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여행 원해도 가기 어려워
항공기 이용 불편 요소 매우 많아
항공사 장애인 서비스 아직 ‘미흡’
장애인 위한 항공법 규정도 없어
기업·정책·사회 전반 변화 필요

인천국제공항 수하물 처리시설 ⓒ뉴시스
인천국제공항 수하물 처리시설 ⓒ뉴시스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장애인 10명 중 9명은 국내·해외여행을 희망하지만 실행에 옮기는 경우는 적게는 2명, 많게는 7명 정도에 그치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장애인 이동을 위한 편의시설이 부족해서다.

국내 7대 항공사는 각각 장애인을 위한 서비스 제공을 하고 있다. 하지만 장애 특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할뿐더러, 서비스 제공을 위한 전문 승무원 양성이나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항공기를 이용하는 장애인들의 불편함이 개선되지 않고 있다.

미국이나 영국 등 일부 국가에서는 각각 ‘항공 접근성 보장법’과 ‘장애인 항공 권리 보장법’ 등으로 장애인을 위한 항공기 내 서비스를 법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현재 우리나라는 관련 제도가 마련돼 있지 않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각에서는 장애인 항공기 이용과 관련해 각 항공사와 정부, 사회 전반 모두의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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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주고도 차별받는 장애인들

# 2014년 A씨는 라오스 비엔티공항에서 귀국 탑승수속을 기다리다 모욕적인 상황을 겪었다. 그가 이용한 항공사는 진에어. 진에어는 변씨에게 ‘항공기에 탑승 시나 탑승 중 혹은 탑승 후 상기자의 건강 상태에 유해한 결과가 발상하더라도 귀사 및 귀사 직원에게 일체 책임을 부과치 않음은 물론 건강 상태 악화로 인해 발생하는 부수적 지출 및 진에어 또는 제3자에게 끼친 손해에 대해 일체 책임질 것을 서약하라’는 내용의 서약서에 서명을 요구했다. 휠체어 요청 승객과 노약자들은 일괄적으로 해당 서약서를 작성해야 한다는 게 진에어 측의 설명이었다. 하지만 A씨는 휠체어 케어를 요청한 바 없고, 이날 같은 여객기 탑승자 300명 가운데 해당 서약서를 작성한 사람은 A씨가 유일했다. 그동안 장애인들이 해당 서약서에 서명하면서 느꼈을 참담한 심정에 A씨는 분노를 감출 수 없었다.

# 2018년 4월 휠체어 이용 장애인 B씨는 딸의 권유로 아내와 함께 제주도 여행길에 나섰다. 군산을 출발해 제주로 향하는 이스타항공을 이용하기로 돼 있던 B씨는 탑승하기도 전에 굴욕을 겪어야 했다. 당시 B씨가 이용 예정이던 항공기는 트랩(비행기 승강용 사다리)을 통해 여객기에 올라야 하는 상황이었고 B씨는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탑승이 불가했다. 하지만 이스타항공 측은 “도와줄 인력이 없다”며 어떤 조치도 하지 않았다. 부푼 꿈을 안고 떠났던 여행길이었지만 상처만 남긴 채 끝났다.

사람사랑양천장애인자립재활센터 김범준 팀장은 비행기를 타고 내리기까지 장애인을 불편하게 하는 요소들이 많다고 지적했다.

김 팀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기내 구조상 개인용 휠체어를 탈 수 없기 때문에 매번 기내용 휠체어로 갈아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등에 업혀가야 한다. 또 기내용 수동 휠체어는 원래 사용하던 휠체어보다 크기가 작다”면서 “항공사 측에서는 나름 편의를 봐준다고 하지만 불편함은 있다”고 설명했다.

또 “항공사의 실수로 휠체어가 고장 나는 등 상황에 대해 책임지지 않으려고 서명을 요구하거나 장애인 탑승 자체를 거부하는 경우도 있다”고 부연했다.

보행의 어려움이 없다고 해서 항공기 이용이 쉬운 건 아니다.

