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가격’ 네 번째 납부자, 직장인+밴드 김성후씨의 이야기
중학교 때부터 기타리스트 꿈꿔…현재 영상 편집 PD로 재직중
일반 직장과 밴드 활동 병행…휴무·주말 없이 7일 내내 근무
장비 구매 약 600만원↑…예술인 76.3%는 ‘소득 문제’로 겸업

‘빈곤이란, 누구나 갖는 꿈을 똑같이 갖고 있지만, 실현할 방법이 전혀 없는 것’ -도서 <풍요의 시대, 무엇이 가난인가> 中

상대적으로 소득수준이 높은 우리나라도 빈곤 문제로부터 여전히 자유롭지 않다. 특히 고달프게 살아가는 빈곤 청년들에게선 꿈을 잃은 슬픈 자화상을 여과 없이 목도하게 된다.

과연, 꿈이라는 작은 씨앗에 푸른 싹이 트고 잘 익은 열매가 맺히기 위해선 몇 리터의 땀과 눈물이 필요할까. 그간 흘려온 땀과 눈물로 꿈이라는 씨앗에 물을 준다면 꿈은 무탈하게 자라날 수 있을까. 또, 우리 사회라는 토질(土質)은 꿈을 심기에 얼마나 비옥한가.

다들 ‘꿈을 크게 가져야 깨졌을 때 그 조각도 크다’고들 말한다. 꿈을 크게 가지는 것조차 사치스러울 땐 어떻게 해야 할까. 또, 무기력하게 깨져버린 꿈의 조각들이 온 몸을 할퀴어 올 때, 그땐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여기에 대해선 그 누구도 명쾌한 해답을 내놓지 못한다. 꿈을 위해 모든 것을 맨 몸으로 해결해야만 하는 청년들에겐 꿈은 어떤 존재일까.

<투데이신문>이 만나본 꿈꾸는 빈곤 청년들의 눈빛은 그 무엇보다 뚜렷이 빛났다. 그럼에도 그들은 아침이고, 밤이고 죽어있다. ‘꿈의 가격’을 제때 지불하기 위해서다. 언제 이뤄질지 모르는 꿈을 오롯이 자력으로 해결해야만 하는 청년들은 심적으로도, 물적으로도 빈곤했다. 청년들은 꿈을 담보로 가불인생을 살고 있다. 

너무나도 성실한 이들은 깨어있는 동안 꿈의 청사진에 열심히 덧칠한다. 꿈은 아름답다고들 말하니까, 여기저기서 열심히 긁어모은 가장 선명한 색으로 가득 채운다. 그런데 이상하다. 덧칠을 하면 할수록 소중한 청사진이 흐려진다. 청년은 급하게 붓을 내려놓는다. 대한민국 청년들이 그려나가는 꿈의 가격은 얼마일까. 

성후씨가 홍대입구역 근처에 위치한 지하 연습실에서 기타 연주를 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성후씨가 홍대입구역 근처에 위치한 지하 연습실에서 기타 연주를 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박세진·박효령 기자】 쿵쿵 울리는 심장, 저절로 들썩이는 몸. 이처럼 잠자고 있던 감각을 깨워주는, 5일 내내 반복되는 평범한 일상을 완전히 뒤바꿔주는 존재는 바로 ‘음악’이다.

김성후(가명·29)씨는 그 음악을 열렬히 사랑한다. 그래서 남들보다 부지런한 일주일을 산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열심히 직장인으로서 근무하고, 주말만 되면 기타 가방을 멘 채 홍대 거리로 나선다. 로큰롤을 연주하고 있노라면, 일에 지친 시간들을 모두 보상받는 기분이 든다. 이에 성후씨는 잠과 휴식 시간을 줄여서라도 음악 앞에 선다.

