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로 설명하기 어려워 책 출간”
與 인사 “보복정치, 몇 번 더 반복”
“민주, 이재명 없이 총선 치를 듯”
조국, 장관 빨리 던졌다면 대선후보
“윤석열 정부, 성공 가능성 낮아”

‘노무현 트라우마’ 저자 손병관 오마이뉴스 기자. @투데이신문
‘노무현 트라우마’ 저자 손병관 오마이뉴스 기자.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윤철순 기자】 “대단히 충격적이고 슬픈 소식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오늘 오전 9시 30분경 이곳 양산 부산대병원에서 운명하셨습니다.”

‘노무현의 친구’이자 노무현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낸 문재인은 2009년 5월 23일 오전, 양산 부산대병원에서 비통한 심정을 억누른 채 차분하고 침착한 어조로 ‘노무현 서거’ 소식을 전했다.

이날 저녁 공중파를 비롯한 전 매체들은 앞 다퉈 특집을 편성, 장시간 동안 ‘노무현 서거’ 관련 뉴스를 내보냈다. 외신들은 “노 전 대통령 사망으로 한국인들이 큰 충격에 빠졌다”며 일제히 긴급뉴스로 타전했다.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노무현’은, 이날 오전 5시 45분 김해 진영 봉하마을 사저를 나와 경호관 한 명과 함께 뒷산인 봉화산에 올랐다가 55분 후인 오전 6시 40분 부엉이바위에서 몸을 던졌다.

이날 새벽 집을 나서기 전, 노무현은 자신이 사용하던 컴퓨터에 “나로 인해 여러 사람의 고통이 너무 크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운명이다. 집 앞에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달라”는 열네 줄짜리 짤막한 유서를 남겼다.

대통령 퇴임 후 고향으로 내려 온지 1년 3개월. ‘풍운아 노무현’은 향년 63세를 일기로 파란만장한 영욕의 삶을 마감했다.

◆‘친노(親盧)의 부활’이 낳은 악순환

그러나 그는 떠났지만, 남겨진 이들에게 던져진 ‘숙제’는 요원하다. ‘노무현의 죽음’으로 폐족(廢族) 선언까지 했던 친노(친 노무현) 세력이, 몰락 직전 부활하면서 ‘보복 정치’의 악순환은 현재 진행형이다.

이날 이동 중 차 안에서 접했던 ‘노무현 서거’ 소식은, 개인적으로도 엄청난 충격이었지만 다수 국민이 집단 트라우마(trauma)에 빠진 비운의 사건이었다.

‘박근혜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아끼던 부하의 흉탄에 세상을 등졌지만, 퇴임한 전직 대통령의 죽음은 또 다른 차원의 비극이다. 누구도 상상 못한 그날의 불행은 오늘까지 많은 이의 뇌리 속에서 아물지 않고 있다.

지난 2001년. ‘언론 스타트업’ 오마이뉴스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한 손병관은 이듬해 대선을 쫓으며 노무현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

이후 2007·2012년까지 세 번의 대통령선거를 연이어 취재한 그는 오랫동안 품어왔던 ‘그날의 비극’을 추적, 박원순 시장 사망 사건을 다룬 비극의 탄생에 이어 ‘노무현 트라우마’를 두 번째 도서로 내놨다.

손병관은 이 책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2년 간 하루 네 시간씩 주 3일 ‘투석’하며 최근 이식 수술까지 받아야했던 그가, 이런 상황 속에서 두 권의 책을 집필해야만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노무현 서거 14주기를 두 달여 앞둔 며칠 전, ‘노무현 트라우마’를 쓴 ‘작가 손병관’을 여의도 투데이신문 사무실에서 만났다.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기자는 현대판 사관(史官)”

‘9척’에 가까운 큰 키 때문인지 투병 생활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비쩍 말라 보이는 체형에 움푹 패인 눈은 한눈에도 퀭해 보였다. 이런 그에게 “건강 때문에 큰 어려움을 겪었는데, 그런 상황에서 책을 두 권이나 내야만 했던 특별한 이유가 있었는지”부터 먼저 물었다.

