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뉴스 근절”vs“언론 재갈물리기”
문체위 전체회의서 언론중재법 통과
野·언론단체 “현대판 분서갱유” 반대
민주당 지지층 달래기, 법안 처리 강행

ⓒ뉴시스
지난 19일 열린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언론중재법 개정안 통과시키려는 도종환 위원장의 회의 진행에 항의하고 있다.ⓒ뉴시스

【투데이신문 홍상현 기자】 최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언론중재법)이 통과됐다. 핵심은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언론사에 최대 5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야당과 언론단체에서는 언론의 재갈물리기라면서 반발하고 있다.

지난 19일 국회 문화체육관과위원회에는 야당 의원들이 대거 몰려 들어갔다. 이날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을 처리한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언론중재법’으로 알고 있는 법안이다. 해당 법안은 언론사가 허위·조작 보도를 할 경우 5배의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문제는 고의·중과실이나 허위·조작보도의 개념이 모호하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비판보도를 봉쇄하기 위해 소송이 남발될 수 있고, 그에 따라 언론의 자유가 대폭 위축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당은 언론중재법 처리를 강행하는 이유로 우리나라에 남발하고 있는 가짜뉴스를 꼽았다.

더불어민주당 원내부대표 겸 비서실장인 김승원 의원은 지난해 여론조사에서 국민 70%가 언론중재법 개정에 찬성했고, 8월 2일 실시한 YTN 여론조사에서도 응답자 56%가 찬성했다는 것이다. 이같이 언론중재법 개정 찬성이 높게 나온 이유는 언론보도의 문제가 있기 때문이고, 그것은 허위·조작보도, 편파기사, 속칭 ‘찌라시’ 정보기사, 언론사 자사이기주의적인 기사, 낚시성 기사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ABC 유가부수 조작을 통해 배달되지 않은 새 신문이 동남아로 흘러들어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연합뉴스가 홍보기획사로부터 ‘기사형 광고’를 받아 대량으로 보도했다가 포털에서 한 달간 기사가 내려지는 수모를 겪었다고 지적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2020년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의 언론신뢰도 조사 결과 5년간 부동의 꼴찌를 기록했다면서 언론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언론중재법 개정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일부 언론단체 역시 언론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자정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하지만 언론중재법을 실시할 경우 그에 따른 언론의 재갈물리기가 있을 것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가짜뉴스가 뭐기에

개정안의 핵심은 보복·반복적 허위·조작 보도로 피해 유발, 허위·조작 보도로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 초래, 정정보도·추후 보도가 있는 내용을 검증 절차 없이 복제·인용, 기사의 본질적 내용과 다르게 제목·시각자료를 조합해 왜곡 등 4가지를 기준으로 정했다. 당초 고의·중과실 추정 조항은 6개에서 지난 18일 문체위 안건조정위원회 심의 과정을 거치며 4개로 줄었다. 문제는 해당 내용은 각자의 판단에 따라 자의적으로 해석되기 충분하다는 것이다. ‘무엇이’ 허위 보도이고, 무엇이 ‘조작’ 보도인지 명확하게 규정이 돼있지 않으면 그야말로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라는 것이다. 개정안은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허위의 사실 또는 사실로 오인하도록 조작한 정보’로만 규정하고 있다. 피해자가 해당 보도에 대해 허위사실이라며 소송을 제기한다면 언론사 입장에서는 결국 재갈물리기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부주의에 의한 실수, 즉 과실에 의한 경우까지 징벌적 손해배상의 대상에 포함한 것도 과잉규제로 지적된다. 게다가 취재원의 일방 주장에 경도되거나 확실한 증거 없이 공표됐다는 이유도 포함된다는 것은 사실상 언론의 취재환경을 옥죄게 만든다는 지적도 있다. 또한 허위·조작을 고의적으로 하지 않았다는 것을 언론사가 입증해야 하는데 이는 민법상 피해를 주장하는 당사자가 해당 사실을 입증하는 법률의 기본원칙에 위배된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피해자를 보호하는 취지로 도입된 기사 열람 차단 청구는 포털의 자기 검열을 강화시킬 뿐이라는 지적도 있다. 즉, 개인에 대한 모든 비판적 보도는 열람 차단 청구 대상이 되면서 언론의 자유를 극도로 제한하게 된다는 것이다. 가짜뉴스 피해를 구제한다는 명분으로 만들고 있지만 사실상 언론을 통제하고 장악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기 충분한 내용들이라는 것이 야당과 언론단체의 생각이다. 이에 국민의힘은 ‘현대판 분서갱유’라고 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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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회의실 앞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언론중재법 개정안 통과에 반대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뉴시스

위헌 소지에도

이런 비판에도 불구하고 더불어민주당이 강행한 이유는 상임위원장 교체와 맞물려 있고, 대선 경선 본격화 때는 입법 동력의 상실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에 8월 임시국회가 아니면 처리할 시기를 놓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오는 25일 문체위를 비롯한 상임위 7곳 위원장을 국민의힘에게 넘겨줘야 한다. 현재 도종환 민주당 의원이 문체위원장을 맡고 있지만 이채익 국민의힘 의원으로 교체된다. 문체위원장이 야당으로 넘어가면 법안 처리는 더욱 힘들어진다.

문체위 안건조정위원회만 해도 국회법상 조정위원은 여야 동수로 구성돼 있다. 하지만 도종환 위원장은 김의겸 열린민주당 의원을 조정위원에 넣으면서 사실상 4대2가 됐다. 이는 거꾸로 야당이 문체위원장이 된다면 야당 몫이 4가 되고, 여당 몫이 2가 되는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 오는 8월말부터 국민의힘은 대선 경선 버스를 출발시킨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미 대선 경선 버스가 출발했고, 이제 곧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8월말을 넘기면 언론중재법을 처리하기 힘들어질 것이라고 더불어민주당은 판단했다. 따라서 오는 25일 이전에 법안 처리를 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다.

민주당이 언론중재법 처리 강행을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층에 대한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김경수 전 경남지사 등 여권 인사들이 유죄 판결을 받은 것이 언론의 비판보도이기 때문에 언론개혁을 해야 한다고 여권 지지층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대선 국면에 접어든 상황에서 언론개혁을 밀어붙이지 못한다면 결국 민주당 지지층은 비난을 넘어 등을 돌릴 것으로 보인다. 정권재창출을 해야 하는 더불어민주당으로서는 지지층의 요구를 더 이상 묵살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런 이유로 언론중재법 처리를 강행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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