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고화된 레드 콤플렉스·우경화는 아직도
자기검열의 잣대와 후퇴한 진보의 가치

지난해 12월 8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사법적폐 청산, 이석기 의원 석방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의 석방을 촉구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지난해 12월 8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사법적폐 청산, 이석기 의원 석방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의 석방을 촉구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남정호 기자】 내란선동사건이 일어난 지 5년 반, 통합진보당이 해산된 지 4년이 흘렀다. 그러나 당시 통합진보당 사건으로 공고화된 한국사회의 레드 콤플렉스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통합진보당에 찍힌 종북 낙인도 여전히 정치권 등에서 이용되고 있다.

통합진보당에 찍힌 낙인에 대해 국회 앞 농성장에서 만난 김미희 전 통합진보당 의원은 그간 우리 사회가 말해온 ‘종북’의 의미에 대해 먼저 짚었다.

“종북이라는 말뜻은 북을 추종한다는 말이다. 저희는 북을 추종한 적이 없다. 다만 북을 악마라고 표현한 적도 없다. 북을 추종해서가 아니라, 악마라고 비난하지 않으면 종북이라고 그동안 우리 사회는 규정해왔다.”

북한을 비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찍혔던 종북의 낙인 효과의 예로 김미희 전 의원은 지인들의 변화를 들었다.

“(당 해산) 사건이 막 터졌을 때는 (지인들로부터) 전화도 안 왔다. 저도 안했다. 제 전화가 혹시 도청될 수도 있는데, 괜히 전화한 사람한테 피해가 갈까 걱정됐다. 정말 꼭 필요할 때 아니면 전화를 안 하게 됐다.”

통합진보당과 관련된 사건 이후 박근혜 정권하에 공고화된 한국사회의 레드 콤플렉스는 우경화로 연결됐다. 또 우리 스스로에게 자기검열의 잣대를 들도록 만들었다. 그렇게 전 통합진보당 관계자들과 그들의 지인 사이에도 자기검열의 선이 그어졌다.

이와 관련해 김재연 전 의원은 통합진보당 해산 이후 우리 사회에 진보의 가치가 후퇴했다고 지적했다.

“그때 이후로 다양한 영역에서 진보적 목소리를 내려 할 때 주춤하는 경향들이 정의당 내지는 민주당 안에서도 보였다.”

공안정국을 통해 정권의 위기를 돌파하려 했던 박근혜 정권. 또 이에 편승해 상고법원 도입, 위상강화를 꾀했던 사법부와 헌법재판소. 이들의 공조는 결국 2016년 박근혜 정권이 몰락한 이후 점차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 이에 대해 오병윤 전 통합진보당 원내대표는 “박근혜 정권은 최대의 죄악인 민주적인 정당을 해산시킨 것을 시작으로 몰락의 길로 갔다”고 설명했다.

박근혜 정권이 무너진 지 3년. 뒤이은 문재인 정부의 대북 유화정책이 지난 2년간 이어졌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 유화정책은 문 대통령의 국정수행지지율을 꾸준히 뒷받침해왔다. 이렇게 변하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그간 공고화됐던 레드 콤플렉스에는 균열이 가고 있을까. 이에 대해 이상규 전 의원은 “조금씩 금은 가고 있지만, 여전히 강하게 남아있다”고 말했다.

“<이카로스의 감옥> 서문에도 문영심 작가가 이 책을 집필할 때 주변의 반대가 얼마나 강했는지에 대한 고충이 나온다. 그게 지금 없어졌을까. 촛불집회 등을 경험하며 일반 국민들한테는 좀 옅어졌을 수 있다. 그러나 한국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주요세력들에는 여전히 남아있다. 이건 서서히가 아니라 한 번에 와르르 무너질 거라고 본다.”

이 전 의원은 앞서 언급한 주요세력으로 박근혜 정권의 몰락 이후에도 여전히 공고한 기득권 동맹을 지목했다. 그러면서 통합진보당에 대한 일련의 사건들의 진실이 밝혀지고, 책임자 처벌이 진행되는 과정이 이 기득권 동맹이 무너져 가는 신호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그들의 외침

통합진보당 해산 이후 4년이 지난 오늘, 전 통합진보당 관계자들은 박근혜 정권 당시 통합진보당을 향했던 탄압을 외친다.

지난 연말 기자가 만난 이들은 통합진보당에 대한 강한 애정을 보였다. 진보세력이 함께 힘을 모아 집권하자는 통합진보당의 창당 정신 등 당이 가졌던 통합과 진보의 정신은 계속 마음에 지니고 있다는 김미희 전 의원. 해산된 지 4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자신에 대해 상당히 많은 것을 설명해주는 존재라는 김재연 전 의원. 평등한 세상, 전쟁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는 일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당이라고 정의한 오병윤 전 원내대표. 통합진보당에 대한 애정과 소중함, 자부심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이상규 전 의원. 그리고 내란선동사건 출소자들까지.

