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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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7일 월요일

박상익 교수의 <번역청을 설립하라>를 읽다.

2006년에 <번역은 반역이다>를 썼던 분이 12년 만에 다시 번역에 대해 책을 썼다. 한국의 번역문화에 대한 문제의식이 달라지지 않아서다. 이는 물론 한국의 번역문화가 달라지지 않아서다. 번역을 경시하는 문화가 여전해서다. 번역의 경시는 허술한 번역을 양산하고, 허술한 번역은 모호한 해석을 산출하며 또한 이로 인해 독자의 내면에 흐릿한 사고를 형성한다.

한 면으로 정확한 번역을 통해 정확한 해석과 이로 인해 형성되는 엄밀한 사고 위에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제대로 된 지적 건축물을 쌓아올려야 할 터인데, 현실은 그와 거리가 멀다. 다른 한 면으로 많은 번역을 통해 모국어, 즉 한국어로 지적 작업을 수행하고 또한 한국어로 결실을 산출하게 해야 할 터인데, 역시 현실은 그와 거리가 멀다.

일본만도 못해서야

학계에서 양산되는 논문은 거의 다 비문과 오자투성이고, 구조와 전개가 비논리적이다. 도대체 제대로 된 한국어로 사고 활동을 하는 건지 의문이다. 언어 능력이 고도로 요구되는 학계가 이 모양인데, 다른 영역은 어떻겠는가. 한국어를 아예 방기(放棄)한 수준이다. “모국어로 세계를 인식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공동체를 제대로 된 국가라 할 수 있는가.”(87쪽) 실로 무책임하고 뻔뻔하다. 또한 게으르고 노예적이다.

일본은 우리와 정반대이다. 아무리 일본이 밉더라도 그들에게 배울 건 배워야 한다. 일본의 기초과학이 강한 이유는 그들이 일본말로 학문을 하는 데에 있다. 비단 과학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일본은 번역을 통해 서구문물을 모국어로 재구성해놓았기 때문에 일본말로 학문을 수행하는 것이 용이하다. 번역의 과정에서 수많은 개념을 창출했고, 심지어 –췌장의 췌(膵)나 갑상선의 선(腺) 등- 새로운 한자도 만들어냈다. 이를 가리켜 화제(和製)한자라고 하는데, 중국의 자전에도 기본자로 수록되었다고 한다. “덕분에 일본인들에게 세계적인 수준에서 사고한다는 것은 세계에서 가장 깊이 사고하다는 것이지 영어로 사고한다는 것이 아니게 되었다.”(86쪽)

우리의 모국어는 영어인가?

한국은 어떤가. 기업도 온통 영어에 매달리고, 영어 구사 능력이 곧 실력으로 인정받는다. 대체 영어 쓸 일이 얼마나 있다는 건지 모르겠다. 대학도 소위 원서를 숭상하는데, 그 원서(原書)가 문제이다. 대학에서 말하는 원서는 대체로 둘 중 하나이다. 원래 영어로 집필된 영어 원서이거나 혹은 영어로 번역된 영어 역본이다. 실로 기괴한 원전중심주의가 아닐 수 없다.

영어 번역서조차 원서라고 부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의 ‘기지촌 지식인’들에게 원어는 곧 영어이기 때문이다. 미국에 종속된 노예적 태도의 발로다. “자신이 한국 사람이 아닌 미국 사람이라고 착각하고 있나 봐요.”(123쪽) 예전에는 일어로 된 문화에 종속되었던 상황에서 언어만 바뀌었을 뿐 본질은 그대로이다.

번역은 애국이다

어느 영역을 보더라도 번역물의 수량이 매우 부족하고, 또한 번역물의 수준이 매우 형편없다. 가장 번역이 절실한 곳이 인문학일 텐데, 가장 처참하다. 저자 박상익 교수가 가장 주목하고 개탄하는 영역 또한 인문학이다. “번역 작업을 통해 텍스트를 축적하지 못한 우리 인문학의 어두운 공백은 오랫동안 후학들에게 부담스러운 짐이 될 것입니다.”(115쪽)

2008년에 고려대학교에서 열린 제18차 세계언어학자대회에서 선언된 바와 같이 “인간은 자신의 모국어를 사용할 때 가장 창의적인 사고를 할 수 있[…]다.”(93쪽) 이를 위해 더욱 많이 번역해야 한다. 특히 위대한 고전을 정밀하게 번역하고, 첨단의 연구를 신속하게 번역해야 할 것이다.

바벨 도서관의 사서
인간은 세우고 신은 허문다.
인간의 지식 탐구는 끝이 없는 수고지만, 그럼에도 인간은 앎에의 의지를 포기하지 않는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나의 소박한 지적 탐구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다.

번역은 독서 국민을 만들고, 교양 사회를 세우는 데에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다. 하지만 사회(교양 사회)로서나 개인(독서 국민)으로서나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 나 역시 이에 조금 거든 바 있으나 부족하기 이를 데가 없다. <번역청을 설립하다> 덕분에 앞으로 매해 번역서를 내겠다는 다짐을 했다. “번역을 통한 지적 인프라의 확충 문제는 이제 21세기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 생각해야 합니다.”(115쪽) 그렇다. 번역은 애국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온전한 한국어 콘텐츠를 확충하려면 번역이 절실해요. 전 세계 모든 지식과 정보를 모국어로 습득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포부와 비전이 있어야겠어요. 모국어에 대한 이런 포부와 야망마저도 없다면 이런 나라를 ‘국가’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게 나라입니까?”(1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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