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데이신문 홍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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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홍기원 기자】 건설업계는 부동산시장 침체와 유동성 위기, 고물가에 따른 공사비 인상, 그리고 부실공사와 반복되는 중대재해, 뿌리깊은 불법하도급 문제까지 각종 숙제가 산적한 상황이다. 최고책임자인 오너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지만 최근 인사를 둘러싼 움직임을 보면 위기의식이 없는 것 아닌가하는 의문을 지울 수 없다.

올해 건설업계의 가장 상징적인 사건이라면 인천 검단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사고를 꼽을 수 있다. 사건의 파장은 시공사인 GS건설, 그리고 발주처인 한국토지주택공사(이하 LH)를 넘어 전 건설업계에 미치고 있다. 

GS건설은 국토교통부 조사위원회의 사고 조사 결과가 나온 직후인 지난 7월 5일 사과문을 발표했다. GS건설은 이 사과문에서 “시공사로 책임을 통감하고 사고 수습에 만전을 기할 예정”이라며 “입주예정자들이 느낀 불안감과 입주시기 지연에 따르는 피해와 애로, 기타 피해에 대해 깊은 사과를 드린다”고 발표했다. 이어 “입주예정자들의 여론을 반영해 검단 단지 전체를 전면 재시공하고 입주지연에 따른 모든 보상을 다 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하지만 불과 4개월여 만에 그 약속은 빛이 바래진 모습이다. 국민의힘 박정하 의원이 LH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GS건설은 입주예정자 주거지원 문제를 놓고 LH와의 협의에서 난항을 겪고 있다. 원인은 양측이 붕괴사고에 대한 책임과 그에 따른 보상 등을 서로에게 떠밀고 있기 때문이다.

입주예정자협의회 정혜민 회장은 “LH도 지탄받아야 마땅하지만 GS건설이 전면 재시공을 발표하며 입주 지연에 따른 모든 보상을 다하겠다고 하지 않았냐”라며 “이후 그런 자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GS건설 관계자는 “GS건설은 시공사일 뿐이다. LH와 보상안을 협의한 뒤 입주예정자들과 논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간기업으로서 회사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활동을 하는 것을 문제 삼을 수는 없다. 그러나 대기업인 GS건설이 자사의 책임으로 불의의 피해를 입은 입주예정자들과의 소통에 소극적인 태도는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GS건설은 미처 붕괴사고 수습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상황에서 대표이사 교체설이 나오고 있다. 약 10여년을 부임한 임병용 부회장이 물러나고 허윤홍 미래혁신대표 사장이 대표에 임명되리라는 관측이 파다하다. 허 사장은 GS그룹 허창수 명예회장의 장남으로 신사업부문을 맡고 있다.  

임 부회장은 지난 10일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대표를 그만 둘 가능성이 커보인다’는 질의에 “(가능성이)있다고 볼 수 있다”고 답변하기도 했다. 건설업계에서 가장 오래된 전문경영인으로 10년 연속 흑자 경영을 이끌었지만 중도 퇴진을 피하기 어렵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GS건설은 13일 15개 사업조직과 수행조직을 10개 본부로 재편하는 조직개편과 함께 임원진을 대폭 교체하는 인사를 단행했다. 이에 대해 세대교체를 앞둔 사전포석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다만 GS건설 관계자는 “추측에 불과하고 인사는 결과가 나와야 확인할 수 있다”고 말을 아꼈다. 

허 사장은 2002년 GS칼텍스에 입사했으며 2005년 GS건설로 옮긴 뒤 2019년 사장으로 승진했다. 올해부터는 신사업부문과 연구개발부서를 담당하는 미래혁신대표를 맡고 있다.

허 사장은 그동안 GS건설에서 폐배터리 재활용, 주택 모듈러, 해수담수화 등 신사업에 집중해 왔다. GS건설 신사업부문은 매년 성장세를 지속해 2019년 매출 2936억원에서 지난해 매출 1조256억원으로 매출 1조원을 넘어서는 성과를 보였다. 

그러나 신사업부문은 GS건설 전체 매출액(2022년 12조2990억원)과 비교하면 12% 남짓한 비중이다. 허 사장이 신사업부문에서 이룬 성과만으로 위기의 GS건설을 건져낼 능력을 검증했다고 보긴 어렵다.

오히려 건설업계 사상 초유의 붕괴사고가 오너 4세로의 경영승계로 가는 계기가 됐다는 데 따른 회의적인 시각도 나올 수 있다. 앞서 HDC현대산업개발은 2021년 광주 학동 재개발구역 건물 붕괴사고에 이어 지난해 광주 화정동 아이파크 신축공사 붕괴사고가 발생하자 HDC그룹 정몽규 회장이 책임을 지고 회장직에서 물러난 바 있다. 정 회장은 지난해 1월 기자회견을 열고 “책임을 통감하며 현대산업개발 회장직으로 물러나겠다”고 사퇴를 발표했다.

정 회장은 퇴진마저도 ‘책임회피성 사퇴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다. 하물며 전문경영인은 불명예 퇴진하는데 이를 후계작업의 기회로 활용한다면 오너 책임경영의 의미마저 퇴색될 수 있다.

DL이앤씨는 지난달 1일 홍보담당임원 등 일부 임원들이 퇴사하며 여전히 뒷말이 무성하다. 대법원에서 DL그룹 이해욱 회장이 계열사를 동원해 개인회사를 부당하게 지원한 혐의에 대해 벌금 2억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한 다음날 이뤄진 인사여서 문책성 아니냐는 추측이 제기되고 있다.

DL이앤씨 관계자는 “정기임원 인사였다”라며 문책성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홍보담당임원은 한달여가 지난 현재까지도 후임인사가 진행되지 않은 채 공석이다. 후임자에 인수인계도 없이 자리를 비운 걸 보면 정기인사라고 보기 어렵다는 평이 돌고 있다. 오너의 잘못된 결정을 애먼 임원들이 책임진 셈이다.

DL이앤씨는 지난해 1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시공을 맡은 건설현장에서 6명이 사망해 고용노동부의 일제 감독을 받기까지 했다. 일제 감독 결과, DL이앤씨가 시공하는 전국 79개 건설현장 중 61곳에서 209건의 위반사항이 적발됐다. 이에 마창민 대표이사가 2년 연속 환경노동위원회 국감에 증인으로 소환돼 또 머리를 숙여야 했다.

만약 그룹총수인 이 회장이 나서 중대재해에 대해 사과했다면 어땠을까. 그럼에도 현장에서 노동자 사망사고가 빈번하게 계속됐을까. 오너가 책임을 회피하기만 한다면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위기의 건설업계를 구할 오너 일가의 책임있는 경영 자세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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