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스(OLDs)> 기억해야 할 두 번째 소식, ‘대구지하철화재참사’
2003년 2월 18일, 중앙로역서 화재…사망자 192명, 부상자 151명
직접적 원인 ‘방화범 김대한’…간접적 원인 ‘위기 대처능력 부족’ 꼽혀
보고서엔 ‘평생건강관리 프로그램 중요’ 기재…정작 피해자 관리는 X
남겨진 피해자들 “참사 이후 지원도, 보상도 전혀 받지 못해” 호소
대구시 “국가와 지자체 차원 부상자 최대한 지원 하기 위해 노력중”

“지금 우리 시대의 진정한 언론은 ‘뉴스news’가 아니라 ‘올드스olds’에 있어요. 얼마만큼 희석되지 않고 시간을 견디는, 한 노동자가 죽은 사건을 10년 이상 들여다보는 언론이 필요한 거예요. 세월호 참사를 20년, 30년 취재하는 언론이 필요해요. 그런데 조회 수에 의존하는 언론이 그게 가능할까요? (중략) 2000~3000년 전에도 가능했고 앞으로도 지속 가능할 수 있는, 그런 것들을 얘기해야 돼요. 이제는 뉴스의 시대가 아니라 올드스의 시대니까요.” - 도서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中 

올드스(OLDs)는 투데이신문이 ‘오래된’이라는 뜻의 ‘Old’와 ‘소식’이라는 뜻의 ‘News’라는 뜻을 담아 만든 코너명입니다. 오랫동안 기억해야 하고 반복되지 말아야 할 사건을 재조명하기 위해 출발했습니다. 속보 경쟁에서 벗어나 ‘그때’와 ‘지금’을 짚어봅니다. 신문 헤드라인에서 지금은 한 모퉁이로 자리는 옮겼지만 마음 한 가운데 남아야만 하는 오래된 뉴스를 찾아 소개하겠습니다. 

지하철 화재 당시 CPR을 실시하고 있는 의료진들. [사진제공=대구지하철참사희생자대책위]
지하철 화재 당시 CPR을 실시하고 있는 의료진들. [사진제공=대구지하철참사희생자대책위]

【투데이신문 박세진 기자】2003년 2월 18일. 대구가 멈췄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 방화범 김대한의 방화로 벌어진 일이다. 이 화재로 도시 전체가 검은 연기에 휩싸였다. 거대한 화염과 유독가스로 인해 구조대원들은 현장접근조차 힘들었다. 결국 구조는 지연될 수밖에 없었고, 거대한 화마 앞에서 모든 것이 멈췄다. 부모, 자식, 친구, 가족들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모여든 이들의 얼굴에는 하염없이 흐른 눈물자국만 깊게 파여 있었다. 흐르는 눈물을 제외한 모든 것이 멈춰버린 이 참사는 사망자 192명, 부상자 151명 총 343명의 인명피해를 일으킨 ‘대구지하철화재참사’로 불린다.

올해로 20주기를 맞은 ‘대구지하철화재참사’. 화재가 최초로 발생한 중앙로역에는 여전히 다양한 사람들이 오고 간다. 단핵도시구조를 띠는 대구 특성상 대다수의 사람들은 중앙로역을 거쳐갈 수밖에 없다. 특히 사고가 발생했던 시간과 동일한 오전 9시 53분경에는 그때 당시와 변함없이 직장인, 학생, 노인, 어린아이 등 너 나 할 것 없이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중앙로역을 스쳐간다. 이들에겐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하루이자 삶이다. 참사가 벌어진 2003년 2월 18일로부터 20년이 흐른 지금. 참사가 남긴 흉터를 안고 사는 이들의 삶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당시 대구가 멈췄던 것처럼, 남겨진 이들의 삶은 여전히 멈춰있었다.