“사실 건강에 문제가 없었다면 아마 책을 안 썼을 겁니다.”

-오히려? 왜죠?

“‘비극의 탄생’을 쓰기 전까진 책 낸다는 생각은 전혀 안 했었거든요. 회사 일이 전부라 생각하고 정말 열심히 기자로 살았죠. 그런데, 15년차 정도 지나면서 어느 날 ‘나를 얘기할 수 있는 아이덴티티(identity)는 뭔가. 이렇게 살면 내 인생엔 뭐가 남을까’라는 고민이 불현듯 들더라고요. 사실 이런 고민은 저 뿐만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일종의 매너리즘(mannerism)에 빠진 것 같은?

“그렇죠. 한 회사에서 15년 이상 일하면 어느 정도 ‘자유로울 수 있는’ 연차잖아요. 돈을 벌려고 했다면 이 일(기자 직업)을 안 했을 테고, 이 길을 택했을 땐 분명 ‘소명의식’ 같은 게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그러던 차에 박원순 (서울)시장이 돌아가셨는데, 그런 상황에서 개인적으로 건강까지 나빠지니까 ‘박 시장 사건을 기록으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겁니다.”

이 일(박원순 시장 사망사건을 다룬 ‘비극의 탄생’ 출간)로 손병관은 회사(오마이뉴스)로부터 정직 처분을 받았다. 오마이뉴스는 지난 2021년 7월 “업무 관련 취득 정보로 출판·영리 행위를 해 회사 등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손병관 기자’에게 정직 1개월의 징계 처분을 내렸다. 이에 손병관은 “회사와 나의 판단이 다르다”며 “두 차례 인사위에서 책 내용에 대해 어떤 질문도 없었다. 책에 회사 사정을 쓴 게 징계 이유”라고 항변한 바 있다.

본보와의 인터뷰에선 “회사가 원하는 책무라는 게 직원이 생각하는 것과 다를 수 있는데, 이럴 땐 회사 업무는 업무대로 하고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업무 이후 별도의 시간을 내서 하면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노무현 트라우마’ 저자 손병관 오마이뉴스 기자. @투데이신문
‘노무현 트라우마’ 저자 손병관 오마이뉴스 기자. @투데이신문

-첫 도서 출간 후 2년도 채 안 돼 두 번째 책(노무현 트라우마)을 냈어요.

“두 번째는 사실 오랫동안 생각해왔던 주제였어요. 이걸 한번 정리하긴 해야겠는데, 어떻게 할 거냐하는 고민만 있었을 뿐이었죠. 그런데, 첫 책을 내고나니까 그 다음은 좀 쉽게 풀리더라고요. ‘비극의 탄생’이 나름 호평 받으면서 꽤 팔렸는데, 이게 제 ‘명함’이 돼 여러 출판사에 소문이 났습니다. 하하. 그래서 출판사와 계약 맺고 서점에 깔리기까지 9개월 밖에 안 걸렸어요.”

-기자를 ‘현대판 사관’으로 여긴다면, 책보다는 기사로 남기는 게 ‘사료적 가치’에 더 부합하는 거 아닌가요?

“일리 있는 얘깁니다. 하지만, 기사는 책을 통한 서술 방식과 좀 차이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아마 기사로 기록을 남겼다면, 결론이 다르게 났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취재하고 기사 쓰는 걸 반복하는 방식과, 전 과정을 취재해서 한꺼번에 정리하는 건 분명 다른 결과로 이어졌을 거라고 봐요.”

