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진침대 사용 10년간 찾아온 두번의 암
피해대책은커녕 피해조차 파악 안 해
원안위 “유의미한 건강영향조사는 한계”
피해조사 없인 진상규명·책임자 처벌도 불가

지난 4월 30일 원자력안전위원회 앞에서 1인 시위 중인 라돈침대 피해자 호병숙씨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저는 라돈침대 피해자입니다. 10년 동안 침대에서 코 박고 잤더니 암이 두번이나 걸렸습니다. 남의 일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의 일입니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라돈침대 피해자들의 건강영향조사를 실시해야만 합니다.”

라돈침대를 10여년간 사용했다는 호병숙(56)씨는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있는 서울 광화문 KT빌딩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그는 2번의 암 수술을 거친 아픔 몸을 이끌고 매주 마이크를 잡는다.

그가 들고 선 피켓에는 피해 배상이나 보상에 대한 얘기는 없다. 오로지 자신이 왜 암으로 2번이나 큰 수술을 겪으며 아파야만 하는지, 암의 원인이 혹시 오랫동안 사용했던 라돈침대 때문은 아닌지 확인만이라도 해달라는 호소뿐이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피해 배·보상을 위해선는 라돈침대가 원인이라는 것이 입증돼야만 한다. 그러나 정부는 라돈침대의 처리·재발 방지 법안 마련만 약속했을 뿐, 무엇보다 중요한 라돈침대 노출자와 건강 피해자 대책에는 조심스러운 입장만 보이고 있다. 

건강영향조사를 통해 라돈침대가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드러나지 않는다면 피해자들의 고통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은 그 어디에도 없다.

이것이 호씨를 포함한 라돈침대 피해자들이 배·보상보다 건강영향조사 실시를 외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지난 4월 30일 본보와 인터뷰 중인  라돈침대 피해자 호병숙씨 ⓒ투데이신문

‘저는 라돈침대 피해자입니다’

호씨는 2015년 건강점진에서 자궁경부암 판정을 받아 치료를 받았다. 그로부터 2년 후인 2017년, 이번에는 유방암이 발병해 수술을 받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저 왜 나에게 이런 비극이 두번씩이나 찾아왔는지 답답한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2018년 5월 TV 뉴스에서 대진침대에서 1급 발암물질인 라돈(Rn-222)이 검출됐다는 소식이 흘러나왔다.

문제 된 제품들 중에는 호씨가 2007년 구매해 10여년간 사용해 온 ‘뉴웨스턴슬리퍼’ 모델도 포함돼 있었다. 게다가 해당 모델에서는 연간 방사능 노출 허용치의 7.6배에 달하는 라돈이 검출됐다.

호씨는 그간 자신을 괴롭혀온 암이 그저 운이 나빠 벌어진 일이 아님을 직감했다.

돌이켜 보면 하루도 침대에서 편안하게 잠을 청해 본 기억이 없다. 평소 잠자리에 예민한 편이었기에 늘 자던 곳에서 자야만 깊게 잠들 수 있었다. 그런데 침대에 누우면 가슴이 후끈거리고 답답해 거실로 나와 소파에서 자기 일쑤였다.

“남편은 우리 침대는 오래된 모델이라 아닐 거라 했어요. 그러나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저도 모르게 침대를 뒤집어 봤고, 라돈이 검출된 모델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 무렵 항암치료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몸도 마음도 굉장히 힘든 시기였죠. 그 와중에 이런 소식을 알고 굉장히 서럽게 펑펑 울었습니다. 너무 억울하단 생각에 살 수 없었어요.”

현재 호씨는 암 재발을 막기 위한 호르몬 억제제를 복용 중이다. 호르몬제를 먹으면 항상 온몸 구석구석이 쑤신다. 그뿐만 아니라 6개월에 한번 씩 병원을 찾아 혹시 있을지 모를 암을 찾기 위해 전신 CT를 찍고 있다.

