리스 모델별 피폭선량 ⓒ환경보건시민센터
수거명령이 내려진 대진침대 매트리스 모델별 피폭선량 ⓒ환경보건시민센터

그런데 문제없다던 원안위의 입장은 5일 만에 완전히 뒤집혔다.

원안위는 같은 달 15일 돌연 대진침대에 대한 2차 조사결과 판매 모델 중 7종이 ‘생활주변방사선 안전관리법’의 안전기준에 부적합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결과가 번복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검출 제품의 범위와 방사선안전기준 포함 대상 변경이었다.

1차 조사 당시 모나자이트 분말이 속 커버에만 도포된 것으로 파악하고 속 커버만을 측정한 반면, 이후 추가 시료 확보를 통해 속 커버와 스펀지까지 평가 대상에 포함했다. 그 결과 스펀지에서도 다량의 라돈·토론이 검출됐다.

또 국내 방사선안전기준에 외부피폭선량만 따진 1차와 달리 2차에서는 내부피폭선량까지 포함했다. 앞서 언급했듯 1차 조사에서는 상온에서 기체상 라돈·토론이 몸속으로 흡입되는 양이 많지 않을 것이라 봤기 때문에 내부피폭선량은 고려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 침대는 우리가 자거나 생활하는 수시간 동안 밀착해 사용하는 제품이기 때문에 침대에서 방출되는 라돈·토론이 호흡기를 통해 몸속으로 들어와 인체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제기됐다. 결국 원안위는 ‘라돈 내부피폭 기준설정 전문위원회’를 꾸려 논의한 결과 끝에 내부피폭선량도 평가 기준에 포함시키기로 한 것이다.

원안위는 이처럼 바뀐 평가 기준을 바탕으로 결함이 인정된 대진침대 7종에 대해 수거명령 등 행정조치를 시행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추가 조사를 통해 최종 수거명령이 내려진 대진침대는 29종이다. 

사건 일지 재구성 ⓒ투데이신문

‘제2 가습기 살균제’ 현실화

대진침대는 원안위 입장 발표에 앞서, 정부 조사결과와 관계없이 문제가 된 매트리스에 대해 리콜 조치를 실시하겠다며 사과문을 냈다.

대진침대 측은 “우리나라 침대산업 초기부터 60년 동안 좋은 침대를 생산하고자 노력해온 회사와 임직원 일동은 그동안 믿고 아껴주신 소비자분들과 대리점 점주님께 실망과 걱정을 끼쳐드리게 참담한 심정”이라며 “문제 제품을 사용하고 계신 소비자분들께 동급의 매트리스로 생산 일정에 따라 교화해드리겠다. 리콜은 자체적으로 수립한 계획에 따라 빠른 시간 내에 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발 빠른 대응이 미흡했던 점 사과드리고, 임직원 일동은 총 매진해 소비자 보호조치에 만전을 기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뒤늦게 제품의 위험성을 인정하고 회수 명령을 내린 원안위도 “향후 모나자이트 유통현황을 지속적으로 조사해 일상 생활용품에 모나자이트 사용을 제한하거나 천연방사성물질 성분 함유 표시 의무화 등 관계 부처와의 긴밀한 협조를 통해 제도를 개선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진침대도, 정부도 말뿐인 사과와 인정으로 끝이 났다. 라돈침대 사태가 불거진 지도 어느덧 3년이 흘렀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은 없다. 오히려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대진침대는 매트리스 제작과 교환을 수행해왔던 천안공장이 문을 닫으며 해당 업무를 일체 중단하게 됐다고 알렸다. 뒤늦게 대진침대 피해 사실을 알았더라도 더 이상은 어떠한 보상도 받을 수 없는 셈이다.

후속조치를 약속한 원안위는 문제의 제품을 사용한 피해자 규모는 어느 정도 되는지, 실제 건강피해를 입은 소비자는 없는지 등 기본적인 조사는 외면했다. 실제 대진침대를 이용하고 몸에 이상을 느꼈다는 피해자들과 환경단체에서 건강영향조사를 촉구하고 있지만 정부는 저선량(방사선의 양이 적음, 100 mSv 이하)을 이유로 회피하고 있는 상황이다.

3년째 라돈침대 피해자를 도와 진상규명을 위한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환경보건시민센터 이성진 정책실장은 라돈의 위험성을 인정하고도, 저선량이기 때문에 피해자들의 피해를 입증하기 어려워 건강영향조사를 실시할 수 없다는 정부의 입장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이 실장은 “라돈에 의한 건강영향조사는 최소 10년, 보통 30년 이상 장기추적 조사가 필요한데, 10만명 이상으로 추정되는 대진침대 사용자를 대상으로 장기간 건강영향조사를 실시했을 때 피해자의 불안함을 해소할만한 의미 있는 결과를 도출하기엔 한계가 있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게 원안위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예를 들어 ‘검사에 많은 비용이 필요하다’ 등의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무슨 한계가 있다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다”며 “저선량이기 때문에 건강피해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고 하는데, 저선량도 인체 건강 영향이 있다는 주장도 있다. 진짜 영향이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건강영향조사가 필요하다는 거다”라고 강조했다.

정부의 미흡한 관리, 조사결과 번복과 뒤늦은 대응, 피해자와 시민단체의 피해보상 요구까지 라돈침대 사태는 가습기 살균제 참사와 너무나 닮아 있다. 지난 10년 우리 사회는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통해 안전불감증이 낳은 뼈저리는 아픔을 경험했다. 그 고통과 상처가 다 아물기도 전에 또 다른 비극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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