손병관은 ‘노무현 트라우마’에서 “젊은 시절 로망이 사관(史官)이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기자가 현대의 사관임을 깨닫는 중”이라 언급하고 있다. 고려대 동양사학과를 졸업한 후 지난 2001년 오마이뉴스에 입사, 이곳에서 정치부 기자로만 22년째 활동 중이다. 청와대와 서울시청을 출입했고, 서울시를 출입하면서 ‘정치인 박원순’의 마지막 2년 7개월을 지켜봤다.

수년 간 지속된 건강 악화로 오랜 시간 투석을 받아야 했다. 최근 자신의 아내로부터 장기를 이식받아 회복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는 현직 기자(정치부장)활동을 왕성하게 펼치는 한편, ‘병상 집필’ 의지를 불태우며 1년여 만에 두 권의 도서를 펴냈다. 수술 당일에도 SNS 활동을 멈추지 않을 만큼, 열정과 에너지가 넘친다.

-책 서술 방식이 시간 순으로 사건을 나열하는 플롯(plot) 형태를 띠던데, 궁극적으로 독자에게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뭔가요.

“20년 이상 정치부 기자로 활동하며 지켜봐온 현장을 웬만하면 전부 설명하려고 노력했는데, 이게 잘 안 되는 지점들이 생기더라고요. 왜 이렇게 감정적이고, 또 왜 이런 방식으로 흘러가는지. 그래서 어떤 ‘아귀다툼’ 같은 현상들에 대한 근원적 설명이 필요하다 생각하게 됐고, 이런 현상에 주목하다보니 결국 책을 통해 설명하는 길이 맞겠다고 판단했습니다.”

-대중(大衆)이 이해하고 있는 사실 너머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렇습니다.”

건강 때문에 목이 가라 앉아 음색은 탁했지만, 단호하고 결기 찼다.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당일인 2009년 5월 29일 오전, 노무현 전 대통령 빈소가 마련된 경남 김해 봉하마을 분향소에서 盧 전 대통령의 시신을 실은 운구행렬이 영결식이 열릴 서울 경복궁으로 출발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당일인 2009년 5월 29일 오전, 노무현 전 대통령 빈소가 마련된 경남 김해 봉하마을 분향소에서 盧 전 대통령의 시신을 실은 운구행렬이 영결식이 열릴 서울 경복궁으로 출발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박근혜 사면’은 제2의 노무현 트라우마 예방”

-‘노무현 서거’가 한국사회에 남긴 건 뭐라고 생각하나요.

“정치를 아주 ‘감정적’으로 만들어버렸죠. 결과적으로. 그 전에는 사실 민주당 지지층 같은 경우, 좀 시크(chic)한 면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대통령의 죽음’이라는 사건을 계기로 대통령과 대중 간에 ‘일체화’ 현상이 생긴 겁니다. ‘내가 뽑은 대통령이 이 정도까지는 망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그런 감정이요.”

-‘지못미(지켜주지 못한 미안함)’ 같은 거요?

“맞습니다. 그런데, 그런 지지층의 감정이 순식간에 붕괴되고 치욕적인 결말로 이어지니까 울컥 올라온 거죠. 이 감정이 짧게는 10년, 아니 지금도 계속 진행 중이라고 봐야죠. 이런 현상은 박근혜 대통령 쪽에도 있다고 생각해요. 문재인 대통령이 박 대통령 사면할 때 민주당 지지층에서 불만 여론이 팽배했는데, 사실 당시 박 대통령 건강은 상당히 악화돼 있는 상태였어요. 계속 두면 옥사(獄死)할 수 있다는 얘기까지 나왔으니까요. 만에 하나 그런 비극이 발생하면 ‘제2의 노무현 트라우마’가 재현되는 거죠.”

-우려되는 ‘또 다른 비극’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조치였다는 거네요.

“직선제 대통령 이후엔 50대 50의 지지층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돼버렸어요. 그래서 문 대통령이 결단을 한 거라고 봅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사법 처리는 사실 이명박 대통령의 단견(短見)에서 비롯된 것이라 볼 수 있는데, 문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대응하는 무책임함은 피하자’는 판단에서 그런 결정을 내렸다고 봅니다. 그런 면에서는 잘한 선택이라 생각해요.”