중학교 시절 독학으로 배운 기타는 지친 일상에 활기를 채워주는 역할을 했다. 그래서 그는 학교를 마치고 나면 항상 작은 방에 들어와 쉴 새 없이 기타를 쳤다. 학창 시절을 가득 채운 음악이었지만, 성후씨는 음악을 선뜻 진로로 택할 수 없었다. 겁쟁이 같지만, 음악으로는 ‘먹고 살기’ 빠듯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택하게 된 길이 평일에는 직장을 다니고, 주말에만 밴드 활동을 하는 것이었다. 평일 내내 일에 치여 주말 정도는 늦잠도 자고, 밀렸던 일도 하는 등 쉬고 싶지만 음악을 멈추게 된다면 그에겐 인생의 동력이 멈추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그는 남들보다 부지런하기 위해 애쓴다. 몸은 힘들지만 마음만은 행복하다.

주말마다 소중한 시간들을 쪼개고 나눠 주말에는 밴드 연습에 참가하고, 그 연습의 결실로 작은 공연을 종종 열고 있다. 이러다 보니 2년 전부터 직장인 밴드에도 들어가게 됐고, 현재까지 어엿한 기타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차곡차곡 준비한 음원도 발매하며 새로운 기회를 엿보고 있다.

하지만 기타리스트로서의 시간은 한정적이다. 주말이 끝나면, 그는 화려한 퍼포먼스를 뽐내는 무대 위 기타리스트가 아닌 평범한 직장인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성후씨의 꿈은 마치 ‘한 여름밤의 꿈’처럼 뜨겁게 불타올랐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기 일쑤다. 그 차이에서 오는 공허함이 그의 하루하루를 채워가고 있다.

성후씨가 평일 아침 출근하고 있다. 그는 전철 한 번을 타고 내린 후, 15분을 걸어 회사를 다닌다. ⓒ투데이신문<br>
성후씨가 평일 아침 출근하고 있다. 그는 전철 한 번을 타고 내린 후, 15분을 걸어 회사를 다닌다. ⓒ투데이신문

보이지 않는 불협화음

성후씨의 평일은 단조로움 그 자체다. 아침 8시가 되면 그는 평소와 똑같이 눈을 뜨고, 짜인 계획표처럼 출근 준비를 한 뒤 집을 나선다. 그리고는 약 5분 정도 걸어 집 인근 지하철역으로 향한다. 가만히 플랫폼 앞에 서 기다리다 보면 출근하는 사람들로 가득 찬 만원 지하철이 앞에 선다. 성후씨는 그 안에 익숙한 듯 작은 공간을 찾아 몸을 욱여넣는다. 그 안에서 몇십 분을 고개 숙여 휴대폰만 하다 보면 어느새 회사 근처 역에 도착한다.

역에서 내려 약 15분가량을 걸으면 회사에 도착한다. 그렇게 들어간 회사는 각자 제 맡은 일하느라 정신없는 사람들로 가득 찬 상태다. 성후씨도 얼른 그 대열에 합류해 업무를 진행한다. 가만히 주변을 둘러보면, 마치 공장 속 진열된 기계들 같다. 할 일만 딱딱 처리해내면 되는 감정없는 로봇 말이다. 

현재 성후씨가 하는 일은 기업의 홍보·유튜브 영상 등을 편집하는 PD다. 하루 8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그는 3면이 가림막으로 둘러싸인 책상 앞에 앉아 하루 종일 컴퓨터 모니터를 바라본다. 그 작은 공간에서 일하다 보면 마치 새장 속에 갇힌 새가 된 기분이 든다.

마감 기한을 맞추기 위해 쉬는 시간도 없이 화장실 갈 시간도 아껴가며 일에 집중한다. 작업량이 많을 때면 연장 근무는 기본이고, 밤샘 근무를 한 적도 종종 있어 시간 관리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근무시간 내내 빛을 내뿜는 모니터 화면을 바라본 그의 눈은 퇴근 때만 되면 빨갛게 충혈된다. 회사를 다니기 시작한 이후로, 눈의 피로와 두통은 고질병처럼 그를 따라다닌다.

