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박주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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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박주환 기자】 경영에서 물러났던 기업 회장들이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잇달아 복귀하고 있다. 대부분 경영 정상화나 역량 강화 등을 구실로 내세우지만, 한 때 논란의 중심에 섰던 회장들의 복귀는 기업이 개인 또는 오너일가의 소유처럼 여겨지는 한국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남는다. 

최근 태영그룹 윤세영 회장이 경영복귀 소식을 알렸다. 올해로 구순을 맞이한 윤 회장은 지난 2019년 3월 아들 윤석민 회장에게 회장직을 넘겨주고 경영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5년여 만인 지난 4일 태영건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우발채무 등으로 어려움이 가중되는 가운데 ‘사회적 책무’를 다하기 위해 복귀를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실제 태영건설의 3분기 연결기준 부채비율 478% 달하고 있어 위기감이 고조되는 상황이다. 태영그룹은 태영건설 유동성 문제 해결을 위해 올해 8000억원 가량의 자금을 조달했다. 또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태영그룹의 지주사인 TY홀딩스는 그룹 내 알짜 물류회사 태영인더스트리의 지분 40%를 글로벌 사모펀드 KKR에 매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같은 경영 위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 외부 전문가의 영입이 활발하게 이뤄지는 시대에서 고령의 회장 복귀가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무엇보다 기업을 사유화 한다는 비판에 수차례 직면했던 회장의 복귀가 정말 ‘사회적 책무’를 다하기 위한 것인지에도 의구심이 들수밖에 없다. 

실제 1991년 지상파 방송국 SBS를 설립한 윤 회장은 박근혜 정부를 도우라는 보도지침을 내리거나 4대강 기사 중단 등을 요구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지난 2017년 SBS 회장직에서 물러난 바 있다. 공교롭게도 태영건설은 당시 낙동강 22공구 달성-고령 지구 등 4대강 관련 공사를 수주했다. 

수차례 강조해온 소유와 경영의 분리에 대한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다. 윤 회장은 지난 2019년 그룹 경영에서도 손을 뗐는데, 그로부터 2년 후 TY홀딩스는 SBS미디어홀딩스를 흡수합병했다. SBS미디어홀딩스는 지난 2008년 소유 및 경영 분리를 위해 설립됐던 방송 지주사였던 만큼 당시 합병은 아들 윤석민 회장의 지배력 강화를 위한 것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윤 회장은 내년 3월 이사회 및 주주총회를 거쳐 그룹 지주회사인 TY홀딩스의 대표이사 회장으로 돌아올 것으로 보인다. TY홀딩스 대표로 돌아온다는 것은 다시 SBS에 대한 지배력을 갖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미 몇몇 언론에서는 TY홀딩스가 SBS미디어넷 지분 70%를 담보로 760억원의 대출을 받았다는 보도를 내놓기도 했다. TY홀딩스는 SBS미디어넷 지분 대출에 대해 명확한 답변을 내놓고 있지 않지만 벌써부터 전국언론노동조합 SBS미디어넷지부는 태영건설의 이익에 SBS가 동원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 같은 고령 회장의 복귀와 기업의 사유화에 대한 우려는 태영 만의 문제는 아니다. 금호석유화학의 박찬구 회장(75)은 130억원대의 배임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지난 2018년 12월 대법원에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 받았다. 그러나 박 회장은 특정경제범죄법에 따른 취업제한에도 불구하고 미등기 회장직 유지해오다 경제개혁연대 등 시민단체에서 규정 위반을 지적하고 나선 이후, 올해 5월 사실상 완전한 경영 은퇴를 선언했다. 

하지만 그는 윤석열 정부의 8‧15 광복절 사면으로 취업제한이 풀리자 퇴진 6개월 만에 금호석유화학그룹 계열사 금호미쓰이화학 대표이사로 돌아왔다. 사측은 일본 미쓰이화학이 두 회사간 구심점 역할을 위해 박 회장의 인사를 요청했다고 설명했으나, 불과 6개월 만의 번복이 이뤄진 것에 대한 이유로는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수백억원의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던 부영의 이중근 회장(82)도 윤 대통령의 광복절 사면 이후 보름 만에 경영 일선에 복귀했다. 당시 이 회장은 개인 출판 과정에서 246억원을 인출하고 아들이 운영하는 영화 제작업체에 사업성 검토 없이 45억여원을 빌려주는 등 12개의 혐의로 기소된 바 있다. 

회사의 설립과 운영 초기 회사를 이끌어온 공로, 그 과정에서 쌓아온 경험과 지혜의 가치는 충분히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사회적 물의와 비판을 받았던 인물들이 아무런 제재 없이, 오너일가 최대주주라는 이유로 손쉽게 복귀하는 행태는 한국사회가 다시 돌아봐야 할 필요가 있다.  

고령 회장들의 복귀는 단순히 나이의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다. 그들의 귀환에서는 회사가 ‘자신의 소유물’이라는 태도가 엿보인다. 그런 인식이 바탕에 있기에 횡령도 배임도 사유화 시도도 가능한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역할이 강조되는 시대다. 한 사람의 장악력만으로 기업이 움직이는 시대는 이제 벗어나야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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