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상·질병시 정부가 소득 보장하는 제도
시범사업 중…노동자 78.4% 모르고 있어
시민단체 “보장액 및 기간 높여야” 주장
대상자 소득 제한·안전망 부재 등도 지적
복지부 “아직 시범사업…다각도 검토할 것”

건강·노동·사회 시민포럼 관계자들이 지난 11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집무실 앞에서 소득·고용 걱정없이 아프면 쉴 수 있는 상병수당 조기도입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건강·노동·사회 시민포럼 관계자들이 지난 11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집무실 앞에서 소득·고용 걱정없이 아프면 쉴 수 있는 상병수당 조기도입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 정부의 ‘상병수당’ 시범사업이 진행 중인 가운데, 노동계는 아직도 제도가 미흡하다며 보완해 도입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상병수당은 근로자가 업무 외 부상 및 질병으로 경제활동을 하기 어려울 때 치료에 집중할 수 있도록 일정 수준의 소득을 보장하는 제도다.

12일 건강세상네트워크,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등이 소속된 ‘건강·노동·사회 시민포럼’(이하 시민포럼)에 따르면 이들은 전날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아프면 쉴 수 있는 상병수당의 조기도입을 요청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해 7월 4일부터 오는 2025년 전국 도입을 목표로 상병수당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정부는 서울 종로구 등 6개 지역에서 1단계 상병수당 시범사업을, 이달 3일부터 경기 안양시, 전북 익산시 등 4개 지역에서 2단계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보장 기간은 최대 90~120일이며, 하루 보장액은 지난해 4만3960원, 올해 4만6180원이다.

1단계 사업에서는 신청 자격에 소득·재산 제한을 두지 않았으나, 2단계 사업은 대상자를 소득 하위 50% 취업자로 명시했다. 

이날 이들은 ‘상병수당 제도 관련 경험 및 인식조사’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번 인식조사는 지난달 14일부터 이달 2일까지 현재 취업 중이거나 취업 경험이 있는 만 19살 이상 성인 634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그 결과, 응답자 78.4%(전혀 몰랐다 52.1%, 들어본 적 있지만 잘 모른다 26.3%)는 상병수당 제도에 대해 잘 모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현재 정부가 상병수당 시범사업을 시행 중인 사실을 응답자 87%는 알지 못하고 있었다. 반면 상병수당 제도와 시범사업에 관한 설명을 듣고 난 뒤, 시범사업 지역과 급여 수준, 최대 보장 기간의 확대가 필요한지를 묻는 질문에는 각각 97%, 93%, 71%가 ‘그렇다’고 답변했다.

대상자를 제한한 2단계 상병수당 시범사업에 대해서는 응답자 94%가 지원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이같은 결과를 발표하며 시민포럼은 “아프면 쉬는 것, 소득 걱정 없이 충분하게 질병을 치료하고 건강을 회복하는 것은 국민의 보편적 건강권 가운데 하나”라며 “국민들이 아플 때 필요한 만큼 쉴 수 있도록 합리적인 제도 설계를 통한 상병수당 제도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 강서구 지하철 김포공항역에서 직장인들이 열차에서 내려 이동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서울 강서구 지하철 김포공항역에서 직장인들이 열차에서 내려 이동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상병수당’을 외치는 이유

이들 단체는 상병수당 시범사업이 시민들의 건강과 아프면 쉴 권리를 보편적이고 평등하게 보장할 수 있을 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는 상황이다. 

시민포럼은 “이번 2단계 시범사업이 소득하위 50% 취업자에만 적용되는 잔여복지 틀로 진행되고 있다”며 “이처럼 보편복지 서비스로서 건강보험에 가입한 취업자라면 누구나 서비스 대상자로 설계했던 1단계 시범사업보다 대상자 범위를 대폭 축소한 2단계를 보면, 상병수당 본사업의 방향이 차별복지로 결과할 수 있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고 했다.