오후 7시가 되면 성후씨는 자리에서 일어나 퇴근을 준비한다. 길고 고됐던 노동이 끝났지만, 기분은 나아지지 않는다. 터덜터덜한 발걸음으로 회사 밖을 나서면 다시 한번 아침에 이미 걸었던 출근길을 되밟는다. 가는 방향에만 차이가 있을 뿐 출퇴근길은 변함없이 같은 방식으로 흐른다.

이처럼 성후씨의 매일 반복되는 하루는 누군가에 들려주기에는 너무 뻔할 정도로 단조롭고 건조했다. 만일 일일 계획표를 작성한다면, ‘출근-업무-퇴근’, 단 여섯 음절로 하루를 표현할 수 있을 정도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게 제 할 일을 묵묵히 해내지만, 내면에는 영상 편집의 일이 아닌, 다른 색의 불꽃이 일렁인다. 매일 반복되는 평범한 하루를 사는 그의 머릿속을 불쑥불쑥 헤집는 생각은 무대 위 관객들의 박수를 받으며 기타 연주를 하고 있는 자기 자신의 모습이다. 

성후씨의 집에 놓여 있는 기타의 모습. 음악 장비와 기타 등이 4.5평짜리 방 한 칸을 차지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성후씨의 집에 놓여 있는 기타의 모습. 음악 장비와 기타 등이 4.5평짜리 방 한 칸을 차지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방 한켠 속 일렉 기타

중학생 시절, 우연찮게 밴드 ‘노브레인’의 노래를 듣자마자 성후씨는 음악에 미친 듯이 빠져들었다. 경쾌한 음악과 박자가 귀를 자극했고, 잠자고 있던 온몸의 감각을 깨우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런 느낌은 낯설지만, 너무나도 짜릿해 계속해서 느끼고 싶었다. 이에 그는 바로 음악 학원을 찾아가 기타를 배웠다.

하지만, 집 안 사정이 넉넉하지 않았을뿐더러 학업에만 집중하는 것을 원하는 가족으로 인해 그는 한 달만에 학원을 관둘 수밖에 없었다. 그 대신 어머니에게 조르고 졸라 당시에 무려 34만원짜리 기타를 샀다. 드디어 자신의 첫 기타를 손에 얻은 성후씨는 매일 저녁 연주에 심취했다. 인터넷에 올라온 동영상과 집 근처 서점에서 구매한 악보를 보고 꾸준히 독학했다. 그러다 보니, 일취월장으로 실력은 늘어만 갔다.

하지만 성후씨는 고등학교 3학년, 수험생 시절 진로의 벽에 부딪혔다. 나름 괜찮은 기타 연주 실력과 음악에 대한 열정, 이 단 두 가지로는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남들처럼 공부해서 대학에 들어가면 언뜻 미래가 그려졌고, 돈을 벌 수 있었다. 하지만 과연 음악으로는 성공할 수 있을까 막연한 두려움이 밀려왔다. 특히 음악 중에서도 자신이 꿈꾸는 밴드 음악은 더욱 힘든 길이라는 것을 성후씨 스스로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성후씨는 결국 안전한 길을 택했다. 스스로가 비겁하고 답답했지만, 열아홉 살 그 어린 나이에도 사회는 참 쓰다는 것을 이미 깨달았다.  자신의 첫 기타를 보며 그는 눈물을 삼켰다. 기타는 사람도 아닌데, 그는 기타를 향해 연신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렇게 대학교를 다니고, 지금의 회사에 취업했다. 고향인 여수에서부터 서울 자취방까지 먼 길을 함께한 기타는 점점 방구석에 박혀갔고, 먼지만 쌓여갔다. 그 광경을 볼 때마다 성후씨의 마음속에는 자꾸 고이 접어 뒀던 꿈의 종이가 자꾸만 펼쳐졌다. 자꾸 눈길을 다른 대로 돌려도 감각이 음악을 기억해서 자꾸 원점으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매일 똑같이 흘러가는 하루에 성후씨는 웃음을 잃어갔다. 그야말로 삶의 ‘재미’가 없었다. 비가 오지 않아 바싹 메마르고 생기가 없는 논처럼, 그의 마음에는 가뭄이 일었다.