-‘노무현 트라우마’는 우리 시대에 해소될 수 있을까요?

“책(노무현 트라우마)이 나오고 정치권 인사 몇몇과 ‘5년마다 반복되는 보복 정치’에 대해 얘길 나눴었는데, 보수 쪽 인사가 ‘몇 번 더 반복돼야 하지 않겠냐’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되풀이되다 사람(국민)들이 어느 순간 ‘이래선 안 된다’고 느끼는 시점이 돼야 해결될 수 있다면서요. 인위적 노력으론 어렵다는 거죠. 국민들이 머리로는 받아들여도 가슴으론 절대 못 받아들일 거라고.”

‘노무현의 죽음’을 계기로 기사회생한 ‘폐족 친노’의 부활은 끝을 알 수 없는 보복 정치의 서막을 열었다. 탄핵으로 권좌에서 끌려 내려온 박근혜는 촛불로 집권한 문재인의 ‘칼’, 윤석열에 의해 철창 속에 갇혔고, ‘노무현의 운명’을 결정한 이명박 역시 퇴임 5년 만에 윤석열 검찰에 의해 구속됐다. 지난 대선에서 밀린 이재명은 현재 권력을 완전히 장악한 검찰의 칼 날 위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이어가며 미래를 도모하지만, 반발 짝만 삐끗해도 천 길 낭떠러지다.

한 때 ‘정권의 시녀’로 불렸던 검찰은 대한민국 권력 언저리에서 조용히 ‘세(勢)’를 키우며 기회를 노린 끝에 결국 최고 정점에 올라 모든 걸 틀어쥐었다.

‘노무현 수사’ 책임자였던 전 대검 중수부장 이인규는 당시 수사 상황이 담긴 자신의 회고록 ‘나는 대한민국 검사였다-누가 노무현을 죽였나’를 들고 세상 밖으로 나왔다. 지난 17일 드러난 회고록엔 ‘노무현 뇌물 혐의’가 모두 사실이라는 주장과 노무현을 변호했던 문재인의 ‘미지근한 대응’이 노무현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고 쓴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이인규를 두고 이재명은 “‘검사왕국’이 되자 부정한 정치검사가 낯부끄러운 줄 모르고 고개를 내민다”고 직격했다.

지난 19일 오전 서울 시내 대형 서점에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를 지휘했던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 출신 이인규 변호사의 회고록이 진열돼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지난 19일 오전 서울 시내 대형 서점에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를 지휘했던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 출신 이인규 변호사의 회고록이 진열돼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박원순 시장 ‘사건의 재구성’

-첫 번째 도서 ‘비극의 탄생’엔 인권위 결정과 상반되는 내용들이 많더라고요.

“박(원순) 시장 (사망) 사건은 여비서가 다른 사람에게 성폭행을 당했던 소위 ‘4월 사건’을 기점으로 박 시장을 바라보는 태도가 달라져서 생긴 거라고 봐요.”

손병관은 고(故) 박원순 시장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는 여비서의 주장을 받아들인 인권위원회 결정과 배치되는 증언들을, 박 시장 사망 후 6개월 간 취재해 ‘비극의 탄생’으로 드러냈다. 2015년~2020년 시장실에서 근무한 전·현직 공무원들과 피해자 측 변호사는 물론, 여성단체 대표를 포함한 50명과 경찰조사를 받은 31명 중 15명의 목격담·증거들을 수집했다. 비극의 탄생은 박 시장 사망 사건과 관련한 보도와 공식 발표를 뒤집는 취재기록이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 사건에서 피해자의 주장 일부를 받아들여 박 시장에 의한 성희롱을 인정한다고 결정했다. 법원도 ‘별건’ 재판에서 성추행 인정을 판결했다. 그러나 책은 이러한 내용을 반박한다. 

