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서정인 기자
▲투데이신문 서정인 기자

【투데이신문 서정인 기자】 ‘월요일’, ‘출근길’, ‘지하철’. 나열되는 세 단어를 보고, 인상을 찌푸리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위 단어에 해당되는 부정적인 에피소드 하나쯤은 갖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인구 밀집도가 높은 수도권은 원활한 이동을 위해 지하철이 발달했지만, 어느 순간 ‘지옥철’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다. 1호선부터 9호선까지 불리고 있는 별명도 다양하다. 노이즈 캔슬링도 뚫고 들어오는 ‘굉음의 악마 5호선’, 제시간에 도착하지 않는 ‘왜곡의 악마 경의중앙선’, 완행과 급행의 극단적 이중성을 보이는 ‘두 얼굴의 악마 9호선’, 많은 사람들 꽉꽉 채워 넣은 ‘혼돈의 악마 2호선’ 그리고 부가 설명이 필요 없는 ‘죽음의 악마 1호선’까지 지하철을 둘러싼 부정적인 인식이 만연해있다.

그 중 1호선에 대한 인식은 가장 최악이라 할 수 있다. 한 커뮤니티(유튜브 취재대행소 왱)에서 “가장 타기 싫은 수도권 지하철은 몇 호선인가요?” 라를 주제로 투표한 결과, 2만3000명 중 67%가 1호선을 꼽았다. 노후화된 시설, 가장 긴 노선으로 헷갈리는 행선지 등 1호선이 최악의 지하철로 선정된 이유는 다양했지만, 그중 주된 원인은 ‘사람’이었다. ‘1호선 빌런’이라는 호칭이 있을 정도로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유명 인사들을 마주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자도 평소 1호선에서 겪은 불편함을 상기시키며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원인을 찾기 위해 역사로 향했다. 종일 지하철에 몸을 싣고 돌아다니며 ‘1호선 빌런’과 마주치길 바랐지만, 예상과 다르게 그곳에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굴러가는 전차 소리는 마음을 평안하게 만들었다. 

그런 평화를 만끽하고 있을 때, 우연히 한 연인의 대화를 엿듣게 됐다. 전차 안은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이동하는 승객뿐이었지만, 1호선엔 역시 빌런이 참 많다며 불편함을 호소하고 있었다. 하차하기 위해 비좁은 승객들 사이를 지나가는 한 노인이 연인과 살짝 스치게 되자 터져 나온 발언이었다. 

이용객이 많은 전철에는 흔히 일어나는 일이지만, 이곳이 인터넷에서 보고, 사람들에게 전해들은 1호선이기에 그들이 겪은 불편함을 더 극대화한다고 느껴졌다. 1호선에서 벌어지는 사건·사고의 원인을 찾으러 역사를 찾았지만 되레 그들의 대화를 듣고 원인은 기자 본인의 편협한 시선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그렇게 1호선이 최악의 지하철로 선정된 원인인 ‘사람’과 대화하기 위해 다시 역사를 방문했다.

하루 평균 286만명이 이용하는 수도권 전철 1호선에서 대화 상대를 발견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기자는 낯선 사람과 대화하려 ‘1호선 빌런’을 자초하기도 했지만 분주한 발걸음 소리, 지하철 안내 소리 등 역사 안은 익숙하면서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 줬고, 취재 목적을 공유한 순간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다.

모든 취재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인터뷰 대상 중에선 아무도 1호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없었다는 점이다. 물론 복잡한 1호선에서 인터뷰를 응할 만큼 시간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기에 긍정적인 의견을 내비쳤을지도 모르지만, 그들과의 대화에서 편견과 왜곡으로 찌든 오래된 색안경을 벗어야 할 때임을 알 수 있었다. 

시청역에서 한참을 떠들고 있던 박용화씨는 평생을 노숙자를 도우며 살고 있는 의사였고, 가산디지털단지역에서 갑자기 기자에게 말을 건 김화자씨는 사람의 상처를 기록하는 시인이었다. 

1호선엔 다양한 사람이 탑승하는 만큼 그들이 살아온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각자의 역사가 있는 사람들이 이곳을 꾸리고 있었다. 불편한, 불쾌한 인상이 강했던 전철 안에서 우린 어느 순간 친구, 인연, 손주가 되었고 일생을 공유하는 사이가 됐다. 

우리는 공생하는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1호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의 원인을 ‘사람’으로 꼽았다. 그들의 삶을 조금도 들여다보지 않은 채 단면적인 시선으로 1호선에 모인 사람들을 악인으로 판단했다. 

불편하고, 부정적인 시선 대신 전철 안에서 만난 승객들을 누군가의 가족이자 이웃이라고 떠올려 보면 어떨까. 그런 마음가짐이 내일의 1호선도 평화롭게 만들어 줄 수 있다는 기대를 해본다. ‘죽음의 악마 1호선’이라는 오명을 벗어던지고 오늘을 넘어 ‘내일도 평화로운 1호선’이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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