건강회복을 위해 요양을 해도 부족할 시기이지만 호씨는 지난 4월부터 원자력안전위원회 앞에서 1인 시위를 시작했다. 라돈침대 피해가 공론화된 지 3년이 지나도록 피해대책은커녕 라돈침대 사용자의 건강피해를 파악하기 위한 조사조차하지 않고 방치한 정부를 규탄하기 위해서다.

호씨는 라돈침대 사태에 대해 대진침대는 물론 정부가 책임지고 피해대책을 마련할 때까지 무기한 1인 시위를 멈추지 않을 생각이다.

“지난해 전북 익산에 있는 장정마을에서 비료공장으로 인해 주민들이 암에 걸렸다는 기사를 봤어요. 당시 정세균 국무총리가 마을을 방문해 역학조사를 해주겠다고 했더라고요. 장정마을은 되고 라돈침대 피해자들은 왜 조사해 주지 않겠다는 건지 모르겠어요. 너무 불공평한 거 아닌가요.”

대진침대 본사 앞마당에 쌓인 침대 매트리스 ⓒ뉴시스
대진침대 본사 앞마당에 쌓인 침대 매트리스 ⓒ뉴시스

“유의미한 결과 못내”

원안위는 라돈침대 사태에 있어 제품회수 및 처리, 피폭선량 연구·평가 등에 집중했다.

수거명령이 내려진 이후 대진침대가 자체적으로 리콜 조치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차질을 빚었다. 게다가 매트리스 제작과 교환 업무를 맡아온 대진침대 공장이 문을 닫으며 리콜조치 마저도 불가능한 상황에 놓이며 소비자들의 불만이 가중됐다.

이에 따라 원안위는 관계기관의 협의를 통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우정사업본부의 물류망을 활용해 수거 작업을 도모했다. 그리고 2020년 7월까지 수거대상 9만여개 가운데 7만1079개를 수거 완료했다.

또 대진침대를 장기간 사용한 소비자를 위해 한국원자력의학원 국가방사선비상진료센터를 통한 피폭선량, 인체영향 등에 관한 전문적인 의료상담도 약속했다.

사건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피해 복구를 위해서는 반드시 라돈침대 사용자들의 건강피해를 파악할 건강영향조사가 선행돼야 한다.

하지만 원안위는 건강영향조사에 난색을 표한다. 또한 원안위가 내놓은 피폭선량 연구·평가 결과 역시 라돈침대가 사용자들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쳤다고 보기 어렵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라돈침대 사태와 관련해 사용자들의 전체 피해 현황 및 등록 시행, 폐암 이외에 다른 암에 대한 다각적인 연구, 환경부를 중심으로 한 피해자 대책 마련 촉구 등 건강영향조사에 관한 환경보건시민센터 측의 질의에 대한 원안위의 답변은 아래와 같다.

라돈침대 사태와 관련해 피해자 대책 마련 촉구 등 건강영향조사에 관한 환경보건시민센터 측의 질의에 대한 원안위 답변 <자료 제공 = 환경보건시민센터 이성진 정책실장>

원안위의 답변을 요약하자면, 가공제품의 안전기준 초과 여부를 평가한 피폭선량과 개인의 실제 피폭선량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는데, 대진침대는 수면 조건 및 습관을 고려하면 피폭선량은 더 낮아진다(저선량, 100 mSv 이하)는 것이다.

게다가 라돈은 우리 주변 환경 어디에나 존재하기 때문에 자연 라돈에 의한 영향인지, 라돈침대 사용으로 인한 피폭영향인지 구분하기 어렵다는 게 원안위의 설명이다.

또 자연방사선과 암 발생률·사망률은 연관이 없고, 라돈 피폭은 일반적으로 폐암 이외에 다른 암과의 상관성은 관찰되지 않는다는 유엔방사성영향평가과학위원회(UNSCEAR)와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ICRP)의 의견도 덧붙였다.