-그런데, 박 시장은 왜 죽음을 선택했을까요? 그간의 보도 등에 따르면, ‘고소 사실’이 공개될 경우 시장직을 던져서라도 대처하겠다 했는데.

“박 시장은 ‘피해자 중심주의’ 인식을 갖고 있었어요. 제가 아는 박 시장은 여기저기서 하는 말이 다르지 않은, ‘논리적 일치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죠. 아마, 본인 관련사건 전까지만 해도 자신은 예외일 거라 생각하고 그런 얘길 했을 겁니다. ‘나는 그런 일 없다. 철두철미하게 관리하는 사람이다’라고. 하지만 사람 일을 어떻게 알겠어요.”

-그렇죠. 아무리 자기관리를 철저히 한다 해도 보는 시각이나 해석이 다 다른데.

“평소 피해자 중심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던 사람이, 자신과 전혀 무관할 것 같았던 사건이 터지면서 피해자라 주장하고 나오니 어떻게 그런 식(피해자 중심)으로 대응할 수 있었겠어요. 피해자 얘길 받아들이면 ‘나쁜 놈’이 되는 모순에 빠지니까, 본질적 문제에 대한 고민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다른 분들의 대응도 이해는 돼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원래 그런 식으로 위기를 넘기잖아요. 하지만, 박 시장은 그 상황에서 자신의 답을 못 찾은 거죠.”

-혹시, 박 시장과 ‘특별한 관계’는 아니죠?

“서울시 출입하면서 처음 봤습니다. 시청 출입기자가 몇 백 명 되는데, 이 중에 적어도 몇 십 명은 ‘시장 바라기’일 겁니다. 지금도 그럴 테고요. 저는 물론 그런 스타일은 아니지만. 하하. 그런 기자들 중에서조차 박 시장 사건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없더라고요. 다 사라져버리고. 그래서 ‘차라리 내가 쓰자’, 그렇게 생각해서 책을 내게 된 겁니다.”

지난 2017년 5월 10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청와대로 떠나기 전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자택을 나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지난 2017년 5월 10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청와대로 떠나기 전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자택을 나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대통령 부인 호칭 논란, 실망”

-‘대통령 부인 호칭’ 때문에 논란도 있었죠.

“책(노무현 트라우마)에도 내용이 있지만, 5~6년 전 회사에서 대통령 부인에 대한 호칭을 ‘여사’로 표기할거냐 ‘씨’자를 붙일 거냐에 대한 논쟁이 있었어요. 사실 지금 생각하면 웃기는 일인데, 당시만 해도 시리어스(serious)한 문제로 취급되다보니까 이 기사 때문에 수천 명의 독자가 후원을 끊는 일까지 벌어졌었죠. 어쨌든 당시 내부적으론 이도저도 아닌 걸로 결론이 났는데, 개인적으론 회사에 상당히 실망한 계기였습니다.”

-무슨 뜻인가요?

“이런 것(호칭 표기) 때문에 회사가 (독자들에게) 끌려 다녀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들었거든요. 한편으론, 이런 문제까지 의식해가며 글을 써야하는 시대가 온 건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됐고요. 당시 과정을 통해 회사 입장을 확인하게 되면서 ‘소신대로 해야겠다,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마음을 더 굳히게 됐죠.”

-어떻게 보면, 그 ‘사건’이 책을 쓰게 된 변곡점이 된 거네요.

“그렇다고 봐야죠. 사실 그 일로 충격을 크게 받았는데, 입사 이후 당시까지 썼던 기사량이 4000여건 정도 되더라고요. 많게는 하루 10여 꼭지도 썼으니까. 그런데, 독자들이 저를 모르더라고요. 나름대로 열심히 했기 때문에 ‘손병관 기자는 어떤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정도는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대통령 부인 호칭 관련 기사 하나를 두고 이렇게까지 논란이 되니까...”