그러다 문득, 더 이상 이렇게는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방하나에서 언제까지 신세한탄만 할 수 없었다. 성후씨는 SNS를 뒤져서 밴드 인원을 모집하는 구인 광고를 찾게 됐고, 곧바로 지원했다. 그러자 마자 성후씨의 마음에는 단비가 내렸다. 음악을 다시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이 몇 년이나 이어진 마음의 가뭄을 멈추게 했다.

여러 번에 오디션 끝에 밴드에 들어가게 된 성후씨는 그동안 모아 왔던 돈으로 기타 120만원, 이펙터(기타 음색을 바꿔주는 장비) 등 각종 음향 장비 300만원, 페달 등 부수적 용품 150만원 등을 포함해 약 570만원을 지출했다. 당장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이다 보니, 구매할 용품이 정말 넘쳤다. 성후씨는 최대한 아끼고 아꼈지만 모아뒀던 돈을 다 쓰고야 말았다. 

형편상 음악 장비 구매는 꽤나 큰 지출이었지만, 이때만큼은 아깝지 않았다. 주말만 되면 늘어져 침대 밖으로 나올 생각을 않던 몸은 연습날만 되면 활기가 돌았다. 평소 출·퇴근 시간보다 30분을 더 넘게 가야 하는 거리에도 성후씨는 설렘으로 저절로 미소 지었다.

성후씨는 게으름 떨지 않고 부지런하게 꾸준히 달려갔다. 평일에는 퇴근하고 오면 방에서 기타를 치고, 작곡을 하고, 음악을 들었다. 주말에는 밴드 연습에 참가해 3-4시간을 마음껏 합주했다. 자신들만의 음악도 녹음하고, 그것으로 작은 소공연장 무대도 몇 번 섰다. 공연을 이어가다 보니 이제는 제법 공연 해달라는 연락도 온다. 그리고 자신의 공연을 보러 온 한 관객과 사랑을 시작했다. 그제야 성후씨는 꽉 조여왔던 숨통이 트이는 것을 느꼈다.

4.5평짜리 한숨만 가득했던 방은 이제 그만의 작은 공연장이 됐다. 자신의 색을 담은 음악을 기타로 연주하고 있노라면 너무 지루에서 하품이 새어 나오던, 보잘것없던 자신의 하루도 특별해 보이기 시작했다.

성후씨가 회사에 영상 편집 업무를 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성후씨가 회사에 영상 편집 업무를 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무엇을 위한 연주일까

‘만약 어떤 소속사에서 모든 지원을 해주는 대신, 모든 일을 관두고 음악에 집중하라고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성후씨는 단번에 그렇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반대로 그는 단순히 소속사에 들어와서 음악에 집중하는 게 계약조건이면 어떻겠냐는 물음에 대답하지 못했다. 당장 걸리는 생활비, 집세, 공과금 등이 바로 성후씨의 머리를 스쳤기 때문이다.

