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1세대 여성 봉제 노동자인 신순애씨는 일찍이 서울 동대문구 평화시장에서 시다로 봉제일을 시작했다. 그는 평화시장에서 자신의 이름보다는 기계에 붙은 일련번호처럼 ‘7번 시다’로 통했다.

순애씨의 아버지는 3·1 운동에 참여했고 그 영향으로 평생 몸이 아팠다. 순애씨 가족은 아버지의 약과 돈을 구할 요량으로 고향인 전북 남원을 떠나 가족과 함께 서울로 상경했다. 그때 순애씨 나이는 12살이었다.

순애씨는 초등학교도 채 마치지 못했다. 13살이 되던 해 그는 취업을 위해 한 공장을 찾았다. 그러나 공장장은 “엄마 젖이나 더 먹고 와라”라며 어린 순애씨를 되돌려 보냈다. 그 무렵 순애씨가 살던 집주인 딸은 평화시장에 다니고 있었다. 그가 순애씨에게 미싱 기술을 배워볼 것을 제안했다.

순애씨는 흔쾌히 응했다. 평화시장은 일하고 싶은 마음만 있으면 나이에 상관없이 취직이 가능했고, 당시 미싱 기술은 긍정적으로 평가되는 일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순애씨는 시다로 평화시장에 첫발을 내디뎠고. 그곳에서 15년간의 삶이 시작됐다.

평화시장에는 13살이던 순애씨만큼이나 어린 친구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대부분 초등학교를 졸업한 친구들이 많았지만 적게는 12살, 13살까지도 있었어요. 가족 생계에 돈을 보탰어야 하니까요. 지금으로 말하면 중소기업 같은 곳은 나이가 어리면 안되기 때문에 취업하려면 언니 주민등록증을 가지고 가는 경우도 있었죠. 그래서 나중에 보면 등본상 이름이랑 불리는 이름이랑 다른 경우가 많았습니다. 근데 평화시장은 나이조차 묻지 않았으니까, 일자리를 구해야 하는 입장에서 이만한 취업조건도 없었던거죠.”

일자리는 쉽게 구했을지언정, 일이 쉬운 건 아니었다. 순애씨는 아침 8시까지 출근해 꼬박 15시간 가까이 공장에 갇혀있었다.

“보통 출근은 오전 8시까지 였어요. 그 당시에는 밤 12시면 통행금지였는데 집 거리에 따라 멀면 10시 30분 정도, 가까우면 11시 30분까지 일을 시켰죠. 집에 빨리 가려고 일자리를 구할 때 사는 곳을 물으면 일부러 먼 지역을 얘기하기도 했습니다. 하루에 12시간 넘게 일하면서 단 10분도 쉬어본 적이 없어요. 일주일에 일요일 하루 휴일인데 그때도 토요일에 철야작업하고 일요일 아침에 퇴근했어요.”

잠 안 오는 약까지 먹여가며 일을 시키는 공장도 있었다.

“바쁠 때는 집에도 못 오고 공장에서 쪽잠 자기도 했어요. 어떤 곳은 잠 안 오는 약까지 먹여가며 철야작업을 시키는 곳도 있었어요. 2시간 자고 일어나서 또 일하고. 그런 곳이 많았죠.”

순애씨는 화장실을 마음대로 못 가는 게 가장 괴로웠다. 참는 게 버릇이 돼 지금도 그 습관이 남아있다. 한 달에 한 번 월경을 할 때는 다시는 꾸고 싶지 않은 악몽 그 자체였다.

“그렇게 긴 평화시장에 화장실이 가운데 하나 있었어요. 제 기억엔 3칸, 4칸 정도였는데 그 안에 모든 노동자가 다 같이 써야 하는 거예요. 점심시간에는 줄 기다리는데 시간을 다 보내기도 했죠. 트라우마라고 해야 할까, 지금도 소변을 참으려고 몸을 비비 꼬는 습관이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특히나 생리할 때는 정말 악몽이었죠. 많이 준비해 간다고 가는데 장시간 일하다 보니 매번 모자라요. 또 미군부대에서 면소재로 된 분유 자루를 잠바 속주머니 옷감으로 사용했어요. 이걸 몰래 빼다 생리대로 썼었는데 얼마나 딱딱한지, 30분만 차고 있어도 쓰라려요.”