따라서 라돈에 의한 건강영향조사는 피폭선량이 낮은 점, 최소 10년 이상 일반적으로 30년 이상 장기적인 추적조사가 필요하다는 특성을 고려했을 때 10만명이 넘는 사용자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한 결과를 도출하기에 건강영향조사는 한계가 있다는 게 원안위 입장이다.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백도명 교수의 라돈침대 피해자 암 유병비율 연구결과 관련 자료 ⓒ환경보건시민센터<br>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백도명 교수의 라돈침대 피해자 암 유병비율 연구결과 관련 자료 ⓒ환경보건시민센터

건강영향조사의 필요성

원안위는 라돈침대로 인한 암 등 건강피해를 입증하기 어려워 건강영향조사가 유의미한 결과를 낼 수 없다고 하지만 라돈침대로 인한 건강피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백도명 교수가 라돈침대 피해자 중 암 진단을 받은 180명을 대상으로 암 유병비율을 조사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폐암을 비롯한 백혈병 등의 암 유병비율이 일반인구에 비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폐암이 차지하는 비율(비례유병비)이 두드러졌는데, 라돈침대 이용자들이 일반 인구에 비해 남성 5.9배, 여성 3.5배 높았다. 또 침대를 5년 이상 사용한 이들이 5년 미만 사용한 이들보다 암 발병률보다 2배 이상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 밖에 백혈병 비례유병비도 남녀 각각 5.3배, 5.1배로 확인됐다.

백 교수는 원안위의 연구결과는 측정환경제어로 저평가됐으며, 그 결과를 수용하더라도 건강영향조사가 필요 조건은 충분히 충족된다고 분석했다. 

백 교수는 “실내환기 및 에어로졸 발생 수준을 고려하지 않았으며, 노출 시간도 하루 10시간을 배정했는데 이것은 취침시간이어야 하므로 훨씬 더 환기가 제한된 환경상태에서 측정됐어야 한다”며 “이 밖에도 연령에 따른 민감도, 한국 주택구조에서 실내 에어로졸 발생 등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설령 원안위 측정결과를 수용하더라도 대진침대 사용자 다수가 침대를 사용하지 10년이란 기간을 경과했기 때문에 그로 인한 영향을 관찰할 수 있는 최소 잠복기를 지났다. 또 (라돈검출 매트리스 중) 피폭선량 최대치는 13.74mSv로 10년을 사용하면 137.4mSv 때문에 저선량을 초과했다”며 “장기추적 최소 기간, 저선량 이상 노출 등을 고려하면 건강영향조사 가능 조건이 충족된다”고 설명했다.

지난 4월 30일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있는 5호선 광화문역 인근 KT빌딩에서 발언 중인 환경보건시민센터 이성진 정책실장 ⓒ투데이신문

한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다

피해자들이 건강영향조사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는 이유는 건강피해에 대한 배·보상과 더불어 책임자들에 대한 처벌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라돈침대 논란이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소비자들은 한국소비자원 측에 매트리스 환불 및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집단분쟁조정을 신청했다. 그리고 2018년 10월 한국소비자원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는 ‘대진침대는 라돈검출 매트리스를 사용한 소비자에게 위자료 30만원을 지급하고 매트리스를 교환하라’는 결론을 냈다.

그러나 대진침대는 반년이 넘도록 조정 결정을 이행하지 않았다. 소비자들은 집단분쟁조정과 별도로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 중인데, 대진침대는 소송 결과에 근거해 일괄 처리하겠다는 입장으로 알려졌다.

대진침대는 이 재판에서 과실을 부인하고 있다. ‘유해성 여부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게 공인된 의견이며, 폐암 등 질병의 원인이 라돈이라는 것을 즉각적으로 확인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 원안위의 1·2차 조사결과는 각각 발표 기준과 측정방법이 달라 신뢰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친환경인증을 받는 과정에서 속인 바가 없고, 국가 공인을 받았다는 점도 부연했다. 

원안위 입장 발표 전까지만 하더라도 조사결과에 관계없이 리콜을 약속했던 대진침대가 라돈침대와 폐암 등 질병 간 인과관계 확인이 어렵기 때문에 “잘못 없다”고 돌연 태도를 바꾼 꼴이다.