실제로 ‘2021년 예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겸업 예술인의 76.3%는 ‘소득 문제’로 예술활동 외 직업에 종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술활동 외 직업 종사 이유로는 ‘현재 예술활동에서의 낮은 소득’ 응답이 42.6%로 가장 높았으며, 뒤이어 ‘현재 예술활동에서의 불규칙한 소득’ 응답이 33.7%로 조사됐다. 이를 직군별로 살펴보면 문학(50.9%), 공예(49.5%)가 낮고 불규칙적인 소득에 허덕이고 있었다. 문학, 공예 다음으로는 성후씨가 속한 대중음악(49.0%) 분야로, 비교적 높은 순위를 차지했다. 해당 통계 조사는 그가 전업 예술인으로 전향하는 것이 망설여지는 이유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처럼 예술 활동은 소득이 낮은 편이기에 성후씨는 직장을 다니며 밴드 활동을 ‘겸업’하고 있다. 이와 같은 사례도 점점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5월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에서는 주 업무 외에 부업을 한 적이 있는 사람이 63만명으로 집계됐다. 해당 수치는 1년 전보다 9만8000명(18.4%) 증가했으며, 지난 2003년 관련 통계를 발표한 이후로 최대다. 

더욱이 국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가 도래한 지 이제 3년이 다되어가는 현 시점에서 큰 타격을 입은 대중음악계는 힘겹게 버텨가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음악레이블산업협회에 따르면 올해 대중음악계 매출은 지난해 대비 78% 하락했다. 지난해 2월부터 올 6월까지 공연 1094건이 취소됐고, 금전적 피해는 무려 1844억원으로 추산됐다.

성후씨 또한 공연을 연기하거나 취소한 적이 많았다. 특히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인디밴드다 보니 취소 대상에 1순위가 되기엔 충분했다. 

실제 밴드 활동을 하고 있는 4년 차 음악인 A씨는 “밴드를 하는 사람들은 그대로인데 점점 연주할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지고 있다”며 “얼마 안 남은 공연을 한다 해도 수익성이 없어 꾸준한 창작 및 콘텐츠 생산에 큰 어려움이 따른다”고 호소했다.

특히 A씨는 밴드 활동을 유지함에 있어서 적은 수익과 관객 수 등으로 암울했지만 코로나19를 겪고 난 후에는 사회적 편견까지 더해져 더욱 힘든 상황에 직면했다고 털어놨다.

9년 차 밴드 드러머 B씨도 음악·공연업계의 고충에 공감을 표했다. B씨는 “공연장들의 도산과 인디 신(Scene)에 대한 홍보나 접근에 대한 어려움이 지속되고 있다”며 “대중음악 시장으로 굴러가다 보니 원래도 규모가 크지 않았던 인디밴드 시장 자체가 점점 더 작아지고 있고 메인스트림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길도 너무 좁아진 실정이다”고 설명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겸업이 필수이며, 밴드 활동을 평생 직업으로 삼기에는 어려움이 많아 포기하거나 취미 형식으로 음악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B씨는 토로했다.

지난달 성후씨가 상수역 인근 지하 공연장에서 밴드 공연을 하고 있는 모습. ⓒ투데이신문
지난달 성후씨가 상수역 인근 지하 공연장에서 밴드 공연을 하고 있는 모습. ⓒ투데이신문

클라이막스를 향해 크레센도(cresc.·점점 크게)

“덜컥 상경하고 나니, 부모님 지원 없이는 시작할 수가 없더라고요.”

성후씨의 고향에는 영상 편집을 하는 회사가 거의 없을뿐더러, 돈을 벌 생각으로 덜컥 오른 서울길은 본격적으로 그를 위기 속에 몰아넣었다. 취업이 확정되고 당장 구한 첫 집은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45만원의 반지하 방이었다. 채광도 거의 없고 좁은 4평짜리 방이었지만, 그마저도 부모님이 480만원가량을 지원해준 덕에 살 수 있었다.

최근에는 운이 좋게 SH에서 지원하는 ‘역세권청년주택’에 선정됐다. 하지만 선발된다고 해서 목돈이 필요 없는 것이 아니었다. 보증금 3500만원을 지급해야 했는데,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성후씨에게는 큰돈이었다. 더욱이 모아뒀던 돈을 음악 장비를 구입하는데 다 써버려 수중에 남는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성후씨는 부모님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그의 부모님께서 절반이 넘는 금액을 지원해줬다. 입주한 이후에도 월세 25만원과 관리비 12만원을 매달 지출해야 했다. 

