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관리 소홀이 만든 비극, ‘평택항 사고‘
반복되는 산업현장 참사…‘안전관리 미흡’ 만연
내년 1월 시행되는 중대재해법, 실효성은 글쎄
중대재해법 둘러싼 노사 간 갈등 해소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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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박세진 기자】 2016년 5월 28일, 2호선 구의역에서 서울메트로 하청업체 직원이던 20대 청년노동자 김모군이 진입하던 열차와 스크린도어(승강장안전문) 사이에 끼어 사망했다. 서울메트로에는 선로 점검 시 2인 1조로 근무해야 한다는 안전수칙을 규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업소는 김군을 홀로 점검에 내보냈고, 결국 이 같은 비극이 발생했다. 

그로부터 2년 후 2018년 12월 11일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는 20대 청년노동자 용균씨가 사망했다. 김용균 역시 2인 1조 근무 규정이 있음에도 ‘홀로’ 컨베이어 벨트 설비 점검에 내몰렸고 컨베이어 협착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두 청년 노동자의 안타까운 죽음은 우리 사회의 ‘위험의 외주화’ 문제를 수면 위로 떠올렸고, 하청 노동자 보호를 위한 근본적인 해결방안의 필요성을 상기시켰다. 이후 2019년 12월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이 28년 만에 전면 개정되는 등 변화가 찾아왔다. 그러나 제2의 김군, 제2의 김용균을 막아달라던 노동계의 간절한 바람에도 산업현장의 시간은 과거에 머물러 있다.  

지난달 평택항에서는 컨테이너 작업을 하던 대학생 고 이선호(23)씨가 300kg 지지대에 깔려 사망했다. 이씨는 컨테이너 업무가 처음이었지만 회사로부터 별도의 안전교육을 받지 못한 채 투입됐고, 사고를 방지해 줄 어떤 관리자조차 없는 상황에서 변을 당했다. 

철도, 화력 발전소, 항만, 건설 등 산업현장에서 꽃다운 청년들이 스러지는 현실을 타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무색하리만큼 참사는 반복해 발생한다. 참사를 막기 위한 카드로 뽑아든 산안법,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등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해 ‘유명무실’이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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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희망’, 300kg의 무게에 짓눌렸다

이재훈(62)씨의 휴대폰에는 ‘삶의 희망’이라는 번호가 저장돼 있었다. 번호의 주인은 얼마 전 평택항 참사로 세상을 떠난 그의 아들 선호씨다.

물류업체인 ㈜동방과 도급계약을 맺은 하도급업체의 작업반장이던 재훈씨는 평택항을 통해 수출하는 개방형 컨테이너(FRC) 내용물 검수 등의 작업을 오랜 기간 해왔다. 선호씨는 군대를 전역한 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로 인해 등교가 어려워지자, 학비라도 벌 요량으로 지난해 1월부터 아버지를 따라 평택항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사고 당일 동방 현장관리자는 FRC의 양쪽 날개를 접기 위해 안전핀을 제거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재훈씨에게 급한 연락을 해왔다. 재훈씨는 숙련노동자 A씨를 떠올렸고, 눈앞에 있던 아들을 시켜 A씨를 FRC가 있는 곳으로 이동하라고 알렸다.

A씨는 혼자 하기 힘든 일이라며 선호씨에게 같이 갈 것을 부탁했고, 두 사람은 함께 작업현장에 도착했다. A씨가 컨테이너 안전핀 일부를 제거하고 떠나려 하자 근방에 있던 동방 소속 지게차 기사가 컨테이너 양쪽 구멍에 들어간 나뭇 합판 잔해를 주우라고 지시했다. 평소 하던 업무가 아니었기 때문에 A씨는 지시를 거부했다. 하지만 선호씨는 그래도 시킨 일이니까 하겠다며 묵묵히 컨테이너로 향했다.

선호씨가 나무 합판 잔해를 줍는 맞은편에서는 지게차를 이용해 FRC의 날개를 접는 작업이 진행됐다. 해당 날개가 접히는 순간 충격 여파로 인해 선호씨가 있는 반대쪽 날개까지 덩달아 접혔고, 300kg에 육박하는 거대한 철제 구조물이 그대로 선호씨를 덮쳤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사고는 못다 핀 20대 청년의 인생과 가족들의 삶을 송두리째 집어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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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관리 미흡’ 예견된 참사

본래 선호씨의 담당 작업은 동식물 검역이었다. 그러나 지난 3월 1일부로 인력 통폐합이 이뤄지며 인해 다른 작업까지 도맡게 됐다. 그중 하나가 FRC 날개 해체 작업이었고, 해당 업무는 사고 당일이 처음이었다.

그러나 선호씨는 사전 안전교육은커녕 제대로 된 안전장비 조차 지급받지 못하고 현장에 투입됐다.

허술하기는 현장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산안법에서 일정 규모 이상의 컨테이너 작업 수행 시에는 안전관리자와 신호수 등이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지만 사고 현장 어디에 그런 역할을 하는 이는 없었다. 

또 무게가 300kg이라는 FRC 날개 특성상 진동만으로는 쉽게 넘어질리 없는데, 90도가 아닌 약간 기울어져 있었다는 현장의 증언대로라면 불량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밖에도 원청의 나무 합판 잔해 정리 지시도 문제가 있다. 현행법상 원청이 도급계약을 맺은 하청업체 직원을 지휘·감독하는 건 불법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동방 측은 사고 발생 20일 만인 지난 12일에야 공식 사과했다. 동방 관계자 20여명은 평택항 컨테이너 평택항 신컨테이너 터미널 운영동 앞에서 “작업 과정에서 안전관리 소홀로 이번 사고가 발생했으며, 이에 따르는 어떤 질책도 달게 받겠다“는 내용의 사과문을 발표했다. 