화재 현장을 지키는 경찰인력들. 모두 방독면을 착용하고 있다. [사진제공=대구지하철참사희생자대책위]
화재 현장을 지키는 경찰인력들. 모두 방독면을 착용하고 있다. [사진제공=대구지하철참사희생자대책위]

비극의 발화...‘직접적 원인’과 ‘간접적 원인’

대구지하철화재 참사는 크게 직접적 원인과 간접적 원인 두 가지로 나뉜다. 직접적으로는 방화범 김대한이 1079호 전동차 안에서 방화한 범죄가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된다. 당시 김대한은 휘발유가 들어있는 플라스틱통에 가스라이터로 불을 붙인 이후 지하철 바닥에 던져 불을 냈다.

지난 2001년 상반기경 김대한은 뇌경변을 일으켜 지체장애 2급 판정을 받았다. 그는 증세가 호전될 가망이 없자 삶을 비관해 타인과 함께 죽을 생각을 하고 오전 9시 30분경 안심역 방면으로 운행하는 1079호 전동차 1호 객차에 탑승했다. 탑승 당시 김대한은 1회용 가스라이터 2개, 용량 4L의 휘발유가 담긴 흰색 자동차세척용 샴푸통을 들고 있었다.

탑승 이후 오전 9시 53분경 1079호 전동차가 중앙로역에 도착할 무렵 노약자석 옆 일반석에 앉아 있던 김대한은 1회용 가스라이터를 꺼내 불을 켜려고 망설이고 있었다. 이에 맞은편 승객이 “왜 자꾸 불을 켜려 고하느냐”고 나무라자 순간적으로 불을 붙이기로 결심, 샴푸통에 들어 있는 휘발유에 불을 붙였다.

휘발유에 의해 삽시간에 번진 초기 화재는 전동차 내부의 바닥 및 내장재, 의자, 광고판으로 옮겨 붙었다. 당시 전동차는 불연재가 아닌 내연재 소재였기에 더욱 빠르게 불이 번졌다. 화재가 발생한 전동차에서 방출되는 고온의 화염과 복사열은 터널형태의 폐쇄 공간인 지하철 승강장의 실내온도를 급격히 상승시켰고, 이는 반대편 승강장에 도착한 1080호 전동차로 연소가 확산되는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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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0호 기관사-종합사령실간 교신내용. 긴박했던 상황과 달리 종합사령실의 대응 과정이 미흡한 사실이 여실히 드러났다. [자료출처=대구광역시]

간접적인 원인으로는 지하철공사 등 외부 비상대응기관 직원들의 위기 대처능력 부족이 손꼽힌다. 화재발생 시 기관사 등 최초 발견자가 화재발생 사실 및 현장상황을 종합사령실에 보고하고, 이에 종합사령실에서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했으나 화재 발생 당시에는 일련의 과정들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화재당시 1079호 기관사는 화재발생 즉시 해당 사실을 종합사령실에 보고하지 못했다. 종합사령실은 중앙로역 역무원으로부터 화재 발생 사실을 통보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중앙로역 인근 대구역에서 출발하고 있던 1080호 전동차에 역 내 진입을 저지하거나 무정차 통과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

당시 종합사령실은 운행 중인 모든 전동차에 대해 “중앙로역 진입 시 조심해 운전해 들어가시길 바랍니다. 지금 화재 발생됐습니다”라고 막연하게 지시했다. 이에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 1080호의 기관사는 중앙로역 구내로 진입했다. 결국, 승객대피가 아닌 전동차 출발에 집착한 결과 승객들의 대피시기를 놓쳐 대형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부상자 김씨의 어머니&nbsp;ⓒ투데이신문
부상자 김씨의 어머니 ⓒ투데이신문

떠올리기 싫은 당시의 기억…남겨진 피해자 가족

이렇듯 충분히 인명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었던 참사였음에도 불구하고 대규모의 사상자가 발생한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 20년이 흐른 지금도 피해자 가족들은 그때 당시를 회상하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긴 시간이 흘러도 도저히 아물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마음의 병을 얻은 탓이다.

