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노동운동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 ‘전태일 열사’는 부당한 노동현실 가운데서 노동자가 존중받는 세상이 도래하길 누구보다 간절히 바랐습니다. 이를 위해 자신의 육신을 화염 속에 내던지는 희생도 서슴지 않았죠.

그의 숭고한 희생에도 불구하고 그 시대 열악한 노동현실은 지금도 여전합니다.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 사각지대 안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저임금과 장시간 중노동에 시달리며, 최소한의 안전도 보장받지 못한 채 일하다 목숨을 잃곤 합니다.

점점 희미해져가는 노동존중사회에 대한 희망에 숨을 불어 넣어 줄 새로운 노동정책이 필요한 때, <투데이신문>은 ‘우리가 바라는 근로기준법’을 기획했습니다. ‘전태일기념관’을 방문한 시민들께서 ‘내가 바라는 근로기준법’ 게시판에 손수 남긴 의견들을 토대로 실제 노동현장 최전선에 있는 노동자들이 원하고 바라는 노동정책을 고찰해보고자 합니다.

‘전태일기념관’을 방문한 시민들이 ‘내가 바라는 근로기준법’ 게시판에 남긴 글 ⓒ전태일기념관<br>
‘전태일기념관’을 방문한 시민들이 ‘내가 바라는 근로기준법’ 게시판에 남긴 글 ⓒ전태일기념관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노동자는 사전 인가를 받지 않고 단체를 설립할 수 있다. 규약, 규칙을 작성하고 자유롭게 대표자를 선출하며 관리 및 활동을 조직하고 계획을 수립할 권리를 가진다.’

국제노동기구 ‘ILO’ 핵심협약에 포함된 내용입니다. ILO 핵심협약은 세계 노동자들이 기본적인 노동권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정한 국제규범입니다.

핵심협약은 △결사의 자유(제87호·98호) △강제노동금지(제29호·105호) △균등대우(제100호·111호) △아동노동금지(제138호·182호) 등 8가지입니다.

ILO 회원국이라면 핵심협약에 포함된 내용을 전부 비준하는 것인 원칙입니다. 이에 따라 ILO 187개 회원국 가운데 146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 회원국 가운데 32개국이 8개의 협약을 모두 비준했습니다.

우리나라는 1991년 12월 ILO 정식 회원국으로 가입했습니다. 때문에 앞선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8개 협약을 모두 비준해야 마땅하지만 국내 사정 등을 이유로 △결사의 자유 △강제노동금지에 관한 4가지 협약은 비준을 미뤘습니다. 비준을 요구하는 국제사회의 압박이 계속돼 왔지만 쉽사리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노동계는 핵심협약을 비준하라고 오래도록 목소리를 내왔습니다.

이러한 여론을 반영해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부터 ‘ILO 핵심협약 비준으로 국가 위상에 걸맞은 노동기본권 보장을 이루겠다’고 약속해왔습니다. 실제 국정 5개년 계획에도 이 같은 내용을 담았고, ILO 100주년을 맞이하는 2019년까지 핵심협약 비준을 이뤄내겠다는 의지를 드러냈습니다.

그 약속은 2021년이 돼서야 비로소 구체화되기 시작했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노동조합법·공무원노조법·교원노조법 등 이른바 ‘ILO 3법’ 개정안이 지난 2월 26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이에 따라 △결사의 자유(제87호·98호) 비준동의안 △강제노동금지(제29호) 등 핵심협약 3건을 담은 비준서가 대통령 재가를 거친 후 ILO 사무국에 기탁될 예정입니다. 기탁된 시점으로부터 1년이 지나면 핵심협약은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가지게 됩니다.

결사의 자유에 관한 핵심협약이 비준된 만큼 그간 제한받아왔던 노동자들의 ‘노조할 권리‘ 보장에 대한 기대와 관심이 쏠렸습니다.

하지만 노동계의 우려는 여전합니다. 국내 관련법이 여전히 핵심협약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개정 전 노조법에서는 근로자의 자유로운 노조 조직과 가입을 보장해왔습니다. 문제는 근로자로 인정되지 않는 근로자들이었습니다. 특수고용노동자들은 사업장에 종속된 노동자들과 같은 방식으로 노무를 제공을 하고 있지만 계약서상 사업자로 분류되기 때문에 자유로운 노조 조직과 활동이 매우 어렵습니다.

실제 전국대리운전노조도 설립신고서를 제출한지 429일 만에 설립신고증을 받고 나서야 비로소 노조로 인정됐습니다.

정부는 이를 보완하는 방법으로 실업자·해고자 등도 노조 가입 대상에 포함시키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근로자의 개념 자체를 확대하면 됐을 일이지만 노조 가입범위를 확대하는 우회로를 택한 셈입니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여전히 ‘근로자가 아닌 자’인 특수고용노동자 등의 단결권은 제한될 수 있습니다.

또 노조의 쟁의행의와 관련해서도 사업장 내 점거를 전면 금지하는 조항을 삭제했지만 ‘사용자의 점유를 배제해 조업을 방해하는 형태의 쟁의행위 금지’라는 새로운 조항을 만들었습니다. 사실상 개정 전과 상황이 별반 달라질게 없는 상황입니다.

노동계는 개정 노조법이 ILO 핵심협약에 어긋나는 조항을 포함하고 있다며 재개정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ILO 핵심협약에 어긋나거나 부족한 현행 노조법 및 하위법령은 비준서 기탁 후 발효까지 1년의 유예기간 안에 전면 개정돼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여전히 ILO 핵심협약 위반, 결사의 자유 원칙 위반 상태를 지속하겠다는 입장으로 매우 유감스럽고 심각하게 우려된다. 그간 ILO는 해고자, 실업자 등의 노조 가입과 활동을 차별하지 말라고 누차 권고해온 바 있다. 그럼에도 개정된 노조법과 시행령 개정안은 여전히 차별을 포함하고 있다. ILO 핵심협약과 결사의 자유 원칙에 맞게 원점으로 돌아와 재검토돼야만 한다.” -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노동자들의 ‘노조할 권리’는 전 세계가 요구하는 노동기본권입니다. 세계 경제 순위 10위권 안에 드는 경제대국에서 노동자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조차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지난 30년 노동자들은 너무나 간절히 기다려왔습니다. 하루빨리 세상에 일하는 모든 사람이 주체가 돼 자신들의 근로조건을 개선해나갈 수 있는 노조할 권리, 투쟁할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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