-독자들이 기사를 접할 때 기자 ‘성향’까지 파악하긴 쉽지 않죠.

“(그동안) 몇 천 건의 기사를 썼고, (제 기사를 보면) 기본적인 스탠스(stance)를 알 거라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유치하게 ‘여사’냐, ‘씨’냐로 논쟁하니까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하하.”

지난 2017년 5월 15일. 오마이뉴스는 ‘독자에게 전하는 입장문’을 통해 “2007년부터 내부 표기방침을 정해 대통령 부인을 ‘씨’로 표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해왔다”며 “단, 필자(기자)의 선호에 의해, 혹은 문맥상 필요에 의해 ‘여사’를 쓰는 것도 허용해왔다”고 밝혔다. 손 기자는 당시 <“이사 갑니다”...문재인 부부, 홍은동 주민들과 ‘작별’> 제하의 기사에서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의 호칭을 ‘김정숙 씨’, ‘김 씨’ 등으로 지칭해 논란의 중심에 섰다. 당시 문 대통령 지지자들은 기사에 수천 건의 비난 댓글을 달며 오마이뉴스에 사과를 요구했고, 해당 기사를 쓴 손 기자의 SNS를 찾아가 거세게 항의했다.

-조국 전 (법무)장관이 한 달 만에 물러났는데, 당시 상황을 어떻게 봤나요?

“예전엔 장관직을 3일 만에 그만 둔 분도 있었어요. 만약 조 장관이 장관직을 고사했거나 문 대통령이 임명하지 않았다면, 검찰이 그렇게까지 안 했을 겁니다. 그런데, ‘싸움’이 붙으니까 양단간에 결판이 나야하는 상황으로 가버린 거죠.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었는데, 진흙탕 싸움으로 번진 거라 생각해요.”

-조 장관이 ‘조기’에 접었다면, 대선후보도 가능했을 거란 얘기도 있었죠.

“지금도 사실 일부 민주당 인사들은 그런 얘길 합니다. 조 장관이 그때 장관직을 빨리 던지고 몇 달 쉰 다음 부산에서 총선 나왔다면 당선됐을 거고, 연장선에서 대선후보까지 됐을 거다. 이런 얘기. 제 책에 다 있는 내용입니다. 하하.”

지난해 1월 3일. 당시 이재명(더불어민주당), 윤석열(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2022 증시대동제에 참석해 대화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지난해 1월 3일. 당시 이재명(더불어민주당), 윤석열(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2022 증시대동제에 참석해 대화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서울대·고려대 학생들이 ‘조국 사태’ 때 딸 조민씨 관련 의혹을 밝히라면서 촛불을 든 적이 있는데, 최근의 ‘고관 자제들’ 관련 문제에 대해선 어떤 목소리도 안 들립니다. 일각에선 ‘선택적 분노 아니냐’고도 하고.

“저는 이해가 됩니다. 왜냐하면 조국 장관 문제와 윤석열 정부의 인사(人事) 차이는 ‘그런 짓을 할 놈’과 ‘하지 않을 것’이란 기대치가 다르기 때문에, 받아들이는 입장도 다른 거라고 봅니다. 그런 이중성의 충격차이 때문에 학생들도 그러는 게 아닐까 싶어요.”

-윤석열 정부의 ‘성공 가능성’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요.

“내치(內治)만 보면 성공할 가능성이 낮죠. 정치라는 게 51%를 획득하는 과정인데, ‘가상의 51%가 있다’고 착각하면 망하는 거죠. 윤석열 정부는 시작부터 51%를 허물고 시작했잖아요. 경선 주자 중엔 홍준표 정도 빼고 거의 살아남지 못하고 있는데, 그분들이 차지하는 포션(portion)도 있거든요.”

-국민의힘 전당대회 결과를 보면, 윤 대통령 파워가 증명된 셈인데.