화재가 발생한 지난 2003년 2월 18일 오전 10시 무렵, 당시 고등학교 3학년 딸을 둔 김현숙(가명·59세)씨의 휴대전화가 바삐 울렸다. 중앙로 지하철역에 불이나 안부차 걸려온 지인의 전화였다. 김씨는 대구의 중심부에서 발생한 화재였기에 곧 진화될 것이라 여겨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얼마 뒤 갑작스러운 불안감이 엄습해 오고, 혹시 몰라 학원을 가던 소중한 고등학교 3학년 딸에게 전화를 걸었다. 딸이 전화를 받지 않는다. 그때부터 김씨에겐 이 화재가 매우 대수로운 문제가 됐다. 

“아들한테 전화가 왔어. 내 딸을 데리고 영대병원 응급실 가는 길이라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어. 하던 일을 모두 다 팽개치고 뒷 일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응급실로 달려갔지. 근데 응급실에 있던 사람들 얼굴이 다 검은색이야. 시꺼멓게 다 그을려서 누가 누군지, 도대체 내 딸이 어딨는지 알아볼 방법이 없는 거야. 아비규환이었지”

불행 중 다행으로 김씨의 딸은 살아있었다. 지하철 화재가 발생했으니 잠시만 기다려달라는 방송이 흘러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김씨의 딸은 문이 열리자마자 밖으로 달려 나갔다. 역사 밖으로 탈출 하던 도중 연기를 과도하게 마신 탓에 자신도 모르게 쓰러졌고, 눈을 뜨니 응급실이었다는 것이 딸의 증언이다. 

모두가 살아있음에 다행이라 하지만, 정작 김씨는 참사 이후 남겨진 이의 삶은 ‘지옥’이라고 말한다. 김씨의 딸은 참사의 후유증으로 우울증을 앓고 있다. 지하철 화재 당시 마주했던 광경은 당시 어린 고등학교 3학년 학생에겐 너무나도 가혹했다. 이후 김씨의 딸은 더욱더 예민해지고 삶에 의욕이 현저히 떨어졌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행위를 16번이나 반복했다. 그것도 자신을 그렇게 아끼고 사랑하는 어머니의 앞에서. 김씨는 그런 딸의 모습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꿈 많던 딸이 참사 이후 모든 걸 포기하고 살아. 딸이 이렇게 되고 우리 가정이 모두 망가졌어. 정신적인 판단이 흐려진 딸과 매일같이 싸워. 이런 상황이 지속되다 보니 참다 못한 남편과는 이혼했어. 딸이 자꾸만 나쁜 생각을 하니까 나도 스트레스를 받는거야. 스트레스가 누적되다 보니 심장에 이상이 생겨 심장판막 이식을 받았지. 이런 상황이 몇십년 이어지다 보니 결국 나도 우울증 진단을 받고 지금 약을 먹고 있어”

대구지하철참사 부상자 만성후유증관리를 위한 연구용역 최종보고서의 일부. 보고서에는&nbsp;△이들(대구지하철화재참사 피해자)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성별, 연령별 평생건강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nbsp; △하철사고 부상자들에 대한 건강관리는 독립적인 기구의 설립을 통해 대구광역시에서 자체 추진하는 것이 타당하다.&nbsp;△평생건강관리 프로그램의 도입이 필요하다’ 등의 내용이 담겨져 있다 ⓒ투데이신문
대구지하철참사 부상자 만성후유증관리를 위한 연구용역 최종보고서의 일부. 보고서에는 △이들(대구지하철화재참사 피해자)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성별, 연령별 평생건강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하철사고 부상자들에 대한 건강관리는 독립적인 기구의 설립을 통해 대구광역시에서 자체 추진하는 것이 타당하다. △평생건강관리 프로그램의 도입이 필요하다’ 등의 내용이 담겨져 있다 ⓒ투데이신문

살아남은 이들 지옥서 사는데...피해가족 지원은?

