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노동운동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 ‘전태일 열사’ 사망 50주기를 맞았습니다. 부당한 노동현실 가운데서 그는 노동자가 존중받는 세상이 도래하길 누구보다 간절히 바랐습니다. 이를 위해 자신의 육신을 화염 속에 내던지는 희생도 서슴지 않았죠.

그의 숭고한 희생에도 불구하고 그 시대 열악한 노동현실은 지금도 여전합니다.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 사각지대 안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저임금과 장시간 중노동에 시달리며, 최소한의 안전도 보장받지 못한 채 일하다 목숨을 잃곤 합니다.

점점 희미해져가는 노동존중사회에 대한 희망에 숨을 불어 넣어 줄 새로운 노동정책이 필요한 때, <투데이신문>은 ‘우리가 바라는 근로기준법’을 기획했습니다. ‘전태일기념관’을 방문한 시민들께서 ‘내가 바라는 근로기준법’ 게시판에 손수 남긴 의견들을 토대로 실제 노동현장 최전선에 있는 노동자들이 원하고 바라는 노동정책을 고찰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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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태일 기념관 ‘내가 바라는 근로기준법’ 게시판에 남겨진 글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여러분은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노동자이신가요?’

헌법 제34조에서는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한다’고 규정합니다. 이를 근거로 근로조건의 기준을 정의한 것이 바로 ‘근로기준법’이지요.

우리나라 최초 근로기준법은 1953년에 만들어졌습니다. 1997년 새롭게 제정된 이후에도 당대 노동현실과 요구 사항 등을 반영해 수차례의 개정을 거쳤고, 12장 116조항으로 구성된 지금의 근로기준법이 확립됐습니다.

근로기준법은 근로자의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는 근로조건의 최저, 최소한의 기준입니다. 고용계약에 따른 부자유·불평등을 실질적으로 파악하고, 근로계약 관계에서 일정한 수준 이상의 근로조건을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근로기준법에서는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사람’을 근로자로 규정합니다. 해당 요건들을 충족해 근로자로 인정되면 당연히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을 수 있어야겠죠.

하지만 근로자임에도 불구하고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5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인데요, 제11조(적용범위)에 따르면 ‘상시 5명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 또는 사업장에 적용한다. 상시 4명 이하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에 대해서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이 법의 일부 규정을 적용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5인 미만 사업장에는 △최저임금 △해고의 서면 통지와 예고 △퇴직금 △주 1회이상 유급 휴일 보장 등이 적용됩니다.

하지만 △부당 해고 △해고의 서면 통지 △연차 유급 휴가 △시간 외 수당(초과근무, 야근, 휴일수당) △휴업수당 등은 예외입니다.

적용되지 않는 예외 조항이 노동자에게 미치는 영향은 매우 치명적입니다.

우선 근로자가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될 경우 노동위원회에 ‘부당 해고 구제 신청’을 낼 수 있지만, 5인 미만 사업장은 부당 해고 규정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불가합니다.

또 해고 시 날짜와 사유 등을 구체적으로 기술해 서면으로 통지하지 않은 경우에도 부당 해고 구제신청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5인 미만 사업장은 해고 예고 통보 의무만 있을 뿐, 해고의 서면 통지 의무가 없기 때문에 이 역시 제외됩니다. 해고 30일 전 해고예고통보를 하지 않았을 때 30일분의 통상임금을 수당으로 지급받을 수 있는 수준이지요.

그리고 1년 동안 80% 이상 일한 근로자는 15일, 1년 미만 혹은 80% 미만 일한 근로자는 1개월 개근 시 1일 유급휴가를 받을 수 있고, 3년 이상 근무하면 2년마다 1일씩 늘어납니다. 하지만 5인 미만 사업장은 연차 유급 수당을 지급하지 않아도 되며, 휴무일만큼 급여에서 제외해도 문제 되지 않습니다.

이 밖에도 근로자의 근로시간은 주 40시간을 넘길 수 없고, 1일 8시간을 초과해선 안 됩니다. 만일 초과했을 경우 통상임금의 50% 이상을 가산해 지급해야 합니다. 사용자로 인해 휴업을 할 경우에도 그 기간 동안 평균임금의 70% 이상의 수당을 지급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나 5인 미만 사업장은 시간 외 수당도, 휴업 수당도 모두 보장하지 않아도 됩니다.

실제 ‘권리찾기유니온 권유하다’가 올해 1월 공개한 ‘5인 미만 사업장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5인 미만 사업장에 소속된 응답자의 62.3%가 시간 외 근무수당을 적용받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야간근무수당도 67.1%에 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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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태일 열사 동상 ⓒ투데이신문

노동계는 5인 미만 사업장은 근로기준법 사각지대라며, 지속적으로 근로기준법 적용 확대 방안을 마련하라고 촉구해왔습니다.

2018년 8월, 고용노동부의 적폐청산TF로 알려진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도 5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에 적용하는 근로기준법 시행령을 개정해 확대 적용하라고 노동부에 권고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시행까지는 이어지지 못했죠.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이 예외 적용은 열악한 현실에 놓인 자영업자와 영세사업자를 보호하기 위한 취지입니다. 자영업자나 영세사업자가 인건비 등으로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해 4월, 헌법재판소도 4명 이하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장에 근로기준법의 일부 규정을 적용할 수 있도록 정한 근로기준법 제11조 제2항에 관한 헌법소원에 대해 위 같은 취지 등을 고려해 재판관 7대 2 의견으로 합헌을 결정했습니다.

청년전태일 김종민 대표는 고용 인원에 따라 근로기준법 적용을 제한하는 것은 고용의 개념이 확대되고 있는 지금 시점에는 옳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근로기준법을 전면 적용했을 때 우려되는 자영업자나 영세사업자의 부담은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는 의견입니다.

“고용 인원에 따라 사업 규모가 달라졌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1인 사업자, 특수고용, 플랫폼 노동 등 고용형태도 다양해지고 있고요. 이들은 현행법상 사용자로 분류되지만 노동자로서 누릴 있는 권한을 확대해야 한다는 게 추세잖아요. 이처럼 고용 형태와 산업구조가 변화하고 있는데 과거 기준에 맞춰 제한을 두는 게 맞나 의문이에요. 자영업자와 영세사업자를 보호는 근로기준법 제한 적용이 아닌 정부가 지원하는 형태로 가야 맞는 거죠.”

어느 한편의 희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법은 민주주의 국가에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모든 노동자가 공평하게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으면서도, 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자영업자나 영세사업자의 부담을 덜어줄 절충안 마련이 요구됩니다.

전태일 기념관 ‘내가 바라는 근로기준법’ 게시판 ⓒ투데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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