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우 칼럼니스트<br>▸철학박사<br>▸상지대학교 조교수<br>
▲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조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정치판이 요동친다. 이럴 때 가장 고생하는 사람 중 하나가 (기레기 말고)기자와 필자와 같이 글 쓰는 사람들이다. 괜찮은 소재라고 판단하고, 관련된 글을 준비하면 이미 흘러간 뉴스가 되고, 이로 인해 글을 다시 쓰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필자 역시 ‘토론’에 관한 글을 열심히 준비했는데, 거대한 대파 더미에 묻히게 되었다.

“대파 가격 875원은 합리적”이라는 취지의 대통령 발언이 사람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지난 3월 18일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소재 양재 하나로마트에 방문해서 대파 가격이 875원인 것을 보고 대통령이 했던 발언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대파를 875원에 팔면 대파를 키운 농민들은 대파를 수확하는 것이 더 손해인 상황이라 차라리 애써 일군 대파밭을 갈아엎어 버린다. 소비자들은 최근 대파를 875원에 산 경우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너무나 치솟은 물가 때문이다. 대가를 875원에 사기 위한 해당 농협의 각종 조건은 부각되지 않았다. 치솟은 물가, 그것을 알지 못하고 남의 다리 긁는 소리나 내뱉고 있는 대통령에게 시민들이 분노하고 있는데, 거기에 대통령이 소속된 국민의힘 당적으로 국회의원에 출마한 교수 출신 후보는 한 단이 아니라 한 뿌리를 뜻한다고 말하고, 대통령 발언으로 분노를 표출한 시민들을 조롱하는 대파 퍼포먼스를 벌였다.

시대와 사회적 위치, 경제적 능력을 막론하고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사안은 바로 ‘먹고 사는 문제’다. ‘태평성대(太平聖代)’의 상징처럼 인식되고 있는 요순시대에 그 태평성대를 상징하는 격양가(擊壤歌)라는 노랫가락이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해가 뜨면 일하고(日出而作)

해가 지면 쉬고(日入而息)

우물 파서 마시고(鑿井而飮)

밭을 갈아 먹으니(耕田而食)

임금의 덕이 내게 무슨 소용이 있으랴(帝力于我何有哉)

위 노래의 핵심적인 의미는 정치의 고마움을 알게 하는 정치보다는 그것을 전혀 느끼기조차 못하게 하는 정치가 진실로 위대한 정치라는 것이다. 그런데 내용을 자세히 보면, 일하고 쉬고 마시고 먹는 것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는 말이 나온다. 가렴주구(苛斂誅求)라는 한자성어의 경우 ‘호랑이보다 무서운 세금’이라는 의미가 있다. ‘가혹하게 높은 세금’이 핵심적인 내용이지만, 그 밑바닥에는 세금 때문에 먹고살기 힘들다는 의미가 나온다. 결국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이 정치를 향해 만족과 불만족을 느끼는 기준은 ‘지금 먹고살기 힘들지 않은지’ 여부라는 의미다.

자급자족과 물물교환이 이뤄지던 시대에서 화폐가 유통되는 시기로 접어들면서, 먹고 살기 쉬운지 어려운지 판단할 수 있는 공통의 기준이 생겼다. 바로 물가(物價)다. 현물(現物)로 거두던 세금도 화폐로 거두고, 필요한 물건도 화폐를 구해서 화폐와 교환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모두가 화폐를 쓰다 보니 교환을 위해 필요한 화폐의 많고 적음은 좀 더 보편적인 느낌으로 다가오게 됐다. 동시에 정치권은 ‘물가를 관리’할 의무가 주어졌다. 그리고 그 의무를 소홀히 했던 위정자들은 심판받았다.

한국현대사에서 물가로 인해 집권 세력이 위협을 받거나 유력 정치인이 퇴장하는 일은 수도 없이 많았다. 1964년 삼분폭리사건(三粉暴利事件)은 세 가지 가루, 즉 밀가루, 설탕, 시멘트 가격이 치솟고, 기업들이 매점매석을 통해 폭리를 취했던 경제비리 사건이었다. 그런데 당시 정치권, 특히 군부독재정권과 일부 정치인들은 정치자금을 모으기 위해 기업들의 매점매석과 폭리 취득을 눈감아주고 있다는 폭로가 나왔고, 이것은 정치경제비리 사건을 번졌다. 그리고 이 사건은 쿠데타로 집권했던 박정희 군사정권 초기 최대 위기 중 하나가 되었다.