그 외에도 성후씨는 생활비 80만원, 연습실 대여비 6만원(2시간당 2만원)을 달마다 지불했다. 월급은 아무리 모아도 모아지지 않아 큰돈이 필요한 경우가 생기면 부모님의 도움이 필수적이었다. 더욱이 돈을 모은다고 한들 정부가 지원하는 주택마저도 주머니 사정 때문에 입주하지 못하는 현실을 마주하다 보니 성후씨의 마음에는 근심이 가득 찼다. 서른을 앞두고 본 지금도 미래는 여전히 막연한데, 현실은 그런 자기 자신을 모르는지 혼자 독주했다.

“밴드를 해보니 알겠더라고요, 수익은 기대하지 말아야겠다는 걸”

성후씨가 밴드 활동을 위해 3-4회 정도 연습실에게 합주를 한다. 연습실 대여비는 2시간당 2만원이다. 지하의 작은 연습실에서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꿈을 키워간다. 그 마음들이 모아 음원을 발매하게 된다면 녹음실비 4곡 기준 40만원, 믹싱비 60만원, 마스터링비 5만원, 음원 유통비 10만원을 지출한다. 하지만 비용이 전부 돌아오지 않는다. 운이 좋아 그 음원으로 공연으로 넘어가게 되면 팀으로 4~6만원이 주어진다.

성후씨가 밴드활동을 한 2년 6개월 동안 음원 제작에 601만원 이상을 투자했지만, 공연비로는 4명인 성후씨의 밴드는 대략 1만원 정도 받는 셈이다. 더욱이 해당 밴드는 유명하지 않은 인디밴드이기 때문에 음원으로 얻는 수익금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더욱이 코로나19 여파로 공연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해 기준 7회 공연이 전부였다. 이렇듯 지난해 성후씨가 공연 수익으로 얻는 돈은 7만원에 불과하다. 

“전업을 하진 못하지만 겸업이라도 계속 유지할 생각이에요.”

영화 ‘비긴어게인’ 속에서 주인공 댄은 “난 이래서 음악을 좋아해, 이 따분한 일상의 순간들이 갑자기 아름다운 진주들로 변하거든”이라고 말한다. 이는 성후씨도 무척이나 공감하는 말이었다. 가만히 앉아 일을 하고 있다 보면, 무대 위에서 연주하는 자신이 떠오른다. 컴컴한 지하를 굽이굽이 들어가 무거운 철문을 열면 나오는 작은 공연장. 그 안에서 귓가를 마구 자극하는 큰 음악, 눈부신 조명, 자신의 연주와 발맞추는 합주, 관객들의 환호. 모두 성후씨를 뒤바꾸는 가장 큰 자극제다.

하지만 자극이 된다고 해서 생계를 내버려 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앞으로 해나가야 할 인생의 숙제들이 아직 많이 남았기 때문이다. 그 숙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경제적인 자금이 반드시 필요했다. 그래서 자신의 소중한 꿈을 2번 타자로 뒀다. 그 대신 더 부지런해지기로 했다. 직장인으로 평생을 살아가되 언제든 삶이 공허해지면 속 깊이 묻어뒀던 음악을 꺼낼 예정이다.

성후씨는 32개월 동안 꿈을 지키기 위해 약 1205만원을 ‘꿈의 가격’으로 납부했다. 또한 이를 유지하기 위해서 4200만원 이상을 지출했다. 하지만 앞으로 현실과 타협해 지출하는 금액은 점점 낮아지고, 언젠가는 지출이 멈출지도 모른다. 꿈만 가지고 만루홈런을 꿈꾸기엔 사회 속 장벽은 너무나도 높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는 1루부터 끊임 없이 달려왔고, 앞으로도 멈추지 않을 예정이다. 과연 청년의 소중한 꿈이 외야를 넘어 하늘에 수놓아질 수 있을까.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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