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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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 심리에서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을 하나의 대상처럼, 혹은 한 명의 타인처럼 객관화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슬픔이나 상처에 매몰된 이는 거기에 잠식된 사고를 통해 자기 자신을 판단하고 그 속으로 더욱 깊이 침잠하는 악순환에 시달리게 된다. 따라서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자기 자신으로부터 빠져나와 거리를 두는 훈련이 필연적으로 요청된다. 오은경 시인의 『산책 소설』(현대문학 2021)은 흡사 이러한 임상 심리 훈련의 과정처럼 보인다. ‘소설’이라는 표제를 가장한 시들은 자신의 내밀한 속내를 흔쾌히 드러내지는 않겠다는 듯, 그러나 그것을 탐문하고 찾아나서는 과정만은 보여줄 수 있다는 듯 어떤 방어 기제를 취하고 있다.

독자와 화자는 자연스레 상담자와 내담자의 구도를 취하게 된다. 시 속의 화자는 내면의 무언가를 끄집어내기 위해 희뿌연 기억 속을 더듬고 또 헤집는다. 그 실체는 언제나 불명확하며 왜, 그리고 무엇을 위해 그것을 기억해내야 하는지는 화자는 물론이고 난데없이 상담자의 의자에 앉혀진 독자 또한 알지 못한다. 그저 책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미지의 무엇을 함께 추적하는 구도만이 시집을 펼치는 순간 끝없이 구현되고 있을 뿐이다. 알 수 없는 무언가를 추적하는 이 형식을 통해 오은경의 시가 추구하는 것은 자아로부터 떨어져나와 막 독립된 대상이 되려 하는 두루뭉술한 실체와의 조우이다.

과거에 대한 기억을 환기하면서도 화자는 끊임없이 의심한다. “쪽문을 통과하기 전에 네가 머리를 숙였던가?”(「흩어진 구름」) 하고 자문하기도 하고, “계단을 내려가면 언젠가 발을 잘못 디뎌 넘어졌던 기억이 떠오른다”고 했다가도 “아니, 사실/넘어진 건 내가 아니라 친구였다”고 금세 진술을 정정하기도 한다(「꽃샘추위」). 허리를 숙이는 자세를 취했던 기억을 떠올리면서는 “(다시 말하지만 고통은 없었다/실이 빠져나왔고 감추려 노력했을 뿐)”이라고 괄호를 통해 진술을 부연하기도 한다. 화자의 진술은 거듭 번복되거나 수정을 거치면서 애초의 진술과는 거리가 먼 무엇, 어쩌면 그래서 더욱 명확한 실체를 얻게 될지도 모를 무언가를 형성해간다.

그러나 그 ‘무엇’은 과연 진실이거나 진실에 가까운 것일까? 혹은 질문을 바꿔서, 진실에 근접한다고 해서 과연 자신을 하나의 온전한 대상으로 세울 수 있는 것일까? 표제작인 「산책 소설」을 살펴보면 꼭 그렇지는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화자는 과거의 어느 날 산책을 했던 기억을 회상하고 있다. 벤치를 여럿 지나쳐 걷는 도중 또래의 여자애를 마주친 기억이 진술된다. “여름용 리넨 셔츠”를 입고 “한쪽 어깨에 멘 숄더백”을 쥐고 있는 여자애의 용모나 “비둘기들이 모이를 쪼아대는 광경” 등이 펼쳐지고, 여자애가 향했을 풀숲의 녹음이 생생한데, 화자는 돌연 “여기까지가 상담 내용을 바탕으로 내가 쓴 소설”이라고 말한다.

화자의 기억은 세밀한 디테일까지 놓치지 않음으로써 진실에 가까운 무엇을 흉내내고는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소설에 불과한 셈이다. 혹은 소설이어야만, 진실을 곧장 직면하지 않고 그 주변을 에둘러 맴돌 때에만 진실은 간신히 손에 잡힌다고 할 수 있다. 즉 내담자의 진술은 진실 자체가 되려고 하는 게 아니라 진실을 하나의 독립된 대상으로 놓아주어야만 한다. 그랬을 때 비로소 자신 또한 하나의 대상이 될 가능성을 얻게 되리라. 시인은 시를 가장한 임상 심리 훈련으로부터 “그림자를 통해 사물과 사람의 정체를 알아맞힐 수도 있”는(「강아지의 이름은」) 상태에 도달하고자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기에 임상 심리가, 혹은 시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대상이 아니라 대상의 ‘그림자’를 형상화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과거를, 기억을, 자아를 단순히 하나의 대상으로 처리하는 것을 넘어서, 혹여나 그 대상마저도 숨막히게 움켜쥘 위험까지도 차단하기 위해 대상의 그림자만이 구체적인 대상이 될 자격을 얻는다. “그늘이 가득”한 아파트 단지 안 “내 앞에 가로놓여 있”는 “원뿔 모양의 빛”(「장미 나무와 햄스터」)처럼, 이 그림자-대상은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가느다란 핀 조명을 받으며 서 있다. 내 안에 단단히 뿌리를 내려 나를 사로잡고 고통스럽게 했던 그것이 내 바깥 머나먼 어딘가로 떨어져 나가 고요하게 존재하고 있으리라는 상상보다 더 완벽한 치유는 없을 것이다. “멀리 조성된 조경 어딘가에는 내 작은 묘목도 자라나고 있을 것이다.”(「어지러운 마음」) 오은경의 시는 우리를 구원하는 그 아득함의 주변을 천천히 맴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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