“김기현 대표가 과반 넘게 얻은 건 윤 대통령이 매력적이라서가 아니라 ‘일단 힘 있는 사람 중심으로 뭉쳐야 된다’는 암묵적 동의가 작동한 거죠. 하지만, 그것도 국민의힘 안에서나 통할 얘깁니다. 사실 2016년 총선 당시의 국민의당 돌풍처럼, 지금 민주당도 못가고 국민의 힘도 못가는 층이 당시에 버금갈 정도로 형성돼 있다고 보거든요. 이분들이 내년 총선에서 윤석열 정부에 대한 평가를 할 텐데, 아마 돌아가기(국민의힘 지지)가 쉽지 않을 것 같아요.”

-민주당 상황은 어떤가요.

“민주당은 ‘이재명 없는 총선’ 체제로 가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대표 시절 갑자기 물러났을 때 사실 많은 지지자들이 묵인 했었어요. 김종인 비대위 체제로 갈 때. 당원들의 압도적 지지로 대표가 된 사람을 흔들어 쫓아낸다는 게 말이 안 되고 물러날 이유도 없었지만, 지지자들은 ‘총선 결과가 좋아야 다시 재기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침묵한 겁니다. 지금 똑같은 상황으로 가고 있잖아요. 아마 다음 총선에서 이게 되풀이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렇게 안 되면 더 어려워지겠죠.”

-이재명 대표 앞길이 어둡다는 얘기네요.

“지금 이 대표 상황이 ‘위기의 민주주의’의 룰라 대통령과 ‘오버랩’ 돼 보입니다. 룰라가 퇴임 뒤 기소돼 교도소를 갔잖아요. 브라질 검찰은 그걸로 룰라가 끝났을 거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그런데, 인간만사가 계산대로 안 되잖아요. 아무리 촘촘한 그물망도 다 빠져나갈 데가 있는 것처럼, 나중에 법원이 ‘검찰의 무리한 기소’라고 결론내면서 다시 대통령 자리에 오를 수 있었죠.”

지난 2019년 ‘넷플릭스’에서 인기리에 방영된 브라질 다큐 영화 ‘위기의 민주주의-룰라에서 탄핵까지(The Edge of Democracy)’는 위기에 내몰린 브라질의 민주주의를 깊이 있고 날카롭게 조명해 세계인의 시선을 끌었다. 이 영화는 브라질의 한 연방 판사(한국의 검사와 유사한 역할)가 강압적 방식으로 무고한 전직 대통령(룰라)을 구속하고 당시 대통령(지우마)을 탄핵으로 이끄는 등 브라질 민주주의를 위기로 내몰았다는 내용이다. 지난 대선 토론 당시 이재명 후보가 이 영화를 언급해 주목받기도 했다.

‘사관(史官)’은 고려·조선시대 역사서 편찬과 국가 기록물을 담당하던 관리다. 독립성과 비밀성을 부여 받아 역사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왜곡 없이 기록했다. 왕의 언행과 국사는 물론, 궁중 주변의 중요 사실들을 보고 들은 대로 직필(直筆)해 때론 강압이나 정쟁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조선시대 사관은 조선왕조실록 편찬의 기초자료인 사초(史草)를 매일 작성해 춘추관에 보고하는 한편 집으로 돌아와 또 하나의 사초(가장사초)를 작성, 보관했다. 가장사초(家藏史草)는 실록 편찬을 위해 실록청이 설치되면, 이곳에 제출돼 편찬 자료로 사용된다. 사관은 가장사초에 자신이 직접 들은 사건과 인물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기록했다. 그래서 실록엔 사실과 함께 비평이 담겨 있다.

‘기자가 사관’이라는 소명의식 실천을 위해 병마와 씨름하면서까지 역할에 충실하고자 했던 손병관. 인터뷰를 마치고 문을 나서는 그의 뒷모습에서, 조선 3대 왕 태종을 ‘스토커’ 수준으로 괴롭혀 귀양까지 가야했던 사관 ‘민인생’의 어깨가 보였다.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