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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지난해 3월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이전 자유를 제재하는 고용허가제에 대한 헌법소원이 제기된 가운데 최근 고용허가제 폐지를 촉구하는 시민사회 목소리가 날로 커져가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과 이주노조, 이주노동자평등연대는 지난 22일 ‘이주노동자 증언대회’를 열고 착취와 무권리의 고용허가제를 고발했다.

2003년 8월 제정된 고용허가제는 당초 인력공급이 어려운 제조업이나 3D업종 부문의 사업체에 해외 노동력을 공급하기 위해 도입됐다.

‘내외국인간 차별을 금지하고 국민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을 도모’한다는 기존 취지와는 달리 ‘사업장 변경 제한’과 ‘성실근로자재입국제도’ 등을 통한 강제노동을 의무화, ‘정주화를 막기 위한 체류 기간 제한’과 더불어 ‘숙식비 강제 징수 지침‘, ‘외국인력 배정 점수제’ 등 조항으로 이주노동자의 인권과 노동권을 침해한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고 있다.

#. 허락없인 이직도 할 수 없다

네팔 국적의 이주노동자 나라얀씨는 경기도 소재 한 도금공장에서 4년 10개월째 근무 중이다. 그는 공장에서 일한 지 2년쯤 됐을 무렵부터 허리 통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지만 고통은 커져갔고, 결국 병원에 방문해 검사한 결과 허리 디스크에 문제가 있다는 판정을 받았다. 병원에서는 물건을 들어 올리는 일은 자제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소속된 공장에서는 철제품을 자주 들어야 했기에 더는 일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사업주에게 이직서를 요구했지만, 계약기간이 남아있다며 이직동의서를 작성해 주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일을 지속해야 했고 증상은 더욱 악화돼 갔다. 의사의 소견서를 들고 고용센터를 찾아가 봤지만 소견서만으로는 도와주기 곤란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 일하다 다쳐도 보상은 없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일하던 방글라데시 국적의 이주노동자 무사씨는 기계에 이상이 발생했음을 인지하고 이 사실을 관리자에게 알렸다. 하지만 관리자는 반드시 내일까지 제품이 완성돼 나가야 한다며 조금 힘들더라도 오늘은 일하고 다음날 처리해 주겠다고 미뤘다. 어쩔 수 없이 일을 이어갔던 무사씨는 불과 보고 10분 만에 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를 당했다.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지만 손가락은 살리지 못했고, 그 무렵 무사씨의 비자는 만료시점을 향해가고 있었다. 회사에 이러한 처지를 알렸지만 어떠한 도움도 받지 못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산업인력공단 직원의 도움을 받아 산재 신청을 했다. 산재 신청 후, 2차 수술을 했고, 치료를 위한 G1비자를 신청했다. 병원에서 치료를 끝내고 기숙사에 오니 회사 측은 향후 6개월 동안 치료를 받아야 하고, 산재를 통해 월급도 받을 수 있지 않느냐며 이직을 권고했다. 새로운 사람이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산재로 월급의 70%를 받고 있지만 그 금액이 120~130만원 선이다. 또 산재 혜택만으론 수술비용을 모두 해결할 수 없으며 이주노동자이기 때문에 의료보험 혜택도 다 받지 못한다. 이 돈으로 생활비와 병원 통원치료를 위한 교통비를 지불하고 나면 고향에 있는 가족을 부양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 불법파견 노동과 임금차별

캄보디아 국적의 이주노동자 께오짠티씨는 2019년 4월 16일 한국에 들어와 지난 7월 18일까지 밀양시 산외면에 거주하며 인근 4개의 장소, 5개동의 깻잎 비닐하우스에서 깻잎 재배 수확노동을 했다. 해당 농장의 상시노동자는 이주노동자로서 2명~3명이었다. 사업주는 총 3시간의 휴식을 보장한다는 조건으로 하루 11시간 근무하는 근로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12시~13시까지만 점심휴게시간만 부여하고 매일 10시간의 노동을 시켰다. 게다가 8시간의 임금만을 산정하거나 그보다 적은 금액을 지급했다. 또 지난해 10월 이후부터는 근로계약상의 주소지로부터 숙소로부터 약 2km 떨어진 곳의 3개동의 비닐하우스에서 일을 시켰다. 열흘 중 3일은 트럭에 태우고 가서 노동을 시켰다. 이 작업장에는 화장실도 없고, 휴게공간이 없었다. 점심도 숙소에 데리고 가서 식사를 하게하고 다시 차로 태우고 와서 오후 노동을 시켰다. 분명한 불법파견 노동이었다.

이주노조 우다야 라이 위원장은 이주노동자들이 노동자로서 어떠한 권리도 보장받지 못한 채 돈벌이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고 호소했다.

라이 위원장은 “내국인이 기피하는 저임금 고강도 장시간 노동을 하지만 우리 존재는 쓰다가 버리는 1회용 노동자에 불과하다”며 “위험하고 열악한 근로조건에서 휴일도 별로 없이 장시간 근무하는 등 노동자로서 어떠한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고용허가제가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이동 제한하고, 이주노동자 고용에 대한 모든 권리를 사장한테 주고 있기 때문”이라며 “이주노동자들을 쉽게 착취해서 사장들이 많이 이윤을 챙기도록 하는, 사장의 불법 부당한 한마디도 이주노동자에게 거부할 수 없는 명령이 되는, 이주노동자라는 이유로 사업주의 부당한 대우를 감내하게 만드는 인종차별적인 제도”라고 비판했다.

그는 “그간 이주노동자들은 인권과 노동권을 보장받고 강제노동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고용허가제를 폐지하고 노동허가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며 “이주노동자가 자유롭게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고, 인간이자 노동자로서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노동허가제를 실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주노조와 이주인권단체 등은 지난해 3월 “사업장 이동제한은 위헌”이라며 고용허가제에 관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고용허가제가 도입된 지 17년째가 되는 지난 17일에는 고용허가제 위헌판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진행됐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에서는 아직까지 아무런 답변이 없는 상황이다.

최근 이주노조 등 이주노동 당사자뿐만 아니라 성서공단노조, 금속노조, 건설노조, 화섬연맹 등 시민단체에서도 이주노동자의 노동기본권 쟁취를 위한 조직화에 힘을 보태고 있다.

이주노동자를 고용할 권리를 주는 고용허가제를 폐지하고 이주노동자에게 일할 권리를 부여하는 노동허가제 도입을 위한 이주노동 당사자와 시민단체의 투쟁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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