제대로 된 창문 하나 없이 먼지가 날리는 작은 공간에 20명 남짓한 사람들이 함께 일하다보니 각종 병치레는 부지기수였다.

“공장마다 다르지만 제가 일했던 곳은 마도메, 시아게, 재단사, 재단보조, 공장장 등 20명이 같이 일했어요. 다락 형태였는데, 한층 면적만 따지면 5평이 안됐던 거 같아요. 여름에는 천조각이 날릴까 봐 선풍기도 못 켠 채 일했습니다. 겨울에는 추워도 화재 위험 때문에 난로를 못 켰고요. 최악이었죠 최악. 먼지가 많다 보니까 결핵에 걸린 사람이 많았어요. 우리끼리는 ‘평화시장에서 3년 일하면 골병들어서 시집도 못 간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죠.”

죽을 힘을 다해 일해도 순애씨가 매달 손에 쥘 수 있는 돈은 140원 남짓이었다.

“첫 달에 700원 받았던 거 같아요. 이후에는 당시 한 달 차비 580원을 제외하고 남는 게 140원 정도였습니다. 근데 어디 가도 그 돈 못 벌잖아요. 미싱 기술자 되면 7000원~1만원은 버니까 어린 나이에 그거 꿈꾸면서 참고 버틴 거죠.”

그 시절 가족의 생계를 위해, 꿈을 위해 하루하루를 버텨내듯 살았던 것은 순애씨 뿐만 아니라 대다수 평화시장 재단·봉제노동자들의 삶이었다. 그런 삶을 당연한 듯 살아왔던 그들에게 1970년 11월 13일 그날이 찾아왔다.

“평화시장에 구름다리라고 있었는데, 당시에는 지금처럼 인력소개소가 따로 있던 게 아니라 그곳에서 사람도 만나고 일자리도 찾았어요. 그런데 그날 사장이 거기 가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깡패가 죽어서 가마니로 덮어놨다면서. 진짜인 줄 알았죠. 그 시절엔 연탄가스 먹고 죽는다던가, 갑자기 죽는 사람이 많았으니까요. 누가 죽었는지 몰랐어요. 당시 사용주만 2000~3000명이었습니다. 그러니 우리 공장에서 일어난 일만 알지 옆 공장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기 어려웠죠.”

순애씨가 깡패인 줄로만 알았던 그는 전태일이었다. 그의 존재를 알게 된 건 무료로 공부를 시켜준다는 말에 찾은 청계노조 노동교실에서였다. 노동교실에서 그날 목숨을 끊은 청년이 전태일이었음을, 그가 왜 죽음을 택하게 됐는지 진실을 알게 됐다.

노동교실에서 만난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의 ‘여러분은 죽지 말고 공부해서 근로개선 하자’는 말이 순애씨의 가슴에 와닿았고, 이후 그의 삶은 서서히 변해갔다.

전태일의 죽음을 계기로 청계천피복노동조합이 조직됐고 순애씨도 그곳에 가입해 근로기준법 준수와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적극 싸웠고 근무시간 단축이라는 의미 있는 결과를 일궈내기도 했다.

노조에서 활동하며 감옥에 끌려가기도 했지만 순애씨는 투쟁의 끈을 놓지 않았다.

“계속 싸우다 보면 힘들 때도 있었죠. 그때마다 하물며 전태일 동지는 목숨까지 내놨는데 나는 살아 있으니 이 악물고 버텨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조합원들이 같은 마음이었을 거예요.”

전태일은 주어진 현실에 안주해오며 살아오던 노동자들에게 그들이 노동자로서 누려야 마땅한 최소한의 권리에 대해 경종을 울렸다. 그의 깨우침은 이 시대의 노동운동 발전을 이룩하는 데 큰 몫을 했다.

“보잘것없는 여공이 아니라 당당한 노동자임을 인식하게 해준 게 전태일이 죽고 만들어진 게 청계피복노조입니다. 온전히 나를 나로 인정해준 곳이었죠. 평화시장에 들어온 후 한 번도 내 이름을 불러준 사람이 없어요. 시다 시절에는 ‘7번 시다’, 미싱사 시절에는 ‘1번미싱사’였으니까요. 당당한 나로 설 수 있었던 노조는 천국이었죠. 그리고 노조는 전태일 동지 그 자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