유급병가, 해고 금지 조항 등 실직의 위험으로부터 아픈 노동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안전망이 마련되지 않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이들은 “아프면 쉴 권리가 보장되기 위해서는 상병수당 제도를 이용하더라도 실직하지 않고 계속 일할 수 있어야 한다”며 “직장이 있는 경우 근로기준법으로 유급병가 및 고용유지를 보장해야 하고, 자영업이나 고용주가 특정되기 어려운 경우 지자체가 유급병가를 지원해 아프면 쉴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들은 현재 시범사업을 통한 상병수당 보장액과 보장기간의 보장성이 매우 낮다고 꼬집었다.

시민포럼은 “최저임금의 60% 수준인 현재 상병수당은 하루 약 4만3000원수준(2022년 기준)에 해당하며, 최대 보장기간은 4개월”이라며 “소득이 낮거나 부양가족이 많은 소득자의 상병과, 4개월 이상의 충분한 치료 기간이 필요한 중대상병에 대한 충분한 고려가 있었는지 의문이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현재 일부 지자체에서 시행 중인 유급병가지원제도의 하루 보장액이 생활임금 수준인 8만6000원(2022년 기준) 대비 현재 상병수당 시범사업 보장액은 지나치게 작다”고 덧붙였다.

이외에도 65세 이상 노동자이거나 단시간 노동 등 불안정노동 및 가사노동을 하고 있는 사람, 외국인 노동자가 상병수당 제도에서 제외되고 있다는 점, 제도 설계와 평가에 노동자와 시민의 참여가 없는 점을 비판했다.

시민포럼은 “이달부터 시작되는 2단계 시범사업 시행을 맞아 상병수당 제도가 하루빨리 제구실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며 “국민의 요구 및 필요와 거리가 있는 정부 편의적인 제도 운영은 심각한 국민 저항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당국 “시범사업 중…아직 단계 많이 남아”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는 시범사업의 운영 실적과 함께 상병수당 제도 마련을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앞서 지난 2일 복지부는 ‘상병수당 시범사업’ 시행 1년을 맞아 그간의 운영 실적을 공개했다. 

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1년간 총 6005건, 평균 18.6일에 대해 평균 83만7000원(6월 23일 기준)이 지급됐다.

모형별로 살펴보면, 근로활동 불가기간 모형(모형 1,2)은 평균 21일 이상, 약 97만원, 의료이용일수 모형(모형 3)은 평균 14.9일, 약 67만원이 각각 지원됐다.

신청자 취업자격을 살펴보면 건강보험 직장가입자는 3300명(74.2%), 자영업자 803명(18.1%), 고용·산재 보험 가입자 343명(7.7%)으로 직장가입자 참여가 많은 것으로 확인됐다. 직종별 현황은 사무직 비율이 26.3%며, 비사무직 비율은 73.7%으로 비사무직(육체노동 등 포함) 참여 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신청자의 연령은 50대가 39.1%로 가장 많고, 뒤이어 40대(23.5%), 60대(20.1%), 30대(12%), 20대(5.2%), 10대(0.1%) 순이다.

복지부 건강보험정책국 상병수당추진단 관계자는 본보와의 통화를 통해 상병수당 2단계 시범사업에서 대상자의 소득을 제한한 것에 대해 “1단계 시범사업의 주요 수급자인 저소득 취업자를 집중 지원하기 위해 소득 하위 50% 취업자를 대상으로 한정했다”며 “대기시간 등을 고려해 여러 대상자를 대상으로 다양하게 시행해 본 뒤 비교·분석하는 과정이다”고 설명했다.

또한 65세 이상 노동자, 외국인 노동자 등이 제도 적용에 제외된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현재 상병수당 제도 자체가 근로 능력 상실에 대한 보장이다 보니, 65세 이상 노동자에게는 국민연금과 중복해서 지급해도 괜찮은지, 근로 복귀 가능한 연령은 언제인지 등을 분석하는 단계”라며 “앞으로 노인 취업률 등을 반영해 검토 후 구체적인 연령을 결정하고, 전 세계의 복지 제도를 면밀히 검토 후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적용을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 1년 정도 진행된 시범 사업이다 보니, 여러 단계가 아직 많이 남아있다”며 “보장액과 보장기간 확대 여부, 안전망 구축, 제도 설계와 평가에 노동자와 시민의 참여 등도 종합적으로 살펴보고 제도를 정비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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