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토론회에서 무릎 꿇은 장애아동 부모들 ⓒ뉴시스
주민토론회에서 무릎 꿇은 장애아동 부모들 ⓒ뉴시스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장애인 특수학교 개교 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학교 가는 길> 상영을 둘러싼 갈등이 연일 논란이다. 

앞서 2013년 서울시는 특수학교 부족으로 인해 원거리 통학과 진학의 어려움을 겪는 장애학생들을 고려해 가양동 공진초등학교 부지에 공립 특수학교 설립 계획을 세웠다. 이에 따라 2019년 3월까지 지적장애학생 106명(16학급)을 대상으로 중·고·전공과정을 교육하는 ‘서진학교(가칭)’ 설립을 추진했다.

같은 해 11월 25일 해당 사안을 행정예고했지만, 서울시의회의가 예산을 줄이면서 수포로 돌아갔다. 이후 2014년 8월이 돼서야 다시금 특수학교 설립에 시동이 걸렸다.

그러나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지자 인근 주민들은 이미 강서구에는 1곳의 특수학교(교남학교)가 존재한다며 추가적인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했다.

반발에 부딪힌 서울시는 결국 2015년 9월 대체부지를 찾는 방향을 검토하기로 했다. 그러나 상황은 녹록지 않았고, 더 이상 연기는 불가하다고 판단한 서울시교육청은 2016년 8월 31일 공진초 자리에 특수학교를 설립하겠다는 2차 행정예고를 했다.

그러나 의견조율은 쉽사리 이뤄지지 않았고 결국 2017년 7월 6일 서울시교육청은 합의점을 도출하기 위한 특수학교 설립 1차 주민토론회를 열었다. 그러나 시작부터 찬반 양측의 갈등이 고조된 탓에 제대로 된 토론은 시작도 못하고 마무리됐고, 9월 5일 주민토론회가 재차 열렸다.

하지만 상황은 1차 때와 다를 바 없었고 장애학생을 둔 학부모들 무릎까지 꿇고 눈물로 호소하는 안타까운 상황까지 벌어졌다.

이 같은 모습은 SNS 등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퍼졌고, 특수학교를 설립해야 한다는 여론에도 힘이 들어갔다. 또한 장애아동 부모들의 계속되는 고군분투 끝에 마침내 서울특별시교육청이 처음 설립을 예고한 지 6년 만인 지난해 3월 공립특수학교인 서울서진학교가 문을 열었다.

영화감독 김정인씨는 서진학교가 세워지기까지의 과정을 영상에 담아 영화 <학교 가는 길>이라는 이름으로 세상 밖에 내놨다. 이 영화는 특수학교 설립을 눌러싼 우리 사회의 논란과 갈등을 보여주고 차별에 내몰린 장애인 교육권 문제를 고찰한다.

이 영화는 지난 5월 5일 개봉됐고, 약 두달 만에 2만명의 관객수를 기록하는 등 큰 관심을 받았다.

<사진 제공 = 스튜디오 마로/영화사 진진 ><br>
<사진 제공 = 스튜디오 마로/영화사 진진 >

하지만 기쁨도 잠시,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혔다. 영화에 등장하는 일부 주민이 배급사 측에 본인이 나온 장면을 삭제해 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하지만 배급사 측은 이를 수용하지 않았고, 결국 영화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이라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와 관련해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등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상영금지 반대 탄원을 냈고, 나흘 동안 5만8000여명이라는 많은 시민들이 함께했다.

그 영향인지 문제제기한 주민은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취하하기로 했다. 문제가 이렇게 일단락되는 듯했으나 당시 특수학교 설립에 반대 발언을 했던 자신의 출연 분량을 삭제해달라는 취지의 또 다른 가처분 신청을 낸 것으로 파악됐다.

김정인 감독은 “작품 내 모든 발언은 특수학교 설립을 바라보는 사회적 단면을 가장 핵심적이고 압축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내용으로만 고민 끝에 택했다”며 “신청인의 발언을 삭제한다면 다른 반대 측 토론자들 역시 같은 대응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렇게 모든 주요 내용이 삭제되면 ‘학교 가는 길’은 다큐멘터리로서 생명력을 잃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상영금지 가처분신청과 장면삭제 가처분신청 모두 본질적으로는 ‘학교 가는 길’의 존재 이유를 명백히 훼손하는 요구라 생각하기 때문에 겸허하게 법원의 판단을 받아보고자 한다”면서도 “물론 상대방과 절충할 수는 없을지, 고민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 감독은 “일개 무명의 독립영화 감독이 만든 다큐 한 편의 상영 여부는 전혀 중요한 사안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국의 수많은 장애 학생들이 학교 가는 길 위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는 중”이라며 “턱 없이 부족한 특수학교는 설립할 때마다 거센 반대에 부딪히고 있다. 일반학교에서의 통합교육은 여전히 갈 길이 먼게 현실”이라고 호소했다.

끝으로 “이번 일을 계기로 더 많은 국민들께서 대한민국 특수교육의 열악한 현실을 인식하고 든든한 길동무로 나서 주신다면, 그것으로 저와 ‘학교 가는 길’은 소임을 다했다고 생각한다”며 “장애 학생들의 형제, 자매, 부모의 마음으로 함께 걸어 주길 간곡하게 부탁드립니다”고 당부했다.

장애아동의 부모이자 영화의 출연진인 이은자씨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했을 당시의 연장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얼마나 더 노력하고 진심이 닿도록 해야 마음이 누그러질까, 우리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질 수 있을까 고민된다”며 “괜한 자괴감도 들었지만 한편으론 우리가 인내심을 가지고 더 노력해야 겠다는 마음을 먹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일을 겪으면서 절망스럽기도 했지만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시려는 분들도 많았다. 솔직히 짧은 시간에 그렇게 많은 분들이 도와주실 줄 몰랐다”며 “그런 응원의 메시지가 많이 들리면 힘이 날 것 같다”고 전했다.

일부 장면 삭제에 관한 가처분 신청은 오는 12일 서울북부지법에서 첫 심문이 예정돼 있다. 과연 법원에서는 어떤 판단을 내리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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