한국농아인협회(이하 한농협)에 따르면 청각장애인은 항공기 이용 시 항공권 구입, 탑승 변경 안내 부족, 긴급 상황에 대한 안내 부족, 서비스 안내 부족 등 각종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항공권을 구입할 때 문자 서비스 알림을 신청함에도 불구하고 항공사 측에서 무작정 음성통화를 걸기도 하고, 탑승구 변경 및 연착 시 안내가 음성 방송으로 만 제공돼 정보를 전달받지 못하고 비행기를 놓치는 경우도 있다. 또 국내 면세점이나 식당, 기내식은 대다수 음성으로 주문을 받고 긴급 상황 대처방법이나 비행기 이·착륙, 운행 중 긴급 상황 안내도 음성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어 항공기 이용 내내 불안과 불편을 안고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농협 관계자는 “다수의 청각장애인들이 공항에 수화통역사 배치를 통한 수화통역 지원을 바라고 있다. 이 같은 지원이 어렵다면 수화영상이나 카카오톡 등 메신저를 통한 정보제공 등 차선책을 통한 도움을 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시아나 홈페이지 캡처 ⓒ투데이신문
아시아나 홈페이지 캡처 ⓒ투데이신문

항공사별 장애인 서비스는 있지만...

국내 항공사들은 장애인을 위한 서비스 제도를 운용하고 있으며 이는 각 항공사 홈페이지에 안내돼 있다.

아시아나의 경우 시각 시·청각장애인을 위해 탑승·입국 수속을 보조한다. 단, 비동반 시각장애인의 경우 스스로 보행과 제3자의 도움 없이 식사 또는 개인용무가 가능해야 하고, 출·도착지 공항에 보호자가 있어야만 항공기를 이용할 수 있다. 또 ▲하네스(안전벨트) 착용 ▲목적지 또는 경유지 검역절차 기준 부합 ▲공인기관 인증서 소지 등 조건을 충족할 경우 보조견 무료 동반도 가능하다.

휠체어가 필요한 고객에게는 휠체어, 전동차(인천공항에 한함)를 지원하고 탑승·출국 수속을 전담 직원이 돕는다. 또 도착 시에는 공항 내 마중 나온 보호자에게까지 인계한다. 기내에서는 자유롭게 통로를 이동할 수 있도록 기내용 휠체어가 비치돼 있다.

대한항공은 시·청각장애인을 위해 전담 직원이 안내를 맡고, 필요에 따라 추가 요금 없이 안내견과 기대 동반 탑승을 허용한다. 휠체어가 필요한 고객에게는 휠체어를 지원한다. 개인 휠체어를 보유했을 경우 도착지까지 무료로 운송해준다. 또 탑승까지 전담 직원이 보조하고, 도착 후에는 터미널 내 도착장까지 이동을 돕는다. 기내에는 전용 휠체어가 탑재돼 있다.

제주항공 홍페이지 캡처 ⓒ투데이신문
제주항공 홍페이지 캡처 ⓒ투데이신문

또 제주항공, 진에어, 티웨이항공, 이스타항공 등 저가항공에서도 휠체어가 필요한 고객을 위한 휠체어 무료 대여 서비스를 제공한다. 단, 티웨이항공을 제외한 나머지 저가항공사에서는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서비스에 관한 정보를 홈페이지에 안내하지 않아 그들을 위해 어떤 편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

이와 관련해 항공업계 측은 장애 유형에 따른 편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나 불가피한 제한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휠체어장애인을 위해 상시지원 가능한 대여 휠체어 수량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다. 청각장애인을 위해서는 수화 서비스는 제공되지 않고 있으나 기내에서 글로 된 매뉴얼을, 시각장애인을 위해서는 점자로 된 브리핑 카드를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기내 휠체어의 경우 항공기 복도를 지나갈 수 있는 규격으로 제작되기 때문에 장애인 고객 개인의 휠체어 크기보다 작은 건 불가피하다”면서 “장애인 고객이 앉은 자리에 배치되는 승무원은 있지만 전담 승무원을 두긴 어려워 개인용무나 식사가 스스로 어려운 비동반 시각장애인의 탑승 제한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장애인 고객 서비스를 위해 안전과 서비스 분야로 나눠 내부 매뉴얼에 맞춰 승무원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제주항공은 관계자는 “현재 국내공항지점에서 휠체어 장애인을 위한 대여 휠체어 40여개를 보유하고 있으며 추가 구매를 계획 중이며, 해외지점의 경우 현지 협력사에서 제공하고 있다”며 “기내에서도 37대 항공기 내에 모두 기내 휠체어가 1대씩 구비돼 있다. 다만 기내 복도 이동이 가능한 크기의 휠체어이며, 좌석 배정은 이동이 쉬운 앞쪽으로 배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시·청각 장애인을 위한 전담 승무원은 따로 없다”면서 “다만 청각장애 승객을 위한 승객 브리핑카드 활용법, 비상상황 시 대응 방법과 시각장애인을 위한 비상장비 및 비상구 위치 안내방법, 촉수 정보 제공 방법, 탈출방해 물품 고정안내 방법, 보조견 관련 필요 서류 및 규정 교육 등을 객실 승무원에게 교육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휠체어 이용 승객을 위해 특별보조 기내용 휠체어 사용법, 위치 및 수량관리, 사용 시 주의사항 등 교육도 이뤄지고 있으며 이 밖에도 다리를 구부릴 수 없거나 심각한 언어장애 등 특별 보조가 필요한 승객에 대한 탑승 절차 및 긴급 비상상황 응대 방법 등 교육도 실시된다”고 부연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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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정책·사회 복합 개선 필요”