제일 최근에 있었던 일은 바로 정몽준 당시 한나라당 당대표 후보의 ‘버스요금 70원’ 발언이었다. TV 토론회에서 상대 후보가 정몽준 후보에게 버스요금이 얼마인지 아냐고 물었고, 정몽준 후보는 “카드로 타는데······. 한 70원 하나요?”라고 답변해서 시청자들에게 충격을 줬다. 그리고 이 발언은 언론 매체를 통해 확산됐다. 2008년 당시 버스요금이 서울 카드 결제 기준 1000원이었고, 1980년 버스요금이 80원이었다. 이 사건 이후 정몽준 당시 후보의 정치 인생은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 2023년, 즉 현 정부의 현재 국무총리인 한덕수 국무총리가 국회 대정부질의 때 택시요금이 1000원 정도 되냐고 답변한 적도 있었다. 당시 서울 기준 택시의 기본요금은 4800원이었다. 그리고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지금 대통령은 “대파 가격 875원은 합리적”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던졌다.

솔직히 주로 조리된 음식을 먹거나 식당에서 밥을 사 먹는 필자도 대파 가격은 잘 모른다. 그러나 필자도 먹어야 하는지라 이것저것 사 먹다 보니 물가가 오른 것은 알고 있다. 1990년대 중반에 ‘아주 푸짐한’ 순대국밥 한 그릇은 2500원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2000년대에 5000원 정도로 오르더니, 지금은 1만원 가까이 되는 돈을 지불해야 ‘순대 몇 점 들어간’ 순대국밥을 먹을 수 있다. 예전에는 900원짜리 김밥이 있었는데, 지금은 김밥도 몇 천원은 지불해야 사 먹을 수 있다. 인간 생활에 가장 필수적인 의식주의 모든 가격이 2,30년 사이에 너무나 올랐다. 역대 정부들의 잘못이 분명히 있지만, 현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책임을 가지고 있다. ‘책임’ 운운하는 말이 너무 거창하다면, 현 정부는 최소한 민생과 물가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척’이라도 했어야 한다. 그것도 큰 욕심이라면, 대파 가격이 합리적이라는 식으로 ‘물가를 잘 아는 척’이라도 하지 말았어야 한다. 더군다나 대통령은 ‘대한민국 영업사원’을 자처하며 지난 2년 임기 내내 순방을 일삼았는데, 세계 잼버리를 부실하게 운영했고, 엑스포 부산 유치에 실패했고, 하필 국회의원 선거를 코앞에 둔 최근에 전 ‘민생토론회’라는 이름으로 전국을 돌며 무엇인가 해주겠다는 말을 쏟아내고 있다.

국회의원 선거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 시점에서 나온 대통령의 “대파 가격 875원이면 합리적”이라는 발언은 시민들의 엄청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시민들은 집 근처 가게의 대파 가격을 인증하고, 대파더미가 윤석열 대통령과 여당의 무덤이 될 거라는 의미로 영화 제목을 인용하여 ‘파묘’라는 말도 퍼뜨리고 있다. 전국농민회총연합회(전농)은 대파 무관세 수입 결정을 규탄하는 시위에서 대파를 들었다. 그나마 너무 비싼 대파 가격 때문에 시위 행렬 앞 몇 줄에 위치한 사람들만 대파를 들 수밖에 없었다. 아마 사람들이 대파 가격이 올랐어도 오른 지 모른다면, 오른 가격의 대파를 살 수 있을 정도의 수입이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리고 그 정도 되면 한국의 시민들도 ‘격양가’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들리는 소리는 현 정부와 여당, 수구보수세력을 향한 분노로 대파를 들고 부르르 떠는 소리뿐이다. 시민들은 대파를 들고 선거일만 기다리고 있다. 이러다가 북아프리카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 홍콩의 우산혁명과 같은 대파 혁명이 일어날 것 같다.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