‘이들(대구지하철화재참사 피해자)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성별, 연령별 평생건강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지하철사고 부상자들에 대한 건강관리는 독립적인 기구의 설립을 통해 대구광역시에서 자체 추진하는 것이 타당하다. 평생건강관리 프로그램의 도입이 필요하다’

‘대구지하철참사 부상자 만성후유증관리를 위한 연구용역 최종보고서’에는 위와 같은 문장이 쓰여있다. 당시 연구용역을 진행한 경북대학교의과대학, 동국대학교의과대학, 포항산업과학연구원들은 피해자들의 평생건강관리 프로그램의 중요성에 대해 분명히 언급했으나, 정작 피해자들은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피해자 김씨는 “피해자에 대한 지원도 이뤄지지 않는데, 피해자 가족들의 지원이 이뤄지겠느냐”며 “대구시에 민원을 암만 제기해도 그들은 반응조차 없다. 사망자는 평생 추모활동을 하는데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은 전혀 없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하는데 이마저도 힘든 것이 현실”이라고 하소연했다.

대구지하철참사 부상자대책위원회 이동우 위원장은 “참사 이후로 가정이 파탄된 경우가 많다. 이에 대한 실태조사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지하철사고와 연관된 질병으로 돌아가신 부상자들이 15명이다. 이를 미뤄봤을 때 추적조사가 분명히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지난 2021년에 대구시에 제안을 했다. 10년에 한 번 정도라도 실태조사를 해야 한다고. 그런데 대구시 공무원이 그냥 앉아서 전화상으로 실태조사를 하더라. 가만히 앉아서 전화로만 하는 실태조사가  잘 되겠나. 심지어 방문상담은 딱 5곳만 갔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이런 상황 속에서 올해 다시 처음부터 실태조사를 해보고 피해자들을 진정으로 도울 수 있는 부분이 뭔지 함께 방법을 찾아보자고 주장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구시는 국가와 지자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최대한으로 지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대구시청 관계자는 “부상자 관련 조례가 2019년 10월 통과돼 시행일로부터 2024년 10월까지 5년간 의료비를 지원해주고 있다. 대구시는 부상자들에 대한 지원 연장의 필요성을 공감해 2029년까지 지원할 계획도 마련한 상황”이라며 “추후 부상자들이 또다시 연장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신다면 협의를 통해 연장할 가능성도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부상자 가족에 대한 피해는 깊이 공감하는 바이나, 법적으로 부상자 가족에 대한 지원은 없고 가능하지도 않다. 현실적으로 부상자 가족까지 보상 지원 범위를 넓히기가 쉽지 않은 실정”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재난피해를 보신 분들에 대해 재난피해자심리회복지원센터를 운영해 우울증이나 심리적인 치료를 제공하고 있으며, 이는 평생 이용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부상자 실태조사에 대한 지적에는  “실태조사를 진행할 당시 전화를 받지 않거나 조사 자체를 피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결국 50여 명 정도만 겨우 연락이 닿았으나 대면으로 진행하는 것을 원치 않거나 연락하지 말라고 하시는 분들도 계셨다”며 “대구시가 귀찮아서 현장을 나가지 않거나 실태조사를 대강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화재가 발생했던 중앙로역 인근 도로. 각기 다른 사람들이 목적지를&nbsp; 향해 걸어가고 있다.&nbsp;ⓒ투데이신문
화재가 발생했던 중앙로역 인근 도로. 각기 다른 사람들이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고 있다. ⓒ투데이신문

대구의 푸른 하늘이 검은 연기로 뒤덮이고 난 뒤 어느덧 20년이 흘렀다.  2003년 2월 18일 잠시 멈췄던 대구의 심장은 다행히도 다시금 힘차게 뛰고 있다. 사라지지 않을 것만 같던 연기와 그을음도 시간이 흘러 더는 보이지 않는다. 시간의 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이지 않는 곳곳에선 고통으로 신음하는 이들이 존재했다. 이들이 속에 품은 상처는 제 아무리 긴 세월이 흘러도 쉽사리 아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 두 번 다시 반복돼선 안될 이 사건은 우리 사회에 어떤 의미로 남아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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