한국소비자원이 2015년 실시한 장애인여행 설문조사에 따르면 ‘장애인의 여행 희망 비율’은 국내여행 93.1%, 해외여행이 88.7%로 비교적 높게 나타난 반면, 여행 경험 비율은 국내여행 72.6%, 해외여행은 고작 15.7%에 그쳤다.

또 응답자 다수가 여행 여건의 불편함을 호소했는데 그 원인(중복 선택 가능)을 여행 유형별로 살펴보면 국내여행은 ▲‘장애인 이동 편의시설 부족’ 74.1% ▲ ‘장애인 여행 상품 부재’ 44.8% ▲‘비싼 여행 비용’ 30.8% 순으로, 해외여행은 ▲‘비싼 여행 비용’ 65.0% ▲‘장애인 여행상품 부재’ 54.7% ▲‘장애인 이동 편의시설 부족’ 45.3%로 나타났다. 이동 편의시설 부족으로 장애인들이 여행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2015년부터 2년간 장애인 항공기 이용관 관련한 서비스 제공 미흡, 장애인에 대한 정보 접근권 제한 등 문제에 대한 직권 조사를 실시했다. 이듬해 10월 조사 결과를 토대로 국토교통부와 한국·인천국제공항공사, 7개 국내 항공사에 항공기 탑승 시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한 인적·물적 서비스 제공 및 직원교육 실시를 권고했다.

이에 한국공항공사는 공항 건물 구조 때문에 여객탑승교 설치가 어려운 3개 공항에 휠체어 승강설비를 구비·운영하겠다고 밝혔다. 또 인천국제공항사는 여객탑승교와 항공기를 연결하는 높이차를 없애기 위해 74개 탑승교 전체에 이동식 경사판 비치를 완료했다.

또 국내 7개 항공사는 장애인의 항공기 접근성 향상을 위해 ▲인적서비스 제공 및 서비스 담당 직원 교육 ▲기내용 휠체어 및 고정용 안전벨트 비치 ▲장애인 항공기 이용 시 사전 서비스 요청 시스템 마련 등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럼에도 장애인의 원활한 항공기 이용을 위한 규정과 사회 시스템은 여전히 미흡하다는 지적이 있다.

사회적기업 장애인전문여행사 ‘두리함께’ 이보교 이사는 “장애인 항공기 이용의 어려움은 항공사의 문제일수도, 정부 정책의 문제일수도, 사람들 인식의 문제일수도 있다”고 꼬집었다.

이 이사는 “각 항공사마다 대응 시스템이 다 다르기 때문에 각각의 자체 매뉴얼로 장애인 고객을 응대하고 있다. 때문에 예를 들어 A 항공사에서는 전담 팀을 두고 굉장히 체계적인 장애인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B 항공사는 상대적으로 미흡한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또 “다만 이러한 문제를 항공사 측에 100% 책임을 물을 순 없다”며 “정부 차원에서 장애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인센티브를 주고, 아닌 기업에 대해서는 불이익을 주는 시스템을 마련해야만 장애인들이 소비주체로서 당당하게 항공기를 이용할 수 있게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두리함께)와 같은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를 통해 문제를 파악해야 하는데 아무도 묻는 사람이 없다”며 “정부에서는 현재 무장애 관광지 조성, 관광 약자 접근성 전수조사 등에만 집중하고 있다. 이게 바로 탁상행정”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과거에는 관광지에서 장애인 관광객을 받아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해야 하는 분위기였지만 이제는 관광사업 공급자들이 직접 우리 측에 영업을 오고 자체적으로 시스템을 개선하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면서 “장애인을 소비주체가 아닌 복지 대상으로 바라보는 사회 시각 개선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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