형사고소 사건도 비슷한 상황이다.

라돈침대 피해자 180명은 라돈이 방출된다는 사실을 알고도 거짓 홍보로 판매해 피해자들로 하여금 폐암, 갑상선암, 피부질환 등 질병을 야기했다며 대진침대 대표와 납품업체 관계자들을 상해·업무상 과실치상·사기 등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그러나 지난해 1월 3일 검찰은 이들에 대해 ‘혐의없음’ 등을 이유로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검찰은 라돈이 폐암을 유발하는 물질이라는 사실은 맞으나 갑상선암이나 피부질환 등 다른 질병과의 연관성은 전 세계적으로도 입증된 바 없어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또 폐암 역시 라돈만으로 발병하는 특이 질환인 아니기 때문에 라돈침대 사용과 폐암 발생 간 인과관계가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이 밖에도 라돈 방출 사실을 알고도 판매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피의자와 그들의 가족도 라돈침대를 장기간 사용한 사실이 있기 때문에 고의가 있었다고 보기 곤란하다고 판단했다. ‘음이온 방출 인증으로 공기 정화 효과가 있다’는 광고도 음이온이 방출되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라돈침대와 폐암 등 질병 간 인과관계가 불분명하다는 게 게 불기소 처분 사유의 핵심이다.

피해자들은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더 나아가 건강피해에 대한 배·보상을 위해서는 반드시 건강영향조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환경보건시민센터 이성진 정책실장은 “피해자들의 요구는 암 발병 원인이 라돈 때문인지 아닌지 조사해달라는 거다. 조사와 실험으로 라돈침대가 직접적인 원인인지 아닌지 결과를 도출해달라는 거다. 그 결과가 있어야 후속 조치나 조사가 있을 수 있는 건데 지금 상황에선 아무것 도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만일 건강피해가 인정되지 않으면 대진침대가 ‘건강피해도 없는데 우리만 영업손해를 봤다’며 원안위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일말의 희망이 남아있다.

경기도가 지난해 7월 라돈침대 피해상황을 파악해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위한 건강 실태조사를 약속했다. 개인이 라돈 피해를 입증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정부나 기업에서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서지 않고 있어 피해가 커지고 있다는 뜻에서다.

도는 그해 10월까지 라돈침대 사용 경험이 있는 전국 소비자 5000명을 대상으로 기본적인 피해 실태조사를 마치고, 그 결과를 토대로 11~12월 2차 심층조사를 실시하겠다는 게 경기도의 계획이다.

더불어 연구기관을 통해 △질환 발생자의 평소 생활습관 △유전질환의 존재 여부 등에 관한 세부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라돈 침대에 오랜 기간 노출된 소비자들과 일반인 사이의 질병 발병률·발병 차이 여부 등을 밝혀낼 방침이다.

지난 6일 원자력안전위원회 앞에서 열린 ‘라돈침대 환경보건사건 발생 3년 피해조사 및 대책요구 기자회견’
지난 6일 원자력안전위원회 앞에서 열린 ‘라돈침대 환경보건사건 발생 3년 피해조사 및 대책요구 기자회견’ ⓒ뉴시스

지난 5월 6일, ‘라돈침대 사태’ 3년차를 맞았다. 한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한 싸움에서 지칠법도 하건만 피해자들은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그리고 마치 녹음된 음성을 틀어놓은 듯 지난 3년간 외친 말을 반복했다.

‘라돈침대 사건 건강피해 조사하라!’

‘라돈침대 사건 피해대책 제시하라!’

‘원자력안전위원회는 방사선피해 외면마라!’

‘원자력안전위원회는 라돈침대 국민피해 공범자다!’

‘문재인 정부는 라돈침대 국민피해 외면마라!’

국가에게 주어진 가장 큰 책무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다. 라돈침대 피해자들의 절규를 외면하는 지금의 정부 행태는 직무유기임을 명심 또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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