동방은 안전관리에 대한 지적을 엄중히 받아들이고, 안전관리위원회를 설치함으로써 재발방지에 힘쓰겠다고 약속했다. 또 유가족 및 동료들의 상처가 조금이나마 치유될 수 있도록 최선의 지원과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유족 측에는 사과과 관련된 내용을 사전에 알리지 않았고, 제대로 사과 한마디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 ‘보여주기식 쇼’라는 비난을 받았다.

평택항 사고 또한 앞선 구의역 김군, 태안화력발전소 김용균씨와 마찬가지로 최소한의 안전수칙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 발생한 예견된 참사였다. 

고(故) 이선호군 산재사망사고 대책위원회는 “기업은 비용 절감 차원에서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인력을 감원해서 위험한 일은 비정규직에게 맡기고 있다. 23살 선호씨의 죽음도 마찬가지“라며 “죽음을 양산하는 현재의 시스템을 막아야 한다. 노동안전에 더 많은 비용을 쓰도록 해야 하고 노동자들이 천천히 일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촉구했다.

아버지 재훈씨는 지난 12일 故이선호군 산재사망 사고 대책마련 간담회에서 “문재인 청부가 출범할 당시 아침에 출근했다가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 노동자가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했다. 또 비정규직이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한 걸 봤다. 도대체 4년간 무엇을 했는지, 얼마나 더 죽어야 하는지, 또 얼마나 더 죽이려고 하는지 묻고싶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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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길 먼 중대재해처벌법…노동계·경영계 사이 ‘잡음’

한국은 OECD 국가 중 산업재해 사망률 상위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14일 발표한 ‘2020년 산업재해 사고사망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산업재해 사망자는 882명으로 2019년에 비해 27명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위험의 외주화’에 놓인 소규모 사업장은 안전보건관리체계가 더욱 허술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고 사망자를 사업장 규모별로 살펴보면 5~49인 사업장은 전년보다 43명 증가한 402명(45.6%), 5인 미만 사업장은 11명 증가한 312명(35.4%)으로 집계됐다. 사고 사망자의 81%가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한 것이다. 이에 반해 50~299인, 300인 이상 사업장에서는 각각 16명, 11명 사망자가 감소한 것으로 확인됐다. 소규모 사업장에선 사고 사망자가 계속해서 느는 반면 대규모 사업장에선 사고 사망자가 줄어드는 것이다.

관련법 위반을 반복적으로 저지르는 행태도 멈추지 않고 있다. 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에 따르면 산안법 위반 재범률은 93%에 육박한다. 안전 수칙을 등한시 한 채 노동자를 위험에 빠트린 기업 10곳 중 9곳은 유사한 형태의 불법 행위를 계속해서 저지르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처벌 수위는 ‘솜방망이‘에 가깝다. 지난 2018~2019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1심 판결문에 따르면 피고인 1065명 중 절반가량인 49.5%는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평균 벌금액은 458만원이었다. 실형을 선고받은 이도 전체 피고인 1065명 중 21명으로 1.9%에 불과했다.

일터에서 목숨을 잃는 산업재해 사망사고가 되풀이되자 노동계는 이를 막기위한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법) 입법을 촉구해왔다. 그리고 오랜 진통 끝에 ‘김용균법'이라 불리는 중대재해법이 내년 1월부터 시행된다.

그러나 중대재해법에 대한 노동계와 경영계의 찬반 논란은 끊임 없이 도마에 오르고 있는 중이다.

중대재해법은 중대재해 발생 시 대표이사 등 경영 책임자에 대한 처벌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에 중점을 뒀다. 다만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서는 공포 이후 2년의 적용 유예기간을 두기로 했으며, 5인 미만 사업장은 적용 대상에서 아예 제외됐다.

즉, 중대재해 사고 10건 중 8건이 발생하는 50인 미만 사업장은 2024년이나 돼야 중대재해법이 적용되는 셈이다.

때문에 내년부터 중대재해법이 시행된다 해도 사고를 막기 역부족이라는 게 노동계의 지적이다.  

노동계는 5인 미만 사업장의 적용 제외와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적용 유예로 인해 중대재해를 발생시킨 자들이 법망을 교묘하게 빠져나갈 것을 우려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전체 산재사망사고의 약 81%가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어난다는 점과 35%가 5인 미만 사업장에 집중된 현실을 고려했을 때 이 같은 차등적용은 또다른 비극을 부른다고 야기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경영계는 사업장의 안전보건 관리를 총괄하는 책임자가 별도로 있을 경우 대표이사 등이 처벌을 면할 수 있도록 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경영계는 한 기업의 사업장이 여러 개일 경우 사업장의 인사·노무 등 독립성이 인정되면 별도의 경영 책임자가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업장에서 발생한 중대 재해로 본사 대표이사 등이 처벌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는 지난 12일 故이선호군 산재사망 사고 대책마련 간담회에서 “내년 시행 될 중대재해법에 보완할 점은 없는지 현장을 보고 관계기관 의견을 청취해 추가적으로 보완할 방안을 찾겠다”고 약속했다.

그동안 노사정은 죽음의 벼랑 끝으로 내몰린 청년노동자들을 구하겠노라 약속했다. 그러기를 수년째, 온전한 대책하나 마련하지 못하고 설왕설레하는 사이 위험한 산업현장에 방치된 청년노동자들은 하나 둘 목숨을 잃고 있다. 이른 아침 무거운 몸을 이끌고 집을 나서 고된 하루를 보내고, 해 질 녘 지친 몸을 뉠 포근한 집으로 돌아오는 평범한 일상마저 빼앗기 청년노동자들의 현실은 야속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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