이들은 ‘통합진보당 명예회복과 이석기 전 의원 석방을 위한 공동행동’을 구성하고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사건 피해자 한국구명위원회’와 함께 통합진보당 해산에 대한 진상규명, 이 전 의원의 석방 등 명예회복을 계속 외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그동안 기자가 만난 사람들은 “통합진보당에 대한 명예는 민주주의를 의심하지 않는 국민들에 의해 다시 회복될 것”이라고 희망을 말했다. 또 “자유롭게 말하고 행동하며, 정치활동을 할 수 있는 자유를 파괴한 행동을 바로잡는 것은 한국사회의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중대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정권하에 찍힌 낙인에서 벗어나 통합진보당에 대한 명예회복이 이뤄지는 것. 이것이 앞서 수년간 그들이 외침을 멈추지 않는 이유다.

왼쪽 상단부터 김미희 전 통합진보당 의원, 김재연 전 의원, 오병윤 전 원내대표, 이상규 전 의원, 김근래 전 통합진보당 경기도당 부위원장, 한동근 전 새날수원의료생협 이사장 ⓒ투데이신문
왼쪽 상단부터 김미희 전 통합진보당 의원, 김재연 전 의원, 오병윤 전 원내대표, 이상규 전 의원, 김근래 전 통합진보당 경기도당 부위원장, 한동근 전 새날수원의료생협 이사장 ⓒ투데이신문

통합진보당에 가해진 당시 국가권력의 탄압, 그 의미에 대하여

김미희 전 통합진보당 의원

박근혜 정권은 강연 90분 했다는 이유로 이석기 의원에게 9년형을 선고하면서 우리 국민의 입을 틀어막았다. 소신발언을 더 이상 못하게 만들었다. 통합진보당을 강제로 해산하면서 박근혜 정권을 비판하는 모든 세력을 갈라놓고 연대하지 못하도록 강요했다. 통합진보당이 해산되면서 통합진보당 당원들은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만나길 꺼리는 존재가 되고, 오히려 당원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까봐 연락하기를 꺼리고, 통합진보당과 함께하던 많은 단체들이 연대하기를 주저하는 인간성의 짓밟힘을 당했다.

김재연 전 통합진보당 의원

통합진보당에 대한 탄압은 궁지에 몰린 박근혜 정권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종북몰이를 통한 희생양을 만들어 공포정치, 공안정치로 온 나라를 휘감게 만드는 그들의 통치방식이었다고 생각한다. 안타깝게도 2014년 12월의 대한민국은 그렇게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면서 박근혜 정권을 살리는 방향으로 흘러갔지만, 그것이 한국정치의 대세를 움직일 수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짓밟고 희생양으로 삼았던 통합진보당에 대한 명예는 민주주의를 의심하지 않는 국민들에 의해 다시 회복될 거라고 믿는다.

오병윤 전 통합진보당 원내대표

정당은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인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 결사의 자유의 결정체다. 그러한 정당을 박근혜 정권이 강제 해산한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을 파괴한 헌법 유린행위다. 그것도 모자라 국민이 선출한 국회의원직을 박탈한 것은 헌법과 법률에 위배된 명백한 반헌법적 행위다.

이상규 전 통합진보당 의원

통합진보당에 대해 국정원, 청와대, 헌법재판소는 물론이고, 사법부까지 나서서 각종 정치공작과 뒷거래가 있었다. 국가권력이 총체적으로 통합진보당 해산과 내란음모사건에 관여한 것이다. 이것은 민주주의 기본질서를 해치는 전근대적인 행태일 뿐만 아니라 정치적 반대자를 폭력으로 가둬두려는 야만적인 행위이자 발상이었다. 이제는 이런 국가폭력이 근절돼 평화적이고 국민의 민심에 따라 정치가 이뤄지고, 사회가 안정적으로 재구성될 수 있는 길로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김근래 전 통합진보당 경기도당 부위원장

통합진보당에 가해진 국가폭력은 한마디로 정치적 살인행위라고 생각한다. 통합진보당을 통해 본인들의 정치적 꿈과 희망과 지향을 구현하려 했던 많은 사람들의 뜻이 접힌 것뿐만 아니라, 심하게는 통합진보당이 국가로부터 피해를 당한 피해자 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범죄집단인 것처럼 가해자로 취급받으면서 여전히 사회 속에서 차별과 배제, 혐오의 대상이 되고 있는 상황에 이르도록 내몰렸다고 생각한다. 이분들의 삶, 통합진보당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사람들의 진솔하고 따뜻한 마음들이 다시 명예가 회복돼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본인들의 정정당당한 정치적 거름이 될 수 있도록 역사와 정의를 바로 세우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한동근 전 수원새날의료생협 이사장

통합진보당의 강제해산은 국가 권력의 폭력성이 얼마나 극악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본다. 민주사회의 기본은 자유로움에 있다. 자유롭게 말하고 행동하며 정치활동을 할 수 있는 그 자유는 바로 민주주의의 근간이다. 이것을 국가권력이 자신의 이해와 맞지 않는다고 해서 여러 가지 사유를 조작해 합법적인 정당을 해산시킨다는 것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행동이다. 이러한 민주주의 파괴행동의 역사를 바로잡는 것은 바